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⑤바람이 불면 흔들리도록

  • 기획특집
  • 2022년 여름호 (통권 84호)
⑤바람이 불면 흔들리도록

짧은 여름밤이 가고 날이 밝아왔다. 종수는 언젠가 이런 날이 올 거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우리는 언제고 한번쯤 어디선가 서로를 지나친 적이 있었을 거라고. 있었는데, 모른 채 그냥 지나쳐버린 걸 거라고.

가끔 길에서 자신을 닮은 사람을 보면 뚫어져라 그 사람을 바라보곤 했다. 실례인 줄 알면서도 그랬다. 그 사람이 남자든 여자든 나이가 많든 적든 어떻게든 자신과 연결되어 있을 것만 같았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 둘러싸여 살면서도 닮은 사람을 만나기란 어려운 법이니까. 등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나 얼핏 스친 분위기만으로도 서로를 알아볼 수 있을 것 같은데 지금까지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수많은 사람들의 수많은 의지가 있을 뿐, 이 세상에 우연이라는 건 없다는 걸 종수는 알고 있었다.

무엇을 묻고 싶어?

좋아하는 음식.

운전을 할 수 없을 것 같아 해원이 운전대를 잡았다. 약속은 내일이지만 약속을 잡은 날부터 종수는 그를 만나러 가고 있는 것과 같았다. 어떤 음식을 좋아하시나요. 그걸 먹을까 합니다. 종수는 조수석에 앉아 여러 번 그 말을 되풀이했다. 주파수는 클래식 라디오에 맞춰져 있었다.

 

종수와 해원이 도착한 민박집 앞에는 <민박 안 합니다>라는 간판이 세워져 있었다. 어떻게 된 거지? 차에서 내린 해원이 주위를 둘러보다 민박집 안으로 들어갔다. 한참 후에 그녀는 안에 아무도 없어,라며 손을 들어 흔들어보이며 나왔다. 그리고 그때서야 민박집 입구에 아까부터 풍경처럼 앉아있던 노인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할아버지, 여기 민박 안 해요?

해요.

아, 해요?

노인이 고개를 끄덕였고 종수와 해원은 짐을 내렸다. 노인은 그저 물이 차오른 저수지를 바라볼 뿐이었고 마침 낮은 담 너머에서 밭일을 하던 할머니가 일손을 멈추고 다가와 방을 안내해주고 돌아갔다. 해원은 마당 수돗가에서 손을 씻고 세수를 했다. 바짝 말라있던 시멘트 바닥이 진하게 젖어갔다. 그러는 동안 종수는 노인이 바라보는 저수지에 시선을 두었다. 반대편 쪽에서 서너 명이 낚시를 하고 있는 듯 보였고 주변으로는 온통 은사시나무 숲이었다.


그 사람이 네 아버지일 거야. 이럴 수는 없어. 거의 확실해.

메시지를 보내온 것은 종수를 오랫동안 봐 온 구씨였다. 오지를 다니며 물건을 파는 사람이었다. 종수는 구씨에게 몇 가지를 물어봐달라고 말했고 구씨는 아귀가 잘 맞는다며, 그리고 무엇보다 얼굴이며 골격은 물론이고 손가락 길이마저도 똑 닮았더라고 전해왔다.

 

얼굴 한번 본 적 없고 목소리 한번 들은 적 없으나 종수는 아버지를 그리워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을 그리워한다고? 게다가 너를 버린 사람을? 친구들이 말했고 그들은 저마다의 이유로 아버지를 싫어했다. 나쁜 상황이 아니고서야 자식이 부모를 보고 싶어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닌가? 하지만 늘 그렇듯 당연한 것은 당연한 사람들에게나 당연한 것이었다.

 

종수는 오랫동안 그런 없음에 대해 생각해왔다. 없음을 경험했고 그래서 그런 없음에 대해 잘 설명하고 싶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 없음에 대한 이야기를 아무도 궁금해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날 종수는 헛웃음이 나기도 했다. 점심을 먹고 사무실로 들어와 자리에 앉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그동안 왜 그렇게 그것에 대해 말하고 싶어 했을까. 왜 아버지 없는 상황과 그동안의 설움을 떠들고 다녔을까. 정작 아버지에 대해서는 아는 것 하나 없었으므로 자기 자신에 대해 말할 수 있을 뿐이었다.

억울함과 슬픔과 그리움 같은 주제를 가지고 실제로 말하지는 마. 그런 건 TV에서나 볼게. 세상은 상실에 대한 슬픔으로만 가득 찬 듯 했고 상실이 아니라 애초에 없었던 것들에 대해 종수는 더 이상 한 마디도 할 수 없었다. 난 너무 오래 어리석었어. 그만두자. 그렇게 없음에 대해 설명하기를 포기했을 때 구씨의 연락을 받았고 해원이 기꺼이 동행해주었다. 그가 진짜 종수의 아버지든 아니든 혼자서는 그 후의 세계를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기 때문에. 오는 내내 [미안한데 아직 볼 마음이 없어요. 연락 안 하고 지냈으면 좋겠어요]라는 연락이 올 것만 같아 불안했다. 처리해야 할 기분들이 너무 많아 밥도 잘 넘기지 못했던 그 밤, 잔잔한 바람에도 흔들리던 은사시나무 잎들이 내는 소리에 종수는 오랜만의 단잠을 잤다.

 

새들은 아침부터 지저귀고 구씨를 통해 아버지일지도 모르는 그가 백숙을 좋아한다는 얘길 전해들었다. 해원은 긴장한 종수를 대신해 근방의 백숙집을 알아보고 예약했다. 인터넷이 여의치 않아 직접 마을로 나가보려 했을 때 두 사람의 얘길 듣고 있던 노인이 알려준 정보였다.

커다란 버드나무가 있는 곳이었다. 해원과 종수는 삼십 분쯤을 달려 노인이 알려준 식당에 당도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그가 있었다. 종수는 한눈에 그를 알아보았다. 느낌이 왔다. 틀림없이 그였다. 뚜벅뚜벅, 긴장한 만큼 커진 보폭으로 종수는 그를 향해 걸었고 해원도 약간 긴장한 채로 종수를 따랐다. 그는 한 남자와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 종수와 해원을 반겼다.

어서 와요.

안녕하세요.

그의 아들이라는 남자와 해원도 소개를 마쳤다.

일찍 오셨네요. 늦어서 죄송해요.

아니에요. 어서 앉아요.

백숙을 좋아하신다고 해서 이리로 예약했는데 어떠세요.

좋아요. 그래…… 어떤 음식을 좋아해요?

저는 글쎄요, 다 좋아해요.

종수는 울먹였고.

다음엔 먹고 싶은 거 먹으러 가요.

그는 만나자마자 다음 약속을 잡았다. 해원은 종수를 살피며 잠깐씩 그의 어깨나 손을 잡아주었다. 음식이 나왔을 때는 종수의 아버지일지도 모르는 그가 다리 하나를 뜯어 가장 먼저 종수의 그릇에 놓아주었다.

딱히 뭐라고 불러야 할지……

괜찮으면 아버지라고 불러줘요.

그럼…… 네. 얼른 드세요.

형님도 얼른 드세요.

네 사람은 서로에게 깍듯했고 정오를 지날 무렵의 여름 햇살이 창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모두 젓가락을 들고는 있었지만 딱히 음식을 먹지는 않았다. 서로에게 음식을 권할 때마다 아주 조금씩만 입 안으로 닭을 찢어 넣었다. 식당 안은 어느새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래 그동안 어디서 살았어요.

쭉 서울에서 컸어요.

나는 여기서 쭉 살았어요.

그러셨구나.

구씨가 이 마을에 다닌 지 이십년이 다 되어 가는데, 진작 알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 생각을 어찌나 많이 했는지.

 

그가 말했고 종수는 마음이 벅차올랐다.

그럼 어머니는……

작년에 돌아가셨어요.

음…… 일찍 가셨네.

대화는 잘 이어지지 않았지만 종수는 늘 비어있던 마음 한 곳이 채워진 듯이 충만했다. 그리고 동시에 해원이 없었다면 이렇게 앉아있지 못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분이 정말 닮으셨어요.

해원이 말했고 그의 아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보다 더 닮은 것 같다고 웃으며 말했다. 저는 이 근방에서 작은 고물상 하나 하고 있어요. 그의 아들이 말했고 이번엔 해원이 그러시구나, 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볼수록, 두 분이 정말 닮으셨어요, 네. 닮으셨어요. 해원은 확신했고 그렇게 말했다. 종수는 그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사십 년을 따로 살았지만 알 것 같아. 내가 더 나이가 들면 저 얼굴이 되겠어, 내내 그런 생각을 했다.

 

식사를 마친 네 사람이 밖으로 나왔다. 그는 식당 마당 한쪽에 묶여있던 하얀 개에게 다가가 목줄을 풀었다. 그와 십칠 년을 함께 하고 있다는 개였다. 웬만한 곳은 다 데리고 다니세요. 그의 아들이 말했고 종수는 그러시구나, 대답했다.

종수씨는 어떤 음식을 좋아해요.

종수가 좋아하는 걸 먹었어야 했다며 그가 물었다.

국수요.

좀 생각하다가 종수가 대답했다.

어, 정말요? 아버지도 하루 한 끼는 국수를 드세요.

그의 아들이 종수의 대답을 반기며 말했다.

결과 나오면 우리 국숫집에서 또 만나요. 아니, 내가 만들어줄게 우리 집으로 와요.

그가 말했고 종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여름 바람이 불어왔다. 나뭇잎들이 찰랑이는 소리가 들려왔고 종수는 고개를 들어 바람에 흔들리는 은사시나무 숲을 바라보았다. 개의 목줄을 아들에게 넘긴 그가 종수의 손을 꽉 잡았고 두 사람은 얼마간 눈을 마주쳤다. 그는 종수를 짧게 안았다.

 

*

유전자 검사 결과는 불일치로 나왔다. 그가 사십 년 전 종수의 어머니와 만난 것은 사실이었지만 종수의 아버지는 아니었다. 종수는 방 안에 있을 수 없어 민박집 마당으로 나왔다. 마당 수돗가에서 세수를 하고는 머리까지 적셨다. 얼음장같이 차가운 지하수가 종수의 몸을 타고 흘렀다.

노인은 오늘도 낚시 의자에 앉아 넓고 깊은 저수지를 바라보고 있었다. 한나절씩 저러고 있는다우. 할머니는 그렇게 말하고는 마당 끝에 놓인 평상에 은쟁반을 내려놓았다.

국수 좋아해요?

국수요?

감자는?

할머니가 내려놓은 은쟁반에는 하얀 국수 두 그릇과 김치 한 접시, 그리고 소쿠리에 담긴 찐 감자가 있었다. 빈 접시인 줄 알았던 하얀 접시 두 개에 담긴 것은 소금과 설탕이었다.

이거 먹어요.

감사합니다.

할머니는 마대자루를 손에 쥐고 옥수수 밭으로 향했다. 적당히 식은 감자 한 알을 손에 쥐고 종수는 노인의 옆으로 걸어갔다. 종수는 노인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노인의 얼굴이 어제 만난 그와 겹쳐졌다. 그냥 조금 닮은 거였는데. 사람은 어느 정도 비슷하게 생긴 구석이 있어. 종수는 시선을 돌려 수심이 깊은 저수지를 바라보았다.

이 마을엔 종일 바람이 분다오.

노인이 말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고 종수는 방에서 나온 해원과 국수를 먹었다. 불어있었지만 맛이 좋았다. 국수를 다 먹은 뒤엔 감자를 먹었는데 종수는 설탕에 찍어먹었고 해원은 소금에 찍어먹었다. 어제 너무 반가웠고 고마웠다고, 덕분에 한을 풀었다는 메시지가 왔다. 종수 역시 전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무언가 어제와 달랐다. 너무 아쉬워하지 말고 잘 살아요. 지금껏 살아온 것처럼 꼭 잘 살아요. 종수는 그에게서 온 메시지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너무 아쉬워하지 말고 잘 살겠다고 종수는 생각했다.

부드러운 바람결이 은사시나무 숲을 흔들고 지나갔다. 잎이 반짝이며 종수의 얼굴을 흔들었다. 해원은 몇 번이고 손을 뻗어 종수의 머리칼을 정돈해주었다. 지금은 여름이었고 그곳에서는 종일 바람이 불었으므로.

이주란
소설가, 1984년생
소설집 『모두 다른 아버지』 『한 사람을 위한 마음』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