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칼럼
우리가 뿌려야 할 씨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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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년 가을호 (통권 101호)
우리가 뿌려야 할 씨앗

문학이 미래를 상상하는 거울이라는 점은 굳이 언급하는 것이 새삼스러울 정도로 당연한 일이지만, 때로 과거의 문학이 상상한 오늘날을 읽을 때 그 의미는 조금 다른 것이 된다. 미국 SF 작가 옥타비아 버틀러의 소설 『씨앗을 뿌리는 사람의 우화』는 디스토피아 소설의 걸작으로 꼽히는 작품으로, 기후 위기로 일상이 파괴된 2020년대의 모습을 그려낸다. 작품 자체가 워낙 매력적이니 언제 읽어도 의미 있는 작품임은 분명하지만, 1993년에 출간된 이 소설을 오늘날의 독자가 읽는다면, 작품이 그리는 2020년대의 모습을 보며 묘한 느낌을 받게 될 것이다.

이 소설은 기후 위기로 경제가 무너지고 이전의 삶이 거의 파괴된 미국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극심한 빈부 격차로 인해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존을 위협받고 있으며, 국가 시스템의 약화로 치안이 붕괴한 상황 속에서 착취와 약탈이 기존 일상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이처럼 어려운 상황 속에서 인간의 존엄은 유명무실한 것이 되어가고, 빈부에 따른 차별, 이민자에 대한 증오, 인종 차별과 민중의 극우화 등이 차례로 소설 속에 그려진다.

이 소설이 보여주는 놀라운 점은 작품이 그리는 2020년대 모습이 어떤 의미에서는 오늘날 우리 현실과 거의 다르지 않다는 데 있다. 비가역적인 기후 재앙, 경제 침체에 따르는 극우화, 인종 차별을 비롯한 다양한 차별이 심해지는 상황 등 소설 속 현실을 우리는 이미 충분히 체감하고 있지 않은가. 심지어 이 작품의 후속작인 『은총을 받은 사람들의 우화』에서는 기독교에 기반한 포퓰리스트 정치인이 대통령이 되어 극단적인 극우 정책을 펼치고, 나아가 자신의 정치적 기반을 지키고 개인적 이득을 취하기 위해 전쟁을 일으키려는 모습을 보여주는 데까지 이르는 것이다.

우리의 암담한 현실이 이미 수십 년 전에 예고되고 있었다는 사실에 독자들은 쓴웃음을 지으리라. 미래를 미리 알고 있었으면서도 그 미래를 피하지 못했다는 것이야말로, 어쩌면 우리가 오늘날 느끼는 우울감의 근원일지도 모른다. 고대 그리스 비극의 요체는 인물들이 파멸을 예감하면서도 끝내 그 길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데 있다. 버틀러의 소설을 다시 읽는 일은 이와 닮았다. 우리는 미래를 이미 읽었지만, 그것을 우리의 삶과 제대로 겹쳐 보지는 못한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만 할까. 이미 도래한 파국을 어떻게 뚫고 지나갈 수 있을까. 소설의 주인공인 십 대 소녀 로런은 아버지를 비롯한 어른들이 이전 세대의 관습을 버리지 못한 채 여전히 예전의 삶의 방식을 고수하려는 것에 불만과 이질감을 느끼고 있다. 그는 세상이 바뀌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예전 방식을 그대로 지키려고 하는 것은 자살 행위에 가깝다고 논평하며,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삶의 방식이 필요하다고 믿는다. 그것은 목사인 아버지의 방식을 계승하면서도 그로부터 벗어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그는 ‘지구종(Earthseed)’이라는 새로운 종교를 고안하는데, 변화 그 자체를 신으로 여기며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모든 변화를 제대로 마주하고자 하는 것이 그 교리의 핵심이다.

그러나 변화를 신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거대한 흐름에 순순히 몸을 맡기라는 뜻이 아니다. 작품 안에서 로런이 줄곧 강조하는 것은 우리가 서로에게 더욱 나은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실천이었고, 소설 속에서는 그러한 실천이 작은 구원과 기적을 만들어내기도 하는 것이다.

우리도 그럴 수 있을까? 한나 아렌트는 인간의 행위를 이전 조건만으로는 예측할 수 없는 새로운 시작을 세계에 출현시키는 능력으로 보았다. 로런이 지구종을 고안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그는 파국 이전의 세계로 돌아가려 하지 않는다. 이미 시작된 변화 속에 새로운 삶의 원리와 공동체를 심으려 한다.

소설 제목이 가리키는 ‘씨앗’ 또한 그렇게 이해해야만 하리라. 씨앗은 미래의 결실을 보증하지 않는다. 그것은 어떤 땅에 떨어질지, 제대로 싹을 틔울 수 있을지 알지 못한 채 먼저 심어져야 한다. 버틀러가 독자에게 남긴 씨앗은 희망찬 미래의 예언이라기보다, 아직 보이지 않는 미래를 위해 지금의 삶을 바꾸어야 한다는 요청에 가깝다. 지금 우리가 그 씨앗을 뿌려야만 한다. 미래에 그 수확을 거두기 위하여. 

황인찬
시인, 계간 《대산문화》 편집자문위원, 1988년생
시집 『구관조 씻기기』 『희지의 세계』 『사랑을 위한 되풀이』 『여기까지가 미래입니다』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