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 대륙과 대중 : 무대 위의 발해 - 대중문화에 투영된 북방

  • 기획특집
  • 2003년 가을호 (통권 9호)
* 대륙과 대중 : 무대 위의 발해 - 대중문화에 투영된 북방

 

1990년대의 대중 가요를 선도했던 어떤 유명 가수는 얼마 전부터 “한 민족인 형제”가 서로에게 총을 겨누는 현실에 대해 노래하기 시작했다. 가사의 내용상 이 가요는, “연못 속에는 아무 것도 살 수 없게 되었죠” 라고 했던 「작은 연못」의 계보를 잇는 듯하다. 이는 “언젠가 작은 나의 땅에 경계선이 사라지는 날 많은 사람의 마음 속엔 희망들을 가득 담겠지”와 같은 부분에서 잘 나타난다. 1980년대를 뒤흔들었던 운동권 노래의 영향력이 축소된 이후, 바야흐로 대중 가요조차 분단 체제를 비판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가사 중 또 한 가지 눈에 띄는 것은, “젊은 우리 힘들이 모이면 세상을 흔들 수 있고 우리가 서로 손을 잡은 것으로 큰 힘”이라는 구절이다. 이것은 이상하다. “평화와 사랑”을 갈구한다면서 왜 힘을 운운하는가. 결국 민족의 통일이란 세상을 흔들 수 있는 “큰 힘”을 획득하기 위한 것이었던가.

하지만 「발해를 꿈꾸며」라는 이 노래의 제목을 고려할 때, 위와 같은 의문은 쉽게 해소된다. 요컨대 통일을 이루어 다시 한번 대륙을 꿈꾸자는 것이다. 당연히 “작은 나의 땅”이나 “작은 연못”을 뛰어넘는 “큰 힘”이 필요하다. 그리고 바로 이 점에서 이 노래는 “찢기는 가슴”과 “이 땅”의 “피울음”을 노래한 과거의 운동권 가요와 정서적 공감대를 이루고 있다. 즉 「발해를 꿈꾸며」는 “뜨거운 남도에서 광활한 만주 벌판”(「광야에서」)이라는 옛 레퍼토리를 리바이벌하고 있다. 그 새로운 음악적 형식과 리듬에도 불구하고, “하얀 옷”의 “핏줄기”는 여전히 작용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상상력은 도쿄대 소장 발해 유물의 국내 전시에 즈음해 다음과 같은 기사가 씌어지게 되는 일과 전혀 무관하지는 않을 터이다,


더구나 우리가 쉽게 갈 수 없는 저 멀리 북방에 자리잡았던 나라요, 중국이 자기네 것이라고 해서 한국인의 접근을 가로막고 있는 역사이니 그 거리감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2년 전 헤이룽장(黑龍江) 박물관에 들렀더니 안내하던 관장이 발해실에 들어가기 직전에 “여기서부터는 사진은 물론이요 메모조차 하지 말라”고 해서 눈으로만 보고 온 적이 있다. 그러니 중국의 발해 유물을 들여와 전시하는 것은 꿈조차 꾸지 못 한다.

- 송기호, 「동경대 창고에서 되살려낸 해동성국」, 『조선일보』, 2003.7.24.


위 글의 필자는 중국의 경계심을 암시하면서, “몽환(夢幻)과도 같은 발해를 현실로 끌어내고자 한 것이 이번 전시회”라고 규정한다. 사실 북방에 대한 꿈과 추억은 그 뿌리가 깊은 것이다. 적어도 근대 이후, 이는 민족사와 영토를 상상하는 강력한 형식이었다. 예컨대 『대한민보』(1910.2.16.)에 실린 빙허생의 「소금강」은 “서간도라 하는 곳은 곧 옛 적 우리나라 판도”라고 규정했다. 또 조선사의 “제 일기는 만주 대륙에서 삼천 삼백 년간 발흥하던 시대”이고 “제 이기는 청구(靑丘)에서 일천 년간 퇴영하던 시대”(천외자, 「지나 지방에 조선 유적」, 『학지광』, 1916.9.)라는 의견도 있었다. 이와 같은 생각을 기반으로 최남선은 “아직도 제 주인 만나지 못한 태동(泰東)의 대륙 넓은 벌판”이라고 노래했을 뿐만 아니라, 시베리아마저 “우리의 운동장”(『소년』, 1908.12.)을 삼자고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때 주의할 점은, “만주는 우리의 고토(故土)”(이선근, 「만주와 조선」, 『조광』, 1939.7.)라는 이 믿음이 일제 말기의 다음과 같은 노래와 관련되기도 했다는 사실이다.


백마를 달리던 고구려 쌈터다

파묻힌 성터 위에 청 노새는 간다간다

저 고개를 넘어서면 새 천지의 종이 운다

다함없는 대륙 길에 어서 가자

방울 소리 울리며

(「복지만리」)


만주사변이나 중일전쟁 이후, 식민지 조선의 병참기지화가 추진되고 조선인의 만주 이민이 장려되면서, 「북국 오천 키로」, 「울니는 만주」, 「북방 여로」, 「만포선 천리길」 등, ‘북국’이나 ‘만주’를 노래하는 유행가가 많이 나타났음은(박찬호, 안동림 역, 『한국 가요사』, 현암사, 1992. 참조) 주지의 사실이다. 즉 발해의 유물이 도쿄대를 통해 한국에 전시될 수 있었듯이, 북방에 대한 상상력은 일제의 대륙 침략과 함께 역사적으로 구체화된 바 있다. 이때 “왕도낙토”, “오족협화”, “대동아공영”이라는 일제의 슬로건은, 기묘하게도 만주가 “백마를 달리던 고구려 쌈터”라는 의식과 함께 긍정되었다. 만주국을 “개척”하는 조선인은 일본 국민으로 재생함과 동시에, 조상의 옛 영광과 기상을 회복하려 했던 것이다. 실로 최남선이나 이광수는 단군과 천황을 동일시하고자 하는 경향조차 보였다. “사천만 오족(五族)의 새로운 낙토”를 노래한 「아리랑 만주」(1941)가 조선인을 일러, “우리는 척사(拓士)”라고 규정한 것은 그 때문이다. 더욱이 이 “척사”는 늙어간 일송정의 소나무와는 달리, “선구자”가 말을 달려 도달한 민족의 젊은 위치였다. 실로 「아리랑 만주」와 「선구자」는 모두 한 사람이 작사한 것이거니와, 비유컨대 이는 “노래하자 꽃서울 춤추는 꽃서울”이 원래 “노래하자 하루삔 춤추는 하루삔”(「꽃마차」)이었다는 사실과 짝을 이룬다.

이는 북방과 관련된 사태의 복잡성을 암시한다. 그곳은 독립운동과 항일투쟁의 장소였을 뿐 아니라, 친일과 대동아공영의 이상에 투신한 장소이기도 했다. 이때 전혀 반대 방향으로 나아간 것처럼 보이는 이 활동들은 민족 주체의 형상, 더 나아가 그 주체의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기상과 관련된다는 점에서 상통하는 면이 있다. 민족은 대륙이라는 타자를 필요로 했다. 어떤 식으로든 그곳은 점유되어야 할 땅이었다. 또 이는 국민 국가에 도달하지 못한 식민지 민족의 부정적 상황을 자부심으로 전화시키고, 이를 외부로 향하게 하는 대중적 정서를 산출했다. “백마를 달리던 고구려 쌈터”는 바로 이 감상적이고도 팽창적인 열망을 집약하는 말이었다. 그 웅장한 고대사를 근거로 식민지인들은 국가를 위해 손쉽게 동원될 수 있었으며, 이미 동원되어 있었다. 따라서 북방의 대륙은 그 자체로서 대중적인 형식이었다. 그것은 민족을 심정적으로 가동시켰으며, 반성을 봉쇄하며 국가에 도달하게 했다. 적어도 이 문제와 관련해 민족은 대중이었다. 이는 이광수가 “민족을 위해 친일했다”고 말할 수 있었던 한 가지 이유일지도 모른다.

이것이 소위 민족적 ‘한(恨)’의 전체 구조이다. 북방 대륙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대중과 민족을 매개하는 정서적 장치였으며, 지금도 어느 정도 그러하다. 사실 이는 “광활한 만주 벌판”에 “다시” 서서 “뜨거운 흙”을 움켜쥐자고 했던 운동권 가요의 호소력과도 연관된다. 그것은 “만주”나 “만주국”이라는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을 중국의 정서쯤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오직 분단에서 초래된 자신의 감상에 갇혀 “만주”를 되뇌었다. 그 팽창의 상상력과 함께 통일의 필연성은 강력히 설득되었다. 발해의 유물을 대하는 중국의 경계심은 이러한 태도와 연관될 터이다. 결국 민중 역시 대중적이었던 것이다.

한편 태극기 휘날리던 월드컵과 더불어, 최근 “대한민국”의 빨간 대중은 옛날 옛적에 중원을 “우리의 운동장”으로 삼았다는 치우(蚩尤)를 부활시켰다. 이는 일부 중국인들로 하여금 월드컵에 대해 신경질적으로 반응하게 한 하나의 원인일 수도 있다. 더욱이 시베리아 횡단 철도의 복구 논의는 국토 통일의 당위성은 물론, 이를 훨씬 뛰어넘는 공간적 상상력을 부채질했다. 간혹 이는 “만철”(남만주철도주식회사)의 정치적 의미를 상기시키기도 했을 것이다.

따라서 「발해를 꿈꾸며」와 같은 대중 가요가 이 대중적 정서를 포착한 것은 당연하다. 이제 민족 통일과 대륙 등은 잘 팔리고 인기 있는 상업적 아이템으로서, 청년들을 열광시키는 일종의 패션이 되었기 때문이다. 민족과 북방의 상상력은 사랑 이야기나 범죄물 등과는 비교될 수 없을 정도로 짜릿하고 독특한 자극과 감정을 제공한다. 시장은 손쉽게 생산 가능한 이 신상품을 놓치지 않았다. 더 나아가 이는 은연중에 시장의 원리 자체를 강력히 설득하는 것이었다. 이를테면 자본주의적 메커니즘은 통일된 단일 경제권이 보유한 세상을 흔드는 자본의 “큰 힘”과 더불어 “광활한 만주 벌판”으로 끝없이 시장을 확장하려 한다. 이를테면 “한류(韓流)”는 계속 물결쳐야 한다. 이 자본주의적 통속화와 감상화야말로 분단 체제와 북방 대륙의 현재 상황일지 모른다. 대륙은 화려한 조명 속에 「발해를 꿈꾸며」가 합창되는 넓디넓은 쇼 무대가 된 것이다. 거기서 찢겨진 가슴의 대중은 “뜨거운 남도”처럼 뜨겁게 춤추며 발해의 꿈을 소비할 터이다.

그러나 실상 북방 대륙은 위와 같은 일방적 상상과 소망으로써 전유되거나 소비될 수 없다. 발해 유물에 대한 중국의 경계심은 이를 반증한다. 중화의식에 익숙할 뿐 아니라, 종종 패권주의적 경향을 보이기도 했던 중국 역시 자신의 꿈을 꾸고 있으며, 현실적인 국경과 함께 그 꿈을 완고하게 실천하고 있다. 이 고도로 정치적이고 역사적인 국가의 작용은, “광활한 만주 벌판”과 발해를 그리워하는 마음과 정면으로 맞선 또 다른 (그러나 거의 동일하거나 더욱 강력한) 대중적 정서에 근거한다.

그렇다면 문제는 자기의 입장만을 관철하며 상대를 상상․전유․소비하려 하는, 공통된 ‘국민’의 정서이다. 타자를 손가락질하며 스스로 타자가 되는 대중적 분단의 심성이야말로 반성되어야 한다. 물론 이는 쉽지 않은 일이다. 왜냐하면 반성 역시 일방적으로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경훈
글 / 이경훈_연세대 국문과 교수. 1962년생. 저서 『이광수의 친일문학 연구』, 『어떤 백년, 즐거운 신생』, 『이상, 철천의 수사학』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