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편소설 『연쇄 구직자』
- 장편소설 『연쇄 구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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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우리 집 텔레비전에는 나오는 채널이 몇 개 없었다. 아버지와 나는 텔레비전 앞에 한번 앉으면 일어날 줄을 몰랐다. 그런 우리가 ‘테레비 귀신’이 되는 걸 원치 않았던 어머니는 케이블 TV 같은 걸 신청하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 집 텔레비전에는 최소한의 채널인 지상파 방송만 나왔다.
결혼 후 부모님과 따로 살게 되면서 내가 사는 집에 인터넷 TV를 연결했기 때문에 지상파 외 방송도 나왔다. 그렇지만 딱 거기까지, 깊이 빠질까 봐 두려워 OTT(Over-the-top media service)는 구독하지 않았다.
그러다 코로나19가 유행하던 시기에 남들보다 늦게 OTT 구독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간의 허기를 몰아서 채우듯 거기서 서비스하는 드라마와 영화를 마구 시청했다. 드라마 한 시즌을 하루에 다 해치워 버린 때도 있었다. 그렇게 여가 시간 대부분을 OTT 시청으로 채우게 됐다. 나는 어머니가 염려하던 ‘테레비 귀신’ 대신 ‘OTT 귀신’이 되어버렸다.
그렇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OTT에 시들해졌다. 너무 많은 것들을 몰아서 봐 버린 탓에 그곳에서 서비스하는 콘텐츠 중 내 취향인 것들이 별로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OTT 구독을 중단할까?’ 생각하면서 연쇄 살인마가 나오는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다. 내 취향은 아닐 것 같았지만 ‘이런 것도 한 번 봐볼까?’라는 생각에서.
그 드라마의 분위기와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 등이 무척 흥미로웠다. 그래서 계속 보려 했지만, 잔인한 부분에서는 자꾸 멈추게 됐다. 그리고 그 부분을 건너뛰었다.
몇 번을 그러다 화면을 끄고 식탁에 노트북을 가져와 켰다. 노트북에 로그인하고 쓰고 있던 소설 파일을 열었다. 전날 쓴 것에 이어 쓰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좀 전까지 연쇄적으로 살인하는 이야기를 봤는데 이제는 연쇄적으로 구직하는 이야기를 쓰는구나.’
그리고 그 소설을 쓰기 시작할 때 지었던 제목 대신, 소설의 제목을 ‘연쇄 구직자’로 하기로 마음먹었다. 초고의 후반부를 쓸 때였다. 그리고 쓰고 있던 소설 원고에 새 제목인 '연쇄 구직자'와 관련된 문장들을 추가로 적었다.
그때 보기 시작했던 연쇄 살인마가 나오던 드라마는 간간이 건너뛰며 며칠 더 봤다. 그러다 결국 끝까지 보지 못하고 그만뒀다. 하지만 ‘연쇄 구직자’ 소설을 쓰는 것은 건너뛰거나 그만두지 않았다.
『연쇄 구직자』가 대산창작기금 수혜작이 된 이후, 이것을 책으로 출판해야 하는 데 혼자 써 왔던 나는 이 과정이 막막했다. 모르는 것 투성이였고, 알아야 할 것 천지였고, 뭘 모르는지 모르는 것 같다는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오래전에도 이런 감정을 느낀 적이 있었는데. 아, 그래, 회사에 처음 입사했을 때.
그렇지만 당연하게도 그전에 경험했던 회사에 갓 입사했을 때와는 달랐다. 새로 온 사람이라며 교육해 줄 회사가 없다. “아이고, 이건 이렇게 해야지”라고 말해주는 건너편 앉은 선배도 없다. “그거 이렇게 하시면 돼요” 혹은 “제가 이렇게 해 드렸어요”라고 전화나 이메일로 알려주는 유관 부서나 협력업체도 없다. “에이, 밥이나 먹으러 갈까?”라고 묻는 옆자리 동료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대산문화재단 담당자님과 출판사 담당자님, 일면식도 없는 작가님들께 불쑥 모르는 걸 여쭤봤다. 감사하게도 시간을 내 답을 해 주셨고, 도와주려 하셨고, 따뜻하게 격려해 주셨다. 그런 순간마다 나는 동료가 생긴 것 같았다. 같은 공간에 근무하지 않지만, 같이 매일 밥을 먹거나 1층 카페에 가서 뭔가를 마시지는 않지만.
그렇게 책이 나왔다. 감사한 분들 덕에 새로운 세상에 대해서 조금은 알게 된 것 같다. 지나고 보니 알차고 값진 시간이었다. 무척 감사한 일이다.
시작을 겨우 했을 뿐이다. 회사원으로 치자면 이제 겨우 수습 기간을 끝낸 정도다. 이 일이 회사라면 장기근속자가 되고 싶다.
※ 필자의 소설 『연쇄 구직자』는 대산문화재단의 대산창작기금을 받아 2025년 다산책방에서 출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