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후기
인간답게 살지 못하게 된 ‘인간’들의 이야기

- 스페인어역 서유미 장편소설 『당분간 인간』

  • 번역후기
  • 2022년 여름호 (통권 84호)
인간답게 살지 못하게 된 ‘인간’들의 이야기

- 스페인어역 서유미 장편소설 『당분간 인간』

 

『당분간 인간』을 처음 접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딱 4년 전 봄, 4월이었습니다. 그때는 4년 뒤에 이 작품이 스페인어로 새로 태어나 스페인어권 독자들의 손에까지 닿을 수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번역 작업은 처음엔 단순히 연습으로 시작했지만 점점 작품내용에 공감하게 되면서 스페인어 사용자들과 나눠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한국 생활을 한 지 올해 10년이 되는 제게 나름 익숙한 한국의 분위기와 사고방식 등을 한국을 경험하지 못한 독자들에게 작가의 의도대로 전달하는 것에 도전하기로 했습니다. 다행히 『당분간 인간』에는 그 제목대로 ‘인간’들의 이야기를 해주는 보편적인 주제들이 다뤄져 있기에 선진국의 사회인이라면 어떤 방식으로든 충분히 마주칠 만한 문제들로 다가옵니다. 누구나 미운 동료를 만난 적이 있는 것처럼 누구나 다른 거주 형태를 꿈꿔보고 누구나 이웃이 놓여 있는 상황을 본인의 상황과 비교하고 그러면서도 남들이 사는 방식을 의심스럽게 여겨 이해하지 못하는 일도 있는 법입니다. 하지만 이 ‘인간’들의 이야기는 한국이란 특색으로 물들어 있습니다.

「스노우맨」에서 어떤 직장의 구성원인 주인공은 인간의 본질을 잃은 노동자로서 출근하는 것에 필사적으로 목숨을 겁니다. 하지만 이것은 본인과 가족의 생계 유지를 위해 당연시되는 행위일 뿐입니다. 「그 곳의 단 잠」에서는 “높으면 높을수록 좋은” 아파트 생활에 대한 환상이 소개되는데요. 이 이야기에서는 작가가 도시 풍경이 단조로워지는 현상과 함께 모두가 좋게 생각하는 것이 일반화가 되어 그것을 다르게 생각하는 자가 맞이하는 난색을 그립니다.

각 작품마다 공통적으로 뽑을 수 있는 요소를 하나 선택하라면 그것은 바로 단조로움이 아닐까 싶습니다. 「저건 사람도 아니다」에서는 인간의 불완전함을 억제하고 사람의 기계화를 바라는 사회가 승리하여, 인간의 모습을 하고는 있지만 본질이 파괴되고 완전하며 실패하지 않는 기계가 그들의 자리를 차지해버립니다. 언제나 실수하지 않고 사회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인간의 모습, 그 이상적 현실을 구현하는 것은 제목이 예고하는 바대로 “사람이 아닙”니다.

직장 생활에 목숨을 거는 사원들, 아파트 생활에 대한 광기, 모든 면에서 빈틈없는 사회인들 등 여러 흥미로운 에피소드들은 한국 사회를 되돌아보게 하고 제가 경험한 일들을 새삼 떠오르게 했습니다.


※ 『당분간 인간(TEMPORALMENTE HUMANOS)』은 재단의 한국문학 번역·연구·출판지원을 받아 필자의 번역으로 스페인 콰테르니(QUATERNI)에서 2022년 발간되었다.

차로 알바라신
번역가, 1989년생
역서 『퀴르발 남작의 성』 『당분간 인간』 『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 강민호』 『백만원의 로맨스』(웹툰)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