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문학의 공간
그거 내가 소설로 써도 돼?

  • 내 문학의 공간
  • 2022년 여름호 (통권 84호)
그거 내가 소설로 써도 돼?

작업을 할 때, 대부분 나는 물고기군님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간다. 도시의 중앙을 관통하는 십오 분 남짓한 시간동안 우리는 함께 라디오를 듣거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물론 서로에게 화가 잔뜩 나서 아무 말도 안 하는 날도 있긴 하다. 어쨌든 그런 날이어도 나는 어김없이 그가 운전하는 차의 조수석에 앉아 있다. 어느 날, 신호가 바뀌길 기다리던 그가 이렇게 말했다.

“저기 좀 봐.”

길은 세 갈래 방향으로 뻗어있다. 왼쪽, 가장 큰 도로 사이로는 적어도 20~30층은 될 법한 삐까뻔쩍한 빌딩들이 늘어서 있다. 그리고 오른쪽 도로변에는 낮은, 그러니까 6~7층 정도인, 아주 오래되어 보이는 건물 몇 채가 주루룩 서 있다. 그가 가리킨 곳은 바로 그곳이다. 사실은 오래되다, 라는 표현 정도로는 부족하다. 벽면에는 온통 금이 가 있고, 색은 바랬고, 창문은 뿌옇다 못해 거무죽죽하다. 간판에는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나는 왼쪽 도로변에 또다른 비까번쩍한 건물을 세우는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갑자기 그 사실이 좀 얼떨떨해졌다(지금은 그곳에 호텔이 들어서 있다). 공사가 진행되기 전, 그곳에 서 있던 건물이나 가게가 도저히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도시의 어떤 삶은 그런 식으로 순식간에 사그라들고, 잊혀져간다. 그런 식으로 사그라들고 잊혀진 삶이 너무 많다. 그런 생각 때문에 나는 두려운 기분이 들었다.

“저기 저 오래된 건물들도 결국은 다 없어지게 될까?”

물고기군님은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고 대답했다.

“그런 기사를 읽은 적이 있어. 30년 후쯤에는 초고층 아파트가 슬럼화가 될 수도 있대. 고층 아파트뿐만 아니라, 도시 중앙의 건물이 텅텅 비고 그곳에 노숙자나 갈 곳 없는 사람들이 모여서 살게 될 수도 있어.”

“정말 그렇게 될까? 사람들이 그런 땅을 버려두려고 할까?”

그는 그럴 수도 있지 않겠냐고 말했다.

 

내가 이 건물을 처음 본 건 2020년인데 여전히 이렇게 남아있다.

 

“사실은 나도 잘 몰라, 하지만 이런 생각도 해 봐. 이를테면 집을 나온 가출 청소년들이 보금자리를 만들어서 그곳에 자기들만의 왕국 같은 걸 세울 수도 있잖아.”

두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하나는 <매드맨>이라는 드라마에 나온 장면인데, 등장인물인 베티는 어떤 여자아이를 찾으러, 버려진 듯한, 거대한 아파트의 입구로 들어간다. 전기도 제대로 들어오지 않는 그곳에는 집을 나온 청소년들이 나름의 규칙을 지키며 공동생활을 하고 있다. 베티는 아이들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만들어주고 그곳을 빠져나온다. 다른 생각은 그 당시 내가 가던 카페의 맞은편에 서 있는 건물에 대한 것이었다. 카페는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전면이 창문이어서 낮 동안 초여름의 햇살이 근사하게 비쳐들었다. 나는 보통 카페의 가장 안쪽에 앉아서 작업을 하곤 했는데, 햇살이 비쳐 들어오는 창문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으면, 이차선 도로 건너편에 서 있는 건물의 일부분이 눈에 들어올 때가 있었다. 건물은 지나치게 크고 지나치게 낡았다.

그리고 그날 나는 처음으로 그 건물을 가까이에서 살펴볼 생각을 했다. 어떻게 그걸 알아차리지 못할 수가 있었을까? 건물은 텅 비어있었다. 여전히 간판이 남아있었기 때문에, 나는 그걸 몰랐던 것이다. 여기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다 어디로 갔을까? 또 다시,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작은 통로의 철문은 잠겨 있었고, “출입금지, 씨씨티브이 작동중”이라는 표지판이 붙어있었다. 나는 끝이 보이지 않을 것 같은 건물의 가장 위층으로 시선을 주었다. 햇살 때문에 눈이 따가왔다.

그날 밤, 나는 물고기군님에게 물었다.

“그거 내가 소설로 써도 돼?”

“뭘?”

“청소년들이 왕국을 세운다는 거. 그리고 노숙자들이 슬럼화된 건물에 모여 사는 거.”

그는 나를 보며 빙그레 웃었다. 그리고 이렇게 대답했다.

“그럼, 뭐든지, 넌 뭐든지 쓸 수 있을 거다.”

손보미
소설가, 1980년생
장편소설 『디어랄프로렌』 『작은 동네』, 소설집 『그들에게 린디합을』 『우아한 밤과 고양이들』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