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 수난을 딛고 대륙에 싹틔운 민족의식 - 조선족 문학에서의 북방의 상상력 연구

  • 기획특집
  • 2003년 가을호 (통권 9호)
* 수난을 딛고 대륙에 싹틔운 민족의식 - 조선족 문학에서의 북방의 상상력 연구

 1. 북방의 지정학적 의미와 문학적 상상력의 관계 - 머리글을 대신하여

중국에 살고 있는 조선족은 대체로 중국의 북방 지역에 산재해 있고1) 그 때문에 지역적으로 북방의 기타 민족과 마찬가지로 북방 특유의 문화적 특색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물론 이민의 역사가 그리 오래지 않은 점을 감안한다면 이러한 북방의 특징을 깊이 있게 연구함은 아직 시기 상조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그러한 연구를 진척시키지 않으면 안되는 것은 그것이 이른바 북방 지역에서의 한민족의 지속적인 존속과 그 발전을 위해서 지극히 바람직한 일이겠기 때문이다.

북방의 기후와 자연물, 여타의 조건을 감안해 흔히들 북방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솔직하고 호방하며 강직한 성격으로 특징짓는다. 중국의 북방에 살고 있는 여러 민족도 대체로 그러하다. 조선족의 경우에도 그러하다. 흑룡강성(黑龍江省)에 집중해 있는 경상도 출신들은 말할 것도 없고, 연변이나 요녕성(遼寧省)에 살고 있는 함경도, 평안도 출신의 조선족들도 거칠은 북방의 기후와 여러가지 이민족의 문화적 풍토 속에서 세월의 흐름을 따라 그러한 북방 특유의 성격을 어느 정도 지니게 되었다. 한국이나 기타 외국에서 조선족이 드러내는 거침없는 “돌출 행위”는 그러한 지역 문화적인 요소를 감안할 때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은 조선족 이민의 100년 남짓한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던 문화 교육적인 원천에 대해 오랫동안 사고해 오던 중, 조선족의 문학을 중점 대상으로 구체적인 접근을 시도해 보고, 그 과정에서 표현되는 나름대로의 북방의 상상력의 특징을 살피는 것을 목적으로 두고 있다.


2. 조선족 문학에서의 북방의 상상력의 내용

1) 북방의 상상력 - 수난 세대

조선족의 이민의 역사는 대체로 조선 후기, 전례없던 자연 재해와 경제적 궁핍의 모면으로 시작되어 일제 치하에서는 전쟁 피난과 생활난, 항일투쟁 등 다양한 원인으로 비롯되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한 엄혹한 환경 속에서 폐쇄적이면서도 비교적 평화로운 단일민족으로서의 공동체를 영위해 가고 있었던 과거와는 달리 고국을 등지지 않을 수 없었던 이들 이민들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온갖 고난을 헤치고 생존을 위한 가열처절한 몸부림을 끊임없이 해야만 했던 것이다. 이러한 모든 수난과 투쟁이 점철된 역사는 당연히 문학에 반영되어 조선족 문학의 개성적인 내용의 중요한 부분으로 자리잡게 되는 것이다.



東海바다 푸른 물이 어깨를 우쭐거린다 / 白頭山 중허리의 흰 눈이 녹아 내린다 /

그러나 아아 생각해 보아라 / 어느 때, 어느 해, 어느 날, /

내 百姓들이 흐르는 봄빛을 노래하였던가를! /

꽃수레도 종다리도 햇빛과 물줄기도 가난한 내 겨레에겐 暗室이다, 무덤이다.

- 「三春泣血」                      



黃昏의 電線이여 市民의 枯渴한 넋이여 / 그 중에 외로운 내 그림자가 흐리여진다 /

鄕里에선 異端兒라 追放 當하였고 / 동무들은 卑怯하다 旅程을 멀리 하였느니 /

구으는 歷史의 私生兒― / 그렇다 누가 피없는 내 노래에 伴奏할거나 / (중략) /

눈물의 노래여 길을 찾어 읍조리는 마음의 曲調여 /

久遠의 懷疑哲學者― 無氣力한 英雄主義者, / 아아 憂鬱이다, 灰色이다 /

귀기우리라 나의 女人아 이 저녁 서글픈 내 노래가 네 들창을 두드린다.

- 「黃昏의 거리」



이 시는 김조규(1914~1990)의 해방 전 작품으로, 감상적이고 일부 퇴폐적인 정서까지 내비치지만 고향에서 쫓겨나고 친구들한테서 버림을 받고 사회에서 소외당한 ‘역사의 사생아’로서의 식민지의 젊은 지식인의 정신적 고뇌를 “東海바다 푸른 물이 어깨를 우쭐거린다 / 白頭山 중허리의 흰 눈이 녹아 내리는” 자연의 장엄화려함과는 무관하게 “鄕里에선 異端兒라 追放 當하였고 / 동무들은 卑怯하다 旅程을 멀리 하였느니 / 구으는 歷史의 私生兒”로 전락된 신세를 굽어보면서 대륙적인 基底에서 출발하여 당시 상황의 암흑상을 거침없이 폭로하고 있다. 그 같은 어두운 현실에서 ‘久遠의 懷疑哲學者― 無氣力한 英雄主義者’로서의 시인이 ‘여인’의 창문을 두드리면서 서글픈 노래를 들려주려함은 ‘사생아’로 거리에 내쫓긴 망국노가 짓밟힌 어머니 - 조국에 대한 피타는 부름 다름이 아니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나 안타까움은 보다 넓은 의미에서 여인에 향한 시인의 관심과 의지로 이어진다. 


  아아 누구나 와서 먼 希臘의 神話라도 이야기하여 주렴, /

  女人의 들창의 벌-건 憂鬱을 담고있다 / 밤― 疲勞는 지금 보드런 慰撫를 渴望하거니 /

  (나의 女人아 조용히 창문의 커튼을 벗겨라 / 노래 잃은 내 노래가 네 마음에 스며들리니)

  - 「戀慕」



희랍의 신화를 들려주기를 바라며 아픈 우울의 심경을 나누어 갖고자 여인에게 다가가 위안과 함께 마음의 빗장을 열기를 간청하는 자세에서 시인의 작품에서 여인이 갖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짐작하고 남음이 있게 한다. 다시 말해 희랍의 신화를 들려줄 수 있는 여인은 서구적인 이미지를 띤 존재2)라는 점에서 현실적 모순에서 탈출하여 새로운 세계를 지향하는 시인의 염원을 드러내며 그럼에도 원활한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음은 역으로 현실의 엄혹함의 정도를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다.

김조규 시작품에서 다른 한 성격은 독자를 향한 강렬한 선동성으로 이는 고향 상실과 같은 현실적인 모순의 해결을 위한 하나의 적극적인 몸부림이기도 하다.



험한 바람 거친 비가 산천을 휩쓸 때에는 / 가난한 무리가 삶의 뿌리를 /

깨뜨러진 역사 위에 박으려 하고 //

사나운 짐승의 부르짖음 같은 우뢰 소리가 나는 곳에서 / 헐벗은 무리의 잠든 생명이 /

싸움의 터전으로 행진하려니 / 친우여 새 x x  건설하려 가두로 뛰어 나오라

- 「검은 구름이 모일 때」


김조규 시가에서의 북방적 상상력의 요소의 하나가 되는 선동적인 내용 요소는 이 작품에서 볼 수 있듯이 시초에 내재하고 있었던 듯싶다. 이러한 요소는 그의 시가의 남성적인 성격을 결정하는 하나의 어조와도 같은 것인데, 현실의 모순에 대한 인식에서 변화의 욕구가 생기고 그것의 효과적인 발산을 위해서는 일정한 선동력(煽動力)을 갖추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하지만 작품의 구체적인 창작에서 이들의 관계는 유기적인 정체성 속에 용해되어 나타난다. 다음의 작품이 이를 잘 설명한다.


첫째 處女의 맑은 노래가 聲帶에서 떨처나옴이어

굶주린 무리들이 ××의 ××를 손높이 들고

둘째 處女의 간엷은 손이 흔들림이여

헐벗은 무리들의 잠든 生命이 ××의 터전으로 行進을 하고

셋째 少女의 가벼운 몸이 움직임이여

눌린 무리들이 삶의 뿌리를 깨틀어진 歷史 위에 박으려 하고

넷째 少女의 목에서 快活한 웃음이 터저나옴이어

바뀌는 世紀의 쇠북소리가 우렁찬 音響을 떨처노리니

處女들이여 ×世紀의 귀여운 딸들이여

대중의 가슴에 ×을 못칠 노래에 맛춰 춤을 추어라

- 「處女들이여 춤을 추라」


李箱의 ‘13인의 아해’와 마찬가지로 ‘처녀’에 대한, 그것도 수난 받는 처녀에 대한 동정과 그 해방을 위한 적극적인 선동은 작고 여린 것에 대한 보편적인 연민과 사랑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소재를 적절히 선택한 사례라 할 수 있다. 말하자면 인간 심성의 가장 내면적인 부분에 충격을 가함으로써 보편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문학에서의 소재 선택의 비결이라면 비결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여성에 대한 관심은 김조규에게 있어서 특별한 이유가 있기도 하나 여기서는 더 이상의 설명은 피한다.

윤동주는 작품에서 자아와 현실 사이의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 초인적 화자를 등장시킨다. 이 초인적 화자는 그의 작품 「異迹」에서 처음 나타난다.


발에 터분한 것을 다 빼여 버리고 / 黃昏이 湖水 우로 걸어 오듯이 /

나도 사뿐사뿐 걸어 보리이까? //

내사 이 湖水가로 / 부르는 이 없이 / 불리워 온 것은 / 참말 異迹이외다. //

오늘 따라 / 戀情, 自惚인, 猜忌, 이것들이 / 자꾸 금메달처럼 만져지는구려 //

하나, 내 모든 것을 餘念없이 / 물결에 씻어 보내려니 / 당신은 湖面으로 나를 불러 내소서.


갈릴리 호수로 맨발로 걸어간 예수의 기적을 행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염원과 기도는 초인적인 모습을 갖추도록 구원을 바라는 화자의 간절한 소망이다. 이것은 표면적으로 현실과의 유리를 꾀함으로써 현실적인 갈등에서의 탈출을 의미하나, 보다 심층적으로는 현실적 모순에 대한 보다 적절한 해결의 방법에 대한 끈질긴 추구라고도 볼 수 있다. 이러한 염원과 기도는 다른 한 작품인 「무서운 時間」에서 의미 있는 죽음을 바라는 마음에서, 또 다른 작품인 「새벽이 올 때까지」와 「十字架」에서 죽어가는 자와 살아가는 자에게 모두 따뜻한 사랑을 베풀 줄 알고 때가 되면 십자가에 매달려 조용히 피를 흘리겠다는 다짐에서 잘 나타난다. 이처럼 현실의 모순을 극복하기 위한 초월적 의식이나 의지의 소유자가 곧 초인적인 화자인 셈인데 이것은 윤동주의 유년 시절에 중요한 정신적으로 중요한 영향을 주었던 기독교적 교양과 함께 일제 치하의 중국 북방의 살벌했던 환경과 무관한 것은 아니다. 물론 윤동주의 시에서 노래되는 초인적 화자는 종교적인 신의 존재와는 구별된다. 다시 말해 「서시」에서처럼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바라는 철저한 초인적 정신추구를 보여주면서도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할 줄 아는 인간다운 면모를 동시에 지님으로써 구체적이고 진실한 감동을 독자에게 전해주고 있는 것이다.

해방 전 문학으로 위의 작품과는 다른 장르의 작품을 들 수 있다. 연극 「血海之唱」이 그러하다. 작품은 1937년을 전후하여 일제가 중국 동북 지역에서 피비린내 나는 ‘대토벌’을 감행하던 시기 ‘뻐꾹새’, ‘쑹마마’, ‘왕핑’ 등의 인물을 통하여 한․한(韓․漢) 항일투사들의 형상을 창조하고 있으며 이들의 영웅적 투쟁을 서사적 화폭으로 감명 있게 보여주려 하고 있다. 이들 형상의 창조는 타국에서의 생존투쟁의 또 다른 양상으로, 보다 드넓고 어려운 생의 무대에서 기타 민족과의 공동적인 삶을 영위해 나가는 지혜까지 드러내 보이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2) 북방의 상상력 - 삶의 새로운 몸부림

이욱(李旭, 1907~1984)은 해방 후, 대표작으로 되는 서정서사시 「고향사람들」(1957)을 발표하여 이 시기 조선족 문학에서 뚜렷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이 서정서사시는 모두 5장으로 되어 있고 조선족의 이민의 역사 중 주로 간도 시기를 다루고 있다. 이민으로부터 개척의 역사는 그처럼 어려운 시련의 과정이었으나, 작품은 그 중에서도 주로 일제에 항거하는 항일유격대의 투쟁을 예술적으로 보여주려 애쓰고 있다.


제틀로 / 수림속에 나오면 / 천리 연봉― / 나뭇가지를 더우잡고 / 나래 돋친 용마인양 /

일행 천리 / 청운장을 휘둘러 / 산삼과 / 사향과 / 지초가 녹아내리는 / 압록강 / 두만강 /

송화강을 넘나들며 / 마음대로 / 풍운조화를 부려 / 불시에 / 놈들을 / 마른 날에 번개치듯 /

쳐엎는다 하나니3)


최영 장군의 “녹이상제 살기게 먹여 시냇물에 씻겨타고 / 용천설악을 들게 갈아 둘러메고 / 장부의 위국충절을 세워볼까 하노라”를 연상케 하는 이 작품 역시 항일투쟁에서의 한․한 두 민족의 단결을 보여주는데 주력하면서, 보다는 이민의 역사적인 전 과정에 대해 천착하면서 만주벌을 주름잡는 거창하고 호방한 기세로 시적인 함축미와 비약의 수법을 적절히 사용하고 있어 해당 시기의 문학에서 보기 힘든 민족적이면서도 개성적인 서사화폭을 특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 시인은 이 작품 외에도 서정서사시 「장백산의 전설」(1957) 등을 통해 민족적인 역사에 대해 지속적인 관심을 보이고 있어 주목된다.

이후 ‘문화대혁명’의 공백기를 거쳐 1980년에 김철(1932~ )이 장편서사시 『새별전』을 출판함으로써 민족의 역사는 문학에서 계속하여 다루어지게 된다. 다만 이 작품은 1만5천여 행의 장시로 민족의 설화를 주된 소재로 삼아 계급적인 갈등을 주된 내용으로 하고 있어 조선족의 이민의 역사와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다. 하지만 주인공 새별이와 그 남편 장수가 거느리는 농민봉기군의 호쾌한 투쟁 모습과 궁수경기의 장면 등은 고구려의 기상을 내재한 이 땅의 민족적 기운을 충분히 드러내고도 남음이 있다.

한편, 김성휘(1933~1991)도 1979년에 장편서사시 『장백산아 이야기하라』를 내놓아 조선족 시문학의 페이지를 더욱 두텁게 하고 있다. 시간적 흐름을 보면 이 작품은 김철의 『새별전』보다 먼저 출판된 것으로, 이 시기 장편서사시의 창작이 활발하게 행해졌던 까닭은 ‘문화대혁명’이 종결되고 민족적 의식의 부활이 가능해졌던 데 연유하는 것이었다. 아무튼 『장백산아 이야기하라』 역시 백두산을 중심으로 조선족과 한족이 힘을 합쳐 일제침략자와 벌인 눈물 겨운 이야기를 적고 있다.


산벼랑을 넘나들며 / 장수들 칼을 갈았다는 / 전설의 서사시 력사의 견증자 /

장백산아, 이야기하라! // (중략) // 너의 수림은 나의 붓 / 너의 천지는 나의 먹물 /

너의 폭포는 나의 서정 / 내 장백산마루에 올랐노라

- 「머리시」


위의 인용에서도 볼 수 있듯이 북방의 거칠은 환경은 인간의 심성을 “흰눈 떠이고 아득히 솟은” 백두산처럼 거연하고, 끝없이 펼쳐진 수림처럼 드넓은 흉금을 갖게 하며, 세차면서도 끊임없는 폭포처럼 변함없는 사랑을 내재하게 하는 것이다. 화자가 그러한 백두산 마루에 올랐다는 것은 그러한 공통적인 민족적 감수성에의 동참 내지 소속의 의욕을 강하게 드러내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해방 후, 조선족 문학에서 북방의 상상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문학가 중 소설의 분야에서 김학철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김학철(1916~2001)은 광복 이후, 선후로 남과 북에서 문학창작을 하였고 1952년에 연변에 정착한 이후로는 1957년까지 단편과 중편, 장편소설을 활발하게 창작하였다. 그중 장편소설 『해란강아 말하라!』(1954)는 중화인민공화국이 건립된 후 조선족 문단에 나타난 첫 장편소설이란 점에서 의미 있다. 소설은 모두 3부작으로 되어있는데 제 1부는 1954년 4월과 8월, 12월에 걸쳐 출판되었다. 소설은 일반 민중들의 비자각적인 투쟁에서 비롯하여 중국공산당의 영도 하에 이들이 자각적이고 집단적인 무장투쟁을 하는 과정을 일반화하여 보여주고 있다. 이들 주인공들이 소박한 농민으로부터 프롤레타리아 투사로 성장하는 과정은 다른 한편, 이국에서의 민족적 정착의 과정에 대한 예술적인 집약으로, 작가의 상상력의 특징적인 부분이 된다 하겠다.

김학철의 해방 후 소설에서 『격정시대』와 같은 작품 외에 한국에 널리 알려진 『20세기의 신화』(창작과비평사, 1996)는 조선족 문학에서의 북방의 상상력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문화대혁명’ 시기(1966~1976)를 배경으로 소설의 주인공 일평이가 겪는 일련의 해괴망칙한 사건은 민족적 수난으로까지 연장시켜 생각할 수 있는 이곳의 특정된 정치문화적 풍토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그것에 대한 작가적 사색은 일평이의 일련의 생각과 행위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지극히 솔직하고 강직한 북방의 사나이의 것 다름이 아니다.

이외 조선족 작가들이 민족적 의식을 중심으로 하여 나타내는 북방의 상상력은 리근전(1929~)의 장편소설 『고난의 년대』(상․하, 1982․1984)에서도 개척민과 청나라 관청의 모순, 일제침략자들과의 투쟁, 가진 자에 대한 없는 자의 투쟁 등을 주선으로 사건을 엮으면서 이 땅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여러 가지 가능성에 대해 예술적으로 갈파하고 있다.  


3. 줄이는 글

이상으로 중국 조선족 문학에서 대표적인 작가들의 대표작만을 추려서 이 속에 내재되어 있는 북방의 상상력에 대해 알아보았다. 이들 조선족 작가들의 북방의 상상력은 고국의 작가들과 비교해 볼 때 민족적 얼이나 의식 확인에서는 커다란 차이를 보이고 있지 않으나 그러한 의식의 내용을 표현할 때 지역적 특성상 타민족, 특히는 한족과의 관계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음을 엿보인다. 물론 특수한 정치, 이데올로기의 영향으로 이들 작가가 표현하는 민족적 의식은 계급적인 의식과의 점철된 양상으로 나타나며 이것이 북방의 상상력으로 표현될 때 그러한 상상력은 지역적인 특성과는 무관한 명확한 혁명성을 띠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상상력의 기저에는 한민족과의 끈질긴 연대감도 내재되어 있는 바, 그것은 거치르되 속되지 않고, 호쾌하되 깊은 정을 버리지 않으며, 너른 가슴을 가졌으되 민족적 동질성을 잃지 않은 그 점이다. 이러한 속성은 이후의 연구에서 더욱 세밀한 자료 검토와 심입된 분석을 요하는 것으로 이는 차후의 과제로 남기고 이만 줄이기로 한다. 





김경훈
글 / 김경훈_중국 연변대 조선언어문학학부 교수. 1960년생. 저서 『문학교육론』 『조선문학』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