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문학의 공간
대관령

  • 내 문학의 공간
  • 2026년 봄호 (통권 99호)
대관령

고향의 설경    

 

강원도의 영동과 영서를 가르는 중요한 고갯길 중 하나가 대관령이다. 나는 1960년대 중반 서울과 강릉을 연결하는 6번 국도가 지나가는 대관령(옛 도암면)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마을 사람들은 그 길을 신작로라 불렀다. 자잘한 돌들이 많은 비포장도로였다. 도로 한쪽에는 통나무에 기름을 먹인 전봇대가, 건너편엔 이태리포플러가 드문드문 서 있었다. 차량은 그리 많지 않았는데 화물차나 버스가 지나가면 흙먼지가 자옥하게 피어났다. 겨울엔 거의 눈으로 덮여 있었고. 제설차가 눈을 밀곤 했는데 내리는 눈을 감당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초등학교에 다니던 우리는 차들이 다져놓은 눈길을 달려가 미끄럼을 타느라 바빴다. 그러다가 뒤로 자빠지기도 하면서. 가을이 되면 신작로 옆으로 코스모스가 만발했는데 종이를 접어 만든 집게로 검은 왕벌을 잡아 꿀을 빨아 먹으며 하교했다. 직행버스가 지나가면 손을 흔들었고, 승객이 손을 같이 흔들어주면 왠지 마음이 설렜다. 저 사람들은 어디로 가는 걸까…. 영동고속도로가 개통되기 전까지 그 신작로는 어린 우리들이 바깥세상을 바라보는 거의 유일한 창이나 다름없었다. 그러했기에 신작로는 우리들의 또 다른 학교였다.

1970년대 중반 영동고속도로의 강원도 구간이 개통되었다. 고속도로는 높았고 마을을 반으로 갈라놓았음에도 우리는 즐거웠다. 새로운 놀이공간, 새로운 창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고속도로는 공사가 진행 중일 때부터 우리들 관심을 집중시켰다. 처음 보는 토목 공사용 중장비들을 관찰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바위산에 구멍을 뚫고 남포를 터뜨리는 굉음에 깜짝 놀랐다. 집채만한 바위가 개울로 굴러떨어지면 비싼 남포 줄을 먼저 수거하기 위해 달려갔다. 아버지는 그 줄을 모아 알록달록한 종다래끼를 만들기도 했다. 이후에도 고속도로 공사는 새로 보는 것들이 줄지어 대기하고 있었다. 마침내 고속도로가 개통되자 엄청난 차량이 몰려들었다. 비탈밭에 앉아 고속도로를 달려가는 각종 차량을 하루 종일 지켜봐도 질리지 않을 정도였다. 고속도로 옆에는 사람들의 접근을 막는 철책 울타리가 설치돼 있었는데 그것을 뚫고 들어가는 일은 쉬웠다. 뚫고 들어가야 무엇인가를 얻을 수 있었다. 당시에는 휴게소가 드물어 도로 옆에 차를 세우고 쉬었다 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이 떠나면서 남기고 가는 것 중 하나가 바로 껌 종이였다. 우리들의 놀이 가운데 하나가 껌 종이 모으기였다. 그 밖에도 고속도로 주변에는 도시 사람들이 버리고 가는 게 많았는데 산골에 사는 우리에겐 하나같이 신기한 물건들이었다. 

지금은 예전보다 한참 못하는데 당시 대관령은 남쪽 땅에서 대표적인 눈의 고장이었다. 겨울도 가장 길었다. 내리는 눈도 많았지만 강한 바람이 옮기는 눈도 그 못지않았다. 신작로까지 힘들게 눈을 쳐도 하룻밤이 지나면 바람이 눈을 날라와 길을 덮어버릴 정도였다. 그래도 우리는 개의치 않았다. 눈길을 밟고 또 밟으면 높이는 계속 올라갔지만 길은 다시 생겨났기에 나는 밤이면 손전등 불빛을 휘두르며 친구들 집으로 놀러 다녔다. 우리집으로도 이제 턱수염이 하나둘 나오기 시작하는 친구들이 놀러 왔다. 놀러 가고 놀러 오는 집은 부모님들이 관광을 떠났기에 우리는 맘 편하게 술을 마실 수 있었다. 낮에 개울의 얼음을 깨고 잡아놓은 개구리를 화롯불에 구워 먹으며. 그뿐만이 아니었다. 디스코 열풍이 대관령에도 도착했던 터라 우리는 카세트테이프의 음량을 최대한으로 올려놓고 노래에 맞춰 춤을 추었다. 양말 바닥이 반질반질해질 때까지. 테이프가 늘어나 노래가 끊어질 때까지 놀다가 새벽에 다시 팝송을 흥얼거리며 눈길을 걸어 집으로 돌아왔다. 어떤 날은 발을 헛디뎌 길 옆 개울의 눈구덩이로 처박히기도 하면서. 대관령의 눈은 그렇게 11월부터 다음 해 2월까지 내리다가 그치기를 반복했고 우리는 그 눈길을 쏘다니며 길고 깊은 겨울을 건너갔다.

 

대관령에 있는 고향집 풍경    

 

세월이 흘러 대관령을 떠난 나는 ‘우리’에서 나와 내가 되려고 애를 쓰기 시작했다. 대관령을 다시 보려고 원고지 앞에서 끙끙거렸다. 아니, 비로소 대관령이 다시 보였다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대관령은 고갯마루에 자리 잡은 마을이다. 저쪽도 아니고 이쪽도 아니다. 가끔 나와 내 문학이 서 있는 자리가 담벼락 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저쪽에서도 부르고 이쪽에서도 부를 때가 있다. 저쪽도 무심하고 이쪽도 무심하다고 생각할 때가 사실 더 많다. 물론 내 옹졸한 생각일 뿐이겠지만… 그런 생각이 들 때면 고향집이 있는 대관령을 찾아간다. 가서 며칠을 지내다가 돌아온다. 언젠가 이런 글을 쓴 적이 있다. 마음이 아플 때만 고향집을 찾아간다고…. 육십갑자를 한 바퀴 돌았는데 요즘 다시 아프기 시작한다. 나는 다시 고향집에 갈 수 있을까.    

 

김도연
소설가, 1966년생
소설집 『빵틀을 찾아서』 『콩 이야기』 『이별전후사의 재인식』, 장편소설 『풍의 여행』 『마가리 극장』 『마지막 정육점』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 『삼십 년 뒤에 쓰는 반성문』, 산문집 『평창』 『패엽경』 『강원도 마음사전』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