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징의 일종인 알레고리(allegory)엔 흔히 불행한 시대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기 마련이다. 알레고리가 근본적으로 타락하고 부조리한 세계와 원치 않은 혈연을 맺고 있는 까닭이다. 주로 알레고리에 의지했다고 보여지는 김광규의 시들 역시 이와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4․19 혁명의 퇴락 또는 타락을 ‘희미한 옛 사랑의 그림자’로 명명하는 순간, 그는 운명적으로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가 ‘서정시를 쓸 수 없는 시대’임을 알았다고 할 수 있다. 기적적으로, 혹은 운좋게 살아남은 지난 시대에서 정직한 시인이 선택할 방법은 한때 김지하처럼 세상과의 대결 의지를 천명하거나, 우회적으로 알레고리를 택할 수밖에 없었다고 할 수 있다.
김광규의 시적 ‘시원의 자리’(김현)는 바로 그 점을 뚜렷이 하는 데서 시작되며, 또한 동시에 그의 시사적 위치는 그것의 성실하고도 끈질긴 시적 실천에서 왔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번 제 8시집 『처음 만나던 때』에서 그러한 알레고리가 그의 시의 배면(背面)으로 밀려나고 있다. 대신 그 중심에 ‘4․19’와 역사나 시대 대신 “가족들을 번갈아 쫓아다니며 / 집안일 샅샅이 간섭하고 / 왜 왜 왜 자꾸만 물어서 / 식구들을 꼼짝 못하게”는 “아기 세대주” “연이”(「아기세대주」)가 들어서 있다. 또한 “천둥 벽력도 아랑곳 없이 지중 위에서 / 질척거리는 뒷동산 숲에서 밤새도록 / 쉰 목소리로 짝을 불러”대는 “암고양이”(「줄무늬 고양이」)가 그 빈 자리를 메우고 있다.
물론 그의 이번 시집에서 알레고리를 바탕으로 하는 시가 전혀 눈에 띄지 않는 것은 아니다. 아직도 상당 부분 거기에 의지한 시들이 제 3부 ‘처음 만나던 때’를 중심으로 모여 있다. 하지만 이제 그의 관심사는 어디까지나 “두 돌이 가까워”질 무렵 “말을 시작”하려는 “아기”(「시여」)처럼 “어느 틈에” “정성들여 연필을 깎아 손에 힘을 빼고” 쓰는 시 또는 시 세계에 있다. 그게 달라진 시대 탓이건, 나이 탓이건 그리 중요한 것은 못 된다. 다만 그가 이번 시집을 통해 “앙징스럽게 작은 손”의 “옹알”(「끈」)같은 새로운 시적 ‘손님맞이’를 준비하고 있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그리고 그러한 움직임이 이전의 알레고리적 세계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게 만들고 있다.
그러나 이번 시집의 가장 큰 변화는 “대추나무”와 서로 적대적인 관계에 있다고 할 수 있는 “능소화 덩굴”이나 “호박덩굴”(「詩나무」)이 자연스레 공존하는 모습을 제시하는 데 있다. 곧 어떤 면에서 ‘늙은 대추나무’에게 있어 ‘능소화’나 ‘호박덩굴’은 자신의 성장과 지속을 방해하기에 제거의 대상이 될 수도 있지만, ‘나’에게 있어 그것은 서로 모순되거나 배척하는 관계가 아니다. 현상적으로야 엄연히 서로 대립적이고 상충되는 관계에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늘”을 가리는 “키 큰 대나무”와 “작약”(「작약의 영토」)처럼 서로 어울릴 수 없는 것들이 각기 나름의 독자성을 유지하면서 상생하는 그 어떤 것을 표상한다 .
알레고리적 세계 인식이 일정하게 쇠퇴하면서 대체로 공간적으로 늘 자연과 맞닿아 있는 집 내지 집 주변으로 한정되어 있는 그의 이번 시집에서 눈여겨 볼 것은 바로 이것이다. 여전히 그는 “말에 기교를 부리고 / 얼굴 표정을 꾸미는 사람은 / 필경 진실함과는 거리가 멀다”(「옳은 자와 싫은 자」)라는, 즉 알레고리적 세계 인식에 기반한 시의 교훈적이고 도덕적 기능을 은근히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그 가운데서도 “새소리”와 “내부순환도로를 달려가는 차량 소음”(「새들이 잠든 뒤」), “방학을 맞은 동네 아이들이 농구를 하거나, 인라인스케이트를 타느라고 떠들어대는 소리”(「늦여름」)와 “승부와 관계없이” “울어대고” “우짖는” “산개구리” 또는 “암내 난 고양이”(「오뉴월」) 소리 등 자연의 소리와 인위적 소리가 이분법적으로 대립하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 그에게 있어 자연의 소리든 차량 또는 인간이 내는 소리든 그 모든 소리는 “투항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마냥 “비굴하게 / 복종할 수도 없는 여름”(「팔월의 들머리에서」) 같은 왕성한 생명력이 내는 생성의 숨소리를 의미할 뿐이다.
너무도 서로 화해할 수 없는 ‘처음’과 ‘끝’, 신생의 ‘삶’과 ‘죽음’이 별다른 거부감 없이 공존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이번 시집의 의의는 단연 여기에 있다. 그의 시가 그동안 역사적이고 시대적인 삶의 타락과 부조리에 기반을 둔 알레고리에 의존한 탓으로 본의 아니게 ‘옳고 그름’을 나누는 데 익숙해져 있었다면, 이번 시집을 계기로 그러한 상반되고 모순되는 것들의 상호보완적인 역설의 관계로 시선을 옮겨가고 있는 것이 눈에 띈다. “바람”과 같은 서로 상반된 대립 상태(Widerstreit)의 대상과 마주하면서도 “혼자서 우뚝 솟아오르지 않는”, “여럿이 함께” “흔들릴 뿐”인 “우듬지”(「우듬지」)처럼 서로 구분되되 동시에 잇닿아 있는 모순 통합적 세계인식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가장 큰 의미있는 변화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시가 이제 알레고리적 인식이나 논리로 세계에 접근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럼으로써 인간과 세계 구성의 본래 모습에 다가서려는 본격적인 시도를 보여주고 있다고 할 것이다. 이번 시집은 그런 점에서 바로 그러한 생성적인 시세계로 가는 ‘끈’이나 ‘급소’, 혹은 ‘이륙’ 지점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임동확
글 / 임동확_시인, 한신대 문창과 강사. 1959년생. 시집 『매장시편』 『운주사 가는 길』 『처음 사랑을 느꼈다』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