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나의 풍경, 대기실

  • 2022년 여름호 (통권 84호)
①나의 풍경, 대기실

거기가 어디든 바깥으로 나가고 싶다.
‘돈도 명예도 다 싫’다던 노랫가락이 저절로 나오는 시절의 내 풍경을 한번 엿본다.
이 대기실을 언제 벗어날 것인가. 담장을 허물면 된다던가?

나의 풍경

이제 남풍(南風)에 대해 묻는 이는 없다

모란이 있는 풍경 한 폭 나누며 미소 권할 수 없는 나라

서둘러 제 이름 떨구는 4월 꽃들 아래 내 이름자도 풀어 날리며

서 있다

서 있다

그것이 나의 풍경

그림자는

선거 연설문처럼 속되고 길고

자코 메티 선생님처럼

또 길다


대기실

대기하세요
이렇게 말한다
기다리세요
이렇게도 말한다
줄 서세요
차례차례 서세요
이렇게 말한다 번호를 받고
대기실
서로의 눈을 피하면서
조성된 침묵을 어쩌지 못하면서
선고를 기다린다
병을 기다린다
울음까지도 참으며 기다린다
이 수굿함은 무엇인가
함박눈이라도 온다는 듯이
숨도 크게 안 쉬는
분주한 고요들의 대기실
떠들면 안 됩니다
이렇게 말한다
대기실
나는 일생 거친 모든 대기실에서
명이 급격히 줄었다

나는 제비꽃
나는 매화 동백 라일락
나는 작약 모란 개두릅
머위 나는 속삭임 숨결 큰 숨결
나는 외침 함성 커다란 함성
해와 달이 가는 듯한 청각 바깥의 함성
나는 봄 나는 봄 먼동 싹 새싹
나는 혁명
김수영의 방 말고 혁명
최제우의 개벽 자유 자유 자유 자유

대기실에 와야 하는 목록을
읊조리면서 당뇨 혈압의
진단서를 기다린다
먹구름 떼를 맞이하는 꽃밭처럼
대기실에 앉아서
‘대기실......’
파아란 입술을 달싹인다

장석남
시인, 한양여자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 1965년생
시집 『꽃 밟을 일을 근심하다』 『젖은 눈』 『고요는 도망가지 말아라』 『뺨에 서쪽을 빛내다』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