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식당
이모네집에 가지 않으면 여행이 끝나지 않는다

- 양양 오색약수 <이모네집>

  • 인생식당
  • 2022년 여름호 (통권 84호)
이모네집에 가지 않으면 여행이 끝나지 않는다

- 양양 오색약수 <이모네집>

내가 <이모네집> 식당에 처음 발을 들여놓기 시작한 건 90년대 중반부터였다. 어떤 경로로 어떻게 처음 발을 들여놓기 시작했는지는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당시 나는 첫 소설집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을 출간한 이후 원고 청탁이 너무 많이 밀려들어 항상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래서 원고가 끝날 때마다 차를 몰고 무작정 동해 쪽으로 길을 나서곤 했다.

영동고속도로와 7번국도 곳곳으로 차를 몰고 다니며 원고 작업으로 차오른 열기를 식히곤 했는데 그중에서도 양양의 조산리가 특히 나에게 평안한 안식을 선사하곤 했다. 늘 다니던 조산리 바다 앞의 숙소는 바다 말곤 달리 내다보이는 게 없는 곳이라 바다 위에 앉아 있거나 누워 있는 듯한 기분으로 하루 이틀 편히 쉬고 올 수 있었다.

늦은 밤까지 술을 마시며 파도소리를 음악 삼아 바다를 내다보는 일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이른 아침 바다로 걸어 나가 장엄한 일출을 보고 숙소로 돌아오면 그때부터 거의 자동적으로 오색약수터 근처에 있는 <이모네집>으로 갈 준비를 한다. <이모네집>이라는 식당이 아니라 진짜 이모네 집으로 가는 기분, 이것이 25년 넘게 내가 <이모네집>을 오가게 된 배경이다.

술 마신 다음 날 아침의 황태해장국과 ‘죽여주는 동치미’ 맛으로 속을 풀고 나면 오색약수물로 지은 파르스름한 돌솥밥에 갖은 산채와 더덕구이, 황태구이가 비로소 눈에 들어온다. 음식에 대해 우리가 ‘깔끔하다’는 표현을 자주 하게 되는데 이 집은 음식과 식당 환경 전체가 깔끔함으로 무장되어 있다. 이것이 이 식당을 40년 넘게 운영해온 이매옥 여사님의 성깔이자 성품이자 손님에 대한 일편단심 정성이다. 변함이 없다는 건 참으로 큰 미덕이 아닐 수 없다.

어느 해인가, 제자들과 양양으로 엠티를 간 적이 있었다. 글 쓰는 사람으로 이름을 얻고자 하면 반드시 낙산사 홍련암에 가서 기도해야 한다는 문단 속설의 영향을 받은 제자들의 간청으로 간 것인데, 바다 보고 술 마신 다음 날 아침 <이모네집>으로 갔을 때 이모님이 다른 때와 달리 머루주를 서비스로 주셨다. 그것에 발동이 걸린 나머지 일행 전체가 아침부터 술에 취해 애를 먹은 기억도 난다. 뿐만 아니라 이모네가 날 잡아 담그는 동치미는 전국 각지로 택배 배송이 되는데 그것도 여러 번 주문해 먹고 주변의 술꾼들에게도 보내준 적이 있었다. 술 마신 다음 날 먹으면 정신이 번쩍 난다는 이른바 ‘죽여주는 동치미’가 바로 그것이다.

 

식당 내부   

 

식당 외부   

 

올해 76세의 이모님은 공기 좋은 고지대에서 약수물을 장복하고 사셔서인지 너무나도 건강하고 기운이 넘쳐 보이신다. 스물여덟 청춘에 오색약수터에 들어와 40년 넘는 세월 동안 한 길을 걸었으니 그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을 것이다. 지병으로 오색에 들어온 친정어머니가 약수터 근처에서 감자전 같은 걸 팔기 시작하고 이모님이 그것을 물려받아 두 평 공간에서 천막식당을 시작해

이모님의 30대 시절, 두 평 공간의 식당 초창기 모습     

현재의 번듯한 식당 공간을 일궈냈으니 그 인생 굴곡에 대해서는 길게 말할 필요가 없으리라.

현재 식당에는 따님과 며느님까지 나와 일을 돕고 있어 삼대 식당이 되어가고 있다. 내가 취재를 간 날은 화창한 평일인데도 쉼 없이 손님이 들어와 인근 십여 개 다른 식당들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이고 있었다. 그곳에 가서 이모님의 인상을 보고 식당의 분위기를 보게 되면 확연하게 다가오는 남다른 에너지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평생 똑같은 일을 일념으로 유지하면 그것에서 생성된 에너지가 그 일에 깃들게 된다는 걸 우리는 알고 있다. 바로 그 에너지의 주체로서 이모님은 그 식당의 중심에 자리하고 계신 것이다.

‘인생식당’의 원고 청탁을 받던 날, 나는 평생 먹거리나 맛집에 관한 원고를 쓴 적이 없다며 그것을 거절하려 했었다. 그런데 청탁하시는 분의 청을 받는 동안 내가 뭔가를 망각하고 있는 것 같다는 불안감이 스쳐 일단 하루 뒤에 확답을 주겠노라고 했다. 그리고 하루가 지나는 동안 나는 이토록 중요한 <이모네집>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는 걸 떠올리고 모골이 송연해졌다. 그것이 모두 코로나19 팬데믹으로 2년 넘게 양양-오색행을 하지 못한 때문이었다.

 

이모네집 정식    

 

화창한 봄날, 참으로 오랜만에 <이모네집>으로 가면서 나는 내심 이모님의 건강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막상 대면한 이모님은 예전보다 더 건강해 보였고 식당은 내부가 더욱 넓고 규모감 있게 변해 있었다.

 

이모님(이매옥 여사, 76세)과 함께  

 

25년이 넘는 세월 동안 찾아간 식당이지만 이모님은 나의 정체를 모르고 지내다 이번 취재로 소설가라는 걸 알게 되셨다. 사뭇 놀라는 눈치였다. 어딜 가도 내가 누구라는 걸 밝히지 않는 게 나의 자유를 보장받는 길이라는 생각으로 세상을 살아왔지만 이번에 이모님께 나의 정체를 드러낸 건 왠지 잘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이모님의 손맛으로 맛난 음식을 먹을 수 있었으니 이제 그것에 대한 보답으로 글쟁이 솜씨를 드러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모님의 인생에 대한 존경과 손님들에 대한 한결같은 삶의 자세에 대해 감사한 마음을 전하는 것으로나마 이 미미한 글 솜씨가 의미를 얻게 되길 빌 뿐이다. 이매옥 여사님, 늘 건강하시고 영원한 이모님으로 남아 주시길!

박상우
소설가, 웹북 플랫폼 ‘스토리코스모스’ 대표, 1958년생
장편소설 『호텔 캘리포니아』 『가시면류관 초상』 『비밀 문장』 『운명게임』, 소설집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내 마음의 옥탑방』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