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미수와 기수

  • 기획특집
  • 2026년 여름호 (통권 100호)
미수와 기수

   정선임, 한용운의 시 「수의 비밀」을 담아

 

 

秘密비밀

 

나는 당신의 옷을 다 지어노앗슴니다

심의도 지코 도포도 지코 자리옷도 지엇슴니다

지치 아니한 것은 적은 주머니에 수놋는 것뿐임니다

 

그 주머니는 나의 손때가 만히 무덧슴니다

짓다가 노아두고 짓다가 노아두고한 까닭임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바느질 솜씨가 업는 줄로 알지마는 그러한 비밀은 나밧게는 아는 사람이 업슴니다

나는 마음이 압흐고 쓰린 때에 주머니에 수를 노흐랴면 나의 마음은 수놋는 금실을 따러서 바늘구녕으로 드러가고 주머니 속에서 맑은 노래가 나와서 나의 마음이 됨니다

그러고 아즉 이 세상에는 그 주니에 널 만한 무슨 보물이 업슴니다

이 적은 주머니는 지키 시려셔 지치 못하는 것이 아니라 지코 십허서 다 지치 안는 것임니다

 

 

 

미수와 기수

 

미래 도서관에는 볕이 잘 들었다. 매점과 휴게실이 있는 4층은 사방이 통유리여서 빛을 반사하는 바람에 동네에서 민원이 들어올 정도였다. 아침 햇살이 눈부셔 손 가리개를 하고 창밖을 내다보는데, 누런 서류봉투를 든 이 선생이 입구로 들어서는 중이었다. 시계를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오전 9시, 개관 시간 30분 전이다. 퇴직한 교사라고는 했지만 정확한 신원은 아무도 몰랐고 다들 이 선생이라 불렀다. 이 선생은 매일 같은 시간에 출근했다. 그의 사무실은 휴게실 중앙에 놓인 커다란 몬스테라 화분을 기준으로 왼쪽 테이블. 매번 이 선생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토플 영어책을 든 대학생이나 노부부, 초등학생과 아이 엄마 등등. 이 선생과 접촉한 이들은 그 뒤로 도서관에서 사라졌다. 도서관에 입사한 첫 달에는 신흥종교랄지 다단계 같은 것을 의심했는데 나중에야 이 선생이 유학·이민·취업 관련 비자와 서류를 대행해 주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한국을 떠날 때 필요한 귀찮은 절차를 모두 해결해 준단다. 미국·프랑스·뉴질랜드·스웨덴·볼리비아 등 어디든 원하는 나라로 갈 수 있다고. 이 모든 것은 30년째 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도서관의 역사와 함께 해온 수서실 은선 샘이 말해준 것이다.

환기를 위해 창을 열자, 기계에 쇠가 잘리는 마찰음이 들려왔다. 도서관은 철공소들이 모여 있는 골목 끝에 있었다. 좁은 골목으로 화물차가 오고 가는 모습과 오래된 슬레이트 지붕들이 내려다보였다. 점차 더 강렬해지는 햇빛에 블라인드를 내렸다. 통창의 매력을 제대로 만끽할 수 있는 건 오히려 비가 오거나 흐린 날이었다. 그러니까 어제 같은 날. 사수인 미수 샘은 몬스테라 화분 오른쪽 테이블에 앉아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병아리처럼 하늘을 올려다봤다. 유리 벽에 부딪힌 빗방울이 길게 꼬리를 그리며 미끄러졌다.

어항 속에 있는 것 같지 않아?

미수 샘 말대로 이곳은 어항처럼 안전했다. 균일한 수온과 적당한 변화가 있었다. 오늘이 어제 같고 내일이 오늘 같은 날들 속에서 지루하다 싶으면 누군가 떠나고 새로운 얼굴이 들어왔다. 큰 파도나 풍랑은 없었다.

이 선생이 자신의 지정석에 자리 잡자 이내 한 젊은 남자가 걸어 들어와 마주 앉았다. 사람들은 대체 어디로 가고 싶은지 궁금했다. 나는 딱히 가고 싶은 곳이 없었다. 도서관이 좋았다. 이미 완성된 이야기들이 있는 곳이니까. 미끄러진 빗방울이 말라붙은 자국을 바라봤다. 통창은 몇 달 전 리모델링한 결과였다. 이런 데 쓸 돈이 있으면 책을 더 들여놓든가. 미수 샘은 그렇게 말했지만 난 반대였다. 책을 읽으러 도서관에 오는 사람은 드물었으니까. 취업 준비생들이 와서 시험 준비를 하거나 무료한 노인들이 신문을 뒤적이거나 성경책을 필사했다. 철공소에서 일하는 인부들이 와서 쉬다 가거나 혼자 있어야 하는 아이들이 와서 숙제하며 시간을 보냈다. 가끔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하니 앉아 있다가 가는 이들도 있었다.

나도 도서관에서 책을 읽은 일이 없다. 3년 전에는 이곳에서 소설을 썼고, 1년 전에는 이곳에서 사서 시험 준비를 했다. 

 

일반 자료실인 3층으로 내려가 업무를 시작하려는데 애서가가 나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애서가는 대출과 반납을 할 수 있는 키오스크가 층마다 설치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데스크로 책을 들고 오는 이 중 하나였다. 그는 도서관 이용자들을 상대로 달마다 선출하는 대출왕에 일 년 중 여섯 달은 이름을 올렸다. 블로그에 미래 도서관을 태그하여 ‘애서가의 서재’라는 말머리를 달고 서평을 썼는데, 말이 서평이지 책 사진을 올리고 발문을 요약해서 올리는 정도였다. 나는 그가 과연 그 책들을 제대로 읽는지 의심스러웠다. 『82년생 김지영』을 반납하며 아가씨는 언제 결혼하려고? 라고 묻거나 『소년이 온다』를 반납하며 매년 똑같은 이야기를 하는 것이 지겹다고 하기도 했다. 도서관 행사 때마다 맨 앞자리에 앉아있는 것이 든든하기보다는 불안한 인물이었다.

아니 예약한 지가 언젠데.

그의 격앙된 목소리에 몇몇 이용자가 놀라 뒤를 돌아봤다. 난 당황한 티를 안 내려고 했지만, 그가 방금 말한 책 이름을 되물어 노여움을 더했다.

천상열차… 다음에 뭐라고 하셨죠?

나를 한심하게 쳐다보더니 애서가는 지갑에서 만 원짜리를 꺼내 뒷면을 가리켰다. 조선 태조 4년에 천문학자들이 돌에 새겨 그린 천문도로… 지루한 설명이 이어져서 깜박 졸 뻔했다. 되도록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애쓰며 그의 예약 도서를 검색했다. 『천상열차분야지도의 비밀』, 오기수 저. 장편소설로 분류되어 있었다. 그사이에도 애서가는 쉬지 않고 나를 문책했다.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식 때도 천상열차분야지도가 등장했다며 안 보고 뭐했냐고 물었다.

2018년 2월이면 대학에 떨어져서 한참 좌절해 있을 때죠.

사실 그리 좌절한 건 아니었지만 애서가가 겸연쩍은 표정을 지었으니 성공이었다. 그래도 나름 소설을 읽는다고 읽었는데 처음 듣는 작가였다. 베스트셀러만 읽어온 애서가의 독서 패턴과도 어긋났다.

이 책은 왜 읽으시려는 거예요?

애서가는 주위에서 들으라는 듯이 큰 소리로 답했다.

내가 이 도서관에 있는 책은 거의 다 읽었잖아.

나는 그가 손도 안 댄 인문 철학서들에 대해 언급하려다 그만두었다.

여기 앉아 있는 사서 선생한테도 몇 달 전부터 말했었다고. 기다리라고만 하던걸.

애서가는 미수 샘의 빈자리를 가리켰다. 책은 대출 중이었고 일 년째 연체 중이었다. 지난주는 장기 연체자 정리 기간이었다. 여기저기 전화를 돌리고 있는 미수 샘에게 말했다.

이런 건 제가 할게요.

미수 샘이 화들짝 놀라며 명단에 손도 대지 못하게 하며 다른 일을 보라고 했다. 언제 계약이 종료될지 몰라 일을 맡기지 않는 건가, 내심 서운한 맘도 들었다.

대체 누가 빌려 간 거야?

애서가가 초조하게 물어보며 컴퓨터 화면을 보려 했다. 나는 다급하게 화면을 가렸다.

개인 정보는 알려드릴 수 없어요.

요즘 핫하다는 도서로 애서가의 시선을 돌렸고, 내 추천에 만족한 그는 다른 책을 대출해서 돌아갔다.

오기수의 책을 대출해 간 사람은 오기수였다. 절판된 책이었다. 다른 도서관에는 없고 우리 도서관에 유일한 책. 더욱이 대출 기록을 조회해 보면 오기수는 매번 이 책을 빌렸다가 반납하기를 되풀이했다. 이 책을 읽은 사람은 오기수뿐이다. 그런데 그보다 더 놀라운 사실은 개관 시간 30분이 지났는데도 미수 샘 자리가 비어 있다는 거였다.

미수 샘은 올해 쉰이 되었다. 계약직으로 여러 도서관을 떠돌다 10년 전 이 도서관에 왔고, 2년 전에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되었다고 들었다. 미수 샘 휴대전화는 2G였다. 항상 책을 들고 다녔고, 매일 브로콜리와 구운 연어, 멸치볶음과 달걀부침에 현미와 보리 섞인 밥을 도시락으로 싸 왔다. 도시락을 먹은 뒤에는 철공소 골목 사이로 약 10분 정도 산책을 다녀와서 오후 2시쯤에는 휴게실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리고 아마도 도서관에 있는 모든 책의 자리와 안부를 알고 있는 듯했다. 미수 샘은 마치 도서관 풍경의 일부 같았고 정물화처럼 보였다. 하지만 쉴 새 없이 많은 일을 기획했다. 한해 운세 대신 책 속 명문장을 뽑아 포춘쿠키 안에 넣자는 것도 미수 샘 아이디어였다. 이 작은 주머니는 짓기 싫어서 짓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짓고 싶어서 다 짓지 않는 것입니다 내가 뽑은 포춘쿠키 문구였다. 책상 앞에 붙여 둔 시구를 읽어보다가 미수 샘에게 전화를 걸었으나 꺼져 있었다. 미수 샘이 지각하는 일은 처음이었다. 그것도 연락 없이. 더욱이 일 처리를 이런 식으로 할 사람이 아니었다.

나중에 저분한테 부탁하려고.

어느 날인가 미수 샘은 이 선생을 바라보다가 특유의 심상한 어조로 말했다. 높낮이도 없고, 단조로운 말투로. 어떤 감정인지 짐작하기 어려웠다.

어디 가세요?

그런데 떠날 일이 없네.

미수 샘과의 싱거웠던 그날의 대화가 불길한 암시였을까. 나는 오기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는 가지만 받지 않아서 메시지를 발송했다.

- 미래 도서관입니다. 해당 도서가 일 년째 연체 중입니다.

 

이럴 때는 은선 샘을 찾아 가야 한다. 슬리퍼를 벗어 손에 들었다. 수서실로 가려면 2층 어린이 자료실을 지나가야 했는데 신발을 신지 않게 되어 있어서다. 벽면에는 크레용으로 그린 그림이 여러 장 붙어 있었다. 미수 샘이 아이디어를 냈고, 도서관을 이용하는 아이들 대상으로 ‘나만의 괴물’을 그려 자유롭게 전시하도록 했다. 오이 괴물, 단추 괴물 옆에 못 보던 그림이 붙어 있었다. 새까만 어둠 속에 조그만 오징어. 검정색 크레용으로 몇 번씩 뭉개듯 덧칠해 놓았다.

내 꿈에 나와요. 엄청 무서워요.

도서관에 찾아오는 아이들은 익숙한데 처음 보는 아이였다. 그 어디에도 저런 어둠이 존재할 것 같지 않은 맑은 눈빛이었다. 멋지구나, 하고 돌아서려는데 발에 뭔가 밟혔다. 직소 퍼즐 조각이었다. 어린이 자료실에는 동화나 고전을 테마로 한 세트가 몇 가지 구비돼 있었다. 한가운데 놓인 넓은 책상에서 아이들은 퍼즐을 맞추곤 했다. 유심히 살펴봤지만, 어디의 일부인지 알 수 없었다. 아이에게 내밀었다. 아이는 받아 손에 꼭 쥐고는 고개를 숙였다.

수서실에 들어서자 은선 샘이 반기며 물었다.

소설은 좀 썼어?

3년 전 한 지방 일간지에 단편소설이 실렸다. 이후 청탁을 받았지만, 마감을 지키지 못했다. 결말을 쓸 수 없었다. 그 뒤로 아무것도 쓰지 못했다. 도서관 입사 지원서에 보탬이 될까 싶어서 경력란에 한 줄 적었던 것이 화근이었다. 도서관 사람들은 종종 나에게 소설의 안부를 묻곤 했다. 마치 밥 먹었냐고 묻듯이. 은선 샘은 미수 샘이 아직도 출근하지 않았다는 소식에 놀랐고 ‘오기수’라는 말을 듣자, 눈을 반짝였다. 곰곰이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처음에는 미수 샘이 라운딩하다가 발견했지.

사서는 근무시 중간중간에 라운딩하면서 휴지를 줍기도 하고 오랫동안 자리를 점유하는 사람에게 잔소리도 한다. 은선 샘은 서랍을 열더니 초콜릿을 꺼내 내게 건넸다. 은박지에 감싸인 고깔 모양의 키세스 초콜릿이었다. 늘어진 종이를 잡아당기자 은박 포장이 벗겨졌다.

오기수 씨가 이 초콜릿을 좋아했거든. 종이를 바닥에 흘리거나 책갈피처럼 끼워놨어.

오기수 씨는 한동안 도서관에 매일 왔었다고 했다. 이야기를 요약하면 기수 씨는 미수 샘이 지켜온 어항 같은 도서관에 고요를 깨고 풍랑을 일으켰다. 그 꼬리 같은 종이들을 발견할 때마다 침착한 미수 샘이 평정을 잃었다고.

그러다 알잖아. 

뭘 알죠?

그러다 정드는 거지.

오기수 씨가 그 종이 꼬리에 메시지를 적어놓기 시작했다. 은선 샘이 몰래 봤는데 ‘당신은 꼬리, 나는 항문’이라고 적혀 있었단다. 변태 같은 문장에 미수 샘이 웃었다고 했다. 상상이 되지 않았다.

단정하게 하나로 묶은 머리와 잘 다듬어 투명 매니큐어를 발라 반짝거리는 손톱, 회색의 통 넓은 바지와 흰 셔츠의 옷차림은 항시 흐트러짐이 없었다. 아무도 침범하지 않는 고요가 그녀 주위를 감싸고 있는 듯했다. 사서 준비를 할 때도 미수 샘을 보았고 이상적인 모델로 삼아왔다. 사실 그 정도만 알면 됐다. 그 정도만 아는 편이 나았다는 생각도 든다. 입사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아 미수 샘의 완벽주의와 지치지 않는 아이디어에 지쳐갔으니까. 포춘쿠키 아이디어만 해도 그렇다. 도서관 이용자들이 즐거워했으나 바닥에 흘린 쿠키 부스러기를 쓸어 담느라 고생했었다.

그런 미수 샘이 장기 연체에, 도서관에서 초콜릿이나 까먹는 오기수 씨에게 흔들렸다는 걸까.

내가 말도 안 된다고 고개를 흔들자 은선 샘은 결정적인 증거가 있다며 인터넷에서 천상열차분야지도를 찾아내고는 설명을 시작했다.

태조가 목판으로 만들고 검은색 돌에 새긴 것으로 천구의 적도를 12등분 하여 하늘의 별자리를 나열하고 그에 해당하는 땅의 지역을 차례대로 배당한 그림이라고 했다. 거기까지는 아까 애서가에게도 들었던 설명이었다.

원 중심에서 방사선으로 나누어진 28개 영역이 있는데 이를 28수라고 하며 동쪽은 동방칠수라 하여 청룡을 상징한다고 했다. 이에 속한 별자리는 각수, 항수, 저수, 방수, 심수, 미수, 기수. 

미수와 기수가 나란히 있었다. 은선 샘은 그 부분을 집게손가락으로 몇 번이나 동그라미를 그렸다. 그리고 의기양양하게 마치 반전을 공개하듯 말했다.

미수 샘 ‘미’ 자가 ‘꼬리 미(尾)’ 자거든.

내가 미심쩍은 표정을 짓자, 은선 샘은 답답한 듯 고개를 흔들었다.

루미 샘, 소설 쓴다면서 감이 없다.

그래서 못 쓰고 있잖아요, 이 말은 내뱉지 못하고 속으로만 구시렁거리고 있는데 은선 샘이 다시 물었다.

이 이야기를 하나의 그림으로 만들 조각, 결국 뭐겠어?

사실 가장 내리고 싶지 않은 결론이었다. 결국 사랑이라는 건데. 난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소설을 완성하지 못한 것도 그 때문이다. 언제나 마지막 조각이 문제였다. 마지막 문장을 쓰고 나면 소설은 초라해졌다.

일 년 전부터 오기수 씨는 나타나지 않았고 은선 샘은 둘의 이야기가 그렇게 끝났다고 생각했단다. 오기수 씨의 주소는 도서관에서 도보로 불과 5분 거리였다. 은선 샘은 남녀 관계란 어려운 거지라고 말했지만 의아했다. 오기수 씨는 자신의 책을 간직하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아무에게도 읽히고 싶지 않았던 걸까. 원래 있어야 할 조각 하나가 빠진 것 같았다.

수서실에서 나오는데 아이들이 모여 퍼즐을 맞추고 있었다. 빨간 머리 앤과 다이애나의 티타임 그림이었다. 아이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어디 갔지, 하며 테이블 아래를 보기도 하고 퍼즐을 꺼냈던 상자 안을 뒤적이기도 했다. 다가가 보니 완성된 그림에서 앤의 녹색 스커트 끝자락의 한 조각만이 비어 있었다.

아까 아이에게 주워 준 퍼즐 조각이 분명 녹색이었던 것 같은데, 라는 생각을 하며 눈으로 그 아이를 찾았다. 아이는 무리와 떨어져 창가에 서 있었다. 분명히 나와 눈이 마주쳤으나 아이는 한쪽 손을 움켜쥔 채 고개를 돌렸다. 아이는 그 아이들이 떠나지 않기를 바라는 걸까. 아니면 티타임을 완성하고 싶지 않은 걸까.

그때 어린이 자료실 사서인 은경 샘이 불러세우더니 미수 샘이 배탈이 나서 응급실에 가는 바람에 연락을 못 했다는 소식을 전해주었다.

쉬다가 오후에 나온대요. 그렇게 쉬라고 해도 말을 안 듣네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로 돌아왔다. 먼지 한 톨 없이 깨끗이 정리되어 있는 미수 샘의 책상과 그 아래 가지런히 놓인 슬리퍼를 바라봤다.

미수 샘은 정돈된 생활과 루틴들이 자신을 지켜준다고 했다.

무엇으로부터요?

자외선이나 미세먼지.

그냥 웃고 넘어갔지만 내가 한 번 더 물어봤다면 미수 샘이 변덕스러운 마음, 어긋난 타이밍과 기약없는 기다림이라고 답했을까.

메시지가 왔다. 오기수 씨 번호였다.

- 고인의 책은 이미 일 년 전에 반납했습니다.

메시지를 보낸 사람은 오기수 씨 가족일까. 전화를 걸면 밝혀질 일인데 나는 좀처럼 통화 버튼을 누르지 못하고 망설였다. 미수 샘이 반납하지 못하고 간직하고 싶었던 것이 무엇인지 궁금하면서도 알고 싶지 않기도 했다. 하지만 미수 샘이 지키고 싶었던 게 무엇이든 그것만은 지켜주고 싶었다. 

 

정선임
소설가, 1978년생
소설집 『고양이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 밤의 우리는』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