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어디 가면 늘 횡설수설 시끄럽다는 소리를 듣기는 하지만, 버스 안은 참말로 시끄럽기 한량없다. 서울에서 천안으로 가는 여정 동안, 와글거리는 저 소리들이 필시 어디로 튈지 모르는 오뉴월 개구리들의 합창이려니 여기며 듣다보니 기분좋은 잠까지 쏟아졌다.
교보생명 연수원인 계성원은 생각했던 것보다 그 규모며 시설, 풍광이 실로 감탄을 자아낼 만하게 훌륭했다. 학생 시절에 이런 곳까지 와보게 되는 아이들이 부러워지는 순간이다. 내가 이 아이들만 했을 때, 내게 이런 기회, 이런 경험이 한 번만이라도 주어졌더라면. 내가 이 아이들만 했을 때, 나는 그 얼마나 ‘진짜 작가들’들을 보고 싶어했던가. 작가라는 사람들하고 먼 발치에서 잠깐 보는 것도 아니고 물경 2박3일간이나 동고동락할 수가 있다니, 그것만으로도 이 아이들은 얼마나 복받은 아이들인가. 우리 생애의 어느 한 때, 특히 청소년 시기의 특별한 경험이 때로 한 사람의 인생 전체를 결정 지을 수도 있는 것이기에, 그만큼, 대산 청소년문학상 심사위원의 한 사람이라기보다, 아이들에게 비칠 작가의 모습에 더 신중해야겠다는 약간의 부담감을 안고 떠난 길이었다.
첫날, 점심을 먹고 아이들과 공식적으로(?) 첫 대면을 하게 되었다. 내가 맡은 아이들이 고3들이라서인지, 아이들에게서는 자못 문청 분위기조차 묻어난다. 기대에 찬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아이들의 시선 앞에서 나는 뭔가를 말해야만 한다는 압박감으로 뭐라고뭐라고 하기는 했던 것 같다. 그런데 난데없이 한 아이가 울기 시작했다. 내 말의 요지는 그러니까, 아이들이 처해 있는 현실하고는 전혀 동떨어진 이야기였던 바, 너희들이 진정으로 문학을 할 요량이면, 학교 공부 하지 마라, 는 다소 과격한 내용이었다. 솔직히 너희들이 이곳에 오게 된 건 순전히 운이 좋아서일 수도 있다. 얼마 전 공사 현장에서 아버지 일을 돕다 아버지와 함께 숨진 너희들 또래 아이 이야기를 아느냐, 너희들이 글 잘 써서 이곳에 와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딘가에서는 대산 청소년문학상이 있는지도 모르는 청소년들이 이 뙤약볕 아래 구슬땀을 흘리며 생계를 위한 노동을 하고 있을 것이다 운운.
작가와의 대화를 위해 나름대로 준비도 하고 얼마간은 들뜬 기분으로 모여 앉았을 아이들이 일순간 숙연해지면서 급기야 몇몇 아이들이 울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몇몇은 울고 몇몇은 불만어린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고…… 순간, 나는 뭔가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했다. 그중 한 아이 왈,
선생님, 지금 수능이 90여일밖에 남지 않았단 말입니다. 솔직히 제 진로에 대해서 고민이 많고, 오늘 이 자리까지 오게 된 것도 어찌보면 내 진로에 있어서 한 기회가 될 수도 있을 거란 희망을 안고 온 것이 솔직한 심정이란 말입니다. 그런데 선생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면 저는 정말로 혼란스럽습니다. 진짜 문학을 하려면 당장 이 문예캠프에서 뛰쳐나가 노동을 해야 한단 말입니까? 솔직히 말해 저는 그럴 용기가 없습니다. 그러면 제가 문학을 할 만한 자질이 부족해서 그런 건가요?
고3 아이들의 불타는(?) 시선이 일제히 내 입만 바라보고 있었다. 이왕에 앞질러진 물, 더 사정없이 나가버리자 하고서, 너희들의 작품은 솔직히 작품이랄 것도 없다, 나는 지금 내 앞에 있는 너희들 중에서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뙤약볕 아래서 일하고 있는 아이들 중에 작가가 나왔으면 좋겠다, (아이들 글을 무작위로 골라잡고 흔들어대며) 이것이 무슨 소설이냐, 도대체 너희들 글에는 생활이 없다, 이 글 주제가 뭐냐? 죽음이라고? 어린 것이(너희들은 하나도 어리지 않다고 말하고 난 직후에) 무슨 죽음이냐, 죽음보다 더한 것은 삶이다, 입에 거품을 물다시피 아이들에게 실컷 상처를 주고 나니 어느새 아이들과 내게 주어진 두 시간이 지나 있었다. 첫날부터 뭔가, 조짐이 좋지 않다.
40년대생 선배 선생님들 세 분, 60년대생 선후배들과 함께 조촐하고도 ‘알찬’ 계성원에서의 첫날 밤을 보내고 맞은 둘째날의 아침. 어제 내게 상처받은 여섯명의 고3 아이들을 복도에서 만났더니, 이 아이들이 슬슬 나를 피하는 낌새가 느껴진다. 점심 시간에 한 아이를 붙잡고 왜 나를 피하느냐고 물었더니,
“선생님이 작가에 대한 환상을 모두 깨버려서 그렇잖아요.”
오호 쾌재라, 싶으면서도 처음 이곳으로 올 적에 심사위원이 아니라 작가이기 때문에 아이들 앞에서 언행을 신중히 해야겠다던 나의 결심은 다 어디로 갔는가, 점심으로 나온 칼국수는 분명 지금까지 내가 먹어본 그 어떤 칼국수보다 맛있기는 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입맛이 쓰다. 이곳에 온 아이들 중에 분명 작가의 꿈을 지닌 아이들도 있을텐데 혹시 나의 망발 때문에 그 꿈을 일찌감치 포기해 버리는 아이들이 나오지나 않을까, 그렇다면 나는 또 얼마나 무책임한이란 말인가, 얼마나 무자비한이란 말인가.
둘째날에 만난 아이들은 중학생들이다. 어제 고3 아이들에 비하면 이 아이들은 솜털 보송보송한 병아리들 같다. 그러나 웬걸. 말하는 품새가 또랑또랑, 눈매는 초롱초롱. 어제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을 하면서 조심스럽게 ‘현지지도’를 해 나갔는데, 결국은 또,
“집에서 밥해 본 사람?”
“저요.”
“겨우 한 명이야? 제 목구멍에 들어갈 밥도 못하는 주제에 글은 무슨……” 순식간에 찬물이 끼얹어지고.
어찌됐든 이곳에 온 아이들 중에 집에 돌아가서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설거지하는 아이들이 몇명만이라도 나왔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품어본다. 세상의 모든 것이 다 그렇지만, 시도, 소설도 맨 먼저는 머리가 아니라 손에서 나와야 하지 않을까.
셋째날, 마지막 날이자 백일장 시상식이 있는 날이다. 짐을 모두 싸들고 시상식장으로 내려갔더니, 첫째날, 다짜고짜 울기 시작했던 아이가, 저만치서 고개를 푹 수그리고 앉아 있다. 고소를 금치 못하겠는 심정으로, 심사위원들이 있는 맨 앞줄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대상을 받을 아이가 호명되었다. 고개를 수그리고 있던 그 아이가 깜짝 놀라 시상대로 오른다.
“저어, 사실은요, 공선옥 선생님이 저는 떨어졌다고 해서 포기하고 있었는데……”
집에서 밥을 해본 적이 있는 중학생, 유달리 눈매가 초롱초롱한 아이는 끝내 호명되어지지 않았다. 그렇지만 내가 저한테 제일 많이 눈길을 줬다는 것을 그 아이는 알까.
어쨌든 계성원에서의 3일은 내 개인적으로도 작은 축제와 같은 나날이었다. 심사위원 의무복무 기간(?)이 2년이라는데, 나는 벌써 내년이 기다려진다.
공선옥
글 / 공선옥_소설가. 1963년생. 소설 『오지리에 두고온 서른살』 『내 생의 알리바이』 『수수밭으로 오세요』 『멋진 한 세상』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