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말, 서양에 통상 수교 거부 정책을 펼쳤던 조선은 1876년 일본 강압으로 강화도 조약을 체결하면서 개항했다. 개항은 외국과 통상하기 위해 항구를 개방한다는 말이다. 조선은 1882년 미국, 1883년 독일 및 영국, 1884년 러시아 및 이탈리아 그리고 1886년에 프랑스와 통상조약을 맺었다. 조약 체결 후 서양의 외교관·선교사·여행가·상인 등이 중국이나 일본을 거쳐 조선의 개항장에 도착했다. 미국인 조지 클레이턴 포크(George Clayton Foulk, 1856~1893)는 한반도 곳곳을 여행하면서 조선 음식을 먹고 기록을 남긴 대표적인 외국인 중 한 명이다.
미군 해군 장교 포크가 맛본 조선 음식
포크는 1876년 미국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아시아 함대에 배속되었다. 해군 장교 포크는 6년 동안 아시아 함대에서 근무했고, 함대가 자주 들른 일본 항구에서 일본어를 배웠다. 조선의 미국 방문 외교단이 1883년 9월 15일 워싱턴 D.C.에 도착하자, 미국 정부에서는 포크에게 일본어 통역을 맡겼다. 이때 그는 보빙사 대표였던 민영익(1860~1914)을 만났다. 민영익은 미국을 떠나면서 포크를 안내자로 동행하게 해달라고 대통령에게 요청했다. 포크가 동행한 민영익 일행은 1884년 5월 31일 제물포로 돌아왔다.
![]() 조선호텔 조리팀에서 재현한, 고종과 앨리스 루스벨트의 오찬 메뉴 중 골동면(필자 제공) |
조선에 도착한 포크는 민영익의 지원을 받아 1884년 9월 22일 10월 7일 사이에 서울과 경기도 일대를 도는 첫 번째 여행을 했다. 포크의 두 번째 여행은 11월 1일 서울에서 출발해 경기도와 전라도 그리고 경상도를 도는 한 달이 넘는 여정이었다. 그는 매일 일기를 썼다. 당시 권력 중심에 있었던 민영익의 지원이 있었기에 포크의 조선 여행은 아주 순탄했다. 그는 가는 곳마다 지방관들에게 극진한 환대를 받았다.
1884년 11월 10일, 이날 포크는 전주에 도착하여 전라도 관찰사를 만났다. 포크는 다음 날 오후 서너 시쯤, 관찰사와 함께 호랑이 가죽 방석 위에 앉아 붉은색 식탁, 즉 붉은 옻칠을 한 소반을 받았다. 포크는 붉은색 식탁에 차려진 음식에 대해 일기에 이렇게 썼다.
“각 식탁 옆의 작은 식탁에는 화로가 달린 놋쇠 솥에 채소와 고기가 김을 내며 끓고 있었다. 내가 전에 적었던 요리와 비슷했지만, 하얀색·갈색·검은색·노란색 그리고 빨간색의 포슬포슬하고 달콤한 작은 떡을 쌓아 올린 떡 더미가 놓여 있었다. 베르미첼리(vermicelli)는 주요리다. 국화 모양의 튀긴 떡 하나가 곁들여졌다. 먹을 때 이것들을 꿀에 살짝 담근다. 작은 식탁에 와인도 한 병 놓여 있었다.”
조선식 베르미첼리는 골동면이다
포크가 처음 언급한 음식은 첫 번째 음식은 ‘신선로’라는 솥에 담긴 열구자탕이다. 두 번째 음식은 여러 색의 떡인 ‘갖은 경단’이다. 세 번째 음식을 두고 포크는 ‘베르미첼리’라고 적었다. 베르미첼리는 파스타의 한 종류로, 스파게티보다 면발이 좀 더 가늘다. 정말로 전라도 감영에서 포크에게 제공한 음식이 베르미첼리였을까? 포크는 전날 관찰사를 만나 자신이 전주에 오기 전에 ‘베르미첼리’를 먹어봤다고 말했다. 포크가 먹었던 ‘베르미첼리’는 아마도 면발이 가는 국수로, 당시 조선의 왕실과 관청에서 연회의 마지막에 제공되었던 메밀국수일 가능성이 크다.
요사이야 메밀국수 하면 물냉면이 떠오르겠지만, 당시 왕실 잔치에 오른 메밀국수는 조선간장으로 비빈 비빔냉면이었다. 비빔냉면은 메밀국수에 여러 가지 재료가 한데 섞였다는 뜻으로 골동면(骨董麵)이라고도 불렸다. 영조 때 기록에서부터 조선 왕실 잔치의 주식으로 메밀국수가 등장한다. 민간에서도 골동면이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홍석모는 『동국세시기』 11월 편에서 평양의 골동면 만드는 법을 다음과 같이 적어놓았다. “국수에 여러 가지 채소와 배, 밤, 소고기, 돼지고기 편육, 기름장을 넣고 섞은 음식을 골동면이라고 부른다.” 이 골동면은 요사이 비빔냉면과 유사한 음식이다. 하지만 왕실 골동면과는 모양과 맛을 내는 법이 완전히 달랐다.
왕실 골동면 재료는 1829년(순조 29) 음력 2월, 순조 탄생 40주년과 재위 30주년을 기념하여 열린 왕실 잔치의 기록 ‘의궤’에 나온다. 이 잔치에서 순조는 메밀국수가 주재료인 ‘면’을 받았다. 재료는 메밀국수 10사리, 우내심육 반, 달걀 10개, 간장 3홉, 후춧가루 1줌 등이었다. 사리는 국수를 헝클어지지 않게 사리어 놓은 뭉치를 가리킨다. 우내심육은 안심으로, 소 한 마리에서 겨우 2~3% 정도밖에 얻을 수 없는 최고급 부위다. 이 우내심육을 잘게 저며서 간장·달걀·후춧가루를 넣고 둥글게 완자를 만들었을 것이다. ‘면’을 그릇에 담는 순서는 다음과 같았다. 먼저 메밀국수 10사리를 간장으로 간을 맞추어 그릇에 담는다. 완자와 함께 달걀의 흰자와 노른자를 갈라서 따로따로 번철에 얇게 부쳐 잘게 썬 고명인 지단을 그 위에 올렸다.
앨리스 루스벨트가 고종 황제와 함께 먹은 골동면
미국 제26대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1858~1919)의 딸 앨리스 루스벨트(Alice Lee Roosevelt, 1884~1980)도 서울에서 고종 황제와 함께 점심을 먹으며 골동면을 먹었다. 그녀는 1905년 9월 19일 도쿄를 거쳐 서울에 왔다. 고종황제는 그녀를 잘 대접해서 미국 대통령이 일본 야욕 앞에 무기력한 대한제국을 구해주기 바랐다. 그래서 도착한 저녁에 앨리스에게 프랑스식 정찬 코스 요리를 차려주었다. 하지만 미국 최고 말괄량이였던 앨리스는 고종이 차려준 음식을 먹지 않았다. 그러자 고종 황제는 다음 날 점심을 같이 먹자고 앨리스를 초청했다. 장소는 서울의 경운궁(지금의 덕수궁) 중명전 2층 홀이었다.
1905년 9월 20일 고종 황제와 앨리스 루스벨트의 오찬 메뉴 앞면과 뒷면 Ⓒ 미국 뉴욕공공도서관 |
이날 고종 황제와 점심을 먹은 앨리스는 황실에서 제공한 메뉴판을 챙겨서 귀국했고, 그녀 사후에 미국 뉴욕공공도서관(The New York Public Library)에 기증되었다. 앨리스가 기증한 메뉴판 뒷면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 있다. “메뉴-루스벨트(앨리스 리) 양. 9월 20일 궁정에서의 점심. 황제가 참석. 이것은 그가 외국 숙녀와 공개적인 식사를 한 첫 번째 행사였다.”
메뉴판 맨 위 가운데에 금박을 입힌 대한제국 황실 상징 문양인 ‘오얏꽃 문양’이 박혔다. 그 아래 제공된 메뉴가 적혀 있는데, 당시에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글씨를 쓰고, 세로쓰기를 더 많이 했다. 포크가 전주 감영에서 ‘조선식 파스타, 베르미첼리’라고 불렀던 골동면도 고종과 앨리스의 오찬 식탁에 차려졌다.
고종 황제가 즐겨 먹었던 골동면을 먹은 앨리스의 반응이 어떠했는지는 알 길이 없다. 앨리스가 서울에 오기 전인 7월 27일 미국과 일본은 미국의 필리핀 지배와 일본의 조선 지배를 상호 인정하는 비밀조약을 맺었다. 그런 사정을 잘 몰랐던 고종 황제는 앨리스가 귀국하여 그녀 아버지에게 대한제국이 “일본의 마수를 떨쳐버리고 해방되길” 도와달라고 기원했다. 그러나 고종 황제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조선 왕실 잔치에서 주식이었던 골동면도 대한제국이 역사에서 사라지면서 식탁 위에서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