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초대석
시인 정끝별 선생과의 만남

시의 촉수가 먼저 미래에

  • 대산초대석
  • 2026년 가을호 (통권 101호)
시인 정끝별 선생과의 만남

시의 촉수가 먼저 미래에

 

정끝별

시인, 평론가, 이화여자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1964년생

시집 『자작나무 내 인생』 『흰 책』 『삼천갑자 복사빛』 『와락』 『은는이가』 『봄이고 첨이고 덤입니다』 『모래는 뭐래』 『반려 별자리』 등

 

정답 없는 다음으로,

시가 먼저 간다

—

양경언 미국의 시인 오드리 로드(Audre Lorde)의 미출간 원고에 씌어있다고 알려진 “시는 우리를 존재하게 만든다. 시는 우리가 삶을 살아가도록 해준다. 우리가 시를 다루는 사람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말이다”1)라는 문장은 감동적이다. 알 수 없고, 낯설고, 이상한 말들로 이루어진 ‘시’가 우리를 존재하게 만든다니. 이는 삶이 좀처럼 내보이지 않으려는 어딘가에는 끝내 알 수 없고, 영원히 낯설고, 결코 잠재울 수 없는 이상한 속성이 있으므로 그런 삶을 진실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모두 시를 통과해야만 한다는 얘기로 들린다. 물론, 오드리 로드의 저 문장을 제대로 읽기 위해서는 한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시인 그 자신이 ‘흑인 레즈비언 페미니스트 엄마’로서 1970년대부터 90년대에 이르기까지 미국의 흑인 민권 운동, 급진적 여성 운동, 초기 퀴어 운동 담론 형성에 역할을 했었다는 내력을 알 것. 그래야만 어떤 시는 공적인 의사소통 과정에서 역사적으로 배척당해 왔던 정치적 소수자들의 생존을 증언하는 목소리 그 자체임을, 시는 삶과 분리되지 않음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가. 한 시인의 생애를 가로지르는 역사적 파장을 이해해야만 시가 삶을 살아가도록 해준다는 이야기가 받아들여질 정도로, 지금은 시가 하는 일이 과연 대단할 수 있는지 의심 먼저 드는 때인가. 최근 시를 두고 디지털 처리 과정에 의해 자본주의적인 욕망이 매개되거나 변형되는 “가속류”적인 표현 방식의 일환이라 진단하는 입장이나,2) “납작해진 내면과 신체의 감각, 지속적인 주의력 분산과 깊이 없음, 자동화된 언어 생산 장치와의 동기화”라는 특징을 지닌 “포스트세속주의”적인 흐름의 출현으로 읽는 입장이3) 오갔던 요근래 문학 현장의 논의를 떠올려본다면, 그럴 수 있다. 오드리 로드의 문장이 유효하다고 고집할 만큼, 혹은 모두가 저 문장에 감동하리라 가정할 만큼 시가 중요하다거나 시인의 역할에 거는 기대가 크다는 얘기를 꺼내기가 조심스러워진다. 하물며 인공지능이 순식간에 시를 흉내 내는 문장을 만드는 시대라면야, 더욱이.

1988년에 『문학사상』에 시가, 199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평론이 당선된 후, 약 40여 년의 시간 동안 문학 활동을 이어왔던 정끝별 시인과 대서(大暑)에 만나기로 하고, 나는 벼르고 있었던 것 같다. 어쩌면 긴 시간 동안 부지런히 여덟 권의 시집을 펴내온 시인에게 지금 시대에도 시가 하는 일은 분명히 있다는 얘기를 정답처럼 듣고 거기에 기대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시가 많은 이들이 소셜 미디어에서 공유하는 용도로 활용될 수 있다거나 폭주하는 자본주의 체제에 딱 맞춤한 상품으로 자리할 수 있다는 유용성(혹은 ‘쓸모’)에 대한 얘기가 아닌, 보다 삶에 정박해 있는 얘기를. 우리 문학의 역사에서도 시는 거리의 거인들이 하는 선언이자, 거친 시간 사이로 삶의 섬세한 구석을 끝까지 가늠하려는 이들의 기척이었으니까.

내내 홀로 심각하던 내게 시인은 다음과 같은 말을 던진다. 요즘 무엇이 제일 재미있으시냐는 가벼운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정끝별 (당연하다는 듯, 문장 말미에 느낌표가 저절로 솟아나는 말투로) 시 쓸 때가 제일 재밌죠! 시를 읽거나 쓰기 위해 몰입해 있는 동안, 여기보다 더 나은 데를 넘볼 수 있고 지금보다 더 나은 나를 꿈꿀 수 있거든요. 그 속에서 다음 길을 찾게 돼요. 그건 아마 시라서 가능한 일일 거예요. 시만큼 자신과 자신 안에 담긴 언어에 몰두하는 장르가 드물잖아요. 내 안에 일렁이는 것들을 걸러내는 목소리가 고해성사나 기도처럼 행해지고, 그러는 동안 내가 몰랐던 나는 물론 나를 둘러싼 사람들이나 세계가 품고 있던 면면이 새롭게 열리죠. 시의 촉수가 뻗어나가 세상의 새로움과 닿는다고나 할까요. 여기를 잠시 비켜난 자리에서만 가능한 심미적 발현이 시에선 가능하거든요. 도착지를 미리 정해두는 방식에 숨 막혀 하고, 결과보다 과정을, 답보다는 물음을 즐기는 저 같은 사람에게 시는, 나 자신과 이 세상을 맘껏 탐색하고 모색해 나갈 수 있도록 해줍니다.

80년대 초반 대학에 입학하면서 시를 쓰기 시작했고, 시를 쓰면서 사람·사회·시대에 눈뜨기 시작했어요. 쫓기고 사라지고, 죽고 죽임을 당하는, 폭압적인 시대에 시가 무력하다고 느꼈던 몇몇 선후배들이 시는 물론 대학까지 그만두고 현장에 투신하기도 했지만 저는 신념도 용기도 부족했어요. 단지, 꿈에서도 시를 읽고 쓰던 시기여서 시가 뭔지, 어떤 시가 좋은 시인지 알고 싶어 대학원에 진학했고, 현장에 투신한 선후배들에게 부끄럽지 않으려고 열심히 살았어요. 덜 부끄러운 시를 쓰고, 내가 쓴 시만큼 살아내려 노력하며 살았으니, 시를 쓰면서 조금 더 나은 제가 되었을 거라 믿고 싶어요. 그런 의미에서 저에게 시 쓰기는 제 언어를 찾는 과정이었고, 감정과 사유와 삶을 세우는 일이었습니다. 쓴 만큼 살아내려 애쓰다 보면 시가 먼저 손을 내밀어주곤 했어요. 길을 열어주기도 했고요. 언어의 수행성, 언어의 주술성에 대한 저의 믿음도 한몫했을 거라 믿습니다.

 

시에 대해서만큼은 아무런 고삐를 쥐지 않아도 된다는 듯이 일러주는 시인의 ‘시가 제일 재밌다’는 말은 한순간 내게 ‘시는 우리를 존재하게 만든다’는 문장의 산뜻한 구체화로 다가왔다. 시는 우리가 삶을 살아가도록 해준다. 어떻게? 다음이 어때야 한다는 정답 없이, 다음은 어떨까 하는 호기심을 안고, 좀처럼 고정되어 있지 않은 세상을 향해 용감하게 촉수를 뻗는 방식으로. 그러니 무엇이 더 삶답다고 단정 짓는다거나, 미리부터 답을 정해두는 오만은 우리 삶에서 아무런 새로움도 발견하지 못하게 만들 수 있다. 경직된 자세는 시의 입을 틀어막기만 할 뿐이다. 호기심을 잃지 않고 유연한 태도를 가진 이에게 시는 “먼저 가 있”다(“생각해보면, 시동이 걸리고 나면/말이 먼저 가 길을 내곤 했다//내 희망과 절망의 주행에도 늘/말의 길, 시가 먼저 가 있었다”, 「시가 먼저 가 있었다」, 『반려 별자리』, 문학동네, 2026.).

그때, 나는 예감했다. 이 만남은 40여 년의 시간을 온몸으로 통과해 온 시인을 향해 시의 역할이 무엇인지에 대한 정답을 과거로부터 찾아달라고 요청하는 자리가 될 수 없음을. 그보다는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이자 ‘교육자’이자 ‘여성’이자 ‘엄마’이자 ‘딸’…… 그 밖의 다양한 존재로서 현재진행형으로 살아가고 있는 이로부터 어째서 시는 그치지 않고 쓰이고 읽히는지, 지금 이곳에 있는 우리가 창조의 힘을 지니고 있다는 믿음을 어떻게 잃지 않을 수 있는지에 관한 얘기가 오갈 것임을. 무엇보다도, 시가 어떻게 우리를 존재하게 하는지에 관한 얘기를. 

 

 

시가 내미는 손을 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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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여름에 발간된 시인의 여덟 번째 시집 『반려 별자리』의 ‘시인의 말’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있다.

“시야,/노래를 꿈꾸는 시야,/네 손을 내밀어줘!/까맣게 울고 있는 내게”

인간의 마음이 오갈 데 없이 헤맬 때 기댈 수 있는 곳으로 ‘시’가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이 질문 앞에서 시인은 거창한 당위를 내세우기보다 시 그 자체로 돌파하는 모습을 보인다. 가령 살아있는 것들의 소멸을 받아들이는 시간을 시에 녹이는 때에도, 시인은 상실 그 자체가 남긴 슬픔에 매몰되어 있기보다는 상실 이후가 만들어낼 예상치 못한 풍경을 살뜰히 거든다. 「소설 1」(『반려 별자리』)에는 눈이 내리는 저녁나절에 홀로 남겨진 화자가 “드문드문 내리는 눈” 속에서 “언제부터였는지” 날아든 “작은 새 한 마리”와 눈을 마주치고, 표정 없이 서로를 인지하면서 잠시 “안녕한 균형”을 흔드는 장면이 그려진다. 화자가 창가의 새와 눈을 마주쳤던 그 찰나에 눈이 덮이고, 까만 어둠이 내려앉고, 그 찰나가 사라져 버린 순간에도 “아직 다 읽지 못한 이야기”가 남아 있는 상황은 “남은 자와 떠나는 자” 모두에게 매 순간이 마지막임을, 그렇기에 우리는 얼마든지 매번의 탄생과 소멸을 호젓하게 받아들일 수 있음을 전한다. 목소리의 볼륨을 키우기보단 나직하게, 과묵하게 자세를 바로 하는 것. 이는 시가 떠난 자들과 함께한 시간을 품위 있게 품어내는 방식이다.

 

정끝별 시인(왼쪽)과 양경언 평론가

 

제 시는 가족이나, 당신이나 너, 혹은 익명의 상실 대상을 직접적으로 호명하기보다는 정동이나 비유의 이면에 숨겨두는 걸 선호합니다. ‘민중’ ‘민족’ ‘민주’에 귀 기울이던 20대부터 최근에 겪은 ‘12.3’에 이르기까지, 시대적이고 대사회적인 상실을 직접적으로 호명할 때는 더더욱 ‘도둑질한 상실’은 아닐지 자기반성을 먼저 하게 되거든요.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노래하는 자가 지나치게 잘 먹고 잘 살고 있다면 그 노래의 진정성은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가, 하는 자기검열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살고 있는’ 삶과 ‘살고 싶은’ 시는 늘 불화했고 대체로 이기는 건 삶이었지만, 결코 지지 않는 게 또 시예요. 제게는 늘 ‘어떻게 살아야 할까’라는 물음과 ‘내게 시는 무엇이어야 할까’라는 물음이 짝패처럼 함께 왔으니, 시를 지도 삼아 살아왔다고 해도 크게 과장되지는 않으리라 싶어요. 시를 쓰면서 지금의 사람들 사이에, 사회 속에, 세상에 자리할 수 있게 되었고요.

얼마 전에 출간한 『반려 별자리』는 특히 시의 의장(儀裝)을 덜 걸친, 육십갑자의 제 맨살을 가장 많이 드러낸 시편들이 수록되어 있어요. 이런저런 상실과 취약함에 노출된 제 자신을 써 내려간 기록들이에요. 엄마를 보내드리고 두 딸이 분가하면서 몇 차례 병원 신세도 졌어요. 개인적인 삶의 형태가 달라지면서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고 자유로워지기도 했지만, 코로나 이후 ‘뉴노멀’이라는 시대적 변화와도 맞물려 있는 듯합니다. 이제 조금씩 고요함이나 적막함과 대면해야 할 나이도 되었구요. 떠나보내야 할 것, 놓아야 할 것, 버려야 할 것들이 늘어나면서 그것들과 함께 한 시간에 예의를 표해야 할 기회도 많아졌어요. 예의는 이별할 때 더 갖춰야 하는 것이라서요. 시집을 준비하면서, 이제 조금 더 자유로울 수 있고 상실과 취약함 너머로 나아갈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그것이 시든, 삶이든.

 

오롯이 겪는 것, 그리하여 다르게 보는 것, 새롭게 느끼는 것, 끝까지 자기 자신을 궁금해하면서 말하는 것. 이를 이르러 시가 탄생하기 위한 전제조건일 뿐 아니라, 두 번은 없는 우리 삶을 생생하게 받아들이기 위해 행해야 할 목록이라 말해도 될까. 그렇다면 우리에게는 우리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시가 발생하는 순간이 찾아올 테고, 누구든지 ‘살아있는’ 채로 살아가기 위해서라도 그 순간을 잘 발견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도 꺼낼 수 있겠다. 모두의 품에는 그 자신이 눈치를 챘는지와 상관없이 각자의 시인이, 각자의 표정을 지으며 들어앉아 있다. 시인은 언제 자신의 삶이 시인이란 이름을 지닌 채 이어질 거란 예감을 하게 되었을까.

 

나주 영산포라는 곳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10여 년을 살았어요. 오빠, 언니들이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서울로 진학했고, 주로 아버지가 서울을 오가셨는데 그날은 엄마까지 가셨죠. 한 살 터울의 막내오빠와 저만 남겨둔 채. 엄마 없는 그 봄날의 집은 얼마나 크고 얼마나 적막했던지요! 오후 내내 마루에 나란히 누워 아는 동요를 부르며 놀다 “엄마가 섬 그늘에 굴 따러 가면”(「섬집 아기」), “엄마 엄마 부르며 따먹었다오”(「찔레꽃」)를 부를 즈음에는 둘이서 펑펑 울었어요. 그때 시의 기능을 눈치챘던 게 아닐까요? 그 집과 영산포역, 영산강과 들판, 오일장과 ‘나이롱 극장(국극단의 잔존 형식)’ 등 그곳에서의 유년이 제 시의 가락이나 서정적 두께, 공동체 의식의 밑거름이라 짐작하고 있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 2학기에 서울로 전학을 왔는데 그때 처음 타자의식이 생겼어요. 저 혼자만 말씨가 달랐고, 수업 방식을 비롯해 모든 것들이 낯설었거든요. 변방에서 말없이 도사리던 까무잡잡하고 작은 여자아이였던 저를 비롯해, 타자화된 존재들에 대해 눈을 떴던 시기였을 거예요. 그러던 어느 날, “구름 한 점 없는 하늘”과 “손수건”이 어쩌고, 처음 타본 기차의 “바퀴 소리와 철길”이 저쩌고 하면서 쓴 제 시를 선생님이 학급의 전체 학생들에게 직접 낭독해 주시면서 칭찬해 주셨어요. 제 시와 이름이 존경하던 선생님의 목소리로 호명되었을 때의 그 기분이 아직도 선명해요. 겨자씨만 해지던 자아가 부푸는 듯한 힘을 얻었어요. 그때는 몰랐지만, 시가 길을 열어준다는 걸 경험했던 것도 같아요.

그리고, 대학 1학년 4월에 목격한 첫 시위와 2학년 4월에 참여한 첫 시위 경험도 떠오릅니다. 멋 내기에 관심이 많던 시기였고 그날도 빨간 구두에 스카프를 두른 채 강의실에서 나오던 참이었는데, 붐비던 복도 중앙에서 갑자기 ‘야~’ 하는 소리와 함께 전단지가 뿌려지고 메가폰을 든 언니가 구호를 외치기 시작했어요. 순식간에 사복경찰들이 들이닥쳐 언니들을 끌고 가면서, 복도는 구호와 비명과 울음으로 아수라장이 되었지요. 떠밀리다시피 강의실 건물 밖으로 나왔을 때 5층 창문 난간을 잡고 구호를 외치는 언니가 있고, 그 밑으로 무장한 전투경찰들이 매트리스를 깔고 있고…. 겁먹은 저는 울기만 했어요. 그리고 동아리에 가입하고 학과 세미나도 참여하던 1년 후, 비가 내리는 4월의 등굣길에 열댓 명의 언니들이 비를 맞으며 시위하는데 그 맞은편에는 50여 명의 무장한 전투경찰이 가소롭다는 듯 버티고 있었어요. 그런데 그 시위대 중 제가 좋아했던 동아리 선배가 구호를 외치고 있는 거예요. 시위라기엔 너무 초라해 그 구호들이 더 절박하게 다가왔는지도 모르겠어요. 눈물이 쏟아졌고 저도 모르게 시위대 끝에 서게 되었어요. 그게 저의 첫 시위였어요. 제 시에 내재한 대사회적 의식, 그 이면에 깔린 열등감과 부끄러움의 뿌리였을 겁니다.

돌이켜보면 그런 순간순간들이 시의 씨앗이었어요. 늘 가고 싶은 곳으로 들어가는 입구였고요. 저에게 시는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고 나누는 창구였고, 조금은 다르게 살 수 있는 자신감과, 시를 살고 싶은 사람들과 함께 있다는 공동체 의식을 확인하는 역할을 해주었죠.

 

 

여성이 다루는 ‘시적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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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우리를 길러낸다. 시인의 시에서 이 얘기는 때때로 ‘엄마’라는 존재를 등장시키면서 이어진다. 여성 시인들에게 ‘엄마’라는 존재는 특별한 의미를 지닐 것이다. 사회적 상징질서로 자리 잡지 않았으면서도 결과적으로는 내 몸을 먹여 살린 존재로서의 ‘어머니’가 물려주는 감각을 ‘딸’이 언어화할 때, 이때 만들어지는 특정한 정념 같은 것이 분명히 있다. 하지만 이런 종류의 접근이 모종의 프레임으로 작동해 ‘읽기의 감옥’을 만드는 것은 아닌가 하는 조바심도 든다.

 

시를 쓰면서 타자들을 위한 세상을 꿈꾸게 되었는데, 그중에서도 여성이야말로 이중으로 타자화된 대상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어요. 제가 다니던 80년대 초, 이화여대는 페미니즘의 산실이었고 저도 수혜를 입었죠. 그런 의미에서 엄마와 언니, 대학에서 만난 선후배 동료와 제자들, 그리고 두 딸이 지금의 저를 키워낸 트라이앵글이라고 생각합니다.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그들이 공감할 수 있는 시, 그들에게 부끄럽지 않을 시, 그런 시를 쓰고 싶었거든요. 80년대 원고지와 타자기로 시작해서 90년대 컴퓨터로 글을 쓰기 시작한 1세대인 저는 시적 절제와 긴장, 함축과 은유, 상징과 이미지 등을 시의 주요 자질로 학습했어요. 반면 지금의 젊은 시인들은 구술적(oral) 고백의 목소리와 환유적 상상력으로 여성 특유의 감각과 경험을 자유롭게 펼쳐 보이고 있죠. 이 다름의 정체에 귀 기울이게 되는 걸 보면, 두 딸과 젊은 제자들이야말로 지금의 제겐 스승이다 싶습니다.

엄마가 스승이었던 건 물론이고요. 시는 자신을 낳아준 엄마의 언어로 쓰인다고 생각해요. 엄마는 시간이고 죽음이고, 낳음이고 애씀이고, 기억이고 상실이죠. 우리는 모두 엄마를 먹고 엄마를 낳는 거잖아요. 저는 엄마의 딸이었고 딸들의 엄마였으니, 엄마를 ‘엄마’로 쓰는 시에 관해서는 더 선택받았다고 생각해요. 실제로도 출산과 양육과 교육은 제 시의 기둥이기도 했고요. 서슬퍼런 신념에 함부로 먹히지 않게 했고, 늪 같은 절망이나 비애에 함부로 함몰되지 않게 했어요. 딸들과 딸들로 상징되는 미래가 늘 제 시의 검열 기제로 작동했다고 할까요? 제 시만의 언어적 탄성이나 힘이 있다면, 그건 딸들로 상징되는 미래를 위해 희망을 ‘채굴’, 아니 ‘발굴’하듯이 썼기 때문일 거예요.

저에게 엄마는 죽음까지를 포함하는 생명에 가까운 것이기에 시간에 가깝고, 양성 혹은 무성에 가까운 근원적 시원성을 엿보게 해주는 대상이었어요. 서구 신화나 고전 등에서 시간을 ‘크로노스’와 같은 남성으로 묘사해 왔는데, 저에게 시간은 엄마로 상징되는 무성적 혹은 양성적 존재로 다가왔어요. 아이를 낳으면서 엄마는 성적 전환을 하는 게 아닐까 생각하곤 했거든요.

 

 

더 솔직해야겠다. 시인의 작품세계에서 들리는 목소리를 ‘여성’의 것으로 듣는 작업은 중요하다고 여겨진다. 첫 번째 시집 『자작나무 내 인생』(세계사, 1996)에 담긴 시편들이 언뜻 젠더가 무화된 서정시처럼 읽히는 일도 있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그 시편들 속에서 화자는 대체로 위에서 아래를 향한 움직임, 즉 밑을 향한 운동성에 주목하는 모습을 보인다. 비가 내리는 풍경 속에서 “숲 기슭에 오리처럼 앉아 있네”(「졸참나무 숲에 살았네」)라는 구절을 띄우는 시나, “서늘한 흙내음” 가까이에서 “도토리를 줍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들리는 시(「도토리를 줍는, 저 사람」), 눈이 내리는 중에 “시시덕이 아픈 한몸이 내린다”(「녹나무 아래 3」)며 몸 자체가 낙하하는 움직임에 이끌리면서 한 장면을 형성하는 시가 여기에 해당한다. 『삼천갑자 복사빛』(민음사, 2005)에는 울컥 쏟아지는 것들에 관심을 두는 시(“어린 낙과들이/바닥을 친다는 거/마음에 물고랑이 파인다는 거//때로 사랑에 가까워진다는 거//울면, 쏟아질까?” 「오래된 장마」)도 있다. 이들 모두는 중력의 자장에서 달아나지 않으면서 동시에 허공을 상대할 줄 아는 땅의 울림을 받아쓰는, ‘여성적인 감각’으로부터 기인한 시편들이다.

 

90년대 엘렌 식수(Hélène Cixous)나 이리가레(Luce Irigaray) 등이 소개되면서 ‘여성 정체성’이나 ‘여성적 글쓰기’에 대한 이론적 천착이 있었고, 일정 부분 성과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90년대적인’ 여성 정체성 혹은 여성적 글쓰기였고, 지금의 잣대로는 다소 프레임화된 측면도 있어 보입니다. 무엇보다 여성 정체성이나, 여성 글쓰기의 스펙트럼이 넓은 데다 계속해서 움직이기 때문에, 그걸 체계화시키거나 일반화시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죠.

저만해도 시적 응전을 달리하면서, 여성으로서의 제 개인사에 더해 페미니즘의 변천사를 온몸으로 통과해 왔거든요. ‘여류’라는 말이 공공연히 사용되던 20대 시절의 시적 응전은 ‘여류’ 혹은 ‘여자’로 살지 않기였고, 결혼과 출산과 양육과 취업에 시달리던 30대 시절에는 여성 현실을 살아내기, 견뎌내기였어요. 「시 속에서야 쉬는 시인」4), 「절필을 선언한 시」5) 같은 시를 쓰며 시인으로 연명하던 시기였죠. 그때까지 제 시에 꽃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게 대신 말해주는 게 있을 듯해요. 취업을 한 40대에 들어서는 여성으로서의 감각과 언어 찾기, 50대부터는 여성으로 목소리 내기에 더 자유로워졌다고나 할까요. 이때까지도 제 시에는 새 같은 ‘새’가 등장하지 않았어요. 여성으로서 저는 비상을 꿈꾸거나 비상해 본 적이 없었던 거죠. 그게 80년대 이후 우리 여성시의 흐름이기도 할 거예요.

크게 보자면 두 번의 시적 분기점을 맞았다고 생각하는데, 첫 번째가 40대 초반에 출간한 『삼천갑자 복사빛』이었어요. 2000년대 중반 노무현 정권이 들어서고 개인적으로는 취업이 된 시기인데 제 안의 성적 정체성과 시간의 서정적 깊이에 천착할 수 있었죠. 그리고 두 번째가 60대를 열어준 최근 시집 『반려 별자리』인데, 2020년대 중반 윤석열 정권 후반부에서 이재명 정권 초반부에 걸치는 시기에 죽음과 상실, 시간의 바깥에 천착할 수 있었죠. 60대가 된 지금에서야 비로소 ‘여성-되기’, 더 정확히는 ‘나-되기’를 실천하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해요. 상실하면서 얻게 되는 것들, 자유로워지면서 경계를 넘어서게 되는 것들이 있는 듯합니다. 같은 맥락에서, 생물학적 조건이기도 한 ‘여성 시인’이란 말이 그냥 ‘시인’ 혹은 ‘인간 시인’으로 통용되는 미래를 생각해 봅니다. 그러려면 품 넓은 여성 정체성과 글쓰기가 새롭게 채굴되어 그 외연이 넓혀졌으면 하고요. 

 

 

“‘여자’처럼 쓰지 않기”에서부터 “여성-되기”로 이어지는 실천의 변천사는 시인의 작품세계가 언제나 유연성과 개방성이 발현되는 장이었음을 보여준다. 여성 시인에게 ‘시적인 것’이란 어쩌면 ‘여성 시인’이란 말의 경계를 그 내부로부터 허물고 새로운 탄생을 기대하는 동작으로 채워가는 것, 시인의 표현을 빌려 말하자면 ‘촉수’를 뻗어 낯선 일들과 서슴없이 마주치고 새로운 사건을 환영하는 작업일지도 모른다.

가령 이런 것이다. 시인이 “난 이제 바람을 표절할래/잘못 이름 붙여진 뿔새를 표절할래” “당신도 나도 하늘도 모르게 전면 표절할래/자, 이제부터 전면전이야”(「불멸의 표절」,『와락』, 창비, 2008)하고 외칠 때, ‘표절’은 한순간에 말의 성역을 아랑곳하지 않고 얼마든지 세상에 침범해 들어갈 수 있는 하나의 존재 방식으로 활용된다. “침은 밥에서 나온 물/꿈은 침에서 나온 불/숨은 꿈에서 나온 바람/살은 숨에서 나온 흙” (「몽상의 시학」, 『은는이가』, 문학동네, 2014) 같은 시는 또 어떤가. 다른 존재로 끊임없이 변신하면서 이어질 수 있는 생명의 흐름, 그것을 포착할 줄 알기 때문에 끝나지 않을 수 있는 시의 운동이 여기에서 펼쳐진다. 시어를 통한 존재의 변신술은 시인의 등단작 「칼레의 바다」에서부터 꾸준히 다뤄진 방식인 바(“나는 밤이면 달팽이,/달이 될까 별이 될까” 「칼레의 바다」, 『자작나무 내 인생』), 시인은 변신술의 귀재이다.

 

1996년에 ‘패러디’를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는데 그때 심사위원이셨던 고 김준오 선생님께서 “왜 패러디 연구자는 여자가 많지?”라고 물으셨던 기억이 납니다. 논문 쓰면서 공부했던 린다 허천(Linda Hutcheon), 마가렛 로제(Margaret A. Rose) 등이 다 여자였다는 걸 그제야 자각했고, 패러디가 관계의 시학이고, 그 유동적인 관계성이 여성성과 연관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변할 수 있는 존재’의 유동성 또는 ‘중단 없는 몸짓’의 개방성은 포스트모더니즘의 특징이자 여성성의 특징이고, 제 시의 특징이기도 할 겁니다. 선명한 실체감이 약하다는 점에서 덜 읽힐 수도 있겠지만, 그 말은 곧 ‘변화하는 과정 중의 존재’라는 의미이기도 하고 그것은 제가 계속해서 시를 쓸 수 있는 동력이기도 합니다.

 

 

제가 계속해서 변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저는 늘 목마른 상태구요. 다 채워지지 않고 끝내 다다르지 못할 시 쓰기를 통해 저는 저를 찾는 중이고, 이런 시 쓰기는 일종의 저를 해감하고 여과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변화에 직면해 불안하게 일렁였던 것들이 가라앉은 후 바닥에 쌓이는 침전(沈澱), 그리하여 스스로를 조금 맑게 하는 청징(淸澄)의 과정이 시를 쓸 때 일어나요. 무섭거나 두려운 것, 새로운 것과 궁금한 것을 들여다보는 일은 곧 그것들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이고, 알게 되는 건 극복의 첫걸음이겠고요. 극복이 될 때까지 그 안에 머물며 알아가는 것, 그것이 제 사랑의 방식, 투쟁의 방식입니다.

 

자리를 지키고 기다리면서 변신의 과정을 다 겪어내는 시인의 작업은, 정끝별 시의 매력 중 하나로 자주 꼽히곤 하는 리듬에 관한 얘기이기도 하다. “반 평도 채 못되는 네 살갗/차라리 빨려들고만 싶던/막막한 나락//영혼에 푸른 불꽃을 불어넣던/불후의 입술/천번을 내리치던 이 생의 벼락//헐거워지는 너의 팔 안에서/너로 가득 찬 나는 텅 빈,//허공을 키질하는/바야흐로 바람 한자락”(「와락」, 『와락』) 같은 시를 입으로 직접 낭독하다 보면, 몸의 움직임이 고스란히 말의 리듬으로 옮겨 붙는다. 말이 리듬을 타고 움직이며 노래가 될 때 다른 세상의 태동이 시작된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시는 최초의 언어인 모어의 결과물이고, 부족언어 공동체가 공유하는 의미의 두께와 뉘앙스로부터 출발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저는 모국어보다 모어라는 단어를 더 좋아하는데, 엄마 뱃속에서부터 듣고 엄마에게 배운 그 언어에는 DNA가 묻어 있다고 믿거든요. 덧붙이자면, ‘시심(詩心)’이란 모어에 담긴 마음이겠고, 시가 마음자리를 헤아리는 일이라면 ‘시적인 것’이란 그 마음자리에서부터 일어나는 것이겠고요. 그렇다면 우리의 몸과 마음이 기억하는 모어의 운율이자 장단이자 가락이 곧 우리 삶이자 역사라고 볼 수 있을 거예요. 시는 우리 몸속의 가락을 언어로 표현해내는 일종의 악보인 셈인데, 이 모든 걸 다 담고 있는 리듬이야말로 생래적인 것이고 문화적인 것이죠.

80년대 중반 습작 시절, 당시 혁혁한 민중문학 평론가이셨던 고 채광석 선생님 특강을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선생님께서, “니그 어매 춤추고/니그 아배 장고치고”로 시작했던 「달팽이」라는 제 시를 보시고는 ‘절창이네’라고 평해주셨어요. ‘절창’이라는 말을 처음 들어본지라 집에 와서 그 뜻을 찾아보면서 내 시에 가락이 승하다는 걸 자각했어요. 승한 가락을 누르기 위해 시각에 특화된 이미지에 전력투구하며 습작을 했어요. 가락과 이미지가 병립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했거든요. 가락을 툭 툭 끊으면서 비약적 묘사나 이미지를 더하려 했고 그 결과물이 첫 시집이었죠. 그러다 보니 덜 읽혔던 것 같아요. 두 번째 시집 『흰 책』(민음사, 2000)을 낼 즈음 ‘내 장기를 밀어붙여 보자’, 작심하고 자서(自序)를 출사표로 삼았어요. “세상 모든,/농과 되풀이를 위하여”라고. 고통의 ‘농(膿, 고름)’을 명랑의 ‘농(弄, 유머)’으로, 일상에서 반복되는 ‘되풀이’를 리드미컬한 ‘가락’으로 넘어가고 싶었어요. 유머와 함께 리듬을 본격적으로 의식한 때였죠. 리듬 관련 논문들을 썼던 때이기도 합니다.

『와락』에 실린 「블루 써핑」이라는 시를 쓸 때 “높아질 때, 같이 높아졌다/미끄러질 때, 같이 미끄러지며//쫙 벌어진 푸른 사과의 절벽을//높아지되 떨어지지 않고/ 미끄러지되 멈추지 않으며//비린내 진동하는 시간의 폭포를//전 생을 한조각 보드에 의지해” 써핑하는 ‘써퍼-되기’에 사로잡혀 있었어요. 되풀이되는 일상을 되풀이하는 리듬에 얹혀 타 넘고 가보는 것, 은근슬쩍 변주해 에둘러 통과해 보는 것. 파도를 타듯 바람을 타듯, 우리를 ‘지금-여기’에 묶어두는 ‘중력’과 ‘지금-여기’로부터 넘어서게 해주는 ‘부력’ 사이를 리듬으로 타 넘어가고 싶었거든요. 중력에 부력이 들어오면 리듬은 가벼워지고 음률은 경쾌해지고 가락은 다채로워지니까요. 그런 리듬은 저에게 제 몫의 시간, 그것이 운명이든 우연이든 슬픔이든, 그러니까 주어진 제 삶을 살아내는 저의 호흡입니다.

 

중력에 부력을 들여 파도를 타듯 가본다면,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알려지지 않은 다음으로 성큼 넘어갈 수 있다. 마냥 심각하지만은 않게, 그러나 온 세상을 맘껏 상대하면서.

 

시의 촉수가 여는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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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끝별의 시에는 기우가 없다. 시를 통해 만나는 온갖 새로운 것들을 향해 의심의 눈길을 던지기보다는, 호기심의 말들을 건네기 때문이다. 정끝별의 시에는 초조함이 없다. ‘시 됨’과 ‘시적인 것’에 대한 물음에 정답이 없음을 염두에 둔 시인의 탐구가 두근거림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정끝별의 시에는 또한, 극단이 없다. ‘종말’이나 ‘멸종’, 양극화와 상대적 박탈감, 무한경쟁과 고립, 은둔 등 여러 불안 코드가 난무하는 세상마저도 잘 들여다보면 조금이라도 마음 기댈 데를 찾으려는 사람들의 바람이 거기에 있다고 읽히듯, ‘다르게’ 보려는 시의 눈을 깜빡이면, 또는 ‘새롭게’ 감각하려는 시의 촉수를 뻗게 되면, 극단으로 치닫기도 전에 없던 문이 먼저 열린다는 것을 시인이 알려주기 때문이다. 시인으로부터 우리는 완성을 지향하지 않으려는 이가 맞이하는 해방감을 배운다.

 

얼마 전 릴스를 보다가 “소름 돋는 성향 테스트; 가장 끌리는 새는?”이란 질문과 마주쳤어요. 하얀 배에 초록 머리와 날개, 그리고 부리가 긴, 작은 ‘벌새’를 골랐는데, “나는 나 자신과 내 앞에 펼쳐질 길을 믿습니다”라는 제목의 해설이 재미있었어요. “당신은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곳에서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특별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당신은 적응하고, 스스로를 재창조하고, 가장 어려운 순간에도 계속 나아가는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당신의 가장 큰 장점은 강한 회복력입니다. (중략) 이제는 자신을 믿어줄 때입니다.” 길지 않은, 어찌 보면 흔하디흔한, 그 문장에서 힘을 얻었는데, 아마 지금의 저에게 그런 힘이 필요했겠죠? 내가 나를 믿어주고 우리가 우리를 믿어주듯, 우리의 미래 시와 시인도 믿어주고 싶어요. AI의 위력이 막대하게 행사되는 때가 온다고 하더라도, 인간 역시 AI와 도움을 주고받으면서 진화할 거고, 진화된 새로운 시인들이 등장할 거예요. 시도 이전 시와는 달라진 시가 새로운 방식으로 소통되고 향유될 거라고 믿습니다.

 

‘미래 시’와 ‘시인’을 믿어줄 필요가 있다는 말이 우리의 미래를 믿어줄 필요가 있다는 말로 들리는 이는 나만은 아닐 것이다. 그러니까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겪는 온갖 통증과 고민, 긴장이 만약 다른 이들이 보지 못하는 이면으로부터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과정에서 발아하는 것이라면, 그런 이면에 깃들어 있는 다르게 살아가는 재미가 다시 앞을 바라보게 만든다는 것을 받아들인다면, 그렇게 살아갈 우리 자신을 믿어줄 필요가 있다는 말로. 시인에 따르면, 시는 이렇게 우리를 존재하게 할 것이다. 

 


 

1) 오드리 로드, 박미선·이향미 옮김, 『나는 당신의 자매입니다』 오월의 봄, 2025, 149쪽. 옮긴이들에 의하면 인용 문장은 오드리 로드 아카이브에 보관된 미출간 원고의 일부로 인용 책에 처음 실렸다.

2) 최다영, 「동시대 가속류 시의 생산 조건과 가능성」, 『문학동네』 2024년 여름호, 80~93쪽.

3) 박상수, 「영원한 베타 테스트로서의 여름–최근 한국시에 나타난 ‘포스트세속주의’의 한 경향에 관하여」, 『문학동네』 2025년 가을호, 82~97쪽.

4) “늘 시 쓸 겨를이 없는 등단 십 년의 그는/몸과 마음에 병이 들었다 나가는/그 잠깐 동안만, 시를 쓴다/그가 좋아하는 나무 몇 그루를 기둥 삼아/그가 편애하는 부사 몇 개를 깎아놓고/그가 환상하는 행간 사이에/납작 엎드려/평소에는 시어 하나 생각하지 않았음을/참회하며/시 속에서야 비로소 쉰다” 「시 속에서야 쉬는 시인」 부분, 『흰 책』 민음사, 2000, 61쪽.

5) “시쳇말로 늬들끼리 다 해 먹어라/나는 졌다 시시 떼떼에 시시 껍절에/나는야 시에 채인 시골뜨기 병시인―” 「절필을 선언한 시」 부분, 같은 책, 64쪽. 

양경언
평론가, 조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1985년생
평론집 『안녕을 묻는 방식』 『빛과 사랑의 언어』(공저)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