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 남쪽으로 끝없이 펼쳐진 평원을 200km 가량 달리면, 레프 톨스토이가 살던 영지가 있다. 높이 솟은 자작나무가 양옆으로 나란히 늘어선 선 오솔길을 걷다보면, 숲과 사과나무로 둘러싸인 나지막한 하얀 이층집이 눈에 들어온다. 톨스토이가 태어나 삶의 대부분을 보내며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 『부활』 등 주요 작품을 집필하던 곳으로, 대문호의 삶과 문학의 체취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박물관이다. 그리고 거기서 약 20여분 동안, 숲 사이로 난 호젓한 흙 길을 따라가면, 이 작가의 초라한 무덤이 나온다.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이 영지의 이름이 ‘야스나야 폴랴나’다. 하늘이 청명한 숲 속의 빈터라는 뜻이다.
매년 9월 초 여기서는, 세계 여러나라 소설가들과 톨스토이 연구자들이 모여 이 작가의 문학이 우리 시대에 갖는 의미를 자유롭게 토론하는 문학제가 열린다. 야스나야 폴랴나는 이 무렵이면 황금빛 단풍과 빨갛게 익은 사과 향기로 방문객을 맞는다. 이 문학제의 피날레를 장식하는 행사가, 현재 활동 중인 러시아의 중견 소설가와 젊은 소설가들 중에서 각각 한 명씩을 선정하여 톨스토이의 탄생일에 시상하는 ‘야스나야 폴랴나 문학상’이다.
수상자는, 톨스토이재단 이사장 블라디미르 톨스토이를 포함한 러시아의 대표적 작가 및 평론가 5명으로 구성된 심사위원회에서 세 단계 심사를 거쳐 결정된다. 본격적인 심사는 7월 말 각자의 심사위원이 해당 분야마다 네 명씩의 후보자를 추천하면서 시작된다. 그 후 8월 중순경 심사위원들이 다시 모여, 전에 추천했던 작가들의 작품에 대한 구체적인 평가를 토대로 최종 수상 후보자 네 명의 명단을 확정짓는다. 이 명단에 들어있는 중견 작가 네 명과 젊은 작가 네 명은 9월 8일부터 야스나야 폴랴나에서 개최되는 문학제에 수상 후보자 자격으로 공식 초청을 받는다. 그리고 9월 8일 밤 톨스토이의 서재에 모인 다섯 명의 심사위원들은 최종 회의에서 수상자를 선정한다. 그 결정 내용은 다음날 아침까지 물론 대외비이다.
시상식은 다음날인 9월 9일 아침, 톨스토이 박물관 옆 빈터에서 개최된다. 톨스토이 기념메달과 함께 중견 작가는 2만 달러, 그리고 젊은 작가는 1만 달러의 상금을 받게 된다. 소련 붕괴 후 몇몇 문학상이 제정되었지만, 진보와 보수, 친 서구주의와 러시아 민족주의, 중앙과 지방 등으로 갈래갈래 찢어진 러시아 문단을 아우르는 대표적인 상이 부재했던 것이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특정 동인 그룹에 치우침 없이 시종일관 휴머니즘 정신으로 삶의 근본적 문제들을 천착하던 톨스토이의 문학 정신을 기리는 상이 제정된 것은 러시아 작가들에게는 각별한 의미를 갖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심사위원회는 “우리의 삶과 세계를 바라보는 고유의 시각을 자신만의 독창적 언어로 담아낸 소설가를 발굴하여 그의 책이 널리 읽히도록 노력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금년 9월 첫 수상자를 내게 될 ‘야스나야 폴랴나 문학상’이, 러시아 시장에 진출하여 그 사이 문화 및 예술계를 꾸준히 후원해 온 삼성전자 현지 법인의 재정지원으로 탄생한 것도 이채롭다. 우리가 러시아 문학으로부터 받은 정신적 자양분에 대해 고마움을 느껴야 한다고 평소 강조해 온 주러 한국대사관 정태익 대사의 제안이 이 문학상 제정에 적잖은 기여를 했다는 후문이다.
금년 9월 9일 아침 ‘야스나야 폴랴나 문학상’을 수상한 작가와 참가자들은 행사 후 톨스토이의 묘지를 참배하게 된다. 언젠가 여기를 찾았던 독일 작가 스테판 츠바이크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잊을 수 없는, 감동적인 묘지. 꽃이 무성한 숲 속의 자그만 네모 모양의 잔디더미. 십자가도 이름이 새겨진 비석도 없는 무명의 묘. 그리고 그 묘지 위를 쓸고 가는 것은 속삭이는 바람 뿐.”이라고 적었다.
톨스토이 묘지 앞에 고개 숙인 작가들 중에서, 세계 문학사에 우뚝 솟은 러시아 문학 전통을 이어갈 그런 소설가들이 나오기를 기대해본다.
김현택
글 / 김현택_한국외대 노어과 교수. 1956년생. 저서 『재외한인작가 연구』(공저), 역서 『도스토예프스키: 인간 영혼의 심연을 파헤친 잔인한 천재』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