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틈을 막는 방법
그때는 네가 내 옆에 있다고 믿었다
네가 인간 세상에서 숨어 사는 흡혈귀나 렙틸리언일 거라고
언젠가 숨겨왔던 정체를 고백할 거라고
그때 너는 내 곁에서 곤히 잠들어 있었으니
우리의 방은 북향이었고 겨울 아침마다 창문에 결로가 생겼다
손가락으로 물방울을 훑으며 유리에 스마일을 그리던 네가 영원히 그 방에 있을 것이라 믿었나
자신은 인간이 맞다고 바람직한 일상을 묵묵히 이어갈 거라고
너의 귀여운 거짓말이 조금 웃겨서
그런 것쯤은 기쁜 마음으로 속아줄 수 있었는데
너는 겨울밤마다 화장실의 수도꼭지를 살짝 열어두었다
메트로놈처럼 정확히
물방울이 떨어지는 박자를 따라서
너를 쓰다듬었지 아주 정확하게
그때는 함께라고 믿었다
요정과 슬라임이 사는 저택으로 초대해 줄 날을 기다렸지
네가 어떤 종류의 생물이든 생물이 아니든 상관없다고
너를 꼭 안아주려고 너그러이 용서해 주려고
커다란 은하수 무늬가 새겨진 암막 커튼을 사려 했지
눈을 찌르는 단란주점 간판을 가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용기를 내어 정체를 밝힌 너를
대낮에 쏟아지는 햇빛으로부터 지켜 내려고 네가 사라지지 않게 하려고 기특한 너를 이 방에 두려고
너는 왜 비밀을 고백하지 않고 이 방에서 나갔을까?
아침이 오면 어김없이 수도관이 얼어붙었다
너는 한숨을 쉬며 집주인에게 전화를 걸었지 물이 흐르지 않는다며 따졌고
내가 너를 쓰다듬던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걸까?
분명 박자는 정확했는데
네가 점점 반듯한 사람이 되어 간다고
쾌쾌한 방에 어울리지 않는 생명체가 되어 간다고 느낄 때면
내가 서서히 녹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
서서히
흘러내리며
네가 숨긴 진실 따위는 없다는 걸 네가 정상적이고 건강하며 건실한 한 명의 인간이라는 걸
알아차릴 때
창틀의 얼음이 녹아내려 불어 터진 벽지로 스며드는 것처럼
우리가 서로에게 누런 물 자국을 남길 때
무서웠지
네가 커튼을 걷어버리고 내 살갗 위로 빛이 쏟아진다면
내가 녹아내린다면
이 방에 있어야 할 사람은 자신이 아니라고
인간인 척도 못 하고 흐느적거리는 액체 괴물이
바로 여기 있다고…
너는 그런 비겁한 방식으로 나를 상처입히는 사람이 아니었고
속아주는 사람은 너였다는 걸 해가 들지 않는 방에서 커튼을 내리고 낮에도 밤에도 겨울잠에서 깨어나지 못하는 나를 참아주고 있었다는 걸
몰랐다 서서히 떠날 채비를 하는 중이었다는 사실도
그때 너는 분명히 이 방에 있었다
그것만은 착각이 아니라니
다행이지
버저비터
나의 조던은
스포츠 만화의 주인공이 신던 조던
빨간 삭발 머리로 풋내기 슛을 만 번 넘게 던질 때
그의 발을 단단히 감싸던 조던
핑크색 소니 헤드폰을 끼고 교실에서 나올 때면
볼륨을 최대로 올렸다
갱스터 스타일의 비트가 헤드폰을 뚫고 나왔고
아이들은 내가 듣는 힙합에 대해 몰랐다
808 베이스 소리나 시카고 불스에 관해서도
나의 조던이 한정판 모델이라는 사실도 몰랐고
나의 조던은
삼 년 모은 세뱃돈으로 산 조던
태평양을 건너 아메리카에서 코리아로 온 조던
정품인지 짝퉁인지 알 수 없는 조던
연습이라고 생각하자
연습이라고 생각하자
농구화를 신고 학교에 갈 때마다
딱딱한 가죽에 발뒤꿈치가 벗겨졌다
나는 농구를 할 줄 모르면서 비싼 농구화를 신는 아이
슬랭을 알아듣지 못하면서 영어 랩만 중얼거리는 아이
나의 조던은
웨스트 코스트 힙합의 전설이 신던 조던
그는 롤스로이스 안에서 총을 맞고 죽었지
체육 시간에 높은 골대로 슛을 쏠 때마다
공은 그물망에서 튕겨 나왔고
뒤꿈치에선 피가 배어 나오는 느낌이 들었어
나의 조던은
아이들이 알아보지 못하는 조던
사실은 가짜일지도 모르는 조던
절뚝이며 공을 주우러 가는 동안 속엣말로 중얼거렸다
연습이라고 생각하자
마지막 경기의 결정적인 한 골을 위해
드라마틱한 역전승을 연출하기 위해 견디는 연습이라고
다짐했지
다시는 조던을 신고 학교에 오지 말자고
나의 조던은
너희들과의 게임을 위한 것이 아니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