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은 우리네 삶과 멀리 있는 게 아니다. 오히려 우리네 삶 속 깊숙이 내재하면서 우리네 영혼을 다스리는 인자(因子)로 문학이 존재한다. 나의 경우도 물론 예외는 아니다. 누군가 나에게 '시인은 왜 시를 쓰는가' 라고 묻는다면 '진솔한 삶의 역사를 위하여' - 이것이 나의 대답이다.
나는 누가 무어라 해도 '시'와 '삶'은 하나라고 굳게 믿고 있다. 나의 삶이 잠시도 쉬지 않고 살아 움직이고 있는 것이라면, 그래서 전력투구 온몸으로 나의 삶을 사랑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라면, 나의 시 또한 그러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러기에 나의 시에는 가장 가까이 나의 가족사가 많다. 그러나 이 가족사가 한정된 범주의 나만의 가족사에만 머무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온 인간사, 나아가서 모든 생명 있는 것에까지 확산되기를 바란다. 예컨대 다음과 같은 시 한 편을 보자.
비나리는 밤이면/ 어머니는/ 팔순의 외할머니 생각에/ 방문 여는 버릇이 있다.//
방문을 열면/ 눈먼 외할머니 소식이/ 소문으로 묻어 들려오는지/ 밤비 흔들리는 소리에
기대앉던/ 육순의 어머니.//
공양미 삼백석이야 판소리에나 있는 거/ 어쩔 수 없는 가난을 씹고 살지만/ 꿈자리가 뒤
숭숭하시다며/ 외가댁에 다녀오신 오늘,//
묘하게도 밤비 내리고/ 방문을 여신 어머니는/ 밤비 흔들리는 소리에 젖어//
- 차라리 돌아가시제./ 돌아가시제.
- 「밤비」 전문
내 갓 태어났을 때부터 나는 외할머니의 사랑과 정성 속에서 자랐다한다. 그 외할머니는 눈먼 채로 아흔 중반에 돌아가셨다. 따라서 이 시 역시 80년대 초에 씌어져 그후 『현대문학』, 『살아있는 시』에 실린 뒤 세 번째 시집 『『모기장을 걷는다』(1985, 오상출판사)에 수록되었다.
이 시를 쓰면서 나는 앞서 밝혔듯 한없는 울음을 울었다. 그것은 아마도 밤비가 주는 분위기와 창호지 방문을 여시고 머엉하니 빗속의 먼 허공을 바라보시는 늙으신 어머니의 모습, 그리고 외할머니 생각 끝에 내뱉으신 독백 등이 한데 어우러져 가슴을 저미었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내가 이 시를 쓸 수밖에 없었던 것은 마지막 연, 어머니의 기가 막힌 넋두리, 한숨 섞인 그 독백의 충격이 너무 컸기 때문이었다. 아마도 그것은 당시 육순의 어머니와 팔순의 외할머니를 통해 이 땅의 모든 여인의 인간사를 시로써 서사화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강했지 않았나 싶다.
그만큼 시상의 체험은 항상 새로운 의미를 갖게 하고, 그것은 관념과 관습과 나태를 거부한다. 휠덜린의 말처럼 시인은 신이 내리는 번갯불을 끊임없이 쐬야 하고, 제비처럼 자유로워야 한다. 파블로 네루다의 말처럼 사람은 날지 않으면 길을 잃기 마련이고, 새들의 비상을 보며 나는 법을 배우지 않으면 안 된다.
나는 오늘도 시를 쓴다. 시를 쓰는 순간. 살아 있는 나를 확인한다. 나는 시를 쓸 때마다 시는 곧 내게 있어 생명의 입맞춤이며 빛이며 목마른 희망이라는 신념으로 쓴다. 적어도 나에겐 고도의 기교나 말장난은 없다. 더더욱 어떤 아류나 유파나 유행성출혈병과는 거리가 멀다.
오직 '역사 속에서의 시인의 존재 가치'가 무엇인가에 대한 스스로의 물음에 답하기 위해 진솔한 삶을 살아가고 있을 뿐이며, 이러한 진솔한 삶의 역사를 새로운 언어로 쓰고자 지난한 몸짓을 멈추지 않을 뿐이다.
- 허형만
- 글 / 허형만_시인, 목포대 국문과 교수. 1945년생. 시집 『비 잠시 그친 뒤』 『영혼의 눈』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