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상실과 회복의 스승
영원한 상실과 회복의 스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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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리(1926~2008) 1955년과 1956년 『현대문학』에 단편 「계산」과 「흑흑백백」이 김동리에 의해 추천받아 등단하였다. 초기 단편소설 창작 이후 전후 현실 속 여성의 고통을 그렸고 1960년대 이후에는 장편소설을 주로 발표하였다. 특히 대하소설 『토지』는 근현대사 속 다양한 인간들의 갈등과 고난을 깊이 있게 다루어 민족과 역사를 총체적으로 조망하였을 뿐 아니라 한국어가 지닌 미적 특질을 최대한으로 살린 한국소설사의 역작으로 평가받는다. |
![]() 박경리 소설가 |
나에게 심연 같은 유아기의 상실된 영역을 지나 빛처럼 선명하게 떠오르는 최초의 기억은 내가 할머니를 위해 선물을 고르는 장면이다. 당시 나는 가족들과 함께 겨울 길을 거닐다 갑작스레 인근 골동품가게를 구경하게 되었다. 거기서 류트를 연주하고 있는 자그마한 천사 조각상을 보고서 할머니에게 꼭 선물해 드리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내가 고른 천사 조각상을 할머니의 생일날 선물했다. 할머니는 너무나 기뻐하며 그 조각상을 소중히 하였고, 또 언제나 생각이 날 때마다 내게 그 조각상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것을 고른 내가 얼마나 미적 감각이 탁월한지에 대해 칭찬해 주셨다. 그런데 나는 그때마다 기쁜 마음보다 커다란 의문이 들었다.
‘할머니는 정말 그것이 마음에 드셨던 것일까?’
아마도 그때부터 나는 할머니가 어떤 분이신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어린 내 눈에도 종종 할머니는 평범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할머니 말에는 다른 사람들을 압도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것은 단지 작가라는 위치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인격 자체로부터 나오는 것이었다. 그러나 손자인 나에게 할머니는 여느 할머니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게 애정이 넘치는 태도를 보이셨고, 나는 할머니 품에 안길 때면 많은 결핍을 보상받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이미 어린 나이에도 자신이 별로 쓸모없다는 깊은 좌절감과 고독을 안고 있었는데, 오로지 할머니와 함께 있을 때 그런 자신에 대한 느낌을 떨쳐버릴 수 있었다.
나약하고 작은 존재에 대한 무조건적인 긍정과 사랑. 그 절대적인 사랑이 단지 내가 손자이기 때문에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된 것은 할머니가 쓰신 시와 산문을 읽게 된 무렵부터였다. 그것은 할머니가 가진 본질적인 모습이었다. 그러나 아직 어린 시절이던 당시 나의 이해는 거기에 도달하지 못하였다. 할머니 인격을 이해하지 못하였기에 여전히 할머니는 신비로운 탐구 대상이었다.
초등학생 시절 약 반년 간 부모님 곁을 떠나 할머니 집에서 살았던 시간이 있었다. 할머니는 나와 형에게 종종 정원 중앙에 섬처럼 고립된 곳에 심겨 있는 살구나무에서 열매를 따주기도 하셨다. 할머니가 직접 파서 만든 연못에는 물고기들이 자유롭게 헤엄치고 있었고, 떠도는 길고양이들은 할머니가 하루 두 번 직접 만들어주는 끼니를 위해 정원을 집처럼 드나들었다. 이기적인 아이 눈에 그곳은 가장 천국에 가까운 곳처럼 보였다. 당시 할머니의 집은 공사하다 남은 붉은색 벽돌이 가득했다. 나는 언제나 그 벽돌들로 나만의 작은 집을 만들고 놀았다. 그렇게 천국 안에 작은 나만의 공간을 만들려는 시도는 그다지 진지한 것은 아니었다. 매번 지었다가 허물어버리는 놀이에 불과하였다. 당시 나는 한창 자신만의 비밀 기지를 꿈꿀 나이였지만, 사실 그 자유로운 상상의 무대는 할머니 집 자체였다. 그러나 나는 때로 할머니 집 지하실이 깊은 지하 세계와 연결될 것만 같아 두려워했고, 한밤중이 되었을 때는 집 밖의 정원 또한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할머니의 집에도 내가 접근하지 못하는 그림자가 있었다.
하루는 밤중에 집 밖에 나가기를 두려워하는 내가 할머니에게 귀신을 만날 것 같아 무서워서 나갈 수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자 할머니는 그들도 불쌍한 존재들일 뿐이라고 내게 말해주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통해 나는 그토록 알고자 했던 감추어진 할머니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다. 아직 어린 내게도 그 이야기는 분명히 마음에 새겨졌다. 선과 악, 두려움과 사랑을 넘어서는 시선으로 무언가를 바라볼 수 있다니! 나는 진정 그런 눈으로 모든 존재를 바라보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오늘도 분열하고 갈등하는 존재로 살아간다.
![]() 박경리 소설가와 필자 |
청소년기에 접어들며 나는 할머니와 소원해졌다. 나는 모든 것에 마음을 닫았고, 할머니의 공간에서 잠시나마 경험했던 충만한 천국을 더 기억하지 못했다. 대신에 허물 수 없는 단단한 벽을 쌓았다. 그렇게 자신만의 숨 막히게 편협한 공간에 틀어박혀 시간을 보내다 이십 대의 어느 날, 나는 원치 않았던 할머니의 또 다른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것은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일 년 전에 있었던 일이었다. 나는 어머니에 대해 불평하는 할머니에게 처음으로 반기를 들며 어머니를 변호했고, 할머니는 내게 처음으로 화를 내었다. 어머니에 대한 더욱 강한 비난으로 할머니의 이야기는 끝을 맺었고, 나는 가족들과 주변 사람들이 종종 보았던 예민한 할머니 모습을 처음으로 목격하였다. 어머니와 할머니 사이는 깊은 애정 때문에, 오히려 서로 틀어지고 갈등을 겪는다는 사실을 나는 깊이 이해하지 못했고, 그것은 상실에 대한 할머니의 깊은 불안에서부터 나온다는 것을 처음에는 알지 못했다. 나중에 『불신시대』와 『돌아온 고양이』를 뒤늦게 읽고 비로소 할머니의 절대적인 상실과 그것을 견디며 살아온 삶이 어땠을지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나는 이 소설들로 표현된 할머니의 상실에 대해 말할 때마다 눈물을 참을 수가 없다. 이제는 나에게도 자녀가 있기에 그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경험인지 상상하기조차 괴로운 일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돌아가신 후에도 할머니는 참 오랜 시간 동안 꿈에 나타나셨다. 할머니는 집안에 숨겨진 비밀 서재에서 여전히 집필하며 계시기도 하셨고, 젊은 날의 모습으로, 또는 사실은 아직도 건강히 살아 계신 모습 등으로 나오셨다. 그러한 할머니 모습은 내게 회복해야 할 온전한 인격과 내면의 안전지대이자 선과 악, 빛과 그림자와 같이 나를 고통스럽게 만드는 대극적인 가치를 통합하기 위한 형상으로 나타났다.
나는 할머니가 남기신 재단과 작품들을 통해 아직도 할머니의 모습을 보고 있다. 그것은 인간으로서 인내하며 살아가신 할머니의 모습들이며, 나를 하나의 온전한 인간으로 이끌어주는 인도자의 모습이기도 하다.
나는 오늘도 할머니를 궁금해하며 탐구하며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