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전당포’는 오랫동안 천식을 앓고 있는 노인 같다. 가물거리는 형광등 불빛이 잦은 기침 끝에 가까스로 숨을 고르는 듯 희미하다. 요 며칠 사이 새로운 물건이 하나도 들어오지 않은 진열대에는 먼지가 더께로 앉아 있다. 그래도 옛날에는 찬란했던 시절이 있었노라고, ‘희망전당포’는 과거의 영화를 되돌아보며 스스로 위안을 삼는 나이가 되어 버렸다.
이 전당포의 늙은 주인 전(錢)씨는 자정이 되자 덧문을 꼭꼭 걸어 잠근 뒤에 메추리알 같은 형광등의 스위치를 눌러 껐다. 주인 전(錢)씨가 방으로 잠을 자러 들어가면 전당포도 함께 잠이 든다. 그것은 ‘희망전당포’가 문을 열고 나서 30년 동안이나 되풀이해 온 일이었다. 그 동안 주인이 한 번도 바뀌지 않은 것은 이 곳에서 ‘희망전당포’ 자신밖에 없었다. 전당포의 개구멍 같은 철망 사이로 들어와 맡겨진 물건들은 수시로 주인이 바뀌었다. 그 바람에 ‘희망전당포’는 때로 그들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당신은 주인이 늘 가까이에 계시는군요.”
진열대에 쌓인 물건 중에 누군가 이렇게 말하면,
“음, 그렇긴 하지.”
하고 ‘희망전당포’는 대수롭지 않은 일인 듯 하면서도 어깨를 으쓱거렸다.
오늘도 주인 전(錢)씨가 불을 끄고 들어가자, 진열대에 놓인 물건들이 하나둘씩 입을 열기 시작했다.
예나 지금이나 이들의 주 화젯거리는 자신들의 진정한 주인이 누구일까 하는 것이었다. 전당포에 맡겨진 물건들은 아무리 값이 나가는 것이라 해도 불안한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물건을 맡기고 돈을 빌려 간 사람이 다시 돌아올 때까지는 불안한 기다림이 계속되는 것이다. 약속한 날짜가 되어도 손님이 돌아오지 않으면 기다림은 체념으로 이어지고, ‘희망전당포’가 전혀 희망을 주는 곳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부터는 먼지를 뒤집어 쓴 채 볼썽사나운 몰골로 하루하루를 견뎌야 하는 것이다.
“내 주인은 틀림없이 돌아올 거야.”
손목시계가 초침을 째각거리며 말했다.
“나를 손목에 차고 다니던 그 사람은 중소기업의 젊은 사장이었어. 회사가 자금 사정이 좋지 않아서 졸지에 문을 닫게 되고, 그래서 빚더미 위에 올라앉은 사람이지. 결국은 나를 여기에다가 맡겼지만, 그는 정말 능력 있고 견실한 사람이었지. 게다가 부부 금실도 얼마나 좋았다구. 신부한테서 나를 결혼 예물로 받았으니 나를 잊을 리가 있겠어? 내 주인은 보나마나 지금 회사를 일으키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을 거야. 그러니 멀지 않아 그는 나를 찾으러 올 거야. 암, 그렇고 말고.”
전당포에 들어온 지 1년이 넘었건만 손목시계는 여전히 확신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는 매 시간 쉬지도 않고 똑같은 말을 되풀이하였다.
“여기 맡겨진 귀금속치고 결혼 예물 아닌 건 별로 없다는 걸 모르는구먼. 결혼 예물이 소중하다는 걸 아는 사람이 오죽하면 우리를 여기에다 맡기고 돈을 빌려 갔겠어? 나도 황금빛으로 빛나던 결혼 예물이었는데, 나를 맡긴 아주머니는 남편하고 이혼을 한 뒤에 나를 여기에다 내다 버린 거야. 설혹 갚을 돈이 생겨도 그 아주머니는 나를 찾아가지 않을 걸. 나는 이제 주인이 없는 몸이야. 누군가 나를 손가락에 사랑스럽게 끼워줘야 말이지.”
금반지가 핼쑥한 얼굴로 말했다.
“그래도 용기를 잃지 말아야지. 기다리는 것은 언젠가는 오게 되어 있어. 시간이 모든 걸 해결해 줄 거야.”
손목시계가 초침 소리를 더 크게 내며 말했다.
하지만 금반지는 여전히 입을 동그랗게 모으고 뾰로통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그 아주머니가 너를 찾아오지 않는다고 해도 실망할 건 없어.” (중략)
* 본 작품의 전문은 <대산문화> 2003년 겨울호를 통해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안도현
글 / 안도현_시인. 1961년생. 시집 『모닥불』 『그대에게 가고 싶다』 『그리운 여우』, 동화 『연어』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