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계절의 문학
다시 주목받는 K-디아스포라 문학

  • 이 계절의 문학
  • 2026년 가을호 (통권 101호)
다시 주목받는 K-디아스포라 문학

올여름엔 유난히 해외에서 활동하는 한국계 작가들의 작품이 눈에 띄었다.

6월, 덴마크에서 활동하는 소설가 리 랑그바드가 소설 『나의 통역사』(푸른숲)를 들고 왔다. 자신을 입양 보낸 원가족을 만나러 한국을 찾은 입양인 이야기다. 1980년 한국에서 태어나 덴마크로 입양된 리 랑그바드는 시집 『그 여자는 화가 난다』(난다)를 통해서도 해외 입양 문제와 이를 용인하는 국가에 대한 비판 의식을 보여준 바 있다. 한국계 미국인 윤지현 작가도 같은 달 『그리고 강은 그녀를 끌어내린다』(휴머니스트)를 들고 한국을 찾았다. 책은 한국 전통 설화인 ‘장화· 홍련’을 현대적인 스릴러 장르로 재해석하며 현지에서 한국적인 정서를 보편적이고 압도적인 서사 감각으로 확장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서울국제도서전을 전후로 한국계 미국인 작가 박지선과 권오경이 각각 『루미너스』(황금가지), 『빛의 전시』(문학과지성사)를 들고 독자들을 만나기도 했다. 『루미너스』는 통일 한국을 배경으로 한 SF라는 신선한 발상으로 화제가 되며, 애플TV에서 서비스된 드라마 <파친코>를 제작한 미디어 레스 스튜디오(Media Res Studio)에서 영상화를 진행하고 있기도 하다. 저자가 직접 한국을 찾지는 않았으나, 비슷한 시기 출간된 한국계 미국인 소설가인 앤절라 미영 허의 『우리, 메아리처럼』(열린책들), 한국계 덴마크인 소설가인 에바 틴드의 『민 킴』(산지니) 역시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해외에서 거주하는 한국인 작가들이 써낸 이 같은 이야기들은 ‘코리안 디아스포라 문학’이라는 범주로 함께 묶여 논의되기도 했다. 디아스포라(이산) 문학은 본래 태어난 땅을 벗어나 이주하여 사는 이주민의 삶과 정체성을 다루는 문학을 뜻한다. 한국의 경우 일제 식민지 시절과 한국전쟁 등 역사적 혼란으로 인한 강제적 이산의 경험이 녹아 있는 작품들이 주목받았다.

 

 

지난 6월 민음사가 세계문학전집 500권으로 내놓은 이미륵 작가의 『압록강은 흐른다』는 이 같은 한인 디아스포라 문학의 대표 격이다. 소설은 3·1운동에 가담한 뒤 일제의 수배를 피해 독일로 망명한 이미륵의 자전적 소설이다. 고향에서의 유년 시절, 식민지 조선의 현실, 망명에 이르는 과정 등을 담고 있는 작품으로 1946년 독일의 피퍼출판사에서 출간됐다. 20세기 디아스포라 문학의 고전으로 평가받으며 독일에서는 일부 교과서에도 수록됐다. 민음사는 책에 대해 “한국 문학과 세계 문학이라는 경계 위에서, 혹은 그 경계가 지워진 자리에서 태어난 이 작품이야말로 ‘한국 문학 속의 세계 문학’과 ‘세계 문학 속의 한국 문학’이 만나는 자리”라고 평했다.

20세기 초반이 역사적 사건들로 인한 강제적 이산과 그로 인한 문화적 융합이 이뤄진 때였다면, 현재는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문화적 교류가 이뤄지는 시대다. 세계 대중문화 트렌드를 이끌고 있는 미국 시장은 다양성에 대한 추구를 멈추지 않고 있다. K팝으로 대표되는 한국 콘텐츠가 세계 시장을 흔들고, 영화 <미나리>·<패스트 라이브즈>와 드라마 <성난 사람들>처럼 한국계 이민자의 고민과 생활상이 담긴 작품들이 대중적으로 인기를 끈다.

이제 한국적 콘텐츠는 더 이상 일회적이거나 특수한 상황만을 고려하지 않는다. 최근 소개된 한국계 작가들 작품이 한국, 한국적인 것 혹은 한국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면서도 과거에 비해 소재와 형식에 있어서 다양한 지점을 포괄한다는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의 한인 디아스포라 문학은 그저 서구 문학의 주류에 포섭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독보적인 위치를 확보해 나간다. 이는 소수자성과 결합할 때 더욱 의미 있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리 랑그바드의 문학은 한국의 해외 입양 문제를 다루면서도 여성, 퀴어 문제 등 한 사회 안에서 차별적 시선을 받는 ‘배제된 자’들의 정체성 문제에도 관심을 둔다. 박지선의 『루미너스』도 통일 한국이라는 내부인으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공간적 배경을 통해 새로운 한반도의 미래를 상상한다. 이 미래엔 남한 주민과 북한 주민을 가로지르는 구분 짓기와 더 나아가서는 인간 혹은 인간 아닌 것들을 나누는 차별에 관한 질문이 담겼다. 민족과 나라를 넘어 모든 경계에 대한 고민이 이들 작품 속에 녹아 있다는 점에서, 디아스포라 문학이 우리 세계에 던지는 질문은 언제까지나 유효해 보인다.

한국 문학이 세계적인 영향력을 형성해 가는 이때, 한인 디아스포라의 고전과 새로운 방식을 모색하는 문학 작품들이 올여름 두루 소개됐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지금의 한국 문학을 세계 속에서 어떻게 해석하고 확장해 나갈지 모색해 나가기에 요즈음만큼 적절해 보이는 때도 없어 보인다.

아쉽게도 한국문학번역원이 2022년 창간한 디아스포라 한글문학 웹진 《너머》는 지난해 초 8호를 끝으로 중단됐다. 웹진 활동이 중단되며 번역원 내 디아스포라 문학 관련 연구도 중지된 듯하다. 반가운 일이라면 현재 국립한국문학관이 디아스포라 문학과 관련해 연구 조직 출범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 문화가 세계적으로 높은 관심을 얻고 있는 때, 해외의 한국계 작가들과 이들이 그려내는 이산 문학의 다양한 지점을 연구하고 소개할 조직이 다시 만들어진다면 참 의미 있는 일이겠다. 

고희진
경향신문 문화부 기자, 1987년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