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밀을 먹다가 눈을 가늘게 떴다. 눈물이 나려고 했기 때문이다. 겨자나 와사비를 많이 먹어 코끝이 찡할 때 이 방법은 상당히 효과가 있다. 나름 ‘겨자 먹다가 눈물 멈추기’ 분야 권위자 말이니 한번 믿어봐도 좋다. 눈꺼풀을 관장하는 근육인 안륜근(眼輪筋)이 눈물 누름돌 역할을 한달까. 너무 거세게 압박하면 눈물이 똑 떨려 나올 수도 있으니 지그시 눌러야 한다.
내가 말한 ‘모밀’이란 메밀국수다. 나는 ‘모밀’이라고 썼는데 한글의 자동 교열 프로그램은 ‘메밀’로 교정했다. 메밀과 모밀은 다른 음식이라고 생각한다. 니하치 소바나 주와리 소바처럼 메밀 함량이 100퍼센트에 육박하며 희끄무레한 면발로 된 순도 있는 국수는 메밀이다. 모밀이라고 해야 내 기억 속의 그 음식을 온전히 가리키는 것 같다. 모밀이라고 해야 그 거무튀튀한데 실상 메밀은 얼마 섞여 있지도 않으며, 심지어 찰기까지 있던 그 음식을 불러오는 것 같다. 메밀은 잘 뭉쳐지지 않아 퍼석거리고 툭툭 끊어지는 성질의 곡식인데 찰기라니, 역시 모밀은 모밀인 것이다.
한때 내게 모밀이란 가장 이국적인 음식이었다. 가정이 아닌 밖에서 먹는 음식이라 그랬다. 내가 가던 그 모밀집은 번화가에서 한두 블록 들어간 위치에 있었다. 게다가 움푹 들어간 벽감처럼 골목 막다른 곳에 있다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간판 아래에는 포렴이 바람에 날리고 있었고, 당시의 나는 포렴이라는 단어를 알지 못했으나 ‘모밀’이라는 흰 글자가 박힌 파란 천이 바람에 날리는 모습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스카프 하나 휙 둘렀을 뿐인데 어찌나 맵시가 있는지 기어코 돌아보게 만드는 사람 같다고 할지.
![]() 메밀국수를 좋아하는 사람은 유림면의 메밀임을 알아차리겠지만 두툼하고 비스듬하게 썬 단무지와 장국을 유기 그릇에 주는 게특징이다. |
모밀을 먹으러 갈 때의 나는 상당히 신나 있었다. 손에는 새 책이 들려 있었고, 곧 좋아하는 음식을 먹게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아빠는 서점에서 책을 한 권 고르게 하고 나서 모밀집으로 나를 데려갔다.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인지라 모밀집만 갔을 리 만무하지만 나는 모밀집만 기억하고 있다. 아빠는 나를 자주 서점에 데려가 원하는 책을 고르라고 하고는 한 권을 사줬다. 딱 한 권이었다. ‘사랑’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제목의 책을 골랐다가 머리를 한 대 맞고 싫은 소리를 들었을 때(그때의 수치심이 여전하다) 말고는 언제나 내가 고르는 책을 사줬다. 『플루타르크 영웅전』이나 『그리스 로마 신화』 같은 책을 고르면 흡족해했던 그가 본인은 막상 책을 읽지 않는다는 게 나는 의아했다.
당시의 그는 삼십 대 후반이거나 사십 대 초반이었다. 동글납작한 얼굴에 네모난 안경을 썼던 그는 김정일이거나 가수 조영남을 닮았다는 인상을 주었는데, 칠십 대가 된 지금도 여전히 청바지나 워커 같은 차림을 선호한다는 게 상당히 조영남 같다. 조영남처럼 야구모자를 머리에 슬쩍 얹고 싶으나 본인의 두상이 작아서 그럴 수 없다고 한탄하는 그. 삼십 대 후반의 그에 대해 떠올린 것은 삼십 대 후반인 남동생 때문이다. 첫딸을 낳은 동생이 딸을 지극하게 보살피는 걸 보면서 그도 자신의 첫딸에게 어느 정도는 그랬겠군이라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다. 서점과 모밀집에 다닐 때까지만 해도 아빠와 나는 나름대로 각별한 사이였다. 감기에 걸린 한 살짜리 조카의 보양을 위해 동생은 여수에서 주문한 하모의 뼈를 하나하나 발라내 하모죽을 끓였다고 했나. 그리고 아빠를 위해서는 하모로 보양탕을 끓여 왔다.
아빠는 하모탕을 잘 먹지 못했다. 그러고는 최근에 하기 시작한 생경한 그 말을 했다. “요즘엔 입맛이 없어.” 절대 꺾이지 않는 식욕과 줄어들지 않는 음식에 대한 호기심으로 늘 나를 놀라게 하던 그가 이런 말을 하는 날이 올 줄이야. 그리고 그 힘없는 목소리라니. 꽤 오래 자신을 삼십 대로 생각하며 살아온 그는 삼십 대의 식욕을 잃은 후 빠르게 늙어가고 있다. 나 역시 그런 사람 딸이라 모밀집에 갔던 게 어제의 일 같고 열 살 무렵 나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그 모밀집은 이제는 없다. 이름도 기억나지 않고, 모밀이 한 판에 얼마였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무슨 무공 훈장이라도 되듯이 위세 넘치게 모밀 판을 척척 쌓아 올리던 지금보다 젊고 지금보다 많이 먹고 지금보다 사납던 그가 떠오를 뿐.
나는 여전히 모밀을 좋아한다. 이제는 모밀이 아닌 메밀이라고 쓰인 그것을 주문하며 나는 여전히 이렇게 말한다. “모밀이요”라거나 “판이요”라거나. 뭐가 많지 않고 간결하다는 것이 어린 내 마음을 끌었던 것처럼 나무 판에 담겨 나온 모밀 가락과 대파와 무 그리고 겨자를 보면 여전히 가슴이 설렌다. 겨자 대신 와사비일 때도 있는데 나는 겨자를 더 좋아하는 편. 모밀에는 겨자가 더 어울린다는 생각. 어쨌거나 이 요소들이 하나하나 모두 완벽한 메밀 국숫집을 나는 알지 못한다. 어딘가 약간씩 아쉬운 점이 있는 메밀 국숫집에서 나는 좋은 점 위주로 보려고 한다. 나는 메밀을 오래도록 먹고 싶은 사람이니까.
각이 서 있는 면과 보리차처럼 연한 색의 장국이 있는 ‘미진’, 얇게 썬 대파의 균질함과 직접 담근 두툼한 단무지가 좋은 ‘유림면’, 칼날 구멍이 굵은 강판으로 힘을 주어 썩썩 밀었는지 유난히 입자가 살아 있는 무즙을 주는 ‘그집’, 이런 식이다. 세 집의 메밀에 대해서 누군가와 어느 게 좋고 나쁜지 의견을 나눠본 적은 없다. 어린 시절, 그 모밀집에서도 삼십 대 아빠와 그런 이야기를 했던 것 같지는 않다. 그는 모밀을 먹는 자신에 심취했었고, 그의 딸 역시 그러했을 것이다. 모밀에 겨자를 얹는 것처럼 책 이야기도 조금은 했을지도.
나는 그가 메밀국수에 대한 어떤 취향을 가졌는지, 어떤 견해가 있는지 알지 못한다. 영원히 모를 것이다. 입맛이 없다는 요즘의 그에게 메밀은 어떨지 궁금하다. 하지만 그와 메밀을 먹을 일은 없을 것 같다. 지금의 내가 그때의 내가 아닌 것처럼 지금의 우리도 그때의 우리가 아니라서. 그래서 이 또한 영원히 모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