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4년 02월 코창 시크릿 비치 |
십 년째 찾고 있는 섬이 있다. 그 섬을 처음 찾을 당시 나는 긴 여행 중이었고, 여행을 시작하던 때에는 이 섬의 존재를 몰랐었다. 시작 노트 옆 초록색 여권을 보고서야 내 이름이 떠오르곤 했던 긴 여행에서, 그 섬을 가게 되었던 이유를 생각하자면 이제는, 몇 번의 우연으로 그렇게 되었다고, 말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땐 뜻밖의 우연에 이은 우연들을 필연이나 운명으로 여기고 싶었던 것 같은데, 이젠 그때의 우연들을 우연이라 부를 수 있을 만큼 멀어져 다행이다.
백지 앞에 앉은 지금은 마침 그 섬 ‘코창’으로 다시 떠나기 위해 출국하기 바로 전날이다. 지난 십 년 동안 나는 그 섬을 다섯 번 다시 찾았고, 이번으로 일곱 번째 그 섬을 찾게 된다. 태국 동부에 위치한 섬 코창은 제주도의 4분의 1정도 크기의 섬이다. 섬으로 바로 가는 비행기가 없어서 방콕에서 국내선 비행기를 갈아타거나 버스를 타야 하는데, 방콕에서 섬까지 여섯 시간은 가야 하기에 한국인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배낭 여행객들을 위한 일이만 원짜리 방부터 고급 리조트까지 갖춘 섬의 면면도, 섬을 찾는 사람들도 다양하다.
![]() 2019년 코창 시크릿 비치의 석양 |
지금 당장 눈을 감아보자면 눈앞에 코창의 여러 바다가 떠오른다. 화이트 샌드 비치, 바일란 비치, 론리 비치, 방바오 비치, 끌롱프라오 비치, 롱비치, 시크릿 비치… 나는 그 이름의 해변들을 내 고향 제주의 조천, 협재, 애월, 이호테우, 함덕과 같은 이름보다 더 각별히 간직하고 있다. 동쪽 롱비치의 파도 소리와 서쪽 방바오 비치의 파도 소리가 어떻게 다른지, 2017년도 4월 22일 방바오 비치의 석양은 어떻게 찾아와 저물었고, 다음날 햇살의 어느 즈음에 내가 방에서 깨어났는지 선명하다. 당장 어제 한국에서 점심에 무얼 먹고 어제 무슨 일을 하며 생활을 꾸렸는지 생각하자면 아득한데 말이다.
그러나 막상 바닷가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바다를 두고 방에 들어가 커튼을 닫고 누워 바다를 떠올리는 일이다. 이곳에 오기 전에 떠올렸던 이곳의 바다를, 그리고 지난번 이곳에 와서 떠올렸던 바다를 떠올린다. 그렇게 기억을 거슬러 코창의 바다 이전의 바다를, 디우와 고아의 해변, 바르셀로네타 해변, 가마쿠라와 후쿠오카의 해변을, 능포와 장승포 몽돌, 강릉의 안인과 정동진을, 굴업도의 붉은 모래 해변이나, 화순리의 금모래 해변을 하나씩 떠올린다. 그러면서 나는 서울의 리듬을 조금씩 벗어난다. 내가 무엇을 찾아 그 바다에 갔었는지, 그 바다에서 누구와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어떤 소망과 절망으로 그 바다에서 시를 썼었는지 생각하며 조금씩 나는 나를 회복한다.
서울에서의 나는 바쁘다. 가난한 시인이라는 클리셰를 벗고 싶어 닥치는 대로 일한다. 대학과 학원의 강사로, 연구원으로, 매거진 에디터와 문예지 편집자로 일한다. 코창으로 떠나기 전날인 오늘은 아침 일찍 나가 열 시간의 강의와 세 시간의 운전을 하고 자정에 돌아올 예정이다. 작년엔 월화수목금토일 휴일 없이 이렇게 살았다. 어쩌다 시간이 나면 시집을 읽고 원고를 썼다. 이런 모습을 아는 주변 친구들은 혹시 “너 사채 썼냐고” 묻기도 했다. 왜 최근 일이 년 내가 이렇게 살고 있는지 나도 잘 모르겠다. 여전히 나는 시가 간절한데, 시를 쓰지 못하는 삶을 살고 있다. 회피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원하는 시를 쓰기 위해선 시간과 겨를이 많이 필요하고, 사유를 위한 시간에는 돈이 필요하고, 시로는 돈을 벌지 못한다고. 삶에서의 여러 실패를 시의 탓으로 돌리며 시인인 나에게 복수하고 싶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서울에서는 보통 ‘안전모드’로 살아간다. 어릴 적 컴퓨터에 이상이 생기면 켜지곤 했던 ‘안전모드’처럼 오늘의 일에 필요한 최소한의 기능만 남겨두고 하루를 해낸다. 오늘의 일정이 무사히 지날 수 있도록, 휴대폰 배터리를 아끼듯 삶의 밝기를 낮추고 시인으로서의 촉수와 안테나를 꺼두고 되도록 ‘멍청하게’ 산다. “죄송합니다”, “송구합니다”, “유념하겠습니다”, “주의하겠습니다”, “노력하겠습니다”와 같은 말들을 언제든 꺼낼 수 있도록 나의 언어의 맨 앞에 두고 지낸다. 예감하지 않고, 소망하지 않고, 나를 추궁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영혼의 결을 살피지 않고, 시간을 거스르지 않고, 이곳을 여러 겹으로 만들지 않고, 들리지 않는 것을 듣지 않고, 보이지 않는 것을 보지 않고 산다. 그래야 오늘이 무사히 지나가고, 내일의 나를 같은 방식으로 부팅할 수 있다. 서울에서의 나는, 나의 하루에게 사용된다. 그러나 이 서울에서의 안전모드를 사는 나에게도 한 가지 약속이 있다. 친구들과 겨울에 꼭 코창에 길게 가자는 것. 그곳에서 꼭 시를 쓰자는 것.
그래서 내가 바다에서 하는 일은 나의 바다를 회복하고, 바다에서의 나를 회복하는 일이다. 천천히 껍질을 부수고, 그 아래 숨어있던 예민한 촉수를 다시 꺼내고, 저 멀리서 다가오는 파도의 겹을 세고, 포말을 느끼고, 해변의 아이들과 함께 은화처럼 반짝이는 조개껍질을 줍고, 기억을 시간 위에 깁고, 접고, 포개고, 조각내고, 붙이며 지난 일 년 내게 있었던 일들을 천천히 제자리에 정돈한다. 안전모드가 아니어도 안전한 곳에서 바다로 바다를 메우다 잠에 들고, 때론 취하고, 노래하고, 소설을 읽기도, 시를 쓰기도 한다. 그러니까, 이런 아래의 시 「가능성의 토스트」는 코창에서 돌아와 쓴 코창의 시다.
![]() 코창 어느 카페에서 바라본 풍경 |
사라질 때까지 씻어내고 싶은
마음이 있어
그 마음을 씻고 싶은 마음이
사라질 때까지 씻고 싶은
마음의 마음도 있지
그 섬을 떠나던 아침
이제 거의 모든 가능성이 떠나고
마지막으로 남은 식빵 한 장을 보았어
그리고 그 곁엔
더 작은 마음으로는 마음일 수 없는
부스러기 마음들 마음들
친구들은 쿨쿨 자고
우리가 우리일 수 있는 가능성 속에서
여기에서야 쓸 수 있게 된 가능성의 편지 속에서 너는
빛으로 가득인 바다를 향해 쏟아져 들어가는 사람이지
너는 가장 먼저 노래를 시작하는 사람이지
너는 이 섬의 가장 멀리까지 여행을 나가는 사람이지
너는 이 방의 가장 깊은 그림자 속에서 잠자는 사람이지
나는 더 작은 마음을 가지고 싶어
다만 마음이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는
남루하고 희미한 마음을 가지고 싶어
우리에게 지금 가능한 하나의 수영장이 눈앞에 있다면
잔잔한 물결 위에서
빛점과 음악이, 바람과 춤이
미미하게 떨리고 있다면
한낮의 투명한 예감 속으로
파문이 조용히 우리를 부르는 가능성의 수영장 속으로
너는 분명 먼저 뛰어들었을 거야
|
|
다행인 것은 코창에선 언제나 친구가 함께 있었다는 점이다. 친구와 저녁을 먹으며 각자 그날 본 가장 아름다운 장면과 그날의 가장 큰 위기 상황이 무엇이었는지 이야기 나누곤 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면 커튼을 닫고 방 안에 누워있는 시간이 줄어들고 점차 바다 앞에 앉아있는 시간이 늘어난다. 처음엔 예감으로, 그리고 기억으로 바다를 보다, 점차 눈으로, 귀로, 몸으로 바다를 느끼게 된다. 그러곤 결국 어릴적처럼 망설임 없이 바다에 뛰어들게 된다.
서쪽 바다로 석양이 들 때, 멀리 친구들이 금빛 물결 속으로 자맥질할 때, 바다의 침묵이 음악으로 들리기 시작할 때, 그럴 때면 잠시 그림자는 이름을 쉰다. 그때면 나는 다시 기도할 수 있다. 인간의 하늘이 아니라 새의 하늘에게, 소년과 천사의 하늘이 아니라 바다와 나무와 그림자의 하늘에게, 아주 오랜만에. 언젠가의 바다를 언젠가의 바다로 되돌려 놓도록, 우연이 다시 우연일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