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 동북 변방의 황폐화하는 삶, 그리고 도저한 비관주의 - 중국문학에서 북방이란 무엇인가

  • 기획특집
  • 2003년 가을호 (통권 9호)
* 동북 변방의 황폐화하는 삶, 그리고 도저한 비관주의 - 중국문학에서 북방이란 무엇인가

 
  중국문학 개론이나 중국문학사 과목에서 제일 먼저 거론되는 테마 중의 하나가 남방문학과 북방문학의 문제이다. 중국이 워낙 땅이 넓으니만큼 같은 중국이라고 해도 남쪽과 북쪽은 그 자연 환경의 차이가 엄청나게 클 수밖에 없고 그 차이는 문화적 차이와도 일정하게 상응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남방문학과 북방문학의 문제는 나름대로 의미 있는 테마라고 할 수 있다. 이 문제는 흔히, 남방 사람들은 “공상적이고 감정적이고 평화적이고 시적인 경향을 띠게 되어 그들의 문학은 낭만적인 성향을 지니게 되”며 북방 사람들은 “현실적이고 이지적이고 투쟁적이고 산문적인 경향을 띠게 되어 그들의 문학은 현실적인 성향을 지니게 된다”는 식으로 설명된다.

  그러나 이러한 남방문학/북방문학론은 제한된 범위 안에서만 유효한 것이지 모든 경우에 다 적용되는 절대적인 것이 될 수는 없다. 우선 지리적 내지 지역적 차이를 다른 방식으로 파악하는 것도 똑같은 정도로 유효할 수 있다. 예컨대 내륙/해안의 차이로 파악하는 것도 가능하고, 인문지리적인 쪽으로 초점을 맞추면 농촌/도시의 차이로 파악하는 것도 가능하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남방문학과 북방문학의 차이보다 더 큰 차이가 각각의 내부에서 숱하게 나타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요컨대 남방문학/북방문학론은 거시적 차원에서의 지배적인 경향을 드러내는 데는 일정 정도 유용할 수 있지만, 그보다 더욱 중요한 많은 사실들을 무시하거나 배제해 버릴 염려가 큰 것이다. 그 무시와 배제가 일정한 이데올로기적 입장과 결합되는 경우를 우리는 종종 본다.

  본 특집의 제목은 ‘북방 대륙의 상상력’이다. 이 제목은 한국의 입장을 강력하게 함축하고 있다. ‘북방 대륙’이라는 개념 자체가 그렇다. 한국은 반도이고 그 북쪽으로 대륙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북방 대륙’이라는 개념이 성립된다. 하지만 이 제목의 내포적 의미는 여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이 제목에는 한국이 단순히 반도가 아니고 역사적으로 북방 대륙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주장이 내포될 수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역사적 뿌리로서의 북방 대륙적 성격을 회복해야 한다거나 북방 대륙을 향한 일종의 진출을 추구해야 한다는 의도가 강력히 개재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지금 이러한 주장과 의도 자체에 대해 논하려는 것이 아니다. 내가 생각해 보고 싶은 것은 이러한 주장과 의도가 사태에 대한 객관적 인식을 방해하고 왜곡된 이미지를 생산할 수 있지 않은가, 하는 점이다.

  내게 주어진 제목은 ‘중국문학에 형상화된 북방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중국의 입장에서 볼 때의 북방이란 것과 한국의 입장에서 볼 때의 북방은 결코 같지 않다. 중국문학에서 남방문학/북방문학을 말할 때 북방은 “황하 유역과 그 이북 지방”을 가리킨다. 본 특집에서 ‘북방 대륙’이라고 했을 때의 북방은 그것이 아니고 한반도와 연결된 북쪽, 그러니까 길림성, 요녕성, 흑룡강성의 만주 3성을 가리킨다. 중국에서는 이 지역을 ‘동북’이라고 부르는 바 이 동북 지역은 중국의 입장에서는 북방이라기보다는 변방에 가깝다(역사적으로 볼 때 이 동북 지역이 중국의 강역으로 편입된 것은 청나라에 와서의 일이다).

  그 다음으로 짚어볼 것은 ‘대륙’이라는 개념이다. 우리에게는 성립되는 ‘북방=대륙’이라는 등식이 중국의 입장에서는 성립되지 않는다. 중국으로서는 중국 전체가 다 대륙이다(굳이 구분하자면 내륙과 해안의 구분이 있을 수 있고 이렇게 구분할 때 ‘내륙=대륙’이라는 등식은 성립될 수 있겠다). 그러므로 만약 ‘대륙의 상상력’이라는 것을 중국문학에서 찾아보고자 한다면 꼭 북방이나 동북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도처에 편재한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가령, 우리에게 잘 알려진 장이모우(張藝謀)의 영화 <붉은 수수밭>이나 그것의 원작 소설인 모옌(莫言)의 <붉은 수수 가족>에서 우리는 ‘대륙의 상상력’이라고 할 만한 것을 목도하지만 이 작품들의 지리적 배경은 베이징 이남의 산동성이다. 「중국의 땅에 눈이 내리고」라는 스케일 큰 시는 남방 절강성 출신인 아이칭(艾靑) 시인이 양자강 중류의 우한을 거쳐 서북 지역의 산서성으로 가는 행로 중에 씌어졌다. 2000년도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인 가오싱젠(高行健)의 장편소설 『영산』은 주로 서남 지역을 배경으로 역시 ‘대륙의 상상력’이라고 할 만한 것을 펼치고 있다.

  자, 그러니 우리는 ‘북방 대륙’이라는 수상한 표현을 쓰지 말고 우리에게는 ‘북방 대륙’이지만 중국의 입장에서는 ‘동북 변방’인 만주 지역이 중국문학에 형상화되고 있는 한 예를 소박하게 살펴보기로 하자. 나는 여성 작가 샤오훙(蕭紅)이 1935년에 발표한 중편소설 「생사장(生死場 - ‘삶과 죽음의 장소’ 정도의 뜻이 되겠다)」을 선택한다.

  딩링(丁玲) 이후 최고의 여류 작가로 평가받는 샤오훙은 1911년 흑룡강성 호란현에서 태어나 1942년 홍콩에서 31세라는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녀의 짧은 생애는 온통 참혹한 고통으로 점철되었다. 대지주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남존여비 사상에 젖은 아버지와 어머니에게(나중에는 계모에게) 학대를 받으며 자랐고, 1930년 하르빈여자제일중학에서 제적당한 뒤 당숙 집에서 살던 중 소작농들 편을 들다가 당숙과 아버지에게 살해당할 뻔했으며, 집을 나와 하르빈에서 떠돌이 생활을 할 때에는 동거하던 두 남자에게 차례로 버림받고 매춘가에 팔릴 뻔하기까지 했다. 두 번째 남자의 아이를 싸구려 병원에서 낳았는데 키울 능력이 없어 아기를 남에게 주었고, 그 뒤 세 번째 남자와의 동거를 시작했다. 그가 바로 소설가 샤오쥔(蕭軍)이다. 이 무렵부터 샤오훙은 글을 발표하기 시작했고 1933년에는 샤오쥔과 함께 공동 소설집을 내기도 했다. 샤오훙 부부는 1934년 하르빈을 떠나 상하이로 갔다. 1935년 샤오훙은 루쉰의 도움으로 「생사장」을 출판했고 이 작품으로 일거에 명성을 얻었으며 1938년에는 산서성 민족혁명대학의 교단에 선다. 그러나 샤오훙 부부는 사이가 그다지 좋지 않아 자주 다투었고 결국 헤어지게 된다. 1940년 샤오훙은 혼자 홍콩으로 가서 작품 활동을 계속하다가 폐병이 악화되어 1942년 죽음을 맞고 만다.

  「생사장」은 흔히 만주 지역에서의 농민의 항일투쟁을 그린 작품이라고 간략히 요약되곤 하는데, 항일투쟁이라든지 일본의 가혹한 폭력적 지배 이야기가 포함되어 있고 또 그것들이 서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러나 내가 보기에 이 작품은 그보다 훨씬 넓은 의미 지평 위에 서 있다. 이 작품은 17개의 단장(斷章)을 병렬하고 있는데, 흑룡강성 시골 어느 마을의 농민들이 번갈아가며 각 장의 주인공이 되고 있다. 그들의 삶은 망가져가는 삶이다. 가난과 무지, 그리고 인간의 인간에 대한 악의가 그들의 삶을 망가뜨리는 주된 이유이고 그것을 지주의 착취와 일제의 탄압이 더욱 악화시키는데, 그것은 거의 운명 내지 존재의 조건인 것처럼 그려지고 있다. 많은 인물들이 여러 가지 이유로 죽는다. 죽음의 이미지는 이 작품의 주조이다. 특히 도살장에 끌려가는 늙은 말이라든지 태어나자마자 죽는 아이 같은 경우는 죽음의 이미지에 부조리의 색채를 부여해 주기까지 한다. 죽지는 않더라도 망가져 가는 과정에 있다는 점에서 모든 인물들은 공통된다. 그래서 불구 이미지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아직 풍요가 존재하는 첫 번째 장(밀 농사가 풍년이다)에서도 절름발이(아버지), 곰보(어머니), 비틀린 다리(아이)로 구성된 가족이 등장한다. 두 번째 장부터 황폐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면서 이에 상응하여 여러 형태의 죽음들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출산하다가 죽는 산모, 태어나자마자 죽는 아이가 그 많은 죽음들의 중심에 있다. ‘탄생=죽음’이라는 불모(不毛)의 모티프는 거의 신화적 색채를 띠고 있다. 이것이 하나의 신화라면 재생 모티프가 결여되었거나 미약한 신화라고 할 수 있다. 겸도회(鎌刀會)라는 농민 비밀결사의 조직이 실패로 돌아가는 일, 그리고 항일투쟁에 나섰다가 싸워보기도 전에 궤멸되는 일은 재생에 대한 불신을 암시해준다. 마지막 장에서 혁명군에 가담하기 위해 떠나는 이청산과 이리반의 모습 또한 그 불신으로부터 그다지 자유롭지 못해 보인다.

  「생사장」에서 내가 발견하는 것은 ‘북방 대륙의 모습’이 아니다. 내가 발견하는 것은 역사적으로는 식민지 반봉건 상태에서의 고통스러운 삶, 실존적으로는 부조리로서의 삶, 그리고 작가 샤오훙의 비극적 세계 인식과 도저한 비관주의일 뿐이다. 그리고 그것들이 꼭 1930년대 중국의 동북 변방의 모습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라는 각성이 뒤따른다. 지금 여기의 우리 또한 똑같은 삶을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현대적인 것으로 열심히 치장했지만 그 치장들을 다 합쳐도 여전히 우리는 무지와 기만으로 가득한 고통의 생사장 속에 반성적 의식조차 없이 갇혀 있는 것이 아닐까. 말하자면 나는 「생사장」에서 삶의 보편적인 모습을 엿보는 것이다.






성민엽
글 / 성민엽_평론가, 서울대 중문과 교수. 1956년생. 평론집 『지성과 실천』 『문학의 빈곤』 『현대 중국문학의 이해』 『현대 중국의 리얼리즘 이론』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