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한여름 친구가 죽었습니다. 그의 50번째 생일이 지난 지 채 얼마 되지 않은 가장 더운 날이었습니다. 어떤 죽음 앞에서는 슬픔이 너무 커서 당황한 마음을 숨길 수 없습니다. 문상 가는 길, 마음은 우왕좌왕 길을 잃고 몸은 허둥지둥 방향을 잃었습니다.
장례식장에 들어서야 죽음의 실체를 확인하고 큰 슬픔이 몰려들었습니다. 이른 죽음이 안타깝고 후회스러운 일들이 떠올랐습니다. 지방에 내려와 살기 시작하며 안부를 묻는 일이 점점 뜸해졌고 못 본 지 몇 년이 흘렀는데 그의 마지막 안부가 죽음이라니요. 죽은 친구가 너무나 불쌍했습니다. 그간 고생했던 마음도, 고단했던 삶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가 죽음 앞에서 겪었을 고민에 다다를 수는 없어서 마음은 더욱 참혹해졌습니다.
오랜만에 친구들이 장례식장에 하나둘 모여들었습니다. 각자 먹고 사는 게 바쁘고, 전국 여기저기에 흩어져 살다 보니 우리는 서로의 안부를 묻는 것마저도 뜸해진 지 오래전이었습니다. 시골에서 상경하여 대학에 다니던 시절만 해도 우리는 매주 자취방에 모여 주말을 함께 보내던 사이였는데 하나, 둘 취업과 결혼을 하면서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아주 당연한 수순으로 우리는 먼 곳에서 서로를 마음으로만 응원하는 친구들이 되었습니다. 한밤중이 되어서야 친구들이 장례식장에 모두 모였습니다. 외국에서 사는 친구 몇을 빼고는 모두 친구의 죽음에 놀라 달려왔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우리는 서로의 안부를 묻는 일조차 뭔가 죄스러웠습니다. 별일 없이 무탈한 것이 이상하게도 죽은 친구에게 미안했습니다. 처음 겪는 일이어서 우리는 친구의 죽음 앞에 그간 소원했던 시간에 대해 자책밖에 할 게 없었습니다. 한 친구가 울기 시작하자 그간 꾹 눌렀던 서글픔이 터져 나왔습니다. 유년을 함께한 친구, 오랜 시간과 추억이 너무 깊어 그의 죽음은 타자화되지 않았습니다. 마치 자신에 대한 죽음을 애도하는 듯 슬픔은 커지기만 했습니다. 한참 자책의 시간이 늘어가고 있을 때 숨죽여 훌쩍이는 우리 옆으로 장례도우미 한 분이 조심스레 다가와 조용히, 푸짐하게 상을 차렸습니다.
한밤중 슬픔이 불러온 허기는 또 왜 그리 죄스러운지요. 우리는 울음을 멈추고 육개장과 밥, 돼지 수육과 마른반찬으로 배를 채웠습니다. 죽음과 마주하게 되자 오히려 삶의 의지를 발견하게 되는 걸까요. 장례식장에서 한밤중 먹는 저녁이 그리 맛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먹는다는 것은 다른 무엇의 생을 먹는 일인가 봅니다. 죽은 친구가 지난 시간 소원했던 우리를 모아 한상 거나하게 대접하는 것 같았습니다. 아주 특별하다고는 말할 수 없는 장례식장의 밥상은 우리에게 무심히 지나치는 일상에 대한 소중함이라도 알려주는 듯했습니다. 잠시 슬픔을 미루고 우리는 상에 둘러앉아 아주 늦은 저녁을 함께했습니다.
“살고 죽는 게 이게 다인가 봐. 밥이 맛있네, 정말.”
여수에 사는 친구가 말했습니다.
“그러게 말이다. 옛날에 한 선배가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문상객을 받는데 밥을 많이 먹거나 너무 맛있게 먹는 사람들이 그렇게 꼴 보기 싫더래. 그러면서 나보고 초상집 가서 꼭 먹는 시늉만 하라고 했었는데.”
내가 답했습니다. 뭔가를 먹자 그제야 서로의 안부와 가족들의 건강을 묻고 그간 어떻게 지냈는지 서로 근황을 나누었습니다.
![]() 친구의 오래된 고향집 옆 노포 칼국수 |
다음 날 한줌 재로 남은 친구를 묻고 우리는 각자의 길로 서둘러 흩어졌습니다. 기차 시간이 남은 몇몇은 어렸을 적 그와 자주 가던 허름한 칼국수 집에서 점심을 먹었습니다. 그곳은 수십 년 된 노포였는데 음식 맛은 여전했습니다. 근처에 죽은 친구의 오래된 고향집이 있었습니다. 이젠 너무 늙어버린 그의 집을 멀리서 바라보니 마음이 더 막막해졌습니다.
그해 겨울에는 가장 친한 친구의 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친구의 아버지는 뇌출혈로 쓰러져 4년 넘게 투병 생활을 했습니다. 거동이 힘든 아버지를 집으로 모셔서 가족들이 돌보았습니다. 그 가족들의 고단함을 지레짐작하기는 어려웠습니다. 겪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요. 그럼에도 언제나 씩씩한 친구를 보면 아버지도 가족들의 상황도 그리 나쁘지 않을 거로 생각했습니다. 돌아보면 비관적인 상황도 오래되면 남들에게는 일상처럼 무감해지는 법인가 봅니다. 가족 말고는 알지 못하는 일이니까요. 시간이 지나면서 상황이 점점 나아지고 있다고 믿었지만, 실은 그 반대였음을 부고를 받은 뒤 알게 되었습니다. 그간 으레 안부를 묻곤 지나치기 일쑤였음에 친구에게 미안해졌습니다.
부고를 들었을 때 아버지가 힘들어하는 가족들을 위해 서둘러 생의 저편으로 떠난 것은 아닌지 안타까웠습니다. 가족들이 몇 년의 시간 동안 아버지의 죽음을 준비했다고 하지만, 아버지와 남편을 잃은 그들의 마음 헤아릴 길 없었습니다. 인천의 장례식장에 도착했을 때 친구에게로 향하는 위로와 오랜만에 상가에서 마주한 동료 문인들에 대한 반가움이 계속 부딪혔습니다. 낮부터 문상 와서 이미 취한 이들도 여럿이었습니다.
“여기 음식이 너무 맛있어요. 꼼꼼한 친구라 이런 음식마저도 미리 알아보고 장례식장을 택한 건가.”
코다리 무조림은 정말이지 맛있었습니다. 몇 번을 추가해서 술안주 삼았습니다.
“그런 것은 아니고 돌아가신 아버님이 생전에 장례식장 음식이 푸짐하고 맛있어야 한다고 계속 그러셨대요. 장례식장을 정했는데 마침 음식이 엄청 맛있는 곳이었던 거지.”
그날 우리는 꽤 많이 술을 마셨습니다.
“생전 남들 불러다 먹이는 것 좋아하셨던 양반이셨다니까, 망자가 이곳으로 이끈 것일지도 모르지.”
그날 우리들은 상가에서 밤을 꼬박 새웠습니다. 젊었을 적 술을 좋아하셨다는 친구의 아버지가 함께하신 것일까요. 그래서 그런지 그날 술자리는 정말 정겹고, 참으로 반갑고, 잊지 못할 만큼 맛있는 자리였습니다. 가족을 잃은 이들의 슬픔과 문상객들의 애도와 망자의 마지막 배려로 차려진 밥상이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