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임철우 선생과의 만남
소설가 임철우 선생과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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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우 소설가, 한신대 문예창작과 명예교수, 1954년생 소설집 『아버지의 땅』 『달빛 밟기』 『황천기담』 『연대기, 괴물』, 장편소설 『그 섬에 가고 싶다』 『등대』 『봄날』 『백년여관』 『이별하는 골짜기』 등 |
모든 인간은 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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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찬제 어젯밤 별을 보면서 섬광처럼 ‘모든 인간은 별이다’라고 하셨던 『그 섬에 가고 싶다』(살림, 1991)의 메시지가 떠올랐습니다. 자연스레 완도의 작은 섬 평일도 바닷가에서 별을 보는 아이를 연상했지요. 그 아이는 별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이후 별처럼 살지 못하는 처지에 놓였을 때, 무엇보다 5·18 같은 폭력의 현장에 처하게 되었을 때, 그렇게 무참하게 스러져가는 별들 앞에서 어땠을까… 그러니까 그 바닷가에서 별을 바라보던 아이가 반세기 넘게 한국 문학의 상징적 별자리를 어떻게 만들어 왔을까, 그런 말씀을 오늘 나누어보고 싶니다.
임철우 글쎄요. 그 아이는 지금 이 나이에도 제 안에 그대로 있는 것 같습니다. 사실 그 아이를 버릴 생각도, 벗어나고 싶은 생각도 없어요. 지금껏 그 아이와 함께 참으로 팍팍하고 폭력적인 시간을 겪어온 셈이지요. 그래서인지 저와 제가 써온 작품 사이엔 어떤 상반된 면이랄까 대비되는 면이 있는 것도 같습니다. 언젠가 광주에서 북토크 행사가 있었는데, 한 젊은 시인이 그러더군요. 『봄날』이나 「붉은 방」 같은 작품을 읽고서 이 작가는 분명 아주 독하고 비정한 사람일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만나보니 너무 다르다고요. 등단 직후에 가끔 그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어요. 실제로 보면 많이 여리고 순한 사람인데, 정작 소설은 너무 어둡다, 혹시 의도적으로 그렇게 쓰는 것 아니냐, 그런 얘기들. 심지어 제 아내도 결혼 직전에 혼자 많이 고민했다고 말해요. 내 작품들을 보면 너무 어둡고 무겁고 고통스러운데, 이런 내면을 지닌 사람을 자신이 과연 감당할 수 있을까 하고요. 저로서도 그 마음이 조금은 이해가 됩니다. 흔히들 제 소설을 읽는 게 고통스럽다고 말하지요. 그래요. 응당 그럴 수밖에 없지요. 그것은 고통받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니까, 그리고 나는 독자들이 그 고통을 함께 나눌 수 있게 되기를 바라고 썼으니까요. 어떤 간절함 같은 마음으로요. 사실 지금껏 소설을 써오면서, 나 스스로가 내면과 영혼이 찢어지는 듯한 극심한 고통을 경험한 순간들이 많았어요. 돌이켜보면 저로선 그게 어떤 운명인 것 같아요. 하필 그런 폭력적인 시대의 한복판에서 태어나 자랐고, 우연처럼 또 그런 특별한 공간들에 늘 제가 가 있었으니까요. 게다가 가장 예민할 나이에 말이지요. 그런 고통의 시간을 말 그대로 몸부림을 하듯이 건너오면서, 자연히 어떤 절실함이랄까 소명감 같은 것이 제 몸 안에 은연중 체화된 게 아닌가 싶어요. 어쨌거나, 본디 저의 타고난 내면의 빛깔은 아마도 『그 섬에 가고 싶다』 『등대』 『이별하는 골짜기』의 바탕에 깔린 정서나 「사평역」의 시선 쪽에 원형적으로 더 가까울 겁니다.
그러니까요. 아주 순백한 영혼에 그렇지 않은 붉은색이나 검은색 폭력들이 그대로 와서 퍽퍽 꽂히는 스펙터클이 떠오릅니다. 너무나 선명하고 지워질 수도 없는… 아까 말씀드린 『그 섬에 가고 싶다』 프롤로그에 “꼭 자기만의 별자리에서 자기만의 이름으로 빛나던” 사람들에게 잃어버린 별빛을 되찾아주고 싶다, 별을 그리고 별빛을 되살려 별들의 순수한 사랑 노래를 들려주고 싶다, 이렇게 말씀하셨잖아요. 『이별하는 골짜기』의 정동수처럼 그런 별빛을 꿈꾸는 서정 시인이 되고 싶었지만, 자라면서 듣고 경험한 세계는 대개 그 별빛을 가로막는 험악한 암막 커튼 같은 것이었지요. 이를테면 분단 상황과 전쟁, 그에 준하는 국가폭력들…… 그러니까 진실한 별들의 투명한 사랑 노래를 가로막는 그런 폭력들을 눈물로 씻어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그렇게 씻어내지 않으면 우리 영혼에 낀 시퍼런 녹 때를 벗겨내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하신 게 아닐까 짐작됩니다. 한국전쟁이나 보도연맹 사건, 제주 4·3, 광주 5월 이야기를 통과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도 그런 까닭이 아니었을까요. 그 과정에서 늘 유념했던 것이 어떤 현장에 있는 이들도 모두가 별이었다는 점이었고요. 그런 맥락에서 보면 임철우 선생님 소설은 무수한 별들과 스스럼없이 대화하며 그들의 곡절을 때로는 비극적으로 때로는 구성지게 때로는 아름답게 빚어내려 했던 우주적 교향악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제가 어젯밤에 별을 보면서 했는데요. 평일도의 그 어린아이가 하늘을 보면서 내가 저 별에서 왔다, 나도 별이었다, 섬에 어떤 어린아이가 태어나면 별 하나가 스러져 이쪽으로 온 것이고, 누군가가 섬에서 숨을 거두면 하늘에 별 하나가 새로 생긴다는 이런 감각을 느끼셨던 순간이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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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그 소설에서의 ‘별 이미지’는 인간과 생명의 고귀함에 대한, 우리에게 많이 익숙하고 정겨운 하나의 동화적인 상징인 셈이지요. 나에게 ‘별’은 곧 ‘사람들’이라고 해도 좋겠네요. 실제로 『그 섬에 가고 싶다』나 『등대』에 나오는 얘기들은 대부분 어린 시절 보고 듣고 겪었던, 일종의 자서전적인 이야기인 셈입니다. 제 고향은 아주 작고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섬이어서, 전기도 신문도 라디오도 없었어요. 자동차는 말할 것도 없고요. 훗날 섬에 전기가 들어온 게 1978년이었으니까요. 호롱불도 등유를 아끼느라고 잠자기 전에만 잠시 켜곤 했지요. 여름밤엔 마당 평상에서 식구들이나 동네 사람들이 모여 앉아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곤 했어요. 할아버지 무릎을 베고 누우면, 눈앞에 할아버지의 기다란 수염이랑 밤하늘이 빤히 올려다 보여요. 인공 불빛의 방해가 전혀 없는 하늘은 정말로 먹빛처럼 까맣고 깜깜했어요. 그러니 별 보기가 얼마나 좋았겠어요? 정말 환한 빛이었어요. 그 시절엔 누구나 별빛 달빛만으로도 밤길을 찾아갈 수 있었지요. 어느 날, 하늘에서 떨어지는 별똥별을 보고 깜짝 놀라 물었더니, 할머니가 그러시는 거예요. 저건 지금 막 어느 집에선가 아이가 태어난 거라고. 너희들도 다 저런 별이었다가 우리 집까지 찾아온 거라고. 그리고 훗날 죽으면 누구나 하늘로 올라가 별이 된단다 라고요. 그 이야기가 어린 내겐 너무나 놀랍고 신비한 비밀처럼 느껴졌어요. 그게 나로서는 최초로 세계 혹은 우주에 대한 신화가 형성된 순간이었을 겁니다.
『그 섬에 가고 싶다』는 베스트셀러까지 되었으니, 할머님께 감사해야겠네요.
그래요. 제 작품 중에선 그나마 드물게 대중 독자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지요. 영화로도 만들어졌고요. 참, 최근에 한 출판사에서 이런 연락을 받았어요. 어느 과학자가 쓴 ‘AI에 관한 책’을 출간할 예정인데, 그 저자분이 『그 섬에 가고 싶다』의 바로 이 대목을 책 서두에 인용하고 싶어 한다고요. 첨단 과학 분야 전문가가 그 문장에 관심을 가졌다는 뜻밖의 사실이 반가웠어요. 신화라고 하는 인류의 원형적 사고나 무의식이 21세기 첨단 과학과 맞닿아 있다는, 알고 보면 지극히 당연한 사실을 떠올리기도 했습니다. 사실은 앞서 말한 ‘별 이야기’ 같은 것은 아득한 고대로부터 전해져 내려온 인류의 보편적 세계관이자 우주관이겠지요. 그러니까 그날 밤 할머니로부터 저에게 전해졌듯이, 그 오랜 신화가 나와 독자들 사이에 자연스레 발화된 셈이지요.
외로운 아이,
새로운 출항을 위한 별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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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이 생계를 위해 육지로 떠난 뒤로, 세 살부터 열 살 때까지 그 섬에서 양친과 따로 떨어져 지냈던 시절의 밤 풍경을 아까 말씀하셨는데, 할아버지께서 굉장히 입담이 좋으셨고 많은 이야기를 해주셨다고 들었어요. 그 작은 섬에서 아이는 홀로 바닷소리, 바람 소리를 헤아리며 그 지독한 외로움을 견디면서 성장합니다. 그 아이에게 처음으로 사람 사는 세상 그리고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준 분이 할아버지였다고 이해해도 될까요?
그래요. 돌이켜보면 할아버지를 통해 말을 배우고 이야기를 익히고 그랬던 것 같아요. 한학을 공부하신 조부님은 매우 논리적으로 말씀을 잘하시는 데다가 묘사력도 뛰어났어요. 기억을 돌이켜보면, 그분이 어떤 이야기를 할 때면 그 자체가 그냥 완전한 소설인 거예요. 아주 작고 섬세한 것까지 실감있게 묘사를 했어요. 나는 늘 외롭고 고립된 처지였으니까, 그런 이야기와 문장들이 그대로 내 안에 쏙쏙 스며들었겠지요. 전기도 라디오도 없는 작은 섬에서, 오로지 할아버지와 이웃 어른들의 이야기를 통해 바깥 육지의 세상과 문명에 대한 지식, 무엇보다 기본적인 언어 교육을 수행했던 셈이지요. 덕분에 사람들의 이야기에 대한 왕성한 호기심, 또 작고 세세한 것까지 유심히 듣고 기억해두는 버릇은 이후에도 지속되었어요. 제 생각엔, 작가의 중요한 덕목이라면 우선 좋은 눈과 귀가 아닐까 싶은데요. 가령 남들이 잘 보지 않는, 보지 못하는 것까지도 볼 수 있는 겹의 눈이랄까요. 마찬가지로 모든 언어와 소리를 향해 늘 열려있는 귀도 그렇고요. 아마도 나는 그런 눈과 귀를 할아버지와 이웃 사람들을 통해서 얻게 된 듯합니다.
좋은 귀가 좋은 눈을 열게 할 수도 있겠지요. 톨스토이도 어렸을 때 할아버지가 조기 교육을 시켰는데, 그게 뭐였냐 하면 희랍어로 호메로스의 서사시를 읽어준 거예요. 희랍어를 모르는 어린애지만, 그 리듬만을 들으면서 상상으로 풍경을 열어나갔다는 거지요. 그런 톨스토이의 경우처럼, 평일도에서 할아버지의 이야기도 아주 특별하고 각별한 조기 교육이었겠네요.
저는 소설을 쓸 때, 가끔은 방금 전에 작성한 부분을 혼자 다시 낭독해 보는 버릇이 있어요. 소리 내어 읽어보면, 문장이 자연스러운지 매끄럽지 못한지를 금방 알게 되지요. 이건 제 입으로 옮기기 좀 뭐합니다만, 더러 그런 말을 들을 때가 있지요. 내 소설 문장이 어떤 리듬이랄까 유려함 같은 게 느껴진다는 식의 얘기… 만일 그게 사실이라면, 유년기에 어른들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면서 은연중 습득한 화법과 문장의 영향일지도 모르겠군요.
2024년에 나온 박노해 씨 산문집 『눈물꽃 소년』을 보다가 이 시인의 리듬이 할머니로부터 나왔구나, 그런 생각을 했어요. 할머니께서 남도의 민간 수사학을 정말 구성지고 풍성하게 구사하시더라고요. 그 할머니 말을 그대로 옮겨 적으면 문장이 되고 시가 되는 거예요.
첫 소설집 『아버지의 땅』을 냈을 때, 그런 질문들을 많이 받은 기억이 납니다. 당신은 전쟁 미체험 세대인데, 어째서 6·25를 소재로 한 소설들이 많으냐. 동년배 작가들과 비교해도 아무래도 좀 특이한 것 같다… 그런 질문들 말이에요. 그런데 정작 저는 그런 식의 질문이 처음엔 잘 이해가 되지 않더군요. 왜냐하면 분명 나는 휴전 다음 해에 태어났는데도, 마치 직접 전쟁을 겪은 것처럼 내게는 익숙하고도 생생한 이야기였으니까요. 사실 그것은 순전히 할아버지와 이웃 어른들의 이야기 덕분이 아닐까 싶어요. 겨우 귀가 열리기 시작한 서너 살 때부터 할아버지와 이웃 어른들의 얘기를 숱하게 들으며 자랐으니까요. 주로 6·25 전쟁 때 이야기가 많았어요. 그중에서 가장 강렬한 이야기가 바로 보도연맹 사건이었어요. 바다에서 무리로 떠다니는 시신들. 등 뒤로 손과 팔이 묶인 채 우리 마을 개펄까지 떠밀려온 그 참혹한 모습들… 훗날에야 나는 그게 ‘보도연맹 사건’이었음을 알게 되었지요. 6·25 직후부터 7월 말까지, 전국적으로 학살된 보도연맹원 숫자는 20만에서 30만까지로 추정된다고 하지요. 그와 함께 또 다른 사건 역시 제겐 너무나 충격적인 기억으로 남아 있어요. 이른바 ‘나주경찰부대 사건’이라고 하지요. 2007년에야 뒤늦게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진상조사를 시행했지만, 미처 다 밝혀내지 못한 부분이 많습니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후퇴 중이던 나주경찰서 부대가 인민군으로 위장한 채 해남군 일대 및 완도읍에 진입한 사건이지요. 완도읍의 경우, 이들은 환영대회를 연답시고 주민들을 중학교 운동장에 모이게 했는데, 인민군인 줄만 알고 앞장서서 환영했던 사람들이 목숨을 잃게 됩니다. 그 얘기를 처음 들었던 순간의 기억이 저는 아직도 생생합니다. 뭔가 너무나 무섭고 끔찍하고 기괴한 이야기. 그것은 어린 내가 처음으로 대면한 어른들의 세상이었어요. 폭력과 거짓, 피와 고통으로 가득한 어른들의 세상 말입니다. 훗날 학교와 책에서 근현대사를 배우면서 그 실체를 점차 알게 되었지만, 유년기의 그 일들은 내게는 최초의 원체험으로 자리하게 된 셈이지요.
말씀을 들을수록 귀로 들으며 세상을 향한 눈을 밝힌 경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다시 말하지만 좋은 귀로 좋은 눈을 밝힌… 그 원천에 할아버지의 이야기가 있었고… 그런데 할아버지를 통해 트인 눈과 이후 밖의 세상을 직접 경험하면서 밝힌 눈 사이의 마주보기 혹은 심층의 대화 같은 것 역시 작가의 탄생 과정에서 중요했을 것 같습니다.
뭐랄까, 어떤 것을 볼 때 은연중에 겹눈으로 보게 된다고나 할까요. 말하자면 눈앞의 대상 그 너머의 이면에 대해 본능적으로 의심하고 투시하려는 성향 같은 건 예의 그 원체험으로부터 은연중 습득한 게 아닐까 싶어요. 어떤 지배적 언어나 징표, 어떤 논리 따위를 쉽사리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일단은 한 발 떨어져서, 어떤 복선처럼 복합적으로, 비판적으로 살펴보게 되었다고 할까요. 그것이 저 오랜 군사독재 시대를 거치고, 무엇보다 5·18 그리고 그 이후의 시간과 세상을 겪어내면서 내 나름으로는 끈질기게 소설에 매달릴 수 있었던 어떤 원동력이 되었을 것입니다.
겹의 눈으로 겹의 말을 길어내며, 다른 시간 다른 공간을 중층적으로 상상하고 실존할 수 있는 상상력의 깊이가 느껴집니다. 문득 『아버지의 땅』 ‘작가의 말’이 떠오르네요. 섬을 떠나 부모가 있는 뭍으로 옮겨온 이후에도 미술 시간에 기차와 비행기와 빌딩만을 그려대는 도회지의 아이들 틈에서 바다와 배를 그려 이방인 취급을 당했다는 이야기, 그럴 때마다, “홀로 낙심하여 담 밖을 맴돌며 그들의 성안으로 들어가기를 열망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그들이 모르는 혼자만의 세계를 간직하고 있다는 사실이 마치 무슨 은밀한 죄의 기억처럼 내심 자랑스럽기도 했”었다는 이야기, “결국 그 어린 시절 미술 시간의 그림 속에서처럼 나는 지금껏 늘 혼자서 새로운 출항을 꿈꾸며 커온 셈”이라는 이야기 말입니다. 여기서 ‘그들의 성’과 ‘혼자만의 세계’의 대조는 사람들의 영혼 안으로 파고드는 산문가와 내 안으로 몰입하는 서정시인이라는 겹의 가능성을 길어 올립니다. 서사적으로 기억하고 기록하는 자이자 서정적으로 울림을 주는 자라는 겹의 소명을 유추해 보게 하기도 합니다. 그 소명을 위해 끊임없이 새로운 출항을 하고 다시 돌아오고…
폭력에 스러져 별이 된
사람,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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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광주와 5월소설들에 대해 얘기해야 할 것 같은데, 자전적 소설 「낙서, 길에 대하여」나 인터뷰, 산문 등에서 많이 말씀하시기도 했던 거여서, 오늘은 짧게 줄여갈까 합니다. “섬이 하나 있다. 그림자의 섬, 영도(影島)” 이렇게 시작하는 소설 『백년여관』의 프롤로그에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그 섬엔 산 자와 죽은 자가 함께 거주한다. 정확히 표현하면 그들은 ‘아직 살아 있되 실은 벌써 오래전 죽은 자들’ 혹은 ‘이미 오래전 죽었으나 차마 아직 섬을 떠나지 못하고 맴도는 자들’이다. 한사코 섬을 떠나지 않으려 하는, 혹은 끝끝내 벗어날 수 없는 사로잡힌 영혼―그것이 바로 그들의 이름이다.” 앞에서 말씀하신 겹의 눈, 겹의 말은 이런 존재 감각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할 것 같은데요. 곧 작가의 몫을 느끼게 하는 대목이 이어집니다. “혹시 그 유폐된 섬에 운명적인 변화를 불러올 유일한 가능성은 다리 저편 아득한 바로 당신들의 영토, 육지에 존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기에 그들 생자와 사자들은 여전히 무엇인가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 천지간에 가득 찬 막막하고 몽롱한 푸른 안개의 늪을 가로질러 마침내 당도할 구원의 손길을, 아니 하다못해 미미한 그 전령의 발소리만이라도 흐린 바람결에 묻어오기를…” 그 섬의 생자와 사자들이 간절히 기다리는 그 무언가를 전해줄 ‘전령의 발소리만이라도’ 전해주려 하는 것, 바로 작가가 아닐까 합니다. 더 밀고 나가면 샤먼 작가의 어떤 초상을 떠올리게도 합니다. 그해 5월 광주에서 폭력적으로 스러져간 『봄날』의 사람들, 보도연맹과 4·3, 5·18, 베트남전쟁에서 스러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복합적으로 다룬 『백년여관』의 공간성, 『이별하는 골짜기』에서 가장 아픈 사연들, 이런 것들은 샤먼 작가의 엑스터시 순간을 연상케 합니다. 그런 순간 샤먼은 실제로 몸이 많이 아프다는데, 이런 작업을 하시면서 그 아픈 고통을 어떻게 견디셨을까요?
저는 내 소설의 인물들이 일단 내 몸 안에 들어와 어느 정도 나 자신과 일체화된 다음에야 비로소 소설을 쓸 수가 있다는 이야기를 가끔 합니다. 특히 실제 사건과 실존 인물들을 다룰 경우엔 더욱 그렇습니다. 방금 샤먼 얘기를 하셨지요. 고대 시베리아 평원의 샤먼들. 어쩌면 그 표현이 맞을지도 모르겠네요. 실제로 제가 소설을 쓸 때 그랬으니까. 글을 쓰는 동안엔 죽은 자와 산 자, 죽어서 별이 된 이들의 공간과 나의 현실 사이의 경계가 어느 순간 지워지고 마는 때가 찾아옵니다. 그냥 한데 뒤섞여 함께 사는 것처럼, 같이 울고 같이 이야기하고… 몇 달 혹은 몇 년씩을 그렇게 뭔가에 씐 양 거기에 붙잡혀 있다 보면, 어느 사이 이미 죽은 그 사람들이 다가와 내 앞에 마주 서고, 내게 낯익은 표정과 목소리로 말을 걸어오는 겁니다. 그러면, 그 순간이 오면, 비로소 내 안에서 그 수많은 사람들과 공간과 소리들이 생생한 풍경으로 되살아나는 겁니다. 그때야말로 나는 그 모든 것을 글로 옮기기만 하면 되는 거예요. 이런 얘기를 하고 있는 제가 좀 이상해 보일지 모르겠습니다만, 장편 『봄날』을 쓰는 내내 그런 기이한, 어쩌면 조금은 위험한 과정들을 경험했지요. 어쩌면 일종의 극단적 자기 암시랄까 자기 최면 상태였는지도 모르지만요.
특히 『봄날』을 쓸 때 그러셨다는 말씀을 여러 차례 들었어요. 예전에 어떤 자리에서 윤상현의 최후 절규 대목을 낭독하시다가 끝내 눈물로 멈추시는 모습을 뵈었는데요. 그 대목에서도 제게는 샤먼 작가의 목소리가 들렸어요.
샤먼이 죽은 사람을 산 자들 앞에 불러내서 만나게 해주잖아요. 말씀하신 윤상원(『봄날』에서는 윤상현으로 등장) 선배의 최후 순간을 써야 했을 때 그와 비슷한 경험을 했어요. 소설을 쓰려면 인물의 외적 행동뿐만 아니라 당연히 가장 깊숙한 내면까지를 다 드러내야 합니다. 주 인물의 내면을 그려내는 일, 바로 거기에 소설의 핵심이 자리한다고 저는 생각해요. 그런데, 이분은 자기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사람이에요. 5월 27일 새벽. 정작 기대와는 달리 도청으로 달려와 도와주는 사람도 없이, 자신들만이 외롭게 죽음을 기다리는 상황입니다. 그때 그는 과연 어떤 생각을 했고, 어떤 말을 마지막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었을까. 그의 내면을, 그 최후의 순간을 어떻게든 그려내야 했지만, 아예 불가능했어요. 또 한편으론 과연 그 일을 감히 내가 감당할 자격이 있는가 자책도 했지요. 며칠을 붙들고 앉았어도 도저히 쓸 수가 없어서, 어느 날 무작정 고속버스를 타고 망월동으로 달려갔지요. 무덤 앞에 엎드려 울면서 빌었습니다. 제발 나를 받아주시오, 내가 대신 할 테니, 제발 내 안으로 들어오시오. 내가 당신들의 마지막 말을, 유언을 세상에 전하겠으니 제발 허락해 주시오… 어둑어둑한 저녁, 아무도 없는 묘지에서 혼자 미친 사람처럼 그렇게 울고 중얼대고 하다가, 밤늦게 허깨비 같은 몰골을 하고 서울로 되돌아왔지요. 집에 오자마자 책상 앞에 앉아 쓰기 시작했는데, 순간 거짓말처럼 문장이 줄줄 쏟아져 나오는 겁니다. 분명 눈앞에서 나 아닌 다른 누군가의 두 손이 빠르고 거침없이 마구 자판을 두드려대는데, 나는 그 순간 정말로 그분의 혼이 내 안에 들어온 거라고 믿었어요. 그럴 수밖에 없었어요. 그게 아니라면, 아마 나는 영영 단 한 줄도 쓸 수 없었을 겁니다… 이런 제가 좀 이상해 보이겠지만, 그게 꿈인지 현실이었는지, 지금도 그 순간을 달리 어떻게 설명할 길이 없어요.
그렇게 말씀하시니 그날 그 대목을 제정신으로 낭독하실 수 없었던 게 이해되네요. 『백년여관』의 기본 구도도 그런 상황과 관련될 것 같습니다.
『백년여관』은 초기 단편에서 『봄날』까지 이어졌던 광주 이야기의 마무리 편이라고 불러도 되겠지요. 사실 그 이후로 광주 이야기는 쓰지 않았으니까요. 이 소설에선 저승과 이승이 마주치는 곳. 산 자와 죽은 자가 공존하는 곳. 그런 특별한 공간으로 영도라는 섬이 설정되어 있습니다. 사실 그것은 소설적인 장치라기보다, 5월 이후 이미 내 안에 실제로 존재하는 세계이기도 했습니다. 이 세상엔 풀 수 없는 고통을 가슴에 안고, 나눌 수 없는 고통에 갇힌 수많은 사람들이 있지요. 그런데 그 고통은 결코 그들만의 고통일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는 안 되지요. 광주를 쓸 때도 그렇고 제주 4·3을 쓰면서도 깨달은 게 있다면, 폭력적 현장에서의 고통은 단지 거기에 있었던 사람들만의 것일 수는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개별자가 아니라, 사람이, 목숨을 가진 존재가 겪는 전 인류의 고통이기 때문이지요… 모든 폭력은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고, 폭력의 희생자와 그 폭력에서 살아남은 자의 얼굴은 모두 닮아있습니다. 소설은 사람의 이야기, 삶의 이야기입니다. 누군가의 고통을 내가 듣고 느끼고, 그들의 목소리를 전하고, 또 그들의 아픔과 절규를 대신하여 토해내는 일. 그것이 ‘전하는 자’의 숙명이 아닐까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작가는 샤먼과 비슷한 존재인지도 모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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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폭력과 작가의 소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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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이전 세대도 그렇지만 선생님 세대 또한 가혹한 폭력의 현대사를 관통해온 불행한 세대였습니다. 그토록 고통스러운 역사 체험을 하면서, 그런 어두운 시대를 배경으로 국가권력에 의한 폭력이 어떻게 개인과 공동체의 삶을 파괴해 왔는가를 탐색하며 애도하고자 하셨습니다. 그런 폭력적 현실에서 문학의 몫은 무엇이었을까요?
제가 쓴 소설에는 당연히 그런 시대적 고통과 풍경의 흔적들이 담겨 있습니다. 그것들은 ‘폭력에 대한 분노와 저항, 그리고 인간성에 대한 믿음’이라는 내 나름의 문학적 신념에 토대한다고 조심스레 말하고 싶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폭력적인 역사 현실을 가로지르는 문학 상상력의 몫에 대해 짧게 언급해 보겠습니다. 아시는 것처럼, 기술된 공식 역사는 하나의 비극적 폭력적 사건을 물리적 시간으로 환원하여 캘린더 상의 명확한 시간으로, 사건의 일지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합니다. 역사는 사건을, 증명 가능한 사실을 그 중심에 두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살아남은 사람(들)의 ‘삶’은 그 사건이 종료되는 물리적 시간 이후로도 계속됩니다. 때문에 그들에게 그 사건은 종료가 아니라 또 다른 고통과 슬픔으로 끊임없이 피 흘리는, 또 다른 시간의 시발점일 뿐입니다. 당연히, 역사의 시간과 사람의 시간은 동일하지 않습니다. 그 사실을 문학은 잘 알고 있습니다. 문학은 사람을, 사람들을 중심으로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명료한 사건의 일지나 사실 자료 그 너머에 묻혀 있는 어떤 것. 말해지지 않고, 말해질 수 없고, 아직 침묵 속에 존재하는 어떤 것. 바로 그 미지의 공백, 텅 빈 흰 종이의 여백으로부터 진짜 이야기는 태어납니다. 물론 과거에 대한 망각증 혹은 무관심은 아마도 인간 본연의 욕망일지도 모릅니다. 어둡고 불쾌한 기억으로부터 가급적 벗어나고 싶은 건 자연스런 충동이니까요. 그렇지만 국가폭력이나 사회적 폭력과 같은 현대사의 여러 사건으로부터 진정 자유로운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설사 자신이 태어나기 이전의 사건에 대해서조차도 그러합니다. 비록 오래 전 사건이지만, 정작 그 피해자들은 여전히 지금 우리 곁에서 살아 존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고통과 파괴당한 생으로부터 눈 감고 등 돌려도 좋을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어요. 그건 본질적으로 윤리의 문제이니까요. 동시대의 인간으로서 당연히 분담해야 할 이웃에 대한 책임, 아니 인간이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윤리 말입니다.
폭력으로 고통받는 현실에서 문학의 몫이나 작가의 소명에 대한 매우 집약적인 말씀을 인상적으로 해주신 것 같습니다. 이런 입장에서 여러 소설을 깊이 써오시면서 얻게 된 생각들을 정리해 주시면 좋겠네요.
소설을 써오면서 얻게 된 생각이라면… 마침 제가 준비해 온 메모가 있으니까 그걸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대충 이런 몇 가지를 떠올려 볼 수 있겠습니다. 첫째, 국가폭력과 같은 역사적인 사건을 단순히 어떤 일지나 사실의 항목만이 전부인 양 바라봐선 안 되리라는 것. 둘째, 모든 사건은 그 안에 필연적으로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인식과 상상력이 필요하다는 것. 셋째, 그들이 그때 왜 거기에 있었는지, 어떤 생각과 반응을 하고,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두려워하고 또 꿈꾸었는지를 들여다보려 노력해야 한다는 것. 넷째, 그 어떤 정밀한 사료나 기록도 개별 인간의 분출 파열하는 의식과 감정 그리고 내면과 행동의 관계 따위까지를 세밀히 기록 해내지는 못한다는 것. 결국 그것을 건져 올리는 임무는 문학의 몫이라는 것…
별의 지도 그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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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우 문학론의 핵심을 짚어주시니 새삼 전율하게 됩니다. 최근에 알퐁스 도데의 「별」 이야기도 새로 풀어 쓰시기도 하고 그러셨는데요. 앞으로 창작계획이 궁금합니다. 그리고 지금 제주도에 살고 계시잖아요. 제주도 바닷가에서 별을 바라보면서 작은 섬 평일도에서 할머니로부터 “모든 인간은 별이다”라는 말씀을 들었던 그 어린아이에게 뭔가 해주고 싶은 말이 있으면 마지막으로 해주세요.
제주도에 온 이후 창작집 한 권과 『돌담에 속삭이는』을 냈어요. 건강 때문에 학교도 몇 해 앞당겨 정리한 후 이곳으로 왔는데, 다행히 건강이 많이 나아졌어요. 오랫동안 긴장으로 팽팽했던 심신을 이완시켜서인지 여러모로 여유도 생긴 것 같고요. 그런데… 광주에 가면 5·18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듯이 제주에서는 4·3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어요.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4·3과 연결되어 있으니까요. 주변에선 내가 4·3을 쓰려고 제주로 옮겨 간 거 아니냐고 묻기도 해요. 하지만 그건 전혀 아니고, 순전히 건강 때문이었지요. 그랬는데, 어느덧 십 년을 살다 보니까, 섬 그리고 제주 사람들 이야기를 쓰고 싶어졌어요. 앞서 『돌담에 속삭이는』을 쓰긴 했지만, 이번에 더 긴 호흡으로 써볼까 하고 구상 중입니다.
임철우 문학의 시즌2가 무척 기대됩니다. 『그 섬에 가고 싶다』가 고향 사람들의 이야기였는데, 이제 또 다른 고향 사람들의 이야기, 그 영혼의 이야기가 새롭게 전개되겠네요. 제주의 새로운 별 이야기가 되겠습니다.
저도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소설을 떠나서, 개인적으로 저의 소박한 믿음은 이런 거예요. 만일 인간이라는 존재가 소중하지 않다면, 인간이라는 게 정말 아름답고 빛나는 존재가 아니라면, 아마 그걸 일찍이 우리가 부정했었다면, 인류는 지금 여기 존재하지 않았을 겁니다. 현실에는 온갖 폭력의 계곡과 고통의 늪이 존재하지만, 그러함에도 인간은 별처럼 아름답고 소중한 영혼을 지닌 존재라는 오랜 믿음이 인류에게는 있지요. 요즘 나는 세 살짜리 손녀를 가까이 지켜보면서 매 순간 감동하곤 합니다. 세상에, 이렇게 놀라운 존재라니! 우리도 한때는 다들 이러한 존재였을까, 우리도 저렇게 아름다웠을까, 저렇게 빛나고 경이로운 존재였을까 하고요. 폭력이 세상을 항상 지배하는 것 같지만, 우리는 그것과 맞서 싸워온 선한 힘, 아름다운 정신들이 세상에 무수히 존재해 왔음을 압니다. 저 또한 잊지 않고 있지요. 특히 5월 광주의 거리에서 마주친 수많은 얼굴들, 그리고 도청의 마지막 밤을 지키던 분들의 모습에서 그 의롭고 선한 힘을, 용기를 기억해 냅니다. 사실 그 힘과 아름다움은 본디 우리 안에 처음부터 존재하고 있는 것이겠지요. 바로 그것을 지녔기에 인간은 저마다 자식을 낳고, 아이들을 돌보고, 미래를 생각하고, 꽃을 가꾸고, 땀 흘려 노동을 이어갈 수 있는 게 아닐까. 그래서 ‘모든 인간은 별이다’ 라는 동화와도 같은 ‘마음’을 나는 더없이 소중하게 여깁니다. 그런 ‘마음’이 여전히 우리를 살아가게 하고, 꿈꾸게 하고, 타자의 고통에 눈길을 주게 하고, 헤어진 사람을 그리워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지요. 저에게 ‘별’은 그런 의미입니다.
『돌담에 속삭이는』에서 제주 돌담 그 아이의 그 눈과 평일도 섬 그 아이의 눈, 이 둘이 긴밀하게 겹쳐 보였어요. 그 눈은 서로의 빛을 받아 반사하는 별빛을 닮았어요. 어머니 아버지의 손길 대신에 별의 지도를 보고 생각의 길과 인생의 길을 찾으려 했던 평일도 어린아이의 눈을 원형처럼 새기게 되는 것도 그와 관련됩니다. 예전에 루카치는 별의 지도를 잃어버린 시대에 근대소설이 생겨났다고 얘기했지만, 임철우 소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별의 지도를 지닌 별 같은 사람만이 쓸 수 있는 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물 그림자」의 끝부분에서 주인공은 “처음부터 새로 다시 시작해야 할 것이다. 쓰자. 써야 한다.”(『물 그림자』, 고려원, 284쪽)라고 다짐합니다. 이 다짐은 고희를 넘기신 지금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것 같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선생님 안에서 숨 쉬며 별을 보고 있을 평일도의 어린아이와 더불어, 그리고 이제 말을 갓 배우기 시작한 손녀의 아름다운 미래를 위하여, 소망하는 소설 잘 풀어 나가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랜 시간 동안 좋은 말씀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