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화제작
소설 『프로젝트 헤일메리』

영웅 질문? 아니, 친구 평서문.

  • 오늘의 화제작
  • 2026년 가을호 (통권 101호)
소설 『프로젝트 헤일메리』

영웅 질문? 아니, 친구 평서문.

 

이 소설은 지난 3월 개봉한 필 로드·크리스 밀러 감독의 영화 〈프로젝트 헤일메리〉의 원작이다. ‘헤일메리(Hail Mary)’는 미식축구 용어로 마지막 한 방을 노리고 던지는 패스를 뜻하는데, 작품 속 프로젝트는 문자 그대로 종말 직전 인류가 쏘아 올린 마지막 희망이다. 문제는 긴 수면 끝에 간신히 깨어난 남자, 인류의 미래를 짊어진 남자가 왜 우주 한복판에 왔는지, 직업이 무엇인지, 심지어 자신의 이름이 무엇인지조차 기억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요컨대 다정한 외계 생명체인 ‘로키’와의 우정으로 기억되는 이 서사가 던지는 첫 번째 질문이 ‘Who are You?’가 아니라 ‘Who am I?’였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너는 누구인가?’라는 질문과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소설 내내 나란히 놓이는 두 종(種)의 생명체, 두 대의 우주선처럼 길항하며 서로를 지탱한다.

기본적으로 소설과 영화는 비슷한 궤도를 그린다. 은퇴한 과학자이자 중학교 과학 선생님인 ‘그레이스’는 헤일메리호를 탐색하며 자신이 지구를 구원할 마지막 희망임을 깨닫고, 같은 목적을 가지고 타우 세티 항성계에 도착한 외계 생명체 로키를 만난다. 대기부터 중력까지, 달라도 너무 다른 두 존재가 함께 임무를 수행한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익숙한 ‘버디(buddy)’ 서사를 공유하지만, 소설은 과학적 인과에 있어서 영화보다 훨씬 더 섬세한 태도를 보인다. 태양을 잠식하는 미지의 적외광선인 페트로바 선과 신체 구조부터 감각 체계까지 모든 것이 이질적인 로키. 소설은 낯선 타자에 대해 ‘그들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 뒤, 그 답을 구하는 언어로써 과학과 수학을 택한다. 이 선택은 서로 다른 두 존재의 대화가 감정과 직관에 기댄 소통에 그치는 것을 막아준다. 막연한 이해(理解)는 언제든 오해로 뒤집힐 수 있지만, 물리 법칙과 수식으로 검증된 이해(利害)는 서로 다른 진화를 거친 두 존재 사이에 든든한 교각이 되어준다. 덕분에 그레이스와 로키의 우정 역시 단순한 감상으로 흐르지 않고 매 순간 근거를 더해가며 견고히 쌓인다.

또 다른 차이는 서브플롯의 두께다. 영화와 달리 소설은 지구의 이야기를 자세히 그린다. 프로젝트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인류는 남극에 핵을 떨어뜨리거나, 사하라 사막 전체를 농장으로 만드는 등 식어가는 태양과 함께 멸망해 가는 지구에서 살아남기 위해 갖가지 수단을 동원한다. 그러나 인간과 인간의 대화는 저마다의 수지타산이 뒤섞여 번번이 좌초된다. 30년 안에 기온이 10도(°C) 이상 떨어지고, 전 세계가 극심한 기근과 그로 인한 전쟁에 휩싸일 것이 분명한 상황에서도, 인간은 각자의 주장만 되풀이한다. 이러한 소통 실패는 그레이스가 지구를 떠나기 전부터 예견된 일이었다. 예컨대 그가 처음 페트로바 선을 분석할 때, 그는 실험실 안에 홀로 남겨져 있었다. 겹겹의 문과 벽 너머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그레이스의 안전이 아니라 페트로바 선의 비밀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방식은 그를 우주에 보낼 때도 똑같이 반복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생환을 진심으로 바라는 것은 오직 로키뿐이다. 인간은 인류를 위해 희생할 영웅을 원하지만, 로키는 자신의 친구가 무사히 집으로 돌아가기를 바란다.

한편 그레이스와 로키는 처음부터 서로를 환대하는데, 이는 그레이스가 처한 조건에서 비롯된다. 그는 광활한 우주에 홀로 남겨진 인간이며, 기억조차 온전하지 않다. 자신을 증명할 서사가 비어 있기에, 역설적으로 타자가 들어올 여지가 넓었다고 해야 할까. 그에게는 두 개의 숙제가 있는데, 머리로 풀어야 할 숙제가 페트로바 선의 비밀이라면 마음으로 풀어야 할 숙제는 한없는 고독과 외로움이다. 로키는 두 개의 숙제를 푸는 데에 있어 모두 도움을 준다. 여기에 그레이스의 캐릭터가 더해진다. 그는 학계 권위자를 공개적으로 비판해 비주류로 밀려난 인물로, 소위 말하는 사회생활에는 젬병이지만 옳다고 믿는 것을 굽히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정직하고, 삶을 비관하는 대신 아이들을 가르치는 새 인생을 선택했다는 점에서는 낙관적인 인물이다. 그뿐만 아니라 학생들을 가르치는 그의 모습을 통해 그가 학교에서 체화한 것 중 하나가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를 상상하고 그것을 위하는 마음임을 알 수 있다. 범박하게 말하자면 그레이스는 과거가 비어 있는 대신 미래를 향해 열려 있는 인물이다.

그런가 하면 로키는 시종일관 그레이스를 배려하는 방식으로 소통한다. 로키가 그레이스에게 처음 건넨 것은 일종의 편지였는데, 너무 빠르게 던져 튕겨 나간 이후 로키는 그레이스가 움직이는 것과 비슷한 속도로 편지가 담긴 원통을 다시 던진다. 상대 속도에 자신을 맞추는 것, 그것이 로키의 대화법인 셈이다. 또한 두 존재의 첫 대화는 모방으로 이뤄진다. 그레이스의 몸짓을 그대로 따라 하는 로키의 몸짓은 ‘당신이 나를 해치지 않는다면 나도 당신을 해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보여주는 듯하다. 이렇듯 첫 대화에서 로키는 ‘너는 누구인가?’라고 묻는 대신 ‘나는 누구이다’라고 먼저 알려준다. 항성계 모형을 만들어 자기 고향을 표시해 알려주고, 8개짜리 고리 두 개로 이루어진 산소 원자 모형을 건네며 그레이스가 숨 쉴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해 준다. 그레이스가 로키의 말을 믿고 헬멧을 벗는 순간—틀리면 죽음뿐인 그 순간—은 그레이스의 용기와 로키의 배려가 만나 이룬 작지만 큰 기적이다. 그렇게 쌓인 믿음 위에서 서로 다른 별에서 온 두 대의 우주선을 잇는 터널, 대화와 희망의 창구가 만들어진다.

이 소설의 매력은 각자의 별을 구하는 두 존재가 ‘영웅’이 아니라 ‘친구’가 되기를 선택한다는 데에 있다. 자기 실수로 로키가 죽으리라는 사실을 알게 된 그레이스는 지구로 돌아가는 대신 로키를 구하러 가기를 택한다. 로키 역시 자신의 연료를 나눠주면 그레이스가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 주저 없이 그러기를 선택한다. 그런데 페이지를 넘기다보면, 친구가 되려는 마음과 영웅이 될 수 있는 자질이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애초에 페트로바 선의 비밀을 알아낼 수 있었던 것도 그레이스와 로키가 친구가 되었기 때문이니, 그들은 친구가 되지 않고서는 영웅도 될 수 없었던 셈이다. 다시 말해 인류의 영웅이 된 ‘그레이스(Grace)’가 가진 가장 ‘우아한’ 품위는 나와 다른 존재와도 친구가 될 수 있는 다정함이다. 멸망을 앞둔 소설 속 세계와 그리 멀지 않은 세계를 살고 있으면서도 적대와 전쟁이 판을 치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영웅이 아니라 친구일지도 모른다. 우리에게는 나와 다른 존재에게 “아니. 너 죽을 수 없음. 너는 친구.”(675쪽)라고 말할 수 있는 마음, 그 마음을 번역할 ‘새 단어’가 필요하다. 그 단어를 찾는 일이 이렇게나 어려워서, 우리는 이토록 긴 이야기를 읽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너… 너는 죽을 수 없음.” 그의 목소리가 낮아진다. “나 너 죽게 두지 않음.” (674쪽) 

 

하혁진
평론가, 1996년생
평론 「감각의 질서와 그녀들의 환상통」 「멸망 이후의 에피파니」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