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그림 산책
그는 과연 물을 보고 있는 것일까?

강희안의 <고사관수도>

  • 우리 그림 산책
  • 2022년 여름호 (통권 84호)
그는 과연 물을 보고 있는 것일까?

강희안의 <고사관수도>

그림 1. 강희안, <고사관수도(高士觀水圖)>, 15세기 중엽(?), 24.3 x 15.7cm, 종이에 수묵, 국립중앙박물관   

 

조선 초기의 문인화가인 강희안(姜希顔, 1417~1464)이 그린 것으로 널리 알려진 <고사관수도(高士 觀水圖)>(그림 1)는 매우 뛰어난 작품이다. 이 그림은 크기(세로 24.3cm, 가로 15.7cm)가 아주 작은 그림 이다. 그러나 작은 크기의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고사관수도>는 꽉 찬 화면 구성과 대담하고 강렬한 필 묵법(筆墨法)을 보여주고 있다. 물가 주변의 바위에 한 문인이 턱을 괸 채 몸을 기대고 있다. 이 인물의 위 에는 거대한 바위로부터 넝쿨 풀이 밑으로 뻗어 나가 있다. 화면의 왼쪽 아래에는 물가에서 자라는 갈대 와 삼각형 모양의 작은 바위들이 보인다. <고사관수도>의 작자는 오랫동안 강희안으로 전해져 왔다. 그 이유는 화면 왼쪽의 윗부분에 있는 ‘인재(仁齋)’라는 도장 때문이다. 강희안의 호는 인재이다. 아울러 강희 안은 그림을 잘 그렸다고 한다. 인재라는 도장과 강희안이 그림에 재주가 있었다는 사실을 근거로 <고사 관수도>는 그의 그림이 되었다. 그러나 조선시대에 인재라는 호를 가진 사람은 많았다. 강희안의 이름인 희안(希顔)은 공자가 가장 아꼈던 제자인 안회(顏回)와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뜻이다. 그가 인재라는 호를 가지게 된 것은 이와 같이 그가 숭상한 유학 때문이다. 강희안의 동생은 강희맹(姜希孟, 1424-1483) 이다. 그의 이름인 희맹은 맹자(孟子)와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뜻이다. 전형적인 유교식 이름인 희안과 인재라는 호는 조선 전기에 상당히 유행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중종반정(中宗反正)을 주도한 공신인 성희 안(成希顔, 1461~1513)의 호도 인재이다. 강희안과 성희안은 이름도 같았지만 호도 같았다. 따라서 <고사 관수도> 위에 찍혀있는 ‘인재’라는 도장이 강희안의 것이라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이 도장의 주인공은 성희안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결국 <고사관수도>를 누가 그렸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그림 2. 장숭(蔣嵩), <어주독서도(漁舟讀書圖)>, 16세기 초, 비단에 엷은 색, 171.0 x 107.5cm, 북경(北京) 고궁박물원(故宮博物院)   

 

한편 <고사관수도>의 화풍(畵風)을 살펴보면 이 그림은 15세기 중반경의 그림이라기보다는 100년 쯤 아래인 16세기 중반경의 그림이라고 여겨진다. 강희안은 15세기 중반인 세종(世宗, 재위 1418~1450) 시 대에 주로 활동한 인물이다. 그런데 이 그림에 나타난 화풍은 16세기 전반에 중국에서 크게 유행했던 화 풍인 광태사학파(狂態邪學派)의 화풍이다. 이 화풍은 장로(張路, 1464년경~1538년경), 장숭(蔣嵩, 1500 년경 주로 활동)으로 대표되는 후기 절파(浙派) 화풍으로 대담한 화면 구성, 호방(豪放)한 필묵법, 바위 묘사에 있어 농담(濃淡)의 대비를 통한 강렬한 흑백 대조를 특징으로 한다. 절파는 15, 16세기에 유행했 던 중국의 화파로 직업화가들이 주축이었다. 이들 중 일부는 명나라 궁궐에서 궁정화가로 활동하기도 했다. 절파 화풍은 이곽파(李郭派)와 마하파(馬夏派) 화풍을 수용하여 강한 먹의 농담 대조, 한쪽에 무게 를 둔 화면 구성, 거칠고 변화가 심한 필묵법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 대표적인 광태사학파 화가인 장숭 이 그린 <어주독서도(漁舟讀書圖)>(그림 2)를 보자. 장숭은 거대한 절벽을 시커먼 먹과 넓은 붓을 사용해 단번에 쓸어내리듯이 그렸다. 한편 이 그림의 아래쪽 물가에 보이는 삼각형 모양의 작은 바위와 갈대는 <고사관수도>의 화면 왼쪽 아래에 그려진 바위 및 갈대와 매우 유사하다. 아울러 바위 묘사에 매우 진한 먹인 ‘초묵(焦墨)’이 사용된 것도 이 두 그림이 지닌 공통점이다. 만약 <고사관수도>가 15세기 중반에 그 려진 그림이라고 할 경우 이 그림은 <어주독서도>보다 대략 50~60년 정도 일찍 그려진 것이 된다. <고사 관수도>는 중국의 절파 화풍이 한국에 수용되어 탄생한 그림이다. 따라서 <고사관수도>가 <어주독서도 >보다 먼저 그려졌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고사관수도>의 경우 작자 및 제작 시기도 문제이지만 더 중요한 문제는 이 그림의 주제이다. 본래 이 그림에는 제목이 없다. ‘고사관수’는 후대에 붙여진 이름이다. ‘고사관수’는 ‘고사가 물을 보고 있다’는 뜻인데 동아시아회화사에서 ‘고사관수’라는 주제는 존재하지 않는다. 고사가 바위에 기대어 물을 보고 있 는 장면을 그린 작품은 없다. 고사가 산속에서 폭포를 보고 있는 모습을 그린 그림은 있다. 아울러 고사가 물가 근처에서 흐르는 물소리를 듣는 장면, 즉 ‘청천(聽川)’을 주제로 한 그림은 있다. 그러나 문인이 바위 에 양팔을 기댄 채 물을 보고 있는 모습인 ‘고사관수’를 주제로 한 그림은 없다. 그런데 <고사관수도> 속 고사를 자세히 살펴보면 과연 그가 물을 보고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 그의 시선은 물에 가 있지 않다. 오히려 그는 바위에 기대어 눈을 감고 자고 있는 듯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이 그림의 주제는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중국의 화보(畵譜)인 『개자원화전(芥子園畫傳)』(초편(初編), 1679년)의 권(卷) 3 「인 물옥우보(人物屋宇譜)」에 들어 있는 ‘고운공편심(高雲共片心)’(그림 3)이라는 판화를 보면 바위에 기대 어 무엇인가를 보고 있는 인물이 나타나 있다. 그 동안 <고사관수도>와 ‘고운공편심’의 유사성에 근거해 이들의 원조(元祖)가 되는 제3의 중국 그림이 존재했을 것으로 이야기되어 왔다. 그러나 <고사관수도>는 연대에 있어 ‘고운공편심’보다 빠르며 <고사관수도>와 유사한 화면 구성을 보여주는 중국 그림은 존재하 지 않는다. 또한 ‘고운공편심’에 보이는 바위에 기대어있는 인물은 어떤 것을 응시하고 있다. 반면 <고사관 수도> 속 인물은 무엇인가를 쳐다보고 있지 않다. 그는 턱을 괴고 마치 잠을 자고 있는 듯한 모습을 보여 준다. 즉 그는 물을 보고 있지 않다.

 

그림 3. ‘고운공편심(高雲共片心)’, 『개자원화전(芥子園畫傳)』(초편(初編), 1679년)   

 

그림 4. 장로(張路), <장자몽접도(莊子夢蝶圖)>, 16세기 초, 크기미상, 비단에 수묵, 쇼토미술관(松濤美術館), 토쿄(東京).    

 

 

<고사관수도>의 주인공처럼 마치 자고 있는 듯한 인물을 그린 그림으로는 장로(張路)가 그린 <장자 몽접도(莊子夢蝶圖)>(그림 4)가 있다. 장자가 꿈속에서 훨훨 날아다니는 나비가 되어 즐겁게 놀았다는 고 사가 바로 이 그림의 주제이다. ‘장자몽접’은 ‘장수몽접(莊叟夢蝶),’ ‘장주지몽(莊周之夢),’ ‘호접몽(胡蝶夢),’ ‘호접지몽(胡蝶之夢),’ ‘호접춘몽(胡蝶春夢)’으로도 불린다. ‘장자몽접’은 『장자(莊子)』 「제물론(齊物論)」에 나오는 호접몽에 대한 이야기이다. 장자는 어느 날 나비가 되는 꿈을 꾸었다. 그는 꿈에서 훨훨 날 아다니는 나비가 되어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이윽고 잠에서 깬 장자는 인간인 자신이 꿈에 나비 가 된 것일까 아니면 나비가 자신으로 변한 것일까라고 자문(自問)하였다. 그는 하늘과 땅이 자신과 함께 생기고 만물은 자신과 하나가 되었다는 것을 호접몽을 통해 깨달았다. 만물이 하나가 된 경지는 장자가 주장했던 정신의 절대 자유의 세계이다. <장자몽접도>에서 장자는 좌우 곁에 호리병과 두루마리들을 두 고 깊은 잠에 빠져있다. 장자의 머리 위로는 넝쿨 풀이 무성한 거대한 바위가 보인다. <장자몽접도>와 <고사관수도>는 화면 구성과 주인공의 자세에 있어 매우 유사하다. <고사관수도>가 장로, 장숭 등 광태 사학파의 화풍을 바탕으로 그려졌다는 것을 고려해볼 때 <장자몽접도>와 <고사관수도>는 화풍상(畫風 上) 깊은 연관이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따라서 <고사관수도>의 주제 역시 장자의 꿈을 다룬 ‘장자몽 접’일 확률이 높다. 절파 화가들이 그린 그림들에는 <장자몽접도>와 같이 고사(故事) 또는 역대의 유명한 인물들의 일화(逸話)를 주제로 한 작품들이 많다. <고사관수도>의 주인공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 것 일까? 그는 물을 보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그는 잠을 자고 있는 것일까(그림 5)

 

그림 5. 그림 1의 세부   

 

 

장진성
서울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 교수, 1966년생
공저서 『Landscapes Clear and Radiant: The Art of Wang Hui, 1632-1717』, 저서 『단원 김홍도: 대중적 오해와 역사적 진실』,
역서 『화가의 일상: 전통시대 중국의 예술가들은 어떻게 생활하고 작업했는가』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