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산대학문학상 수상자 독일 문학기행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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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은 처음인가요? 일주일만 있으면 아쉽지 않겠어요?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입국심사관이 물었다. 짧아서 슬프지만 신나는 여행이 될 거예요. 여권에 도장이 찍히고 우리는 열다섯 시간 만에 독일 땅을 밟았다. 기내에서 눌러 담았던 마음이 공항의 찬 공기와 함께 천천히 풀렸다.
![]() 홀로코스트 메모리얼에서 |
프랑크푸르트에서 짧게 머무른 후, 기차를 타고 드레스덴에 도착했다. 네 시간만에 겨우 도착한 드레스덴의 숙소는 꼭 궁전처럼 화려했다. 방이 아주 많았다. 거실은 함께 썼다. 낯선 공간인데도 우리는 금방 자리를 잡았다. 아침에 눈을 비비며 거실로 나오면 규철 사원님과 승혁 오빠가 반겨 주었다. 언제 일어나셨어요, 물으면 저희도 방금 일어났어요 하던 평범한 대화가 여행의 큰 기쁨이었음을 처음으로 밝힌다.
나에게 가장 좋았던 여행지는 드레스덴이었다. 츠빙거 궁전과 알테 마이스터 미술관에게 마음을 뺏겨 버렸다. 하나라도 더 보고 싶어서 빠르게, 빠르게. 커다란 그림과 곳곳에 놓인 소파. 잠시 앉아 숨을 고르고 싶었지만, 다음 그림이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알기에 계속 걸었다. 오페라 <카르멜회 수녀들의 대화>를 보고 나서도 걸었다. 한 곳으로 계속 걸어간 수녀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봤으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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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마침내 베를린. 차갑고 건조한, 공기가 선명하게 나뉜 도시. 그곳에서 예니 에르펜베크 작가님과의 대담이 있었다. 먼저 멋진 레스토랑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오래 궁금했던 질문들을 하나씩 건넸고, 작가님은 천천히 답해 주셨다. 한국과 독일이 모두 분단을 겪은 나라라는 접점이 있어 자연스럽게 역사에 대한 대화가 이어졌다. 베를린이 어떤 도시인지 묻자, 비슷하지만 낯선 것들이 공존하게 된 곳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베를린은 서로 다른 기억과 배경이 한 공간에 겹쳐 있으면서도 완전히 섞이지 않은 상태로 남아있기 때문이었다. 이후 감사하게도 작가님의 집에 초대받아 남은 이야기를 이어갔다. 문학의 이름으로 역사를 다룰 때는 감정에 기대기보다 구체적인 사실을 충분히 수집하고, 시간을 들여 자세히 살펴보아야 한다는 조언을 들을 수 있었다. 문장이 어디에서 태어나고 어디에서 살아남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누군가의 삶이 오래 쌓여 있는 공간에서 우리는 잠시 손님이 되었다.
유대인 박물관과 홀로코스트 메모리얼도 걸었다. 홀로코스트 메모리얼의 콘크리트 구조물 사이를 지나갈수록 길은 점점 높아지고 시야는 좁아졌다. 방향을 잃은 채 잠시 서 있게 되는 순간이 있었다. 오래전의 시간이 아직 완전히 지나가지 않은 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다시 거리를 걸었다. 빠른 걸음으로 지나치면서도, 어떤 장면들은 빠르게 사라지지 않았다.
독일에서 활동하는 김리윤·하미나·한국화 작가의 낭독 행사에도 참석했다. 세 시인은 각자의 목소리로 시를 읽어나갔다. 동시에 누군가 그림을 그리고 악기를 연주하며 영상이 흘러나왔다. 한 편의 시가 여러 감각으로 확장되는 자리였다. 낭독이 모두 끝난 뒤에야 행사 제목이 다시 떠올랐다. <I am your sound> 익숙한 한국어가 낯선 도시의 공기와 만나는 순간, 시가 메아리처럼 돌아왔다. 그리고 밤 열한 시까지 근처 식당에서 이어진 뒤풀이. 정주 언니의 설렘 가득한 표정이 기억에 남는다. 새로운 자리에서 스스로를 확인하는 일은 기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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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에서의 걸음은 끝나지 않았다.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를 걸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뒤, 118명의 예술가가 남긴 아주 긴 벽화. 콘크리트 위에 덧입혀진 색과 문장들이 끝없이 이어졌다. 분단의 상징이 그림이 되고, 경계가 캔버스가 된 자리. 우리는 그 벽을 따라 빠르게 걸었다. 한 장면 앞에 오래 서 있으면 다음 그림이 보이지 않을 것 같아서. 혹은 기행의 마지막으로 방문한 장소여서.
나는 지금 베를린 공항으로 가는 지하철 안에 있다. 돌아가기 전에 나의 멋진 동료들을 소개해야겠다. 항상 우리의 뒷모습을 사진으로 남겨준 은지 언니. 나의 비행기 메이트이자 룸메이트였던 정주 언니. 개인기가 아주 많은 승혁 오빠. 수많은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 준서.
각자 쓰는 글이 너무 다르고, 정확히 그 점이 좋다. 서로의 속도와 시선이 달라서 더 많이 보게 된다. 드레스덴과 베를린에서 각각 자유시간을 받았다. 모두 독일 곳곳으로 흩어져 각자의 시간을 보냈다. 혼자 걷는 동안에는 조금 느리게, 함께 모이면 다시 빠르게. 그리고 저녁을 먹으며 무엇을 보고 왔는지 이야기했다. 같은 도시를 걸었는데도 겹치는 장면이 없었다.
![]() 드레스덴에서 본 오페라 카르멜회 수녀들의 대화 오페라 |
우리는 꼭 현장 체험학습을 나온 초등학생처럼 독일 거리를 걸어다녔다. 맨 앞의 장근명 팀장님과 맨 뒤에 선 규철 사원님의 특별한 보호를 받으면서. 신호가 아주 짧은 횡단보도를 건너며, 예니 에르펜베크 작가님의 초대를 따라가며, 모르는 언어의 간판과 사람들을 하나라도 더 보고 가기 위해 빠른 걸음으로 걷는다. 지나치면서도 마음 한구석에 남겨 둔다. 내년에 다른 부문으로 수상해서 또 오자는 이야기를 나눴다. 이 멤버로 다시 독일에 오는 건 기적에 가깝다는 팀장님의 농담에 처음으로 슬퍼지기도 했다.
누군가 독일에서 무엇을 보고 왔니 묻는다. 궁전과 미술품과 오페라, 눈부시도록 화려한 유럽의 풍경... 그렇지만 은지 언니가 쓴 알록달록한 모자와 모두를 웃게 한 준서의 진지한 얼굴을 보느라, 놓쳤어.
기행에서는 계획에 없던 일이 종종 일어났다. 갑자기 캐리어가 안 열리기도 했고 레몬에이드를 먹고 취한 것처럼 어지럽기도 했다. 나는 변수들과 여행 내내 다퉈야 했다. 이길 때도 있었고 완전히 패배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기에 이방인의 삶이 즐거운 것. 여행지에서 운명을 만난 이들은 이제 아무것도 필요 없다고 느낄지도 모른다. 그리고 거미처럼, 엑스트라처럼. 당신이 주문과 틈과 비트를 가지고 있다면. 우리를 독일로 초대한 다섯 개의 단어가 당신을 어디든지 데려다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