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세계일보가 한국문학에 활기를 불어넣겠다는 취지로 문학계 최고의 상금(당시 1억원)을 내걸고 제정한 세계문학상이 올해로 22번째 당선자로 ‘유리 조각 시간’의 성수진 작가를 선정했다. 『화랑세기』에 등장하는 자유로운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 『미실』로 김별아 작가가 2005년 제1회 세계문학상 당선자로 선정되는 화제를 모은 이후로, 다음해인 2006년에는 『아내가 결혼했다』로 박현욱이, 2008년에는 『스타일』로 백영옥이, 2009년에는 『내 심장을 쏴라』로 정유정이 세계문학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제정 초기만큼의 주목도는 없지만 현재까지 기성과 신인 가리지 않고 한국 소설의 대중화와 장편소설의 활성화에 기여할 뿐 아니라 세계에 보편적 울림을 줄 수 있는 한국 소설의 출현을 독려하려 한다는 세계문학상의 제정 취지는 여전히 그 의미의 퇴색 없이 울림을 갖는다. 장편소설의 역사성과 예술성을 약화시킨다거나 문학의 상업화를 조장한다는 비판을 포함하여 제정 초기에 그 취지에 대한 문학계의 의심이 컸던 것을 떠올리자면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감당할 수 없는 ‘가벼움’으로 문학상의 심사자들을 혼란에 빠뜨렸던 박민규가 『지구영웅전설』로 문학동네 신인작가상을 수상하고,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으로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하며 문단에 등장한 시기도 2003년인 그 즈음이었다. 20년쯤 이후인 2023년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 후보에 오른 천명관의 『고래』가 제10회 문학동네소설상을 수상한 것이 2004년의 일이다. 김훈의 『칼의 노래』(2001), 『현의 노래』(2004), 『남한산성』(2007), 김탁환의 『리심』(2006), 신경숙의 『리진』(2007) 등 포스트 역사소설이라 할 만한 소설들이 대거 등장한 이 시기에, 사회 문제에 깊이 공감하면서도 대중성을 확보하고자 한 시도로서 공지영의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2005)이나 강영숙의 『리나』(2006), 김영하의 『빛의 제국』(2006)이나 황석영의 『바리데기』(2007)와 같은 장편소설이 일간지나 문예지 등에 분재 발표되었다가 단행본으로 출간되고 있었다. 장르문학의 성격이 강한 조하형의 『키메라의 아침』(2004)이나 김언수의 『캐비닛』(2006) 등이 소개되어 주목받은 것도 이 시기였다. 이후 10년간 베스트셀러로 200만부 이상의 판매고를 올린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2008)나 출간된 이후로 50만부 이상이 판매되었고 영화화되어 개봉 5일 만에 10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한 공지영의 『도가니』(2009) 그리고 출간 3개월 만에 14만부가 판매된 김애란의 『두근두근 내 인생』(2011)과 같은 장편소설이 속속 등장하게 된다. 대중적 호응에 힘입어 상업적으로 크게 성공한 이 작품들이 당시 예술성 차원에서 유보적인 평가를 받았던 게 사실이나, 이후 영어나 중국어로 번역 소개되어 해외에서도 널리 읽히는 대표적인 한국 소설이 되었다.
2007년 1월 1일자 <한겨레>에 실은 칼럼 「한국 소설, 장편으로 진화하라!」에서 문학 전문 기자 최재봉은 한국 소설 침체의 활로를 열기 위한 방안으로 한국 소설의 체질 전환을 제안한다. 신춘문예 당선작을 발표하는 지면에서 단편 중심의 한국 소설이 장편화될 필요가 있음을 짚는다. 그러한 변화를 위해 작가와 독자, 잡지와 출판사, 그리고 평론가에 이르는 행위자들, 한국 소설의 ‘장’을 구성하는 이들의 다각도의 노력이 요청된다고 힘주어 강조한다. 이후 장편소설 대망론(大望論)을 중심으로 한 비평적 논의가 뒤를 잇는다. 1930년대 한국 문학의 근대기 대표 비평가들인 임화나 김남천의 논의까지 거론되며 ≪창작과비평≫이나 ≪문학과사회≫와 같은 주요 문예지를 중심으로 당대 문단을 감싸던 ‘문학의 위기’론에 대한 전망들이 제출되었다.
단편소설 중심으로 문학의 예술성이 고평되는 중에도 장편소설의 창작과 출간이 지속되고 있었음을 앞서의 목록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2000년대 중반에 출간된 장편소설들이 20년 가까이 지난 지금 번역되어 해외에서 유수의 국제문학상을 수상하고 또 후보작으로 거론되고 있으며, 전 세계적으로 적지 않은 판매부수를 유지하며 널리 읽히고 있다. 문학출판계의 관심이 적지 않았음에도 장편소설 부흥을 둘러싼 비평적 논의가 당시 담론 층위에서는 저조한 편이었다. 지금의 관점에서 보자면, 당시의 장편소설 대망을 둘러싼 비평 담론은 장편소설의 성격 변화를 계기 삼아 엿볼 수 있었던 문학계의 일면을 충분히 합당하게 파악하지는 못했다고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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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이후로 문학의 위상 변화가 야기한 현상들이 ‘문학의 위기’로 짚어지던 때였다. 포착된 현상들을 좀 더 진상에 가깝게 이해하고 대처할 수 있는 해법이 무엇인가에 대해 문학출판계 전체가 궁금해하던 차였다. ‘장편소설 부흥론’이 ‘문학의 위기’ 현상에 대한 제대로 된 진단인지, 진단에 합당한 방안인지에 대해 문학계 안팎에서 대체로는 의구심을 더 많이 가졌었던 것이 사실이다. 어떤 형태로든 문학이 현실의 서사화이며 정치적 투쟁의 산물이라고 해야 하지만, 실질적으로 2000년대 이후 문학은 자본의 위력과 날카롭게 대치하고 있었다. 정치적 현실에 서사적으로 개입하며 문학이 정치 현실적 국면에 밀착되어 있던 시절을 지나, 1987년 정치적 민주화 이후로 (민족과 국가 차원의) 정치라는 중력에서 좀더 자유로운 문학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동시에 전 지구적 자본화의 여파로 2000년대 이후로 문학의 영역에서도 자본의 힘이 점차 거세지기 시작했다. 이른바 ‘정치’와 ‘자본’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균형을 유지하던 ‘예술로서의’ 문학이 가지던 위상에 균열이 뚜렷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새로운 경향의 작가와 작품들이 대거 등장한다. 2000년대 이후 등단한 작가들, 가령 편혜영(2000년 등단), 한유주(2003년 등단), 박민규(2003년 등단), 황정은(2005년 등단), 윤이형(2005년 등단) 등의 작품 경향을 잠깐만 떠올려 보더라도 알 수 있듯, 당시의 관점으로는 새로운 감각이라고도 할 수 있을 2000년대 이후 한국문학은 한편으로 근대 소설의 전형으로부터 급격하게 멀어지고 있었고, 다른 한편으로 이른바 ‘본격문학’의 경계를 가로지르며 자유로워지는 중이었다. 대중문화 친화적인 성격이 폭넓게 확산되었고 장르문학의 특성을 작법으로서 자유자재로 활용하는 경향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변화들은 예술작품으로서의 문학이 상품으로서 자리매김하는 시기의 풍경이라 할 것이다. 이를 자본의 잠식으로 여기며 자본과의 대결이나 거리두기를 통해 문학의 예술성(혹은 진정성으로도 불렸던 어떤 영역)이 지켜질 수 있으리라 여기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그것이 단편소설이 구현해낼 수 있는 미학성에 대한 강조로 표출되기도 했다. 장편소설을 ‘팔리는’ 문학으로 명명하곤 했던 것은 문학작품이 상품임을 인정하면서도 그 내적 속성에서 과거의 교양주의의 면모를 여전히 유지하기를 바라는 문학출판계의 분열적인 면모의 분출이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앞서의 ‘장편소설로의 진화’에 대한 요청은 장편소설의 수효가 아니라 질에 대한 요청이었으며 그것은 예술작품이 상품으로 그 의미가 변경되는 시기에 대한 저지의 표명에 더 가까웠다고 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러한 경향이 비평계의 담론 차원에서 조율될 수는 없었는데(그런 까닭에 담론적 논의에 대해서는 대체로 무심했던 것 같기도 하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가 일상 전반을 장악하게 되는 포털 전성시대를 맞이하며 문학을 게재하는 지면에도 뚜렷한 변화가 생겨났다. 이 매체 변화야말로 문학의 존재방식을 꽤 전면적으로 바꾸는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 네이버에 연재(2007년 8월~2008년 1월)했던 박범신의 『촐라체』가 누적 방문자수 100만 명을 돌파하며 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지금까지도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월간 문학웹진 ≪문장웹진≫이 2005년 문을 열었고, 이 시기를 거치면서 (지금은 거의 운영되지 않지만) ≪웹진 문지≫, 웹진 ≪나비≫, 웹진 ≪뿔≫, 창비문학블로그 ≪창문≫ 등이 창간‧운영되기 시작했다. 종이 지면의 제한에서 자유로워지자 웹진 문예지들은 장편소설 연재를 적극적으로 시작했고, 이후로 이른바 ‘기이한 르네상스’라고도 평해질 정도의 붐이 일면서 ‘장편의 시대’가 열리게 된다.
가라타니 고진의 『근대문학의 종언』이 소개되던 이때 한국에서도 문학의 공동체 상상에 대한 역할과 책무가 점차 약화되고 있었다. ‘문학의 위기’, ‘문학의 종언’, ‘문학의 죽음’에 대한 논의가 떠돌고 있었지만, 그 문학이 근대문학으로도 불렸던 민족(민중)문학이라는 인식이 점차 확산되고 있었다(황종연, 「문학의 묵시록 이후」, 2006). 사실 이러한 변화들, 문학의 위상 변화는 2000년대 초중반 비평 활동을 시작한 나에게 낯설 것도 불편할 것도 없는 자연스러운 현상에 가까웠다. 1990년대 중반 이후 한국에 등장한 소설들, 국가와 민족에 기반한 정치 공동체보다 개인 차원의 취향이나 문화 공동체의 면모에 좀더 관심을 기울이고 여성으로 대표되는 소수자와 타자에 대한 관심을 드러내는 소설 쪽에 더 매혹되었던 나는 2000년대 이후 한국 소설에서 의도와 무관하게 예술 지향성과 대중 지향성이 역설적으로 분리된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돌이켜보건대, 당대의 문학에 대한 공유된 인식이나 비평적 담론들이 다양한 방향으로 경향성을 구축해가던 현실의 문학 현상 전반을 다 조망하지는 못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2000년대 중반 이후 2010년대를 전후하여 90년대에 뒤이은 장르문학 붐이 다시 일었고 이후 그러한 경향성이 희미해진 것처럼 여겨지기도 했지만, 2010년대 중후반 이후 SF를 비롯한 다양한 장르문학 붐을 통해 역설적으로 확인하게 되는 것은 1990년대 이후로 내내 그러한 경향성이 강화되어 왔다는 사실이다. 2010년대 전후로 부상했던 장편소설 붐을 돌이켜보면서 비평적 담론이 외면했거나 누락한 문학출판계의 면모들이 온전히 조명될 필요가 있음을 새삼 환기하게 된다.
그러한 흐름의 한가운데 있던 나 역시 좁은 시야로 인해 놓쳤던 장면들이 적지 않은데(이에 대해서는 좀 더 길게 성찰할 시간을 다음 기회로 미루기로 한다), 이 자리에서는 변화가 야기한 몇몇 여파들에 대해서만 간략히 짚어보며 그 시절의 환기가 지금 이곳의 우리에게 어떤 통찰을 제공해줄 수 있을지 생각해보고자 한다. 장편소설 연재의 무분별한 범람이 작품의 질적 저하를 야기한다는 비판이 있을 정도로 웹진 문예지들이 다수의 작가들에게 연재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었다. 당시에 2005년부터 ≪문예중앙≫에서 출판기획을 담당하는 일원으로, 2009년부터 웹진 ≪뿔≫에서 잡지 운영 기획을 담당한 일원으로 활동하고 있던 나는 소설 연재를 위한 꼭지를 구성하거나 출판을 위해 작가를 섭외하는 일을 맡았었다. (일련의 과정을 통해 이른바 ‘비평’의 범주가 확장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인데) 비평의 층위에서 보자면, 온라인 연재를 통해 독자와의 직접적 소통이 가능해지면서 비평이 쓰기 차원에서는 점차 서평 형식의 글쓰기로 변모했고 잡지 운영과 관련해서는 작가들을 섭외하고 연재와 출간을 위한 목록을 만드는 편집자의 역할로 이동해갔다고 할 수 있다. 평론가의 역할이 글 쓰는 것에 한정되지 않고 출판 계약을 성사하는 데에까지 이르게 되었던 것인데, 돌이켜보자면 당시의 평론가들이 출판사를 위해 작가를 ‘관리’해야 한다거나 계약을 위해 작가와 만나 일종의 ‘영업’을 해야 하는 경우가 종종 생겨나고 있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웹진에서의 장편 연재가 작가들에게 종이 잡지보다 훨씬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할 수 있었다는 점은 기억해둘 만한 긍정적 면모라 해야 할 것이다. 주요 문예지에서 장편을 연재할 기회를 얻지 못한 작가들도 웹진을 통해 작품을 연재하고 출간할 기회를 얻었고, 이른바 ‘전업’ 작가 생활을 지속할 가능성도 커졌다고 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작가들의 몸값이 점차 높아지기도 했다. 작가들에게 청탁의 기회는 여전히 드물게만 주어질 뿐이고 그것도 일부의 작가들에게만 허락되는 일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2010년대 전후로 신인 작가들도 이전보다 더 자주 지면을 얻거나 좀 더 대접받을 기회에 노출되기 시작했다고 해야 한다. 다른 각도에서 말해보자면, ‘작가 모시기’ 경향이 강해지면서 출판사에서 ‘소속’ 평론가들을 매파 삼아 매년 신춘문예 당선자들의 소설을 살피고 한두 편의 단편소설을 보고 이후 소설집과 장편소설 출판 계약을 선점하듯 하는 경우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출판사 주관의 문학상이 제정되고 운영되는 경향이 뚜렷해지면서 출판사의 스타작가 발굴 시스템은 좀더 정교해졌다고 할 수 있다.
올해에도 어김없이 신춘문예 당선자를 대상으로 한 입도선매가 이루어졌다고 한다. 한국문학이 전 세계에 번역 소개되며 각광받고 있는 현실을 고려하자면, 독자의 범위는 이전에 우리가 상상하던 것과는 차원 다르게 확장되고 있다고 할 것이다. 더 많은 작가들의 등장과 더 새로운 상상력이 요청된다. 아쉽게도 새로운 작가들의 ‘공급’을 통해 유지되는 한국문학계가 개별 작가의 긴 호흡을 쉬이 허락하지 않게 된 것은 역설적으로 스타작가 발굴 시스템이 안정화되면서부터라고 해야 한다. 작가 역시 짧은 주기로 출판을 지속해야 할 압박감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된 것인데, 작가가 세계 전체와 대결하기 위한 큰 기획이나 긴 호흡의 소설을 써낼 시간이나 세부를 촘촘하게 채울 여유를 확보하기 쉽지 않아진 것이다. 결과적으로 보자면 장편소설 창작과 출간을 독려하기 위해 도입된 여러 제도 장치들이 작가와 문학출판계를 다른 방식으로 옥죄게 된 것은 아닌가 생각해보게 된다. 아마도 이 모든 변화의 지반에 상품이 아닌 채로는 예술작품도 될 수 없다는 인식이 뿌리 깊게 자리 잡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