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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안녕은 마을버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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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년 가을호 (통권 101호)
마지막 안녕은 마을버스에서

고개를 내밀자 언덕 위에 서 있는 연두색 마을버스가 보였다. 저기는 종점이고 내가 있는 칼국수 가게 앞이 두 번째 정류장이다. 가게 앞 의자에 나처럼 마을버스를 기다리는 할머니 한 분이 앉아 있었다.

아침에 내린 비 덕분인지 어제만큼 덥진 않았다. 그래도 괜히 목이 타서, 가지고 나온 얼음물을 한 모금 마셨다.

“버스 언제 내려오나?”

깜짝이야, 할머니가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내게 물었다.

“어, 모르겠어요.”

전봇대에 마을버스 시간표가 붙어 있긴 하지만, 평일 기준이다. 오늘은 토요일이라서 맞지 않는다. 그러니 저 버스가 언제 종점을 떠나 여기로 내려올지 알 수 없단 소리다.

초조하게 핸드폰을 확인했다. 오후 2시 40분. 설마, 저 차 말고 앞차를 타고 간 건 아니겠지. 아닐 거다. 만일 계획이 틀어졌으면 김이준과 서은채가 조용히 있을 리가 없다. 어쩌냐, 저쩌냐, 큰일이다, 문자를 보내고 전화를 했겠지.

이게 뭐라고 이렇게 마음을 졸이고 있담. 안 한다고, 나는 빠지겠다고 할걸. 그랬으면 지금쯤 시원한 방에 누워 뒹굴뒹굴 핸드폰이나 하고 있을 텐데.

그때 틱, 단톡방 알람이 울렸다.

- 아직 출발 안 함? 언제 옴?

네 번째 정류장을 맡은 최서아였다. 다들 나처럼 초조해하고 있구나 싶은 마음에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종점부터 지하철역까지, 마을버스 정류장은 모두 열 개. 정류장마다 6학년 1반 아이들이 한 명씩 나와 저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바로, 이선유에게 작별인사를 하기 위해서.

 

이선유는 알 수 없는 애였다. 2학년 때도 같은 반이었지만 별로 안 친했다. 그래도 그때는 얘기도 하고 축구도 같이 하고 했었는데, 6학년이 되어 또 같은 반이 된 이선유는 그림처럼 조용한 애가 되어 있었다. 발표해야 할 때도 가만히 서 있기만 해서 언젠가부터는 선생님도 이선유에게 발표를 시키지 않았다. 가창 수행평가 때는 어땠더라? 노래를 부르긴 했나, 아니면 아예 학교에 안 왔던가? 기억이 안 났다. 내 기억 속 이선유는 그림자처럼 흐릿했다.

그러니 전학 간다는 말을 들었을 때도 별 느낌 없었다. 김이준이 롤링 페이퍼를 쓰자고만 안 했어도, 이선유에 대해선 아무 생각도 안 했을 것이다.

김이준은 무슨 일만 있으면 다 같이 롤링 페이퍼를 쓰자고 하는 애였다. 5학년 때 김이준하고 같은 반을 하는 바람에 담임 선생님은 물론이고 퇴직을 앞둔 교장 선생님, 두 달 동안 뮤지컬을 가르쳐줬던 강사 선생님에게도 롤링 페이퍼를 써야 했다. 그런 김이준이 이런 이벤트를 그냥 넘어갈 리 없었다.

“너무 짧게 쓰지 마. 네 줄 넘게 써줘.”

“연필 말고 좀 예쁜 색깔 없어?”

김이준에 서은채까지 롤링 페이퍼에 집착하는 바람에 꼼짝없이 잡혀 억지로 글을 쥐어짰다. 이선유에게 딱히 할 말도 없는데 말이다. 다른 애들도 나랑 비슷했을 거다. 이선유와 친한 애는 없었으니까.

그래도 어떻게 큰 도화지 한 장을 다 채우긴 했는데, 이걸 받아야 할 이선유가 학교에 안 왔다. 전학 얘기가 나온 화요일부터 금요일이었던 어제까지 죽 결석이었다. 담임 선생님은 이선유가 계속 학교에 오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럼 롤링 페이퍼 어떻게 해요?”

김이준이 물었다. 서은채도 울상이 되어 질문을 던졌다.

“벌써 이사 간 거예요? 이사 간 주소로 보내면 안 돼요?”

“아직 이사 간 건 아니래. 그냥, 선유가 학교 오기가 힘든가 봐.”

선생님은 이선유 부모님에게 연락해서 롤링 페이퍼를 보낼 방법을 찾아보겠다고 말했다.

선생님이 자리를 비우자, 오제현이 롤링 페이퍼를 들고 이리저리 흔들었다.

“괜히 썼다, 받아가지도 않을 것을.”

큰 종이가 찢어질 듯 펄럭였다. 김이준이 얼굴을 찌푸리고 오제현에게서 롤링 페이퍼를 뺏어 들었다. 오제현은 심술궂은 표정으로 자기 머리를 가리켰다.

“이선유 걔 좀 아프잖아. 특히 여기가.” 

“야, 말을 왜 그렇게 해?”

서은채가 화를 냈다. 오제현은 그런 반응이 나올 줄 예상 못 했는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이선유랑 친하지도 않으면서 왜 편을 드냐? 걔 좋아하냐?”

“편을 드는 게 아니라! 너 말하는 게 못됐잖아!”

둘은 거의 싸울 뻔했다. 선생님이 때맞춰 교실로 돌아오지 않았다면 정말 싸웠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롤링 페이퍼 전달은 흐지부지된 줄 알았는데, 학교 끝나고 나오는 길에 김이준에게 붙잡혔다. 나 말고도 우리 반 애들 여럿이 운동장 미끄럼틀 옆에 모였다.

“엄청 좋은 생각이 있어!”

김이준이 신난 표정으로 말을 꺼냈다. 하, 불안했다.

“은채가 그러는데, 토요일 오후마다 선유가 마을버스 타는 걸 봤대.”

서은채가 그 말을 받았다.

“나 학원 가느라 토요일 2시 반쯤 마을버스 타거든. 저기 언덕 위에 종점에서. 근데 그때마다 이선유가 타더라고. 종점에서 타서 지하철역에서 내리더라. 매주 그랬다니까?”

“그래서 뭐, 어쩌자고?”

내 마음처럼 최서아가 되물었다.

“마을버스를 타고 작별인사를 하는 거야, 선유한테!”

김이준이 어처구니없는 계획을 줄줄 늘어놓았다.

“우리가 우르르 몰려가면 선유가 부담스러울 거 아니야. 대신에 정류장마다 한 명씩 타는 거지. 우연히 마주친 것처럼! 그러면 덜 부담스럽지 않겠냐.”

“다 티 나겠다.”

“나중엔 티 나도 되지, 뭐. 재밌겠지?”

내 생각엔 좀 아니었다. 이선유가 우리한테 조금이라도 좋은 감정이 있다면 인사를 하러 왔겠지. 죽 결석하다가 전학 가겠다는 건, 우리에게 아무런 정도 관심도 없다는 거 아닌가. 난 안 해야지. 슬그머니 물러서려는데, 갑자기 서은채가 나를 끌어들였다.

“이서진 너도 해야 해, 너 마을버스 종점 쪽에 살잖아.”

“뭐, 뭘 하라고?”

“네가 두 번째 정류장 맡으면 되겠다. 거기 너희 집 바로 근처잖아.”

거절하자면 거절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랬다간 피도 눈물도 없는 차가운 마음의 소유자로 찍힐 거다. 어쩔 수 없이 나도 하겠다고 했다.

김이준은 단톡방까지 만들었다. 바로 ‘마을버스 작별 프로젝트.’ 너무 거창해서 좀 창피해지는 이름이었다.

 

이게 바로 내가 토요일 대낮에, 언제 내려올지 알 수 없는 마을버스를 기다리며 정류장에 나와 있는 이유였다. 십 분이 더 지났다. 정류장에 나온 지 이십 분이 넘어가고 있었다.

주말엔 마을버스가 덜 다닌다곤 하지만 너무하잖아…. 생각한 순간에, 드디어 마을버스가 움직였다. 동시에 단톡방에 문자가 들어왔다. 종점에서 탄 서은채였다.

- 출발! 같이 탔음!

마을버스는 너무 빨리 내 앞에 도착했다. 기다리던 할머니가 먼저 타고 나도 뒤따라 탔다. 맨 뒷자리에 앉은 이선유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이선유는 야구모자를 푹 눌러쓴 채 창밖을 보고 있었다. 두 자리 앞에 앉은 서은채가 나한테 막 고갯짓을 했다. 인사를 하란 소리였다.

“어, 서은채. 안녕.”

나는 슬쩍 눈을 옮겼다. 그러곤 이선유와 눈이 마주쳤다. 모자챙 아래로 낯선 얼굴이 보였다. 쟤가 저렇게 생겼던가?

“어? 이선유? 너도 있었네. 안녕?”

목소리가 이상하게 나왔다. 아이씨. 이게 뭐야. 나는 재빨리 서은채 앞자리에 앉았다. 됐어, 내 할 일은 다 했다. 사거리 신호에 걸려 멈췄던 마을버스가 앞으로 나아갔다. 세 번째 정류장에서 탄 건 반장인 조민서였다. 조민서는 나보다는 훨씬 연기를 잘했다.

“와, 뭐야? 너희 같이 어디 가? 어? 이선유!”

조민서는 이선유 건너편 자리에 앉았다. 나는 흘낏 뒤를 돌아보았다.

“이선유, 너 전학 간다며.”

조민서가 넉살 좋게 말을 걸자 이선유가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마을버스는 순식간에 네 번째 정류장에 도착했다. 최서아가 타고, 걔는 나만큼이나 삐걱대며 인사를 하고 앞쪽에 앉았다. 이쯤 되면 이선유도 이상한 걸 눈치채지 않았을까.

다섯 번째 정류장에서 김이준이 탔다. 휴, 마음이 조금 놓였다. 김이준이 어떻게든 하겠지. 김이준은 환히 웃으며 이선유를 향해 외쳤다.

“짜잔! 서프라이즈!”

아, 뭐야, 더 어색하잖아! 김이준은 이선유 옆자리에 탁 앉더니 손에 쥐고 온, 빨강 리본이 달린 롤링 페이퍼를 내밀었다.

“이거 우리 반 애들이 쓴 거야. 너 전학 간다고 해서. 아니, 학교 오면 주려고 했는데, 너 안 와서, 이렇게 우리가 모였지! 다는 못 왔지만, 그래도 꽤 많이 나왔다고.”

저걸 저렇게 얘기하냐… 막 얼굴이 화끈거렸다. 이선유는 굳은 얼굴로 롤링 페이퍼를 받아들었다. 별로 좋아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곧이어 여섯 번째 정류장에 탄 정윤지는 맙소사, 꽃다발을 들고 있었다. 꽃이 두어 송이 든 작은 꽃다발이었다. 일곱 번째 정류장의 김주호는 작은 봉투를 건넸다. 선물을 준비했다고 했다. 이선유는 어색하게 봉투를 받았다. 김이준과 서은채가 손뼉을 치자 김주호와 같이 탄 아주머니가 탄성을 질렀다.

"어머, 친구 생일인가 보다. 여기서 파티하니? 너무 재밌다, 너네!”

으, 나는 너무 창피해서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여덟 번째 정류장에서 버스에 탄 것은 의외의 인물이었다. 운동장에서 회의할 때는 없었던, 오제현. 이선유에 대해서 함부로 말하던 애가 여기 나올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오제현은 이선유 앞에 서서 뻘쭘하게 말했다.

“이사 간다며. 어…. 미안했다.”

오제현이 그 말을 할 때 이선유는 없었는데, 왜 사과를 하지? 혹시 오제현이 평소에도 이선유를 괴롭혔나? 오제현 때문에 이선유 전학 가는 거 아니야? 상상이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이선유가 대답을 하지 않아서 더 그랬다.

“제현이가 특별히 인사하고 싶다고 해서, 멀리서 사는데도 와준 거야.”

김이준이 끼어들었다. 그래도 이선유는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마을버스 안 분위기는 그야말로 빙하처럼 얼어붙었다. 오제현은 어디 앉지도 않고, 이선유 너머로 멀거니 창밖만 바라보았다.

이제 지하철역까지는 두 정거장밖에 안 남았다. 아홉 번째 정류장에서는 우리 반에서 제일 웃기는 애인 강의찬이 탔다. 강의찬이 한바탕 크게 소리를 지르며 웃긴 소리를 하는 바람에 그나마 분위기가 나아졌다. 하지만 다들 웃어도 이선유는 웃지 않았다.

마을버스는 큰길로 접어드는 사거리에 멈췄다. 여기서 신호가 바뀌고 조금만 더 가면 지하철역이었다. 김이준이 마무리 멘트를 했다.

“이렇게라도 작별인사를 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선유야, 새 학교 가서도 잘 지내.”

“건강하게 지내!”

“…”

서은채와 다른 애들이 입 모아 인사를 했다. 이선유는 살짝 고개를 들었지만, 여전히 말은 하지 않았다. 얼굴은 웃음기 없이 굳은 채였다.

망했다. 이 프로젝트는 망한 게 분명했다. 괜히 호들갑을 떨어서 이선유를 불편하게 만든 것 같았다.

 

마을버스가 지하철역에 도착했다. 우리는 여기서 이선유를 따라 다 내릴 예정이었다. 그런데, 이선유가 내리지 않았다. 이선유는 앉은 자리에서 꼼짝을 안 했다. 우리 말고 다른 승객들은 모두 지하철역 정류장에서 내렸다.

“더 내리실 분 없으면 출발합니다.”

기사 할아버지가 문을 닫고, 버스가 움직였다. 이게 무슨 일이지? 여기 말고 다음에 내리려나? 우리는 다 같이 이선유의 눈치를 봤다. 이선유는 그다음 정류장에서도 안 내렸다. 그다음에도, 또 그다음에도. 버스가 큰길을 지나, 옆 동네 골목길로 접어들 때까지.

동네 풍경이 낯설어졌다. 친구들이 같이 타고 있는 게 아니었다면 덜컥 겁이 났을 것이다. 마을버스가 가파른 골목을 구불구불 올라가는 동안에도 이선유는 꽃다발과 선물이 든 봉투를 끌어안고 가만히 있을 뿐이었다. 마침내 버스가 반대편 종점에 이를 때까지.

“얘들아, 여기가 종점이다.”

기사 할아버지가 버스 시동을 끄고 먼저 자리에서 내렸다. 그제야 이선유가 자리에서 일어나 열린 뒷문으로 내렸다. 우리는 우르르 그 뒤를 따랐다.

이선유가 우리를 돌아보았다. 모자챙 아래의 얼굴은 여전히 무표정했지만 뭔가 달랐다. 이선유가 어색한 동작으로 종점 앞 슈퍼 아이스크림 냉장고를 가리켰다.

“…하나씩 골라. 내가 살게.”

“와, 신난다!”

서은채가 바로 환호하며 앞서 달려갔다.

싫은 게 아니었구나. 보답하고 싶었던 거구나. 마을버스 프로젝트는 망하지 않은 거였다. 이선유의 흐릿한 인상이 순간 또렷해졌다. 이런 애였구나. 말은 여전히 안 하는 애. 어쩌면 말하지 못하는 애. 그래도, 자기 방식대로 대답하려는 애. 몰랐었다. 이제야 알았다.

모두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골랐다. 아무도 괜찮다거나 안 먹겠다고 하지 않았다. 나는 복숭아 맛 아이스바를 골랐다.

슈퍼 옆 골목 어귀에 서서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골목 아래 펼쳐진 풍경을 바라보았다. 산 바로 아래 높은 동네여서, 구름이 흘러가는 파란 하늘과 그 아래 나란히 늘어선 지붕들이 잘 보였다. 시원한 풍경이었다.

“나 이 동네 살았었는데. 1학년 때까지.”

오제현이 말했다.

“여기 되게 높다. 맞다, 이선유, 너 지하철 타야 하는 거 아니었어?”

김이준이 묻자, 이선유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마을버스를 다시 타야 하나 싶었는데 오제현이 말했다.

“지하철역까지 걸어갈 수 있어. 십 분이면 가. 아니면 십오 분?”

“그러면 우리 걸어가자, 어때?”

서은채 말에 이선유가 또 한 번 고개를 끄덕였다. 오제현이 제일 먼저 앞서고, 우리는 소풍 나온 것처럼 둘씩 셋씩 짝지어 내리막길을 걸어 내려갔다.

김이준과 서은채가 이것저것 물어보는 게 들렸다. 어느 동네로 이사 가? 언제 가? 내일모레? 짐은 다 챙겼어? 이선유는 모자 밑으로 얼굴을 숨긴 채 작고 짧게 대답했다. 잘 안 들렸다. 그래도 한번 또렷해진 얼굴은 흐려지지 않았다.

헤어지는 순간에야 누군가를 알게 되는 건 조금은 슬픈 일. 하지만 하나도 모르는 채로 헤어지는 것보다는 기쁜 일. 지하철역에서 진짜 작별인사를 할 때는 똑바로 얼굴을 보며 말해야겠다. 우리 얼굴이 이선유에게도 조금 더 선명하고 좋은 기억으로 남을 수 있도록.

뭐라고 말할까. 평소라면 말 못 할 민망하고 어색한 말이라도 지금은 괜찮을 것 같았다. 나는 속으로 말을 고르며 아이들과 발맞춰 걸었다.

 

김혜진
아동청소년문학 작가, 1979년생
동화 『일주일의 학교』 『가느다란 마법사와 아주 착한 타파하』 『아로와 완전한 세계』,
청소년소설 『완벽한 사과는 없다』 『프루스트 클럽』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