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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코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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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년 여름호 (통권 100호)
안녕, 코코

솜구름처럼 하얀 코코 털을 찬찬히 쓸어내렸다. 엉킨 털은 예전처럼 부드럽지도 윤기가 돌지도 않았다. 뒷다리 쪽은 그루밍을 너무 많이 해서 듬성듬성 비어 있기까지 했다. 집 안을 슬쩍 둘러봤다. 다 뜯어져 너덜거리는 벽지와 여기저기 묻어 있는 오물들, 아무렇게나 뭉쳐 굴러다니는 털들이 눈에 들어왔다. 치운다고 치워도 집은 점점 더 엉망이 되어가고 있었다.

“밥 챙기는 것만 도와주면 나머진 아빠가 다 할게. 눈에 밟히는 애들이 좀 많아야지… 그래도 집이 북적북적하니까 우리 아리도 안 심심하지?”

아빠는 당연하다는 듯 물었다. 나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미적지근한 반응에도 아빠는 원하는 답을 얻은 듯 만족스럽게 웃었다. 그 모습을 보자 색색의 양모 공을 삼킨 것처럼 가슴이 답답해졌다.

나도 물론 고양이가 좋다. 정말로. 하지만 아빠가 불쌍하다며 데려온 고양이들이 어느새 좁은 집을 꽉 채우고 있었다. 솔직히 아빠는 우리 집에 있는 고양이들이 정확히 몇 마리나 되는지도 잘 모르는 것 같았다. 이름도 만날 까먹었다. 그러면서 매번 데려오는 데만 급급했다. 나이가 들어서, 장애가 있어서, 막 젖을 뗐는데 엄마를 잃어서…. 이유는 당연히 많았다. 그냥 두면 죽을 것 같은데 어떡하냐는 아빠 마음은 충분히 이해가 갔지만, 이건 아닌 것 같았다. 요새는 빈 상자만 봐도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코코야, 언니가 새로운 가족들한테 데려다줄게. 조금만 참아. 알았지?”

익숙한 손길에 코코가 안심하고 골골거리는 순간, 해진 담요로 확 감쌌다. 놀란 울음소리가 비명처럼 들렸다. 나는 미리 열어둔 이동장 좁은 입구로 코코를 밀어 넣었다. 다른 녀석들이 따라 울기 전에 집을 나서야 했다. 급한 대로 운동화를 구겨 신고 돌돌이로 바지에 묻은 털들을 뗐다. 코코랑 같이 구조했던 라라와 마리가 꼬리를 치켜들고 다가왔다. 뭘 아는 것도 아닐 텐데 갸웃거리며 주위를 맴돌았다.

“코코한테 인사해, 잘 가, 하고. 언니 다녀올게.”

라라와 마리의 코끝을 톡, 톡, 두드려주고 중문을 닫았다. 한껏 예민해진 코코가 길게 울며 안에서 버둥거렸다. 천으로 된 낡은 이동장이 불안하게 흔들렸다. 무거워서 중심을 잡기 어려웠지만 서둘러야 했다. 몇 달 동안 공들여 글을 올린 끝에 겨우 구한 입양자를 기다리게 할 순 없었다. 약속 장소를 확인하며 부리나케 걸었다. 다행히 입양처는 가까웠다. 지역구 맘·파파카페나 중고물품 교환 카페에 주로 홍보 글을 올렸기 때문이다. 학교 끝나는 시간이나 아빠 퇴근 시간 같은 걸 생각하면 멀리까지 갈 수 없었다. 마침 겨울방학이라 밝은 낮에 데려다줄 수 있어 안심이 됐다.

“어, 신아리, 너 여기 살아?”

몸부림치는 코코를 달래며 걷고 있는데 기운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같은 반 지윤후였다. 하필 이럴 때 만나다니. 당장 도망가고 싶었다. 다른 애들처럼 일부러 모르는 척하면 얼마나 좋아. 뒤늦게 목도리를 칭칭 감아봤지만 소용없었다. 주춤주춤 물러났지만 윤후는 아무렇지 않게 바짝 붙어 섰다.

“야, 아리한테 가끔 이상한 냄새 나지 않아? 털 같은 거 막 묻히고 다녀서 그런가.”

문득 교실 뒷문을 열다 말고 멀뚱히 서서 들었던 말이 불쑥 떠올랐다. 아무리 깨끗이 씻고 빨래를 해도 집에서 밴 냄새는 잘 빠지지 않았다. 아이들이 내 자리를 슬금슬금 피해 다니던 이유를 알게 된 날이었다. 그때 교실 안에 윤후가 있었는지 없었는지 알 수 없었다.

“네 고양이야? 예쁘네. 이름이 뭐야? 아 목걸이 했구나. 안녕, 코코.”

“나 가야 돼. 비켜.”

불편한 티를 팍팍 냈는데도 윤후는 눈치 없이 이동장 안쪽을 들여다보며 얼쩡거렸다. 나는 초조하게 시간을 확인했다.

“구경 좀 하자. 나도 고양이 키우고 싶단 말이야. 할퀴지만 않으면 좋은데.”

어차피 안 키울 거잖아,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치받혔다. 코코에게 필요한 건 ‘구경꾼’ 따위가 아니라 ‘진짜 가족’이었다. 내킬 때만 들여다보는 게 아니라 아프면 병원에도 데려가 주고 없는 시간도 만들어 보살펴주는.

“어, 이건 뭐야?”

성가시게 하는 걸 피해 가려는데 윤후가 이동장 한편에 꽂아둔 쪽지를 홱 낚아챘다.

“내놔!”

급히 손을 뻗었지만 윤후는 아랑곳하지 않고 쪽지를 소리 내어 읽었다.

 

귀가 들리지 않아 불안하면 큰 소리로 울 수 있습니다. 불쑥 뒤에서 만지지 말아주세요, 갑자기 보여도 놀라고 갑자기 안 보여도 놀라거든요. 턱이랑 이마를 살살 만져주면 금방 그쳐요. 손짓으로 부르면 곁으로 와요. 바닥을 툭툭 쳐서 부를 수도 있어요. 또… 잘했을 땐 엄지척도 부탁드려요.

 

큰소리로 줄줄 읽어 내려가던 윤후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나의 표정도 점차 굳어졌다. 그건, 입양자가 바로 꺼내볼 수 있게 밀어 넣어둔 부탁 편지였다. 꾹꾹 눌러쓴 마음을 윤후가 함부로 들춰 본 것이다.

“엇, 미안. 뭐 재밌는 건가 했지.”

당황한 윤후가 쪽지를 제자리에 돌려놓으며 변명했다. 나는 엉거주춤 서 있는 윤후를 힘껏 노려보곤 길모퉁이를 돌아 뛰기 시작했다. 뒤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멈추지 않았다. 이동장이 출렁일 때마다 코코의 울음소리가 가늘어졌다 커지기를 반복했다. 고양이는 스트레스에 약한데. 방광염이라도 걸리면 어떡하지. 건강하지 않다고, 자꾸 운다고 미워하면 어떡하지. 겁에 질린 코코 울음소리를 계속 들어서 그런지 속이 막 울렁거렸다.

숨이 턱까지 찬다 싶을 때쯤 멀리 빌라 앞에 서성거리고 있는 사람이 보였다. 뛰던 걸 멈추고 가까스로 숨을 골랐다. 뒤집어진 패딩 모자를 바로 하고 추위에 곱아든 손에 입김을 불었다. 서두른 것처럼 보이고 싶지 않았다. 떠넘기는 것처럼 보이면, 우리 코코를 무시할 것 같았다.

“다 왔어. 이제 괜찮아. 다 괜찮아.”

볕이 잘 드는 창가에 놓인 높은 캣타워, 아늑한 해먹, 모래를 깔아둔 넉넉한 크기의 화장실…. 나는 미리 받아본 사진들을 되새기며 중얼거렸다.

“아 그… ‘작은숨결지켜줘’ 님? 맞나요?”

긴가민가한 표정으로 서 있던 여자분이 갸우뚱거리며 다가왔다.

“네! 저희 아빠예요. ‘고요한수염수집가’ 님이신가요?”

“아… 서류를 엄청 꼼꼼하게 확인하시길래 직접 오실 줄 알았는데….”

"갑자기 중요한 일이 생기셔서요. 저 앞에서 내려주고 먼저 가셨어요.”

허둥거리지 않으려 애쓰며 땀 고인 손바닥을 바지에 문질렀다. 난감해하는 표정을 보자 입안이 바짝 말랐다. 온라인에선 얼마든지 말을 지어낼 수 있었는데 직접 얼굴을 보고 거짓말을 하려니 자꾸 목이 메고 식은땀이 났다. 나는 마른침을 꼴깍 삼키며 억지로 입매를 당겼다.

“그럼, 일단 안으로 들어가서 얘기…”

“야! 그냥 가면 어떡해? 이거 빠졌다고!”

어떻게 잘 넘기나 싶었는데 뒤에서 윤후가 헐떡이며 달려왔다. 아찔해진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마지막으로 코코랑 사진도 찍고 조용히 작별 인사도 하고 잘 헤어지려고 했는데, 다 망했다. 나는 이를 악물고 한쪽 손을 뻗어 윤후가 들고 쫓아온 종이를 휙 잡아챘다. 반동 때문에 몸이 크게 휘청거렸다. 남은 한 손으로만 이동장을 지탱하는 게 쉽지 않았다. 휘우뚱 몸이 기우는 걸 느낀 찰나, 실밥 터지는 소리가 났다.

“악! 코코야!”

이동장 천이 찢어진 건 순식간이었다. 공포에 질린 코코는 믿을 수 없는 속도로 달려 나갔다. 금방까지 묵직하던 팔이 지나치게 가벼워졌다. 동시에 온몸이 걷잡을 수 없이 떨려왔다.

“저기! 문 열린 데로 들어갔어!”

질겁한 윤후가 대각선 쪽 건물을 가리켰다. 우리는 곧장 그쪽으로 뛰었다. 갑작스러운 사고에 다리가 풀렸지만 간신히 버텼다. 코코를 찾는 게 우선이었다. 경비 서는 분에게 부탁해 출입문부터 막고 계단이랑 복도를 샅샅이 뒤졌다. 휴대폰 손전등 기능을 최대로 밝히고 계단을 오르내리며 구석구석 주의 깊게 살폈다. 불러도 들을 수 없으니 깊숙한 데까지 꼼꼼히 살필 수밖에 없었다. 한 칸 한 칸 계단을 오를 때마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얼마나 지났을까.

“찾았어, 신아리! 3층! 유아차 밑에 있어. 겁나 놀랐나 봐. 동공 엄청나게 확대됐네.”

안타까워하는 윤후 목소리가 위쪽에서 들려왔다. 나도 모르게 탄식이 흘러나왔다. 왈칵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지만 아직 안심하긴 일렀다. 단번에 계단을 올라 코코에게로 갔다.

“코코야, 이리 와. 언니가 멋진 집에 데려다줄게. 응?”

주머니에 항상 갖고 다니는 간식을 꺼내 건네며 코코를 달랬다. 듣지 못하는 걸 알지만 자꾸 말하면 내 마음이 닿을 것 같았다. 코코가 제일 좋아하는 담요를 펼쳐놓고 바짝 엎드려 손바닥으로 찬 바닥을 일정하게 두드렸다. 숨을 죽인 채 얼마나 기다렸을까. 드디어 코코가 몸을 움직였다. 머무적거리면서도 익숙하게 안겨 오는 코코를 크고 튼튼한 새 이동장에 넣고 나니 그제야 눈물이 났다. 엉엉 우는 날 어떻게 달래야 할지 몰라 쩔쩔매는 윤후가 보였지만 한 번 터진 울음은 쉽게 그쳐지지 않았다. 한참 만에 진정하고 나니 한숨을 삼키고 있는 입양자분이 눈에 들어왔다.

“…허락받고 온 거 아니죠? 아무래도 보호자한테 연락해야 할 것 같은데.”

손꼽아 기다렸을 날에 온갖 난리를 겪은 그분은 무척 심란해 보였다. 머뭇거리며 버티던 나는 결국 아빠한테 전화를 걸었다.

“뭐? 그게 다 무슨 소리야? 차분하게 알아듣게 얘기해 봐.”

더듬더듬 이어진 설명에 아빠는 기가 막힌 지 자꾸 헛숨을 삼켰다. 그리곤 곧 갈 테니 꼼짝 말고 기다리라고 했다. 전화를 끊고 나자, 긴장 때문인지 찬바람 때문인지 손이 덜덜 떨렸다. ‘고요한수염수집가’ 님은 나를 자세히 살피더니 일단 집으로 가 몸 좀 녹이고 있자며 다독여주었다. 아빠한테 문자로 주소를 남기고 코코가 살게 될 집으로 향했다. 얼결에 같이 초대받은 윤후는 쭈뼛거리면서도 둘레둘레 따라왔다.

코코 새집은 환하고 따뜻했다. 코코만을 위해 마련된 많은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 모습을 보자 어쩔 수 없이 집에 있는 고양이들이 떠올랐다. 따뜻한 코코아를 다 마셔갈 때쯤 멀뚱히 앉아 두리번거리던 윤후가 대뜸 물었다.

“근데 입양을 왜 보내는 거야? 그냥 네가 키우면 안 돼? 쟤도 너 엄청나게 좋아하는 것 같고 너도… 좋아하잖아.”

네가 뭘 알아, 하는 생각이 바로 들었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나는 입술 안쪽을 짓씹으며 이 집에는 있고 우리 집엔 없는 것들에 대해 곱씹었다. 값비싼 사료, 여기저기 놓인 숨숨집과 새 장난감들. 하나하나 눈에 밟히는 게 많았지만 진짜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다른 무엇보다 가족이 될 충분한 각오와 준비가 아빠에게 있었는지 궁금했다.

“좋아하는 건 아무렇게나 할 수 있어. 좋아만 하는 건.”

목 끝에 걸린 말을 간신히 뱉었을 때, 초인종 소리가 울렸다. 일하다 말고 달려온 아빠는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이거 참. 얘가 이런 애가 아닌데. 뭐 하고 서 있어? 얼른 고양이 챙겨.”

연신 고개를 숙이며 죄송하다는 말을 반복하던 아빠는 집에 가서 얘기하자며 날 잡아끌었다. 나는 고집스럽게 버티고 서서 고개를 저었다.

“그냥 고양이 아니고, 코코야! 코코는 안 가. 여기서 살 거야.”

“아리야, 너 대체 왜 이래?”

실랑이 끝에 아빠가 기어코 언성을 높였다. 좀처럼 말을 듣지 않는 나에게 깊이 실망한 것 같았다. 그럴 만했다. 나는 아빠 자부심이었으니까. 아무 데도 손 벌리지 않고, 도와 달라고 하지 않고 나를 키운 것을 아빠는 늘 자랑스러워했다. 나도 알았다. 하지만, 하지만….

분위기가 심각해지자 ‘고요한수염수집가’ 님이 윤후를 데리고 슬쩍 자리를 피해줬다. 나는 씨근덕거리다 쏘아붙였다.

“내가 왜 이러는지 진짜 몰라?”

처음으로 아빠를 똑바로 바라봤다. 마구 일그러진 아빠 표정을 보자 또 내가 다 잘못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사과해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니었다.

“데려가서 뭘 어쩔 건데? 아빠가 다 알아서 한다며. 근데 제대로 한 게 뭐야? 대체 언제까지 참아야 하는데!”

다그치듯 쏟아냈지만 정작 하고 싶은 말은 따로 있었다. 더는 못 하겠어, 아빠. 도와줘… 나를 돌봐 줘, 아빠. 코코를 떠나보낼 준비를 하며 혼자 애썼던 시간이 한꺼번에 밀려들었다. 비밀 일기장에 휘갈겨 썼던 말들도 두서없이 떠올랐다. 미안해. 우리 이제 못 만나. 잘 살아. 사랑 많이 받고 살아. 삼키고 삼킨 말들이 쌓여 온 사방을 가로막는 듯했다. 비좁은 철창에 갇힌 느낌이었다. 숨이 턱 막혀 주저앉은 순간, 어느새 가까이 다가온 코코가 혀로 내 손등을 핥았다. 까슬까슬하고 따뜻했다. 고양이들과 함께 있을 땐 말이 통하지 않아도 이해받는다고 느끼는 순간들이 있다. 지금처럼. 자연스럽게 내게 기대오는 코코를 쓰다듬으며 나는 명치끝에 걸려있던 말들을 마저 뱉었다.

“아빠, 내가 왜 집에 친구들 못 데려오는지 알아? 내가 학교에서 무슨 말 듣고 다니는지, 알아?”

꼼짝하지 않고 서 있는 아빠 숨소리가 조금씩 거칠고 밭아졌다.

“…코코를 사랑한 적은 있어?”

힘없이 앉아 있던 나는 축축이 젖은 뺨을 손등으로 훔쳐냈다. 그리고 아빠 변명을 기다리는 대신 다시는 볼 수 없을지도 모를 코코와 천천히 눈인사했다. 깜빡. 깜-빡. 우리가 완전히 헤어질 시간이었다. 

 

윤슬빛
아동청소년문학 작가, 1990년생

동화집 『오늘의 햇살』 『갈림길』, 장편동화 『우리는 여름』 『우리는 매일 안녕 안녕』, 청소년소설집 『플랜b의 은유』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