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 기억/망각 형식으로서의 사소설 - ‘만주’와 일본문학

  • 기획특집
  • 2003년 가을호 (통권 9호)
* 기억/망각 형식으로서의 사소설 - ‘만주’와 일본문학

   
1932년에 일본 관동군의 주도 하에 ‘건국’된 ‘만주국’의 붕괴와 소멸까지의 역사는 그 비참함과 그로테스크한 성격 때문에 전후 일본에서는 가능하면 떠올리고 싶지 않는 기억으로서 존재했다. 지식인이나 문학자들을 중심으로 한 그런 ‘전향적(前向的)인’ 자세가 가령 전쟁 책임이나 전후 배상 문제를 애매한 채로 남겨두고, 지극히 무책임한 결과로 이어지면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기는 전후 반세기를 지난 현재로서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런 무위(無爲)가 한편에서는 환호부터 증오까지를 포함하는 ‘만주국’을 지탱한 여러 담론이나 상상력의 망각으로까지 이어졌다면 그야말로 잘못된 전철을 되풀이했다는 비난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 당시의 ‘만주’ 담론에는 실제 정치가나 군인들뿐만 아니라 많은 문학자들도 가담했는데, 전후 일본의 문학 연구에서 그러한 상황을 망각하지 말고 기억해 두려고 한 귀중한 작업이, 가령 오자키 호쓰키(尾崎秀樹)의 『구식민지문학의 연구(舊植民地文學の硏究)』(1971)였고, 최근 것으로서는 가와무라 미나토(川村湊)의 『만주붕괴(滿洲崩壞)』(1997), 『문학에서 보는 <만주>(文學から見る「滿洲」)』(1998)였다고 할 수 있을 것 있다.

다만 이들 연구에서 언급되는 일본인이나 한국인, 중국인 문학자들의 창작행위 ─ ‘오족협화(五族協和)’를 둘러싼 비애, 희망, 좌절의 형상화는 현재의 감각으로 봐도 역시 그로테스크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너무나 생생한 기억이기 때문에 망각의 대상이 되기 쉬운 점과, 아니, 그렇게 해서는 문학 행위의 정치성을 대상화할 수 없다는 지적 욕구가 교차되는 지점에 ‘만주’를 둘러싼 기억이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 가령 한국에서도 최남선이나 염상섭과 같은 문학자들은 상당히 오랜 기간에 걸쳐서 만주에 거주했지만, 그 기간은 지금도 그들의 연보에서는 거의 공백 상태이다. 월북 작가도 아닌 그들의 연보의 공백은 해방 후의 한국에서 본인들의 증언 등에 의해서 얼마든지 채워질 가능성이 있었는데, 그렇게 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과연 무엇을 의미할까? 그들이 만주에서 실제로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는 가능성은 완전히 배제할 수 없더라도, 그 공백은 역시 그들에게도 만주에서의 기억은 떠올리고 싶지 않는 것, 잘못 고백해서 규탄을 받기보다는 오히려 망각해 버리고 싶은 것으로서 인식되고 있었다는 증거가 되지 않을까?

실제로 당시 만주에서 발표된 문학작품은 ‘오족협화’의 이념을 칭찬하는 표현의 생생함 때문에, 지금 볼 때 여러 상상력을 환기시키는 것과는 거리가 먼 것, 혹은 과거 어느 시기에 존재했던 하나의 ‘풍속’으로 처리되기 쉽다. 그러나 가령 한국문학에서도 작가들의 만주 경험이나 6·25 전쟁의 기억들이 그 후에 ‘회상’의 대상으로서 끊임없이 작품의 소재가 되었다는 사실은 두루 알려진 바이다. 오히려 그러한 ‘회상’이 ‘비참한 기억을 미화했다’는 비난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하더라도 현재 소설 독자들의 감수성에 견딜 만한 작품일 때가 많다. 가령 김조규 편 『재만조선인시집(在滿朝鮮人詩集)』(1942) 등은 그 분야의 연구자라면 우선 기억해야 할 작품집이지만, 수록된 작품들이 현재에 이르기까지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고, 안수길의 작품이라고 하면 당시 만주에서 간행된 신문 『만선일보(滿鮮日報)』에 게재된 장편 『북향보(北鄕譜)』(1944)보다도 해방 후에 발표된 장편대하소설 『북간도(北間島)』(1959~67)가 더 사람들의 기억에 남아 있을 것이다. 6․25 전쟁에서 소재를 얻은 작품들도 1950년대에 종군작가들이 쓴 것보다 그 이후에 회상되면서 쓰여진 작품이 사람들에게 더 기억되고 있다. 요컨대 그로테스크하고 비참한 기억은 그렇게 비참했을만큼 그것이 문학적으로 형상화되는 데에는 어느 정도의 망각을 보장하는 ‘시간’이라는 거리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것이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는 둘째치고 말이다.

일본의 문학작품 중에서 그렇게 기억의 무게에 견딜 수 있는 작품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아베 고보(安部公房)의 장편 『짐승들은 고향을 향한다(けものたちは故鄕をめざす)』(1957)나 미나카미 쓰토무(水上勉)의 장편으로 나중에 연극화되면서 호평을 얻은 『심양의 달(瀋陽の月)』(1986)과 같은 작품들이 거기에 들어갈지 모른다. 하지만 우선 첫 번째로 기억해야 될 것은 1969년의 아쿠타가와상(芥川賞) 수상작인 기요오카 다카유키(淸岡卓行)의 단편 「아카시아의 대련(アカシヤの大連)」(1969)이 아닐까? 여기서 이 작품이 중요한 것은 ‘망각’과 ‘미화’의 완성도 때문이 아니라, 완전히 그 반대의 이유에서이다. 즉, 이 작품이 집필되었을 때에는 분명히 작가인 기요오카 자신의 20여년 전의 회상으로서 쓰여졌는데도, 실제 작품은 회상 형식이 아니라 실시간으로 수기를 엮어 나가는 형식으로 집필되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완성도 높은 구성으로 짜여져 있는 것이 아니라, 소위 말하는 일본의 ‘사소설’ 형식의 특징, 즉 ‘리얼리티’를 보장하기 위해서 작가의 작위(作爲)는 가능한 한 배제하고, 작품이라는 틀에 의해서 확정되는 시간 속에서 가능했던 연상(聯想)이나 사건들을 실제 순서대로 충실하게 배열해 나가는 식으로 구성되어 있는 부분도 지금 다시 생각하면 ‘소설’이라는 기억/망각의 형식과 그 효용성을 생각하는 데 지극히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단편 「아카시아의 대련」에서 아카시아 꽃이 향기로운 5월은 1945년 8월 15일을 사이에 두고 두 번 찾아온다. 두 번째의 아카시아 꽃이 피는 계절에 주인공인 ‘그’가 어떤 일본인 여성과 만나고 삶에 대한 희망을 찾게 되는 대목이 부각되는 것은, 그 이전까지 ‘그’가 끊임없이 죽음에 대한 충동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이 패전한 해의 3월, ‘그’는 어차피 학도병으로 전쟁터에 가서 죽는다는 자포자기적인 심정으로 자살에 대한 충동을 느끼면서, 대학을 휴학해서 부모들이 사는 대련으로 ‘마지막 귀향’을 시도한다. 귀향한 다음에 ‘그’가 하는 일이라고는 자신의 방에서 누워 있거나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면서 여러 공상에 빠지거나 혹은 가끔씩 산책을 나갔다가 대련 시내의 거리 풍경을 보고 자신의 과거를 떠올리는 정도이다. 이런 상황에서 맛보게 되는 ‘마지막 귀향’의 첫 번째 아카시아 향기는 감미로운 죽음을 방불케 하는 그 무엇이다. 그리고 그런 감정은 어느 경우에도 이 대련 땅에서 자신이 경험한 실로 다양한 일들에 대한 향수가 대련의 자연 풍경에 대한 애착과 함께 떠오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죽음에 대한 충동을 느끼는 ‘그’의 뇌리에 떠오르는 향수는 시종일관 ‘평화적인’ 도시로서의 대련에 대한 것이다. 다만 그것은 대련의 자연 풍경에 대해서만 ‘풍토의 고향’을 느낄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일본어에 대해서만 ‘언어의 고향’을 느낄 수밖에 없는 왜곡된 감정의 발로로서 표출된다. 그 ‘왜곡’이 ‘그’의 참된 심상(心象)으로서 묘사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소설이 다름 아닌 일본어로 집필되었다는 사실은 작가의 언어 능력의 문제를 떠나서 지극히 중요할 것이다. 요컨대 일본어로 기억된 것은 일본어로 표현해야만 리얼리즘이라고 할 수 있다는 단순한 법칙 혹은 신념 자체가 이 작품의 시공간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거기에는 중국인이나 러시아인이 분명히 등장하는데도 그들이 실제 생활에 있어서 일본어를 구사할 일은 별로 없었다는 이유로 작품의 후경(後景)이나 풍경으로 쫓겨난다. 그리고 그 전경화(前景化)와 후경화(後景化)가 역사적인 사실로서의 식민지 도시 대련의 정치적인 지배 질서와 부합되는 것이다.

그 대신에 이 작품에서 전경화되고 있는 것은, 가령 ‘그’가 대련의 풍토를 일본어로 읊은 단가(短歌)나 시를 음미하는 시점에서 그 ‘언어’와 ‘풍토’ 사이의 괴리가 ‘그’의 내부에서 기묘하게 결합․융화되어 가는 장면이다. 가령 군의부장으로서 러일전쟁에 종군한 모리 오가이(森鷗外)의 『노래일기(うた日記)』(1907)에 나오는 단가 “꿈 속의 / 사치의 꽃이 피던 / 다리니(대련)의 도시는 / 우리가 노는 곳 (夢のうちの / 奢の花のひらきぬる / だりにの市は / わがあそびどころ)”의 ‘사치의 꽃’에 대해서 ‘그’는 아카시아 꽃향기의 화려함과 비애를 상상하고, 또 「오노 누히노스케(大野縫殿之助)」라는 무훈시에서 러일전쟁 때 대련이 일본군에 의해서 무혈점령된 사실을 구가하는 부분에서 ‘그’는 전화(戰火)를 피할 수 있었던 대련의 ‘평화적인 모습’을 본다. 또한 1924년에서 4년 동안 대련에서 실제로 간행된 시 동인지 『아(亞)』에 게재된 안자이 후유에(安西冬衛)의 유명한 「봄」이라는 단시 “나비가 한 마리 달단해협(韃靼海峽)을 건너갔다.(てふてふが一匹韃靼海峽を渡つて行つた。)”라는 표현에서 ‘그’는 국제정치의 거센 물결 위를 대담하게도 가볍게 건너가는 가련한 생명을 찾아봄으로써, 그 천의무봉의 경쾌함과 대련이라는 도시의 위상을 겹쳐서 보는 것이다. 물론 이 시점에서도 ‘그’는 죽음에 대한 충동을 버리지 않았기 때문에, 그 ‘평화’에 대한 몽상은 안락한 죽음에 대한 갈망과 표리일체를 이루는 것으로서 묘사된다. 그 ‘평화’가 작품 전체를 통해서 상당히 가벼운 필치로 회상되면서 그려지는 점이 대련이라는 식민지도시에 거주하는 일본인의 부유감각(浮遊感覺)을 말해주고 있다. 그러니까 여기서 묘사되는 풍경으로서의 대련은 일본어로 회상되면서 묘사되어야만 참된 심상으로서 존재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가령 10개 국어로 번역되는 것을 전제로 작가가 창작을 시도한다면 그 때 어떤 사태가 초래될지 상상해 보자. 적어도 이 단편 「아카시아의 대련」은 그런 경로를 통해서는 나타날 수 없었던 사소설이다. 아니, 사소설이라는 형식 자체가 이미 처음부터 번역되기를 예상하고 있지 않다. 바꿔서 말한다면, 그런 ‘기억’과 ‘망각’의 형식 혹은 장치로서 사소설이라는 장르는 일본문학에서 계속 유지되어 왔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실은 대련은 ‘만주국’의 일부였던 적은 한 번도 없다. 그곳은 ‘관동주(關東州)’라고 해서 러일전쟁 때 일본이 러시아에서 ‘뺏은’ 땅이고, 그 후 중화민국과의 조약을 통해서 99년이라는 기한으로 빌리게 되었고, 얄타회담, 포츠담선언의 수락으로 일본이 ‘포기’하게 된 조계(租界)였다. ‘대련’이라는 도시 이름도 앞에서 인용한 모리 오가이의 단가에 나오듯이 러시아어 ‘다리니’(‘멀리 있는’이라는 뜻의 형용사)라는 도시 이름을 그대로 계승한 것이다. 그런데 대련이 자유항으로서의 기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물론 그 ‘만주국’의 현관=일본의 대륙침략의 입구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열강들이 각축하는 국제정세를 괄호 안에 넣음으로써 「아카시아의 대련」에서의 ‘그’의 심상 풍경의 리얼리티는 보장되었다. 이 점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 회상이라는 기억의 방법은 망각의 한 형식이다. 그리고 그런 망각은 오늘날에 우리가 나날의 일상 생활을 영위해 가는 데에 있어서도 필요로 하고 있는 ‘상상’ 행위의 한 변종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와타나베 나오키
글 / 와타나베 나오키(渡辺直紀)_고려대 국제어학원 전임강사. 1965년생. 저서 『思想讀本․韓國』, 『韓國の近現代文學』(이상 공저)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