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그러므로, 조용한 서점 / 조용한 서점, 그럼에도

- 시집 서점에서 ‘텍스트힙’ 이해하기

  • 기획특집
  • 2026년 봄호 (통권 99호)
그러므로, 조용한 서점 / 조용한 서점, 그럼에도

- 시집 서점에서 ‘텍스트힙’ 이해하기

지구 반대편으로부터 도착한 질문

내 첫 시집을 영문으로 번역한 역자이며, 멋진 시를 쓰는 시인이기도 한 수연은 뉴욕에 산다. 나는, 내가 사는 서울로부터 열네 시간 시차를 사이에 둔 수연의 도시에 가본 적이 없다. 그럼에도 우리에게는 자주 용건이 생기고, 그와 나는 자주 만난다. 온라인 화상 회의 프로그램을 이처럼 친근한 용도로 써본 적이 있었나 싶다. 우리 대화는 딱딱한 업무 이야기에서 바람과 희망, 유년의 기억, 근래 보고 들었던 소소한 일상 쪽으로 흐른다.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업무 파트너 이전에, 우리는 친구니까. 물론 서로를 이처럼 다정히 불러본 적은 없지만, 같은 것을 아끼고 기꺼이 공유하는 사이. 그런 관계는 분명 친구가 아닌가. 나와 수연 사이에는 ‘시’가 있고 우리는 자신의, 서로의 시를, 시에 대한 믿음을 신뢰하고 한껏 사랑한다.

이 년 전 - 벌써 시간이 그렇게나 되었구나 - 수연이 한국에 온 적이 있다. 고작 열흘 남짓한 기간 동안 우리는 내내 붙어 있었다. 많은 일을 함께했다. 물론 그 모든 일에는 ‘시’라는 단서가 붙었다. 나는 꽤 우쭐댔던 것 같다. 한국의 시 문화가 남다르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귀동냥하기로, 한국만큼 시집이 팔리는 나라는 드물다 했다. 이처럼 젊은 시인이 많고, 또 활발히 활동하는 경우를 찾기 힘들다고도 했다. 도시 곳곳에서, 이를테면 광화문글판이라든가 지하철역 스크린도어 같은 경우 말이다, 시를 발견하는 건 놀라운 일이라고 했다. 수연 또한 꽤 즐기는 눈치였다. 수연의 출국 전날엔 함께 시 낭독회를 가졌다. 많은 사람이 찾아와주었고, 낭독회는 예정했던 시간을 넘겨 늦은 밤 뒤풀이로 이어졌다. 수연은 뉴욕으로 돌아간 뒤로도 몇 번이나 서울 방문에서 있었던 즐거움을 이야기했다. 그러니 그저 인사치레만은 아닐 것이다. 

며칠 전 또 나는 수연과 온라인을 통해 만났다. 이번엔 내가 미국에 갈 차례가 되었나 보다. 우리는 4월 뉴올리언스에서 개최되는 시 축제(NOPF, New Orleans Poetry Festival)의 초대를 받아 참가하기로 했다. 우리 사이엔 또 다른 할 일이 생겼고 산적한 논의 사항을 하나하나 체크해 나갔다. 이윽고 회의를 마치고 한숨 돌릴 무렵, 수연이 질문 하나를 건넸다. 최근 어떤 기사에서, 요즘 한국 젊은이들이 시 읽기에 빠져 있다는 내용을 읽었다는 거였다. “그게 사실인가요?” 수연의 눈은 기대로 빛나고 있었다. 나도 그 기사를 본 적이 있다. ‘MZ세대’, ‘텍스트힙’과 같은, 실체를 알기 어려운 단어들 사이 ‘숏폼’이니 ‘아이돌’이니 하는 단어도 섞여 있었던 것 같다. 어쩐지 곧장 대답하기 어려웠다. 머릿속이 복잡해진 것도 같고, 그래서 나는 수연에게 되물었다. “어떨 것 같아요?”

 

자문자답, 시집 서점 <위트 앤 시니컬>에서

어떠한가. 나 자신에게도 묻는다. 나는 서점을 운영하고 있다. ‘시집만 파는 서점’이라고 소개하면 다들 안타까워한다. 언뜻 생각하기에 운영이 쉽지 않겠다고 여겨지는 모양이다. 그런 걱정을 사며 지낸 지 벌써 10년이 되었다. 기가 차다. 월말만 되면 시름시름 앓은 지 10년이 되었다니. 죽는소리가 습관이 된 지 10년째라니. 그사이 안팎으로 온갖 일들이 있었다. 서점 구석 자리에 앉아 펴낸 책만 시집이 세 권, 산문집이 네 권이다. 100회가 넘는 시 낭독회를 기획하고 진행했다. 한 차례 서점의 자리를 옮겼다. 대통령이 세 번이나 바뀌었다. 그중 두 번은 탄핵 정국에서 치러진 선거였다. 역병이 유행하여 곤욕을 겪었다. 한국 작가가 노벨상을 받았다… 등등. 온갖 일들이 주마등처럼 흐르는 가운데, 여전한 것이 있다. 이토록 조용함. 그러니까 조용한 서점.

‘조용함’은 서점의 숙명인지도 모른다. 요란을 떨며 책을 고르는 사람은 좀처럼 상상하기 어렵다. 책의 숲을 거니는 아뜩한 산책. 풍요로운 고요 속에서 만난, 운명과도 같은 한 권 책 머리에 닿는 손끝. 가만가만 책장이 넘어가며 내는 소리. 상상만으로 기분이 좋다. 하지만 지금의 조용함은 그런 성질의 것이 아니다. 책의 숲도, 운명과도 같은 한 권 책도 준비되어 있건만, 숲길을 거닐거나, 책머리에 손끝을 거는 사람이 없다. 그러니 이 조용함은 적막이라고 해야 할지도 모른다. 나는 10년 세월 대부분을 텅 빈 적막 속에서 보냈다. 

아무도 없는 서점에 대한 이해는 크게 두 개의 흐름을 갖는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그러므로’와 연결되는 순접(順接)의 방식이며, 다른 하나는 ‘그럼에도’와 이어지는 역접(逆接)의 방식이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 하였으니, 해골 속 찰랑이는 물과 다름없는 이 조용함을, 어떤 날에는 ‘그러므로’와 연결 지어 낙담하고, 또 어떤 날에는 ‘그럼에도’와 연결 지으며 담대한 희망을 느끼는 것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결국 마음먹기에 달린 것일지도. 그러나 서점 운영은 매일매일 냉혹한 현실과 부닥치는 일이다. 또한 책을 찾아 서점에 방문하는 독자(손님) 역시 소비자이며 그들의 구매는 몹시 사실적이다. 단지 기분으로, 그날그날의 컨디션으로 ‘그러므로’의 세계에 머물거나 ‘그럼에도’의 세계로 옮겨가는 건 아니라는 뜻이다. 물론 준거는 스무 평 남짓한 나의 시집 서점에서 보낸 지난 10년 동안의 경험과 데이터에서 온다. 편협하고 작기에 소중한 나의 지난 시절, 어떤 것이 같고 무엇이 달라졌을까. 수연에게 질문을 돌려보냄으로써 마땅한 대답을 찾기까지의 시간을 유예하고 곰곰이 생각에 잠긴 까닭이다.

 

그러므로, 조용한 서점

시집 서점 <위트 앤 시니컬>이 1년간 시집을 판매하여 얻는 매출액은 1억 원이 좀 넘는다. 월 1,000만 원 가량 매출이 나는 셈이다. 이 수치는 지난 7, 8년 동안의 평균 금액으로, 시기마다 더 나가고, 덜 나가기도 하지만 1년 기간을 정산해 보면, 짜맞춘 것처럼 해마다 유사한 성적을 받아 들게 되곤 한다. 퍽 안정적으로 보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여기에는 함정이 있다. 물가 상승률이 반영되지 않기 때문이다. 처음 <위트 앤 시니컬>을 열었던 2016년 당시 시집 한 권의 값은 7~8,000원 가량이었다. 2026년 지금 시집 한 권 값은 12,000원에서 13,000원 사이로 매겨진다. 지난 10년 동안 연 평균 5%씩 인상된 꼴로, 헤아려보면 65% 가까이 인상되었다. 그러니 <위트 앤 시니컬>의 평균 매출액이 제자리걸음이라는 건 대략 40% 매출 하락이 있었다는 뜻과 다름없다. ‘텍스트힙’이라는 신조어와 맞닥뜨렸을 때, 곤혹스러움을 느꼈던 까닭은 여기에 있다. 물론 ‘텍스트힙’이 시집만을 대상으로 한 현상도 아닐뿐더러, 예나 지금이나 시집 독서는 난감하고 어려운 일로 치부된다. 그렇더라도 시집을 배제하고 있다는 의미도 아닌 만큼, 유행하고 있다면 체감까진 아니더라도 수치로나마 확인할 수 있을 만큼은 되어야 하지 않은가, 싶은 것이다. 그리하여 데이터를 유심히 살피다 보면 흥미로운 사실을 알게 된다. 결제하는 독자 수, 즉 유입 고객 수가 소폭 상승했다는 사실이다. 이는 객단가, 즉 1인의 구매 권 수가 줄었다는 의미가 된다. 무엇 때문일까. 서점에 찾아와 사람들이 나누곤 하는 대화 — 엿들으려 하는 것은 아니나 도리 없이 듣게 되는 말소리 — 로부터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A : 너 그 책 살 거야?

B : 아니. (책을 내려놓는다.) 집에 쌓여 있는 책이 너무 많아.

 

이와 같은 불평 혹은 하소연을 대략 이틀에 한 번꼴로 접한다. 그리고 그때마다 간담이 서늘해진다. 소위 ‘적서(積書, 책을 쌓아두기만 하는 행위)’라 불리는 독서 정체 현상이 극에 달한 것이 아닌가 싶기 때문이다. 책은, 다른 소비재들과 달리 구입만으로는 아무런 의미가 되지 못한다. ‘읽기’라는 부연 행위가 뒤따라야만 비로소 소유가 성립되는 사물이다. 바꿔 말해 소유에 시간과 공이 드는 것은 물론이요, 자격 혹은 능력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이쯤에서 현재의 도서 제작 유통 생태계의 현황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자극적인 제목, 현란하다 못해 어지럽기까지 한 표지, 알록달록한 굿즈. 대부분이 마케팅과 관련되어 있다. 책을 제작하고 유통하는 그 누구도 팔고자 쏟는 만큼 읽히는 데 노력을 들이지 않는다. 적서가(積書家, 책을 쌓아두는 사람)를 ‘양산’하는 셈이다. 쌓여 있다면, 그것은 책이 아니라 종이뭉치이며, 골칫거리에 불과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텍스트힙’이라는 기표는, 책 혹은 독서가 가지고 있던 위상의 추락을 표시하는 것 이상이 될 수 없다. 사유하는 인간으로서 필수적인 행위였던 독서가 유행하는 스타일, 일시적 추종-어느 정도 시기가 지나면 잊게 될 무언가가 되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텍스트힙’에는 ‘소비 트렌드’라는 키워드가 필수적으로 따라붙는다. 사멸을 전제로 한 유행을 곱게 바라보기 어렵다. 가령 소설가 한강의 노벨문학상 이후 벌어진 전대미문의, 즐거운 ‘소요’는 무엇을 남겼는가. 없어서 못 팔았다는 소리는 들어보았지만, 한강 소설이 가진 의미와 미학적 아름다움에 대한 열띤 토론이 그 못지않게 있었나 반문해 보게 된다. 이것이 지금—여기 독서 생태계의 현주소가 아닐까.

 

조용한 서점, 그럼에도

최근 시인들 사이 가장 뜨거운 대화 주제는 ‘여러 출판사의 시인선 시작’이다. 작년 한 해만 열림원의 시인선 ‘시림’을 필두로, 문학동네 계열사 난다출판사와 교유서가가 각각 ‘난다시편’과 ‘교유서가 시집’ 시리즈를 시작했다. 은행나무와 자음과모음에서도 곧 시인선을 낸다는 소식이다. 시인마다 소식을 들었느냐며 의견을 주고받기 바쁘다. 대체로 반기기보다 걱정이 앞서는 분위기다. 문학과지성사, 창비, 문학동네, 민음사, 현대문학, 아침달, 봄날의책 등의 출판사들이 충분할 만큼의 시집을 출간하고 있는데, 이에 다섯 군데가 추가되면 경쟁이 과열될 것이며, 전반의 질적 하락이 예상된다는 것이 주된 의견이다. 일리 있는 우려이다. 앞다투어 계약을 체결하려 들 것이며, 연간 출간되는 시집의 숫자가 늘어날 것이고, 시집 자체의 완성도보다는 화제성이 우선될 테니까. 결국 이는 독자들의 혼란과 적서를 가중할 것이 분명하다. 아닌 게 아니라 벌써 여러 출판사로부터 계약 제안을 받은 시인들의 이야기가 들려온다. 이대로라면 조만간 시집이 쏟아지듯 출간될 것이다.

사실, 시인선의 잇따른 출시가 놀라운 일만은 아니다. 작년 한 문학상의 젊은 시인 부문 심사를 맡은 적이 있다. 데뷔 5년 이내 시인의 시집이 대상이었다. 간단한 일이겠지, 짐작하며 후보 목록 작성을 자청했다. 이내 후회하고 말았다. 오랜 역사를 지닌 곳부터 이제 막 시작하는 출판사까지 수많은 출판사에서 셀 수 없이 많은 시집이 출간되고 있었다. 내 생각에 의미 있는 빈도로 시집을 펴내는 출판사만 추렸는데도, 25군데의 출판사에서 출간한 25종의 시집 시리즈 110권에 달하는 후보군을 마주하게 되었다. 엄청난 숫자라 할 수 있다. 그에 몇 종이 보태어진다고 해서 무엇이 문제겠는가. 물론 중대형 출판사들의 ‘참전’은 다르게 생각되어야 할 것이지만, 우려가 될 만한 일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보다 내가 주목하는 것은 대체 ‘이 출판사들이 어떤 이유로 시인선을 준비하는가’이다. 물론 시인선 출간은 근사한 일이다. 문학 서적을 펴내는 출판사라면 꿈꿔볼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런 것 말고 진짜 이유 말이다. 

 

 

 

 

 

여러 짐작이 있을 수 있겠다. 나는 그중 젊은 시인들의 약진과 활발한 행보에 주목한다. 가히 ‘신드롬’이라 이를 만한 시인 고선경의 인기를 살펴보자. 2023년 문학동네에서 출간한 고선경의 첫 시집 『샤워젤과 소다수』는 2025년 현재 20쇄를 찍었다. 남다른 물량 공세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방송 등의 이슈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오직 입소문으로만 장기 침체 중인 현 출판 시장에서, 그것도 시집으로 이만큼 성과를 이루었다는 건 놀라운 일이다. 통상 쇄당 2,000부씩 찍었다 짐작해 본다면, 줄잡아 4만 부가 팔렸다는 이야기이다. 결코 일시적 성과가 아니다. 고선경은 불과 1년 만에 두 번째 시집 『심장보다 단단한 토마토 한 알』을 펴냈는데, 후발주자 시인선(열림원, 시림)의 첫 번째 책임에도 현재 10쇄를 넘겼다. 소위 ‘장사가 된다’라고 판단할 만하다.

고선경뿐만 아니다. 권누리, 유선혜, 유수연 등 젊은 시인들이 못지않은 사랑을 받고 있다. 이들이 보여준 저력의 특징은 이 ‘절대적 지지’가 특정 세대로부터 비롯되었다는 데에 있다. 이십 대—여성, 현재 한국 출판계의 코어로 자리 잡은 이들이다. 재작년과 작년 ‘서울국제도서전’ 열풍을 기억하는지. 출판사들이 앞다퉈 참가하는 바람에 참가 부스가 부족하기까지 했다는 북페어의 흥행 또한 이들 덕분이라는 점을 기억하자. 이들은 출판사를 가리지 않는다. 장르 역시 따지지 않는다. 믿고 신뢰할 만한 경험이라면 언제든 열광해 줄 준비가 되어 있다. 지지부진하던 전자책의 대중화 또한 이들이 이끈다. 이들에게 독서 경험이란 반드시 종이 뭉치의 제책에서만 가능한 것이 아니다. 그것이 어디서 왔는지는 몰라도 ‘좋음’을 느낄 수 있다면, 형언하기 어려운 감정의 형상화를 읽어낼 수만 있다면 무관하다. ‘텍스트힙’이라는 기표가 경계—없음, 구분—없음, 차이—없음 위에서 이루어지는 텍스트 체험에 붙는다면 이는 가능성이다. 이른바 읽기 행위의 세대교체, 새로운 발현이 움트는 중이다. 이에 따르면 중대형 출판사들이 ‘뒤늦게’ 혹은 ‘서둘러’ 시인선을 준비하는 양태를 이해 못 할 것이 아니다. 마치 새로운 유전을 찾아 시추를 시작하는 기분이 아닐까.

다시 <위트 앤 시니컬>로 돌아와 보자. 앞서 나는 <위트 앤 시니컬>의 ‘객단가’가 떨어졌다고 적었다. 이는 인당 시집 구매 수가 줄었다는 뜻인 동시에, 찾아오는 이의 수는 같거나 적어도 늘었다는 뜻이 된다. 아닌 게 아니라 데이터상으로나 체감상으로나 서점을 찾아와 시집을 구매하는 숫자는 분명 늘었다.  그리고 위트 앤 시니컬의 주요 독자층은 어느덧 30대에서 20대로 이동했다. 성별은 물론 여성이 압도적이다. 이것이 함의하는 바는 단순하다. 시집, 나아가 책에 대한 새로운 관계를 정립해 나아가는 세대의 출현과 그들로부터 재편될 다른 생태계. 나는 이것이 이 조용한 서점의 이후, ‘그럼에도의 세계’라고 믿는 것이다. 나는 아직 20대들, MZ라 통칭하곤 하는 이들의 취향과 심리를 알지 못한다. 어쩌면 영영 알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저 그들이 일시에 어떤 책을 찾을 적에 사후적으로 해석해 보고 고개를 주억거릴 뿐이다. 분명한 것은, ‘있다’라는 사실이다. 무언가가 가능성을 배태한 채. 유령이라 해도 좋다. 19세기 유럽을 떠돌던 그것처럼, 이 유령은 시집 서점의 책장 구석구석을, 대형서점과 온라인 서점 이곳저곳을, 헤매고 있다. 지기만의 방식으로 ‘좋음’을 경험하기 위해서. 이를 일종의 시그널이며 기회이고 어쩌면 마지막 불꽃일지도 모른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의 친구에게 답하기를 

그래서 ‘텍스트힙’이란 현상은 실재하는가, 하는 질문에 나는 대답을 유보한다. 비겁해서라거나 잘 몰라서만은 아니다. 지금 이 분위기가 어떻게 작동할 것인가 결정이 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지금이 굴러간다. 에너지는 새로운 세대의 지지. 핸들을 쥐고 있는 쪽은 출판생태계에 속한 모든 구성원이다. 승객 자리에는 ‘그들’이 잔뜩 앉아 있다. 자 이제 어느 쪽으로 갈 것인가. 그러나 나는 수연에게 이와 같이 대답하진 못했다. 시를 사랑하는, 지구 반대편 도시에 사는 내 친구가, 그 지구 반대편에서, 그곳에서라도 어떤 가능성이, 그것이 K-POP 열풍만 한 것은 아니더라도 대단한 가능성이 움트고 있을 거라는 기대를 품고 있는데, 찬물까진 아니어도 식어빠진 대답을 내놓을 수는 없는 것이다. 나는 내 바람을 마치 일어나고 있는 일인 양 이야기한다. 20대들이 자신의 의사를 텍스트로부터 확인하고 공고하게 다지며, 설명하기 어려운 자신 내부의 사건을 드러내는 일부 작가들을 적극 지지하고 있다고. 세계 사이 거리가 좁아진 만큼 이 가능성 또한 세계 어디에서나 융통될지도 모르겠다고. 그것이 시일 수도 있고, 소설일 수도 있고, 지금의 분류와 전혀 다른 체계의 어떤 것이 될 수도 있겠으나 하여간, 이후가 기대된다고. 화상 회의를 마치고 나서 나는, 어쩐지 내 기대가 실현될 것 같아 설렜다가 알 수 없는 여전함 탓에 조금은 막막해지고 말았다. 

 

유희경
시인, 시집 서점 <위트 앤 시니컬> 대표, 1980년생
시집 『오늘 아침 단어』 『당신의 자리-나무로 자라는 방법』 『우리에게 잠시 신이었던』 『이다음 봄에 우리는』 『겨울밤 토끼 걱정』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