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살인의 추억>과 원작 연극 <날보러와요>는 2003년 상반기 두 분야에서 최고의 작품으로 지목되며 흥행 1위를 기록하였다. 영화와 동시에 상연되면 실패한다는 그간의 통념을 깨고 원작 연극도 관객몰이에 성공했기에 이 성과는 더욱 흥미롭다. 거기엔 그럴만한 이유가 충분히 있었다. 우선 무엇보다도 ‘화성 연쇄 살인사건’이라는 끔찍하지만 잊혀져버린 미제의 사건과 그 깊은 상처가 준 사회적인 의미를 우리에게 되물을 시점이 되기도 하였다. 게다가 각각은 연극과 영화로서 완성도 높은 작품으로 관객과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두 장르의 특성을 잘 살린 점과 두 작품을 든든히 받쳐준 힘은 무엇이었는지를 살펴보겠다.
<플란더즈의 개>에서 만난 봉준호 감독은 집요하리만큼 꼼꼼한 작가이다. 그는 원작 <날 보러와요>를 <살인의 추억>이라는 제목으로 바꾸었다. 제목부터 ‘살인’이란 극도로 부정적인 단어와 ‘추억’이라는 낭만적, 긍정적인 단어를 충돌시켜 새로운 의미를 깔며 시작하고, 긴 여운을 남기게 한다. 수많은 정치, 스포츠 이벤트에 대한 위대한 ‘추억’만을 기억할 1980년대 중후반에 우리가 해결하지도, 오래 기억하지도 못한 농촌 여인들의 ‘살인’이 자행되었음을 재현했다. 영화는 우리의 역사적 추억과는 ‘모순’되는 끔직하고, 무지했던 과거를 기억하게 하며 소름돋는 자책감으로 관객의 뒤통수를 친다. 감독이 말하는 ‘그 시대의 어쩔 수 없었던 공기’는 2003년의 관객에게 매우 사실적인 느낌으로 전해지고, 또 한편으로는 세월의 거리를 두고 바라보게 하며 사회적 의미로 확산되었다. 감독은 매우 디테일한 영상의 처리와 세밀한 연결, 의미화를 위한 영상의 중첩 등으로 살인사건을 둘러싼 여러 인물들 - 수사반원, 주민, 용의자 등 - 의 심리를 사실적으로 관객들에게 전이시킨다. 영화 전․후반부의 배수관, 터널, 수 없이 겹쳐지고 감춰지는 손들, 수사대 밖에서 수사대 안으로 - 여경, 박두만의 아내 - 로 점점 다가오는 범인 등은 미스터리의 긴박감을 더하면서, 미궁에 빠진 사건의 시간성을 확대시킨다. 박두만이 다시 찾은 배수관은 지금도 거기에서 숨죽이고 있고, 진범은 그곳과 이 영화관 안에서 우리와 함께 있을지도 모른다는 실감이 들게 하는 것이다. 이처럼 영화는 감각적인 사실성으로 우리 안에 들어왔다가 시대적 사회성의 여운을 남겼다. (중략)
* 본 원고의 전문은 <대산문화> 2003년 가을호 지면을 통해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