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송기원의 『사람의 향기』에는 모두 아홉 편의 작품이 실려있다. 작가의 주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그들의 전(傳)에 해당한다. 그러나 그 대상은 무당의 딸 당달봉사 끝순이, 유복자로 태어나 외가에 맡겨진 외사촌형 울보 유생이, 가난한 과부의 아들이자 폐병환자 성관이, 안짱다리 억척어멈인 헤조갈래, 정신장애인 막둥이, 문둥이의 딸 정애 등등, 모두 평균이하의 고단한 삶을 살아온 이들이며, 그야말로 지지리도 가난하고 모자라고, 얻어맞아 피멍이 가실 날이 없는 가난한 육체와 영혼의 소유자들이다. 작가는 이 뿌리 뽑힌 사람들에게 각별한 애정을 보이며 이 소설집에서 드디어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따라서 이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이 인물들의 등장 그 자체이다. 작가는 왜 고달팠던 어릴 적 인물들을 이 자리에 불러모았던 것일까. 일차적인 답변은 작품집 후기 「집필실에서 띄우는 편지」에 드러난다. “아아, 나의 자의식에서 자유로워지는 순간, 저 모든 사람들은 나와는 전혀 무관하게 저마다 제 고유의 빛깔을 빛내며, 더욱 진하게 사람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 작품집의 구성법은 갱신된 주체와 과거의 기억들이 서로를 부추기는 방식이다. 그동안 감추고 싶었던 과거, 나를 위요(圍繞)하고 있었던 내 주변이 ‘나’의 새로워진 눈에 의해 사람의 향기를 내뿜으며 새롭게 기억되는 이야기가 된다.
작품 하나만 읽어보자. 「끝순이 누님」. ‘끝순이 누님’은 고향 땅 가메뚝 길목에 사는 무당 당골레의 딸이다. 그녀는 장님이다. 어린 나이에 외가에 맡겨져 늘 외롭고 배고팠던 나의 누이는 그녀와 친했다. 끝순이는 누이의 말동무였고 음식도 함께 나눴다. 그 집 앞을 지나칠 때 장님임에도 단박에 나를 알아내는 그녀가 난 무서웠다. ‘대운이냐, 양순이는 잘 있냐?’ 귀신의 힘인가. 그녀는 냄새로 안다고 했다. 누이가 시집을 간 후 어느 날, 끝순이는 아비 모를 아이를 임신한다. 이들은 곧 마을을 떠난다. 세월이 흘러 내가 대학생 시절, 다시 끝순이 누이를 서울에서 만난다. 어린 아들을 품에 안고 끝순이는 구걸을 하고 있었다. ‘나’는, 끝순이의 얼굴에서 행복감을 읽는다. 모른 척 하고 지나쳤다. 그 후 작가가 되어 고향을 다시 찾은 어느 날, 그녀는 고향 마을 사울촌 길가에서 ‘손자’를 업고 구멍가게를 하고 있었다. 그녀가 내게 “잉, 그 때 니가 서울에서 봤던 그 아그 아덜이여야”라고 말하는 그 순간, 나는 눈앞이 흐려짐을 느낀다. 살아낸 그녀의 삶에서 오는 감동 때문이기도 하지만 ‘내’가 그녀의 마음 한 부분에 스며들었음을 이제 확인할 수 있음 때문이기도 하다.
근대 세계에서 세월은, 시간은, 아름답던 것들을 가차없이 녹슬게 하고 지나간다. 아름다운 사랑도, 의리도, 고결한 이념도 시간은 여지없이 퇴색시키다. 인간은 시간 앞에 무력하다. 고향도 그렇지 않은가. 돌아갈 고향이 없어 안식처를 찾아 헤매는 영혼들의 방황이 근대소설의 주조음을 이루지 않는가. 그런데 송기원의 이 소설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아팠던 과거는 지금 이 자리에서 온전히 제자리를 찾아 기억되어 시적(詩的)인 따뜻함마저 확보하고 있다. 그 원천은 무엇일까. 그건 당연, 작가의 시선 때문이다. 그 시선은 이런 답변을 가능케 한다. “잘 왔소, 누님, 가메뚝에 잘 왔소.” 그리고는 다시 이런 질문, “그래 이 갓난애기의 할아부지는 찾았소?” 끝순이 누이가 이미 잊었다고 답했을 때 ‘내’가 바위에 짓눌린 느낌을 받은 이유란 무엇일까. 끝순이 누이의 이런 이야기 때문이다. “근디 말다, 나가 여기 온 그러께부터 해마둥 추석이나 설 같은 명절 때먼, 누군 중 몰르제만, 가게문 앞에다가 새벡같이 조구랑 서대랑 육괴기를 살모시 나놓고 간단 말다아.”
압도적인 주체의 시선은 시간의 속성을 초월하는 마력을 지녔다. 이 작품집에 실린 소설들의 대부분은 이런 작가의 시선에 떠받혀지고 있다. 압도적 주체라고 말했지만 그건 다름 아닌 ‘나’를 버린 텅빈 주체의 시선이기도 하다. 함께 구걸하는 모자의 얼굴에서 행복을 읽을 수 있는가. 고향길가 구멍가게를 연 끝순이 누이를 그토록 반갑게 맞을 수 있을까. 그건 그들의 운명적 불행 속에서도 실오라기 같은 희망적 구원을 떠올리는 작가의 시선이 아니고는 불가능하다. 이 작품집에서 작가는 넉넉한 시선으로 저 어둡고 고달팠던 인생의 바다에서 삶의 행복한 의미들을 건져 올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