기획특집
기획의 말

  • 기획특집
  • 2021년 봄호 (통권 79호)
기획의 말

팬데믹 이후, 당연한 줄로만 알았던 것들이 더이상 당연하지 않게 된 상황 속에서 우리는 살게 되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어느덧 뉴노멀이 된 것도 낯설지만 ‘집의 의미와 가치’에 관심이 집중되는 현상도 그만큼 낯설고 의미심장해 보인다. 전통적인 집 관련 TV 프로그램이었던 <건축 탐구 집> 이외에도 최근 <구해줘 홈즈>, <서울엔 우리 집이 없다>, <나의 판타집>, <땅만 빌리지> 등 집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예능·교양 프로그램의 연이은 등장도 우리 시대 평범한 사람들의 관심이 어디에 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로 보인다. 여기에는 소위 ‘영혼까지 끌어 모아’ 집을 사야 할 정도로 가파르게 상승한 집값의 문제가 핵심적인 배경일 테고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집을 통해 쌓아나갈 수 있는 삶의 다채로운 경험과 다양한 관계, 추억을 어떻게든 회복하고 싶은 동시대 사람들의 욕망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팬데믹 이후 카페, 식당, 도서관, 학교, 경로당 등 공공이 만나고, 또한 나누어 쓰는 공간들이 연이어 폐쇄되고 어쩔 수 없이 각자의 방이나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공간을 다시 돌아보게 된 것도 ‘집의 의미와 가치’에 관심이 쏠린 큰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이런 이유로 2021년 봄호 기획특집으로 <우리 시대, 집으로 가는 길>이라는 주제를 선정, 네 분의 필자를 모셔 이야기를 듣는 자리를 마련했다.
김광현은 섣불리 집의 공공성을 절대선인 양 내세우지 말고 실제 우리 현실에서는 집이 매매의 대상임을 인정한 뒤에, 거주하는 집으로서의 가치와 공공성을 주장해야 하는 것이 아니겠느냐는 현실적인 조언을 건넨다. 박해천은 방이 없고 집이 없는 20~30대 청년 세대의 충족되지 못한 욕망을 기성세대가 어떻게 자산 증식의 수단으로 활용해왔는지 소묘해낸다. 한편 아파트, 한옥, 빌라를 거쳐 마침내 서촌에 3층짜리 협소주택을 실제로 지어 거주하고 있는 정성갑은 그동안 거쳐온 집에서 얻은 다양한 추억을 되돌아보았고, 임솔아는 비슷한 평수와 구조를 가진 주공아파트 단지에 살았던 어린 시절, 이웃 사람들, 놀이터, 잔디밭까지 모두 ‘우리집’으로 확장하여 인식했던 행복했던 기억을 회고한다. 이 네 편의 글이 우리 시대 집의 풍경들을 조망하고, 그 의미와 가치를 새롭게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박상수
박상수
시인, 평론가, 명지대학교 문예창작과 조교수, 계간 《대산문화》 편집자문위원, 1974년생
시집 『후르츠 캔디 버스』 『숙녀의 기분』 『오늘 같이 있어』, 평론집 『귀족 예절론』 『너의 수만 가지 아름다운 이름을 불러줄게』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