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데뷔작
데미안, 너의 나

- 단편소설 「높새의 집」과 「산역(山役)」

  • 나의데뷔작
  • 2003년 가을호 (통권 9호)
데미안, 너의 나

- 단편소설 「높새의 집」과 「산역(山役)」

'나의 데뷔작'이라고 말할 때 나는 어차피 소설을 말해야 하리라. 소설가가 되기 전에 나는 시인으로 시집을 내고도 있었다. 어려서부터 시를 공부해와서 시인이 된 게 우리 나이 22세. 아, 벌써 35년이 흘렀단 말인가. 그 무렵 만난 어린 소녀가 50대의 여인이 되었을 걸 믿을 수 없듯이 시간의 흐름에는 도무지 홀린 것만 같다. 어쨌든 시인이 된 지 12년 뒤에 나는 34세의 나이로 소설가가 되었고, 그로부터 직장도 버린 채 오로지 소설에 기대어 살아왔다. 소설가가 된 지도 어언 23년.
  모든 데뷔는 어렵고도 굉장한 모험이다. 소설가로서 또한 소설 선생이기도 한 나는 데뷔하는 신인 앞에서 그 노력에 경의를 표하면서 한편 심란함을 느낀다. 그 앞에 놓여 있는 길은 과연 어떤 길인가. 아득하기만 하다.

  이제까지의 모든 생활 기반을 잃은 그 해 여름, 나는 소설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어지러운 상황, 더러운 상황에서 달리 돌파구는 없어 보였다. 막다른 골목에서 되돌아 나오자면 새로운 삶을 바라보아야 했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오지 않으면 안 된다. 하기야 낯간지러운 아포리즘으로 이겨나가기엔 현장은 너무 각박했다. 그러므로 알이고 새고 간에, 이른바 죽기 아니면 살기였다.

  쓰고 또 쓸 수밖에 없었다. 숨이 턱에 닿는 시간들이었다. 도대체 소설은 어떻게 쓰는 것인가? 소설가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내가 지금 쓰는 게 소설인가? 알 수 없었다. 내 삶에 이미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시적 방법론이 문제인지도 몰랐다. 그렇다고 그냥 죽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죽음을 생각한 시간도 없지 않았다.

  첫 번째는 원고지 54장으로 벽에 부딪혀 더 이상 한 줄도 나아갈 수가 없었다. 그런 일도 있는 것이었다. 누구에게나 특별한 숫자가 있듯이, 그 특별한 숫자의 나열이 인생이듯이, 54장의 좌절은 너무 암담해서 그 숫자는 아직 내 머리 속에 박혀 있다. 시쳇말로 나이가 숫자에 불과하다면, 결국 인생은 숫자에 불과한 것인가. 소설은 '장수 메우기'라고 가르치면서, 나는 망연히 '54'를 떠올린다.

  두 번째 몸부림도 여지없이 실패였다. 내가 봐도 설득력이 없었다. 장수는 어떻게 어떻게 80을 넘겼으나, 눈물이 나도록 꾀죄죄한 몰골만 눈에 보였다. 거의 사력을 다해 밤을 지새며 지새며 쓴 결과였다. 술도 삼가고 있던 나는 달동네 언덕 아래 허름한 식당으로 내려가 혼자 탄식하며 막걸리를 마셨다. 새는커녕 '곤달걀'의 내가 그려졌다. 그렇다면 나는 소설을 쓸 수 없는가? 소설가가 되려 하는 것 자체가 오산인가?

  안 되었다. '곤달걀'이 되어서는 안 되었다. 참새든 박새든 굴뚝새든 곤줄박이든 무슨 새든 일단 새는 되어야 하는 것이었다. 나는 다시 원고지 앞에 엎어졌다. 쓰고 또 쓰는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나 모방에 표절까지 동원해도 점점 알이 곯아가는 것만 더 잘 느낄 뿐이었다. 그런 어느 날 한숨을 몰아쉬고 있을 때였다. 한마디 말이 살같이 머리를 뚫고 지나갔다.    

  네가 가장 잘 아는 이야기를 써라.

  여러 번 실패를 거듭한 끝이었다. 소설이라는 틀에 얽매여 그야말로 어거지로 '소설'을 만들려고 한 기본부터가 잘못되어 있는 게 아닐까. 번쩍, 하는 섬광이 눈에 어렸다. 나는 내 고향의 이야기를 더듬기 시작했다. 태어남이 있었고, 전쟁이 있었고, 만남과 헤어짐이 있었다. 죽음이 있었다. 사랑과 미움이 있었고, 오랜 상처가 있었다. 치유와 화해가 있었는가. 그곳의 큰 산과 큰 바다가 눈앞에 펼쳐졌다.

  쓰리라, 써야 하리라.

  나는 꼭 써야만 할 것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그것은 내가 소설가가 되지 않더라도, 못하더라도 꼭 써야만 할 것이었다. 삶을 전제로 한 어김없는 약속으로 쓰지 않으면 안 된다. 나는 볼펜을 그러잡았다.

  그리하여 나는 「높새의 집」과 「산역(山役)」이라는 두 편의 단편소설을 완성했다. 첫 문장을 쓰는데, 벌써 붙는 맛이 달랐다. 이상하게도 이건 '필연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나는 서두르지 않고 원고지 칸칸에 꼭꼭 볼펜 자국을 눌러 나갔다.

  한국일보 당선작인 「산역」은 내 고향 큰 산과 큰 바다에 얽힌 어떤 사랑의 기록이다. 그 작품을 쓰고 나서 나는 허청거리는 발걸음으로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막걸리집으로 걸어 내려갔다.

 

윤후명
글 / 윤후명_소설가, 추계예대 문예창작과 겸임교수. 1946년생. 소설 『돈황의 사랑』 『협궤열차』 『여우 사냥』 『가장 멀리 있는 나』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