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명의 『바람의 화원』과 장태유·진혁 공동 연출 TV 드라마 <바람의 화원>
이정명의 『바람의 화원』과 장태유·진혁 공동 연출 TV 드라마 <바람의 화원>
한때 팩션(faction)이라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팩트(facts)와 픽션(fiction)을 합성한 신조어다. 전윤수 감독의 <미인도>(2008)가 그 대표적인 예다. 이 작품은 실존 인물인 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와 혜원(蕙園) 신윤복(申潤福)을 실명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본격적인 의미에서 역사영화(historical film)는 아니다. 이 영화는 전적으로 픽션 영화(fictional film)다. 비록 김홍도와 신윤복이라는 조선 최고 화가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이 영화는 그들의 화가로서 삶과 작품세계를 탐구하는 것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게다가 이 영화는 신윤복이 여자였고, 그런 그녀를 홍도가 연모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신윤복이 여자라는 가설을 본격적으로 제기한 작품이 또 있었다. 이정명 장편소설 『바람의 화원』이 바로 그것. 2007년 8월 17일 초판이 발행된 이후 평단 호평과 독자 호응을 받으면서 ‘여자 신윤복 신드롬’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우리에게 익숙한 풍속화가 신윤복과 김홍도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하나의 그림에 얽혀 있는 연쇄살인 사건의 내막을 다룬 이 소설은 그의 전작인 『뿌리 깊은 나무』와 비교해 볼 때 한층 파격적인 모티프와 유려해진 전개를 바탕으로 한국형 팩션의 돌풍을 이어 나갔던 수작”이라고 평가받았다.
『바람의 화원』은 또한 동명 제목의 TV 드라마로도 제작되어 화제를 모았다. 20부작으로 구성된 이 드라마는 2008년 9월 24일부터 2008년 12월 4일까지 인기리에 방영되었다. 연기파 배우 박신양이 김홍도 역을, 그리고 당시 ‘국민 여동생’ 문근영이 신윤복 역을 맡아 호연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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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로 원작에 충실하면서도 몇 가지 측면에서 차이를 보였다. 지면 관계상 차이점을 일일이 열거할 수는 없지만, 한 가지만은 짚고 넘어가기로 하자. 그것은 「기다림」이라는 윤복의 초기 작품이 텍스트 내에서 활용되는 방식에 관한 것이다. 이 그림은 대갓집 뒤뜰에서 한 여인이 누군가를 기다리며 살포시 수줍음을 드러내고 있는 장면을 화폭에 담은 습작이다. 여인 손에는 승려들이 쓰는 송낙이라는 모자가 들려있고, 여인의 바로 옆에는 일필휘지로 휘갈긴 듯한 고목 한 그루가 비스듬히 서 있다.
소설에서 이 그림은 윤복이 자유 화제(畵題)로 그려 도화서에 제출했다가 그 음란성이 문제 되어 결국 퇴출 위기로까지 내몰리는 빌미가 된다. 보수적인 원로 화원들은 두 가지를 문제 삼고 나왔다. 먼저 여인이 손에 들고 있는 송낙으로 미루어 볼 때, 그 여인이 정분(情分)을 맺고 내뺀 땡추중을 기다리며 안절부절못하는 설정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고목은 마치 남근(男根)을 연상케 하니 이는 명백한 춘화(春畵)라는 것이다. 암만 봐도 남근이 맞는 듯하다. 어쨌든 홍도는 이 그림에서 느껴지는 힘 있는 필치를 통해 윤복이 예사로운 제자가 아님을 직감하고, 그를 적극적으로 옹호한다. 요컨대 「기다림」은 윤복의 예술적 재능과 화풍(畵風)을 동시에 제시해 주는 일종의 화두였던 셈이다.
같은 그림이 TV 드라마에서는 전혀 다른 맥락에서 사용된다. 정조 임금과 정순왕후 간의 대립과 갈등을 부추기는 매우 위험한 그림으로 활용되고 있다. 우선 그림의 음란성 여부는 차치하고라도 그 여인이 과연 누구를 모델로 삼았는지가 관건이 된다. 윤복은 자유 화제를 찾아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다가 대갓집 담장 너머로 한 여인의 모습을 보고 필이 꽂혔는데, 그 여인은 다름 아닌 여염집 아낙네로 가장한 정순왕후였던 것. 어린 나이에 영조 임금의 비가 되었다가 왕의 사후 청상과부가 된 그녀가 은밀하게 내연의 남자를 만나 사적 욕망을 푸는 장면이 우연찮게도 윤복의 시선에 딱 걸리고 만 것이다. 이는 역사적 사실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일이다. 왕후의 불륜 행각을 일개 화원인 윤복이 밝혀냈다는 설정은 드라마로서만 가능한 얘기니까 말이다. 픽션과 팩트(fact) 간에는 이처럼 깊은 간극이 놓여 있는 것이다.
작가는 서문에서 18세기 조선 화단의 혁신적 화풍을 이끈 두 천재 화가 김홍도와 신윤복이 같은 화제(畵題)를 전혀 다른 방식으로 그렸다는 점에 깊은 호기심을 갖고 그들의 삶의 궤적을 추적했다고 밝히고 있다. 요컨대 김홍도가 서민들의 건강한 삶을 단순하고 힘 있는 필치로 그린 반면, 신윤복은 여인들의 내밀한 삶을 세련되고 섬세하게 표현했다는 점에 착안했다는 것이다. 그 호기심과 물음 끝에 나온 해답이 바로 신윤복은 여자였을 것이라는 가정이었다. 그리하여 작가는 김홍도와 신윤복이 그린 그림 도판 수십 장을 적절하게 활용하여 사제지간이었던 두 사람이 화원으로서는 경쟁 관계에 있었으며, 이성적으로는 서로 연인(戀人) 사이였음을 매우 설득력 있게 묘사하고 있다. 물론 플라토닉 러브라는 한계 내에서 이긴 하지만.
한 가지만 예를 들어보자. 정조 임금의 총애를 받았던 두 화원은 어느 날 백성들의 삶을 직접 보고 싶으니 그들의 생활상을 그려오라는 명을 받는다. 정해진 사흘의 시간이 지나고 두 화원은 각각 그린 그림을 왕 앞에 펼쳐놓는다. 먼저 윤복이 내놓은 그림은 「주사거배(酒肆擧杯)」라는 작품이었다. 조선 후기 주막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으로 주막 부뚜막에 늘어서서 술을 마시는 양반네들을 매우 섬세한 필치로 그린 그림이었다. 그 인물들 차림새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들 신분을 알 수 있는데, 윤복은 별감과 의금부 나장들이 대낮부터 술을 퍼마시고 있는 장면을 예리하게 포착했다.
그다음 홍도가 내놓은 그림은 그냥 「주막」이라는 평범한 제목이었는데, 저녁 무렵 주막에 들러 한잔 걸치는 등짐장수와 봇짐장수를 서민적인 필치로 그린 담채였다. 같은 제목으로 그렸지만, 두 사람의 스타일은 이렇듯 천양지차였다. 요즘 이런 표현이 조심스럽지만, 여성적 섬세함과 남성적 투박함의 극명한 대립이라 할 것이다. 텍스트 내적 논리로 윤복이 여자라서 가능한 필치라는 얘기다.
이 소설에서도 윤복의 걸작인 「미인도」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데, 소설의 라스트 신에서 윤복의 여성성을 확인해줌과 동시에 윤복에 대한 홍도의 ‘사모(思慕)의 정’을 극대화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윤복은 자신이 그린 그림 앞에 서서 이렇게 읊조린다.
“저 여인이 나인가? 갓과 중치막 자락에 숨겨져 단 한 번도 내보이지 않았던 나의 숨겨진 모습인가? 이제는 나의 기억에서마저 사라져 버린 여인. 그래, 저 여인은… 단 한 번도 세상에 내보이지 못했던 나라는 존재다. 저렇게 아름답고, 매혹적이고, 올곧고, 강렬하고, 반듯한 것이 신윤복이다. 지금껏 사내의 옷차림 속에서 한순간도 행복하지 못했거니, 여인의 모습으로 나는 진정한 나를 찾았고 그 차림 속에서 행복하다.”
-『바람의 화원 2』, 은행나무, 253쪽
이 그림을 본 홍도는 이렇게 감상을 표현하고 있다. “설레게 하면서 아름답고, 아름다우면서 궁금하게 만드는 여인이다. 농염하나 청아하고, 고혹적이지만 해맑은 것은 여인을 향한 화인의 마음이 붓끝에 전해졌기 때문일 것이다.”(256쪽) 그러나 이처럼 말하고 있는 홍도 자신의 마음은 갈기갈기 찢어지는 듯했다. 바로 앞서 윤복은 홍도에게 자신의 심정을 이렇게 표현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 그림은… 평생을 감추며 살아왔지만 단 한 순간도 포기하지 않았던 바로 저 자신의 모습입니다. 저는 평생을 이 여인과 사랑했으며 앞으로도 여인 된 저를 사랑하며 살 것입니다.”
요컨대 윤복은 홍도로서는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대상 a’ 같은 존재였다. 그것은 마치 윤복이 그림 속의 여인(자기 자신)을 사랑의 대상(대상 a)으로 삼은 것과 같은 맥락이다. 전재수 감독의 영화 <미인도>가 신윤복을 욕동의 주체(subject of drive)로 내세운 에로틱 버전의 픽션 영화라면, 소설 『바람의 화원』은 욕망의 대상(object of desire)을 추구하는 두 화원의 사랑 이야기를 담은 일종의 연애소설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