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묘사 사전
음식에 대한 묘사 (2)

  • 소설 묘사 사전
  • 2003년 가을호 (통권 9호)
음식에 대한 묘사 (2)

 
  “지금쯤 서울에 가면 우거짓국이 맛있을 때야. 우거지에다가 뜨물이나 된장을 풀고, 풋고추를 듬성듬성 썰어 넣으면 기막히지. 간혹 여편네한테도 시켜 보는데 영 옛날 맛이 안 나더군.”

  “그것도 좋지만 간갈치나 간고등어 있지? 그것도 장이나 서는 날이라야 겨우 한 토막 얻어 걸리는데 말야. 그것 한 토막이면 밥 한 그릇 다 먹는다구. 더구나 여자들한테 살토막이 차례나 가니? 우리 어머니는 대가리 차지지. 그런데 그 대갈통을 바싹 구워 가지고 뼈째 아삭아삭 씹어 먹으면 그렇게 고소할 수가 없어. 그 좋은 걸 서울서는 버리고 먹는 단 말야. 어쩌다가 그게 먹고 싶을 때가 있는데 마누라한테도 차마 창피해서 고등어 대가리 구워 오라고는 못 하겠어.

  “난 국민학교 다닐 때 벤또 반찬에 새우젓만 싸 가지고 다녔다구. 우그러 터진 벤또 한쪽에다 간장 종지 있지, 거기다가 새우젓만 담아 가지곤 밥 속에 쿡 박아 가지고 다니는데 그렇게 꿀맛일 수가 없었어. 그런데 요즘은 새우젓만 봐도 냄새가 나거든. 그리고 그런 건 흙 냄새 물씬 나는 초가집에서 먹어야 제 맛이 나지. 텔레비전을 보면서 먹는 밥상에는 안 어울려.”

- 최일남 「서울 사람들」




  그녀는 먼저 수도꼭지를 틀어 손을 문지르고는 쌀통에서 쌀을 꺼내 씻어 밥을 안쳤다. 멸치를 꺼내고 다용도실의 된장통에서 된장을 퍼와 뚝배기에 넣고 물을 부었다. 감자, 양파, 당근을 차례로 껍질을 벗기고 마늘을 깠다. 그것들을 도마 위에 깨끗이 썰어 놓을 때쯤에는 된장국물이 끓고 있었다. 야채를 차례로 넣은 다음 파를 꺼내 씻었고 두부도 귀를 맞춰 네모 반듯하게 썰어 대접 위에 준비해 놓았다. 그리고 볼에 달걀 세 개를 깨뜨려 소금을 넣고 나무젓가락으로 잘 휘저은 다음 파를 다녀 넣었다. 생선 그릴에 물을 붓고 가스불을 켰다. 냉장고에서 갈치를 꺼내 씻어서 달구어진 생선 그릴에 집어넣었고 그 옆의 가스 레인지에 프라이팬을 얹어 놓고 불을 붙였다. 적당히 달궈진 프라이팬에 달걀을 한쪽에서부터 가만히 쏟아 천천히 말아 가기 시작했다. 조금 후에 갈치를 뒤집었다. 그녀의 손놀림은 정확했다.

- 은희경 「아내의 상자」




  오늘 아침 식탁에서도 그녀는 바게트빵의 속을 뜯어내고 있었다. 빵의 속살을 뜯는 그녀의 손놀림은 늘 최고의 운만을 점찍는 주사위를 던지듯 경쾌했다. 길이가 오십 센티는 되어 보이는 바게트의 뾰족한 끝을 잘라내고서 뜯어낸 속은 우묵한 그릇으로 떨어지고 있었고, 바게트와 그릇 사이에선 와인빛 매니큐어를 칠한 그녀의 뾰족한 손톱이 비행하고 있었다. 바게트의 본체에서 이탈한 빵조각들이 부스러기 하나 흘리지 않고 정확히 그릇에 담겨지는 것이 나는 불만스러웠다. 그것은 그녀의 다른 여자가 아닌 바로 그녀의 손톱이라는 와인색 비행기에 실려 막 생애 최고의 비행을 하고 있는 빵 조각들에 대한 적의였다. 이제 그릇에 안전하게 착륙한 저 빵 조각들은 황홀했던 비행을 다시금 떠올리며 곧 포근한 회상과도 같은 우유에 젖어들 테지.

- 김현영 「냉장고」





편집자 주) 동덕여대 조병무 교수는 한국 소설에서 등장하는 각종 대상과 행위 묘사를 ‘사랑과 성’, ‘인물’, ‘무대․장소’, ‘직업․집회’, ‘자연․서정’ 등 유형별로 분류해 총 6권의 『소설 묘사 사전』을 펴냈다. 위 인용문은 이 책에서 발췌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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