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나무의 고통에 공감하다

여러 사례들, 그리고 이성직의 <펄프 픽션>(2023)

  • 기획특집
  • 2026년 가을호 (통권 101호)
나무의 고통에 공감하다

여러 사례들, 그리고 이성직의 <펄프 픽션>(2023)

여러 사람에게 알려져 사랑받는 나무가 훼손된 사건이 최근 연이어 발생하고 있다. 2026년 5월 23일 한겨레신문의 최초 보도와 6월 4일 《한겨레21》의 후속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 종로구 부암동 환기미술관 돌담 옆의 은행나무가 한창 녹음을 자랑해야 할 5월에 마른 잎사귀를 우수수 떨어뜨렸다. 길바닥을 덮은 낙엽을 이상하게 여긴 주민들이 살펴보니 나무 밑동을 따라 구멍이 여러 개 뚫리고 플라스틱 주입기가 꽂혀 있었다. 조사 결과, 미술관에서 은행나무에 제초제를 투입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1) 여론의 비난에 직면한 미술관은 사과문을 올리며 “해당 나무(나무뿌리)의 현황으로 미술관 담장이 붕괴하고 있음을 확인”2)했기에 주민들의 안전사고를 예방하고자 조치한 것이라 변명했다.

이어서 6월 24일 수원 팔달구 남수동의 홍 모 씨 부부는 자택 대문가에서 23년 동안 애지중지 가꾼 분홍 장미 가지 십수 개가 잘려 나간 것을 발견하고 큰 슬픔에 빠졌다. 수십 년 넘게 자란 장미 나무는 파란색 페인트를 칠한 철제 대문과 어우러져 봄마다 풍성한 꽃가지를 드리웠는데, 꽃이 만개하면 멀리서도 여러 사람이 찾아와 그 아름다움을 감상하고 사진을 찍으며 기억에 남긴 것이었다. 범인으로 추정되는 자들은 홍 모 씨의 인스타그램에 “장미를 제 대문 밖에 키워 여러분께 많이 보이고 싶은 욕심이 앞서서,”3) 한밤중에 가지를 훔쳐 자기 집에 삽목했다고 털어놓았다.

수원 파란 대문 집의 장미 훼손 사건에 많은 이가 몇 년 전에 발생한 경산시 자인면 능소화 절단 사건을 다시 떠올렸다. 집주인 김철영 씨(당시 50세)가 초등학교 시절에 어머니가 심은 능소화 씨앗은 반세기 가까이 적산가옥의 담장 너머 2층 높이까지 자라났다. 오래된 건축물과 함께 나이 들어가는 능소화 넝쿨은 독특한 풍취를 자아내며 수원 남수동의 분홍 장미와 마찬가지로 낯선 이들이 찾아와 즐기며 찬미하는 대상이 되었다. 그런데 2022년 5월 김영철 씨는 능소화 밑동이 완전히 잘린 것을 뒤늦게야 알아차렸고, 안타깝게도 시간이 오래 지났기에 범인을 찾을 수 없었다.4)

2023년과 2024년 사이 전주에서는 시청 주도로 전주천 남천교 근방의 강둑 13km를 따라 자생하는 버드나무 260여 그루를 포함하여 1,000여 그루 넘는 나무를 무참하게 베어버렸다. 시청 관계자들은 홍수 예방을 위해 “벌목이 불가피했다”5)며 대규모 살상을 합리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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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각 그리스어와 라틴어에서 유래한 영어 단어 “sympathy”와 “compassion”은 어원을 공유한다. 고통(pathos)과 수난(passion)을 함께한다(sym-, com-)는 것이다. 공감한다는 것은, 나의 신체가 구타당하고 상해를 입을 때, 나의 인격과 존엄이 모욕받을 때, 나의 소유물에 손괴가 발생할 때 외에, 너에게 폭력이 내리쳐 네가 고통받을 때 나 역시 너처럼 격심하게 괴로워한다는 것이다. 공감할 때 우리는 그저 마음으로만 아파하는 데 그치지 않고 몸으로도 통증을 느낀다. 타자의 고통은 내 몸으로 전염된다. 고통의 전염은 인간뿐만 아니라 비인간 존재들로부터도 일어난다. 우리는 타인뿐만 아니라 동물, 식물, 사물, 세계 그 어느 것에 가해지는 폭력을 마치 자신의 것인 양 함께 겪을 수 있다.

위에 언급한 나무들이 당한 폭력에 누군가는 아무런 동요 없이 완전히 무감하기도 할 것이다. 온 동네 사람이 아끼는 200년 수령의 나무보다 사유지 관리가 중요하니까, 사람을 죽인 것도 아닌데 그깟 꽃나무 좀 베어냈기로서니, 부동산 경기 부양과 행정가 치적 과시를 위해서라면 아까운 땅을 차지한 나무들은 없애야 마땅하니까. 이러한 무감의 태도는 자기와 타자가 연결되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는 데서 나온다. 나무를 생명체로 존중하고 그것이 뿌리내려 살아온 역사를 상상하는 대신 이익과 손해라는 계산적 가치의 품목으로만 여긴다.

바꾸어 말해, 나무의 고통에 우리도 고통을 느낀다면, 그것은 우리가 나무와 어떤 식으로든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엮이고 얽혔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연결감은 우선 한 장소에서 일정 시간을 함께 보낸 존재들 가운데 생겨난다. 연결감으로 엮이고 얽힌 존재들은 같은 사건을 통과하고, 기억을 공유하고, 그것을 동시대와 미래의 다른 존재에게 전하면서 연결의 망을 확장한다. 연결하기는 따라서 생을 지속하기이기도 하다. 부암동의 수백 살 은행나무는 주민들에게 이웃 공동체의 소속감을 주면서 그들 사이를 연결한다. 전주천의 버드나무도 시민들에게 그러하다. 게다가 강변의 버드나무 군락에는 물억새, 갈대, 갯버들 같은 다른 식물이 식재되고 흰목물떼새, 쉬리, 모래무지, 수달, 삵이 모여들어 생명다양성의 현장을 구현했다고 한다.6) 따라서 나무를 모조리 베어냈다는 것은 도시민이 즐길 만한 풍경이 사라져서가 아니라 이처럼 다종다양한 생물이 오래도록 형성한 복잡한 연결의 세계를 망가뜨렸다는 데 진실로 위급한 문제가 있다.

남수동 분홍 장미의 주인인 홍 모 씨는 “내 팔이 떨어져 나간 것 같았어요. 꽃 몇 송이가 아니라, 23년의 시간이 잘린 거예요”7)라 말하며 눈물을 흘리는데, 이는 인간과 비인간의 연결에 관한 더할 나위 없이 진솔한 증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수십 년의 시간 동안 장미를 돌본 사람은 그것과 자기 몸을 충분히 동일시할 수 있다. 경산의 능소화도 그렇다. 어머니에게서 자식으로 이어지는 가족의 내력에 식물이 얽혀 있다. 집과 사람과 꽃이 시간으로 엮이고 얽힌 동네에 타지의 사람들이 내력을 듣고 찾아와 사진을 찍는 것 역시 나무가 행하는 엮음과 얽음의 작용이다. 아름다움이라는 감각적 인식과 이야기라는 언어 행위에 인간뿐만 아니라 나무라는 비인간도 참여한다. 나무는 아름다운 이야기의 테마나 대상에 그치지 않고 그것을 생성하는 주요 행위자로서 사람들을 엮어 연결한다. 나무를 자르고 죽이는 것은 나무가 연결하고 나무로 연결되는 세계를 토막 내고 말살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자연 생태계는 물론 인간 공동체도 고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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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의 양상과 강도는 같지 않다.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도 다르다. 나무의 고통에 안타까워하는 동정심에 머무르는 대신, 더 나아가, 나무에 가해지는 폭력에 적극적으로 저항할 수 있다. 분노의 힘을 공동체 안에서 합리적으로 사용하여, 시민사회, 학계, 법조계, 환경단체가 연대하여 훼손된 나무를 살리고 더 이상의 벌목을 막는 실무적 행동을 전개하는 것이다. 이와 별도로, 나무라는 타자를 자기 안에 훨씬 깊이 이입하는 자들은 나무가 겪는 폭력을 실제 자기 몸에 가해진 것으로 지각한다. 그리하여 나무의 살상을 목도하며 마치 독성 제초제를 마신 것처럼 내장이 뒤틀리는, 자기 몸 일부가 잘리는 것 같은, 뿌리째 내팽개쳐진 듯 휘청거리는, 인간의 언어를 잃어 목이 막히고 혀가 굳는, 여러 증상을 겪는다. 이들은 나무의 살상을 막기 위한 시민적 투쟁에 동참하면서 동시에 저항의 예술적 형식을 고안하려 한다. 연극연출가 이성직의 작업이 이에 속한다.

이성직의 <펄프 픽션>(2023)은 글쓰기, 출판, 설치, 퍼포먼스를 순차적으로 종합한 무대 예술로, 작가 자신의 소개에 따르면, “집 앞 은행나무가 인간의 편의에 의해 강전정(강한 가지치기) 되는 광경을 목격하고 화가 났던 감정을 복수의 이야기로 각색한 뒤, 잘린 나무의 부산물(펄프)로 만들어진 종이에 인쇄해, 관객 1인이 극장에서 독서하며, 나무-배우를 마주해보는 공연”8)이다. 2023년 늦가을 연극 실험실 혜화동 1번지에서의 공연에서, 참여 회차를 예약한 관객은 극장에 혼자 잠입하자마자 어둠 속에 도열한 텅 빈 나무 책장들에 위압되었을 것이다. 책상에는 『펄프 픽션』 한 권이 놓여 있다. 지하 극장은 목재와 종이라는 나무의 사체를 매장한 장소이다. 도굴꾼, 혹은 애도객, 어느 쪽이든 관객은 어둡고 써늘한 현실(玄室) 안에서 나무의 살상에 관한 이야기를 읽어야 한다.

『펄프 픽션』에서 이성직은 2023년 3월 초순의 경험을 일기 형식으로 기록한다. 젊은 부부가 매입한 작은 4층 빌라의 창밖으로 어느 날 아침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 내다보니 구청에서 나온 사람들이 가로수를 가지치기하고 있었다. 전기톱에 나뭇가지가 무참히 잘려 나가는 광경에, 직전까지 그것이 은행나무인지조차 몰랐을 만큼 관심이 없었음에도, 이성직 또는 서술자는 굉장한 분노를 느낀다. 서술자 스스로 불가사의하게 여기듯, 이 정도로 강렬한 분노를 겪은 적은 그의 삶에서 처음이다. 이처럼 강력한, 새로운, 정동으로 인해 그는 죽음 같은 마비와 무력함에 사로잡히면서 다른 한편으로 자기 앞에 던져진 과제로서 싸움의 예술적 방법을 모색하느라 열렬하게 생동한다.

『펄프 픽션』의 서술자는 구청에 항의 민원을 보내고, 은행나무 진화의 역사와 은행나무의 도시 지리학을 조사하고, 유명한 은행나무 관광지를 답사하는 등, 강전정을 목격하고 생겨난 분노를 교양 있는 시민으로서 승화하느라 여념이 없다. 이러한 일련의 활동에 몰입하면서 그의 삶은 은행나무와 점점 더 조밀하게 엮이고 얽힌다. 그의 활동 기록을 통해, 몰입이 과도해지며 점차 망상의 경계에 위태롭게 가닿는 환시에, 그리고 이웃 주민과의 에피소드 덕분에, 독자는 은행나무가 도시의 지리 안에서 여러 인간과 비인간의 일상을 연결하는 매개체이자 행위자라는 사실, 그리고 자연의 생물종을 넘어 인간의 법, 제도, 산업의 이해관계에 얽힌 자연문화적 존재라는 사실을 새삼 인식한다.

지적 호기심과 탐구욕이 강한 『펄프 픽션』의 서술자는 은행나무의 진화에 관한 흥미로운 학술 정보를 제공한다. 이에 따르면, 은행나무는 페름기 제2차 대멸종에서 살아남아 중생대 쥐라기와 백악기에 번성했다. 은행나무가 풍매로 번식하는 자웅이주라는 약점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멸종의 위기를 여러 차례 넘긴 까닭은 지질시대가 바뀔 때마다 트리케라톱스와 스테고사우르스 같은 초식공룡과 현생인류를 공진화의 파트너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은행나무는 다리 달린 공룡과 인간에게 자기 열매를 식량으로 제공하면서 서식지를 넓혔다. 공룡이 멸종하며 은행나무의 다양성은 10여 종에서 단 1종으로 감소했고, 게다가 오늘날에는 한반도를 비롯한 동아시아에서만 흔한 수종이 되었다.9)

이와 관련하여, 인류학과 생물학 연구에 따르면, 생물종 하나가 멸종하면 지구상에서 그것 하나만 사라지는 게 아니라 그것과 공생과 공진화 관계로 얽힌 다른 종도 멸종할 우려가 있다. 나무의 종자가 담긴 열매를 먹으며 이동하는 동물이 멸종하면 그 나무도 번식이 쇠한다는 것이다. 애나 칭을 비롯하여 인류세의 생태계 교란에 주의를 기울이는 연구자들은 이렇게 쇠하여 겨우 잔존한, 현재로 거듭 회귀하는, 과거의 삶의 양식을 유령이라 칭한다. “모든 풍경에는 과거의 삶의 양식이 유령처럼 출몰하여 그것에 사로잡혀 있다.”10) 그렇다면, 멸종 위기의 은행나무가 유달리 번성한 한반도, 특히, 한국인에게 너무나 친숙한 은행나무 가로수길의 전형적 풍경은 1억 5천만 년 전 공룡 시대로부터 잔존한 희귀한 유령이라 할 수 있다. 은행나무에 제초제를 주입하고 은행나무 가지를 전기톱으로 잘라내는 행위는 “즉각적인 권력과 이익의 약속”11)에 우리의 시야를 훈육하면서, 현생인류 이전에 생존한 생명체들로부터 겨우 이어져 내려와 여전히 엮이고 얽혀 있는 과거와 현재를 무참히 끊는 말살의 폭력인 것이다. 지구의 기억이라 할 수 있는 유령을 삭제한다.

『펄프 픽션』에서 이성직은 전기톱에 잘려 나간 은행나무가 겪는 끔찍한 고통을 자기 몸에 신경적으로 흡수하고, 분노를 유머와 아이러니로 번역하여, 바로 그만큼의 강도로 동료 인간에게 분출한다. 흡수와 분출은 펄프의 기능이다. 작가는 스스로 펄프가 된다. 그는 은행 열매를 먹고 동료 인간에게도 나누어준다. 작가는 스스로 공룡이 된다. 멸종한 동물이자 유령이 되어 유령을 삭제하는 폭력에 저항한다. 그가 나누어준 은행알을 먹은 독자와 관객은 공룡 되기에 동참하며 세계에 유령의 영역을 넓힌다. 은행나무의 유령적 번식에 기꺼이 매개자가 되어 엮이고 얽혀든다.

 

1) 김양진, 〈위태로운 게 200살 ‘환기미술관 은행나무’뿐이랴〉, 《한겨레21》, 2026. 6. 4., https://h21.hani.co.kr/arti/society/environment/59434.html.

2) 환기미술관, 〈사과드립니다〉, 2026. 5. 31., http://whankimuseum.org/2026/05/31/%EC%82%AC%EA%B3%BC%EB%93%9C%EB%A6%BD%EB%8B%88%EB%8B%A4/

3) 유혜연, 〈수원 ‘파란 대문 장미’ 집주인 노부부 눈물… “23년의 시간 잘려 나가”〉, 경인일보, 2026. 6. 29., https://www.kyeongin.com/article/1766359.

4) 윤제호, 〈경산 자인 사진 명소 '능소화 나무 집' 주인 "절단 사건 전후 농약까지 뿌린 듯"〉, 영남일보, 2022. 8. 5., https://www.yeongnam.com/web/view.php?key=20220805010000655.

5) 김양진, 〈‘버드나무 대량 학살 사건’ 전주천 현장 가 보니…〉, 《한겨레21》, 2024. 3. 21., https://h21.hani.co.kr/arti/society/environment/55249.html.

6) 김양진, 2024, 위의 글.

7) 유혜연, 위의 글.

8) 이성직, 〈무심한 공생을 위해, 초록은 생각하지 마?〉, arte365, 2024. 11. 11., https://arte365.kr/?p=106912.

9) 이성직 외, 『펄프 픽션』, 독립 출판, 2023, 25-26쪽.

10) Anna Tsing, et al., “Introduction: Haunted Landscapes of the Anthropocene,” Arts of Living on a Damaged Planet, Minnesota University Press, 2017, p. G2.

11) Ibid.

윤경희
평론가, 비교문학 연구자, 1973년생
산문집 『분더카머』 『그림자와 새벽』, 역서 『녹스』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