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하순 여름방학이 시작되는 때부터 8월 중순 휴가철이 끝나는 무렵까지는 글쓰기에는 잔인한 시간인 것 같다.
무더운 나날. 흐리다가 오락가락하는 비. 천둥 번개에 소낙비도 어김없었고. 맑은 날이 의외로 드물었다. 햇빛 쨍쨍하면 쨍쨍한 대로 끓는 더위. 더우니 당연히 문을 다 열어놓았는데 들이치는 소음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끊임없는 금속음, 기계음에 자동차 소리, 어디선가의 공사 소음. 얼마나 갈아대고 얼마나 돌려대는지 도대체. 아파트 벽과 새시창들에 부딪혀 올라오는 아이들의 떠드는 소리는 바로 앞인 듯 소란했다. 수천 세대가 사는 아파트이니 이사도 매일이다시피 하는데 어느 날은 광증이 폭발할 것만 같았다. 이삿짐 트럭이 고가사다리를 설치해 곤도라를 돌려대는 소리는 가히 살인적이었다. 게다가 휴가차량이 어떱네, 휴가행렬이 어떱네, 어디에 십만 인파가 모였네, 물놀이 사고네 떠들어대는 소리. 아는 이들 누구누구 B로 C로 여행 떠났다는 부러운 소리들까지.
7, 8월 사이의 휴가철은 날씨도 날씨이지만 이토록 산란한 소음들의 세상일 줄 미처 몰랐다. 후회 막급이었다. 이렇게까지 환경(분위기)이 나쁠 줄 몰랐다. 7월 30일, 8월 5일, 10일 등의 원고 마감을 다음 달로 넘겼더라면 오죽 좋았을까. 두달 전 한달 전의 청탁원고들이었으니 그 시간들을 실컷 까먹고 마감 다돼 무슨 배짱으로 못 쓰겠다 할 것인가. 잘 나가는 글쟁이도 아닌 처지에. 군소리 말고 써봐야 하는 거였다. 초고층 밀집아파트 단지에 갇혀 꼼짝없이 허덕거려야 할 거였다. 그래도 내심 시인이 시 쓸 일 있으니 고마운 일 아닌가, 밖의 것들이야 저들대로 살게 두고 나는 마음을 조심하며 시나 쓰련다고 되뇌었었는데.
사실 7월 말 전후 기간은 써야 할 원고 때문에 가족과 휴가 계획도 안 잡고 이번에는 따로따로 놀자고 했다. 산과 바다가 대순가. 그것도 고생길이야. 나는 내 할일을 갖고 놀리라 하며 의연한 마음을 내었다. 큰 핑계거리였던 방학한 초등학교 딸아이를 여름캠프에 보내놓고 손이 빈 그 시간을 다잡으리라는 야무진 계획을 진작 짜 놓았던 것이다. 마감이 촉박한 데다가 어렵게 얻은 시간이 되어선지 원고를 잡고 있는 동안 정말 다행스럽게도 몰두가 잘 되었다. 컴퓨터에 타자와 인쇄로 뱅뱅 돌아가며 매달렸다. 인쇄해 뽑은 시편들을 몇 번이고 읽고 고치고 읽고 고치고 하는 중에는 쏟아져 들어오는 다음 시상과 다음 이야기들에 빠져 끌려다니기도 했다. 쓰기를 앞질러 달리는 상상의 세계가 경이롭기까지 하였다. 오랜만에 맛본 시쓰기의 즐거움이랄까. 이 말은 그동안 직무유기를 했다는 뜻이기도 해 잠시 마음이 언짢아지긴 했다. 그동안의 나의 사정이 씁쓸하게 떠오르면서도 이런저런 핑계로 밀쳐두지 않고 그때그때 불러주었더라면 진작 왔을지도 모를 이것들에 연민이 일었다. 아직 내 내면이 깡마른 것이 아님을, 힘이 남아 있음을 느끼며 안도와 자책을 같이 했다.
그러나 안도란 턱없는 소리다. 자책은 있을지언정 창작자에게 안도란 있을 수 없다. 끝날까지 불안한 열정과 미지와 끝없이 흔들리는 조우, 틈입하는 혼돈을 헤치며 빛을 찾아가는 어둔 밤의 길이 있을 뿐이다. 오직 어둔 밤뿐인 것이다. 당연히 홀로 그 존재 자체가 빛을 내지 않고서는 끝나지 않을 길인 것이다. 그걸 알고 걷는다면 대상과 풍경에 일희일비할 일이 없다는 것을 저절로 알게 되는 것. 어느 한때만이 때가 아니고 모든 때가 때이며, 어느 한곳만이 곳이 아니고 모든 곳이 곳이 되어야 하는 것. 근데 웬 사념이 이렇게 엉뚱스럽게 뻗쳐나가나. 머리가 더위먹었나. 무거워질대로 무거워졌나. 몸도 비비 틀리더니만 그만 이 8월 10일 마지막 원고까지를 못 참아내는 것 같다. 조금만 더 써보자.
그러니 진정한 힘이란 폭발하는 한때의 힘이 아니라(그것도 힘임에는 틀림없겠다) 그 힘을 매일매일 빼먹지 않고 고르게 나누어 쓸 수 있는 데 있는 건 아닐까. 일상의 반복 속에서 그 비루함을 이겨내며 제 할 일을 범상하고 지속적으로 배분해내는 그 힘을 말함이 아닐까. 이런 이해가 휴가철 기간 동안 글쓰며 한숨으로 얻은 소득이라면 소득이 될 것 같다.
몸을 묶고 앉은 덕분에 몇 편의 시를 얻고 자기점검도 해본 이득이 없진 않으나, 그럴지라도 몸이 얼마나 짙푸름이 절정인 여름 산속을 원했는지 모른다. 녹음을 빨며 깊은 숨 쉬고 싶었는지 모른다. 모른 체하고 팔목이 아프도록 글자판을 두드려 원고들을 다 대긴 했지만, 다음 여름 이 기간에 원고가 걸리게 된다면 정말 노다. NO.
- 이진명
- 글 / 이진명_시인. 1955년생. 시집 『밤에 용서라는 말을 들었다』 『집에 돌아갈 날짜를 세어보다』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