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살 때 나는 심각한 고민에 빠졌었다. '저 아이는 염충교 다리 밑에서 주어 왔어요.' 어머니가 이따금 하던 그 한마디가 어린 가슴에 먹장구름을 몰고 왔다. 둘째 딸로 태어난 나는 항렬(行列) 이름이 없었다. 별 규(奎)자 돌림인 규민, 규영, 규현, 규웅, 규택 등 형제자매들의 이름과 다른 연희(然喜)라는 이름도 이상했고 내 얼굴도 형제들과는 달라 보였다. 형제들의 눈은 쌍꺼풀진 커다란 눈인데 나만은 얇은 눈꺼풀에 살결도 언니처럼 희지 않았다.
어느날, 나는 마음을 단단히 다져 먹고 어머니 앞에 섰다. '엄마 나를 정말 염충교에서 데려왔으면 이제 다시 그 자리에 데려다 주세요.' 어머니의 당혹스러워하는 표정을 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어머니는 나를 낳기 석달 전에 동네 사람들이 부러워하던 잘 생기고 영특한 아들을 잃었다. 뱃속의 아이에게 해로울세라 마음 놓고 울지도 못했던 어머니가 해산을 했을 때, 딸이라는 사실을 알고 참고 참았던 억장이 무너졌으리라. 68년 전, 여자아이의 출생은 어느 집안에서고 '섭섭이'였다. 할아버지는 손자 이름을 지어 가지고 오시다가 대문 위에 걸린 인줄이 딸아이라는 것을 보시고는 문지방을 밟지도 않고 가버리셨다.
어머니의 편애(偏愛)는 아들을 잃은 억울함과 내가 다시 여동생을 보았다는 불운(不運)에서 비롯되었고 그 관계는 내가 스물아홉,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까지, 어머니와 나 사이에 냉랭한 기류로 이어졌다.
사랑 없이는 인식(認識)의 문조차 열리지 않는다. 어머니의 사랑을 받지 못한 나는 아둔하기 짝이 없었고 쉰 밥에 파리가 꼬이듯, 질병에 사고에 까닭 없는 박해와 오해 속에서 끊임없는 신산(辛酸)을 겪었다.
외로움은 책을 만나게 만들었고, 영문 모를 냉대와 편애에 대한 억울함은 일기를 쓰게 만들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나에게 문학의 스승이었다. 이광수를 짝사랑한 어머니, 김동인의 『운현궁의 봄』 『젊은 그들』을 읽으며 눈물을 흘리던 어머니의 세계는 새롭게 만나는 동경이었다.
틈만 나면 소설을 읽던 어머니는 꽃을 사랑했다. 어머니의 손에서는 모든 것이 살아났다. 시들어가던 화분의 꽃도 싱싱해졌고, 이 집 저 집의 이상해진 장독의 장맛도 살려놓고는 했다. 갖가지 산나물, 야생화의 꽃 이름, 그리고 어느 꽃이 어떻게 뿌리는 내리는지를 알아서 꽃나무의 식구를 불렸고 그렇게 만든 화분을 이웃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러나 그러한 어머니의 사랑을 그리도 배고파하던 둘째 딸에게 어머니는 끝내 마음을 풀지 않았고, 눈치꾸러기요 천덕꾸러기에게 들이닥친 것은 전쟁의 참화였다. 15세에 겪은 전쟁은 인생에 대한 불가해를 더욱 깊게 만들었다.
인식의 문도 열지 못했던 처지에 영혼의 눈뜸을 어떻게 바랐겠는가. 이화대학 재학 3학년 때,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된 소설은 극한상황을 겪은 수녀가 하나님을 등지는 배교(背敎)가 주제였다.
그렇게 창작의 영토가 확보되고 소설가의 삶이 시작된다고 믿었으나 그것은 또 다른 고통의 시작이었다. 생명은 곧 사랑이요, 사랑이 곧 진리라는 것을 깨닫지 못한 창작 작업은 또 다른 배고픔이었다. 엄청난 파멸을 겪고 나이 40에 이르러서야 인생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이 열렸다. 그리고 내 생명의 뿌리가 사랑이었음을 그리고 그것이 곧 진리라는 사실 앞에 영혼의 눈이 뜨였고 비로소 나는 숨을 제대로 쉬기 시작했다. 내 생명이 자유 안에서 들숨과 날숨을 마음놓고 쉬기 시작했다.
선산 자락에 집을 짓고 언니네가 짓는 농사를 구경하면서 나도 호미자루와 낫과 삽을 들고 흙하고 살기 시작한 것은 20여년 전이다. 언니네는 주로 논을 일구고 밭에다 푸성귀를 심었지만 나는 논둑과 밭둑에 야생화를 심었다. 밭둑에 개나리도 심었고 조팝나무도 심었다. 형부는 그늘을 짓고 잡초를 키운다고 성화였지만, 나는 쑥부쟁이 메꽃, 오이풀을 심어가며 빈터를 찾아 나무를 심어 가꾸었다. 여름이면 날이 희부옇게 밝기 전에 밭으로 나가서 김을 맸다. 김을 매면서 잡초의 성질을 배우고, 새벽달이 하얗게 바랠 때쯤, 밤새 내린 이슬에 젖어 있는 잡초가 얼마나 숨막히게 아름다운가도 배웠다. 산책을 나간 길에 그럴듯한 풀을 만나면 곱게 떠서 데려오며 당부를 한다. '너 태어난 자리도 좋겠지만 기왕이면 내 뜰에 가서 꽃을 피우고 마음을 나누자…….' 그렇게 까치수염, 노루오줌, 말나리, 원추리 등을 키웠다. 나는 그렇게 어머니의 소설을 물려받았고 어머니의 꽃을 배웠다.
비가 온 뒤에 들로 나가면 땅은 물렁물렁하지만 호미며 삽에는 흙덩이가 무겁게 매달린다. 입고 나간 옷도 속까지 젖고 흙투성이가 된다. 그러나 해가 어지간히 올라와 정수리가 뜨거워져서 허리를 펴고 일어날 때, 그 청정한 아침 그 광휘의 아름다움에 내 영혼은 더없이 빛나는 날개를 얻는다. 내 존재가 신비한 빛에 감싸이는 순간이다. 나는 그 빛 속으로 걸어가 논둑에 앉아 맑은 논물에 호미를 씻는다. 물에 씻기는 호미 날이 푸른빛으로 눈을 뜨면 내 전신이 서늘해지고……. 세상에 다시 없을 그 아름다운 호미 날의 빛이 내 영혼을 흔들어 놓는다.
등단 47년. 흙을 배우기 20여년. 그러나 내 글은, 흙의 깊은 뜻과 정직함과 사랑에 아직 이르지 못했음을 다시 배운다.
밭을 일구듯 내 영혼을 일구고, 내 글쓰기가 풀꽃을 피우듯 꽃을 피운다면……. 그리고 누구인가 그 풀꽃을 만나 반가워하고 즐거워한다면 그 또한 즐겁고 기쁜 일. 아무도 만나지 못할지라도, 그 풀꽃 한 송이는 햇빛과 바람과 별과 달 그리고 새들이 노래하는 천지간을 누리리라.
내가 나의 일을 마치고 세상을 떠날 때, 맑은 논물로 씻어낸 호미 날처럼 내 영혼이 그렇게 빛날 것을 바랄 뿐이다.
- 정연희
- 글 / 정연희_ 소설가. 1936년생. 소설 『여섯째 날 오후』 『내 잔이 넘치나이다』 『바위눈물』 『양화진』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