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단이 한국문학을 외국어로 번역하여 출판하는 일을 시작한지 10년이 지났다. 번역서 한 권이 나오기까지에는 원작을 수없이 읽고 분석하여 해당 언어로 유려하게 옮겨야 하는 번역자의 고된 작업과 돈벌이가 되지 않는 한국문학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판해 보겠다는 용감한 출판사를 찾아야 하는 일이 뒤따른다. 이렇게 하여 지금까지 재단의 지원으로 1백여권의 번역서가 30여개국에서 출간되어 현지 독자들에게 선보였다. 모든 번역서가 뛰어난 번역과 좋은 출판사라는 두가지 조건을 충족시키지는 못했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해외에서 한국문학에 대한 관심이 커져가는 것은 즐거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지난 7월, 독일에서 반가운 소식이 날아들었다. 재단 지원으로 김선희․김 에델트루트 교수가 독일어로 번역한 오정희 소설 『Vögel 새』가 제 16회 리베라투르상(LiBeraturpreis) 수상작에 선정되었다는 것이었다. 10년 넘게 한국문학 번역지원 사업을 해 온 재단에 커다란 힘이 되는 뉴스였다.
독일의 주요 문학상 중 하나인 리베라투르상은 1987년 프랑크푸르트의 그리스도교회 세계교회센터가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의 문학을 독일 독자들에게 알리기 위해 제정하였다. 문학을 통해 다양한 문화와 경험, 전통을 이해함으로써 전통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자는 이념을 갖고 있는 이 상은 세계교회센터에 가입된 독일의 문학 단체 회원들의 기부금과 회비로 운영되고 있어 사실상 독일 독자들이 수여하는 상이라고 할 수 있다. 수상작은 전 해에 출간된 작품을 대상으로 10여명의 전문가의 심사를 거쳐 선정되며 상금은 5백 유로이다.
수상작인 『Vögel 새』는 2002년 8월 빌레펠트에 있는 펜드라곤(Pendragon) 출판사에서 출간되었는데, 출간 당시 원작의 높은 작품성과 뛰어난 번역으로 인해 독일 평단의 호평을 받았었다.
수상자인 오정희와 번역자들은 주최측의 초청을 받아 리베라투르상 시상식에 참가했다. 10월 5일 오후 4시, 프랑크푸르트의 그리스도교회 세계교회센터에서 열린 시상식에는 프랑크푸르트 주재 부총영사,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 관계자, 독일 방송국 관계자, 리베라투르상 회원, 독일 교민 및 유학생 등 1백50여명이 참석하여 성황을 이루었다.
현직 초등학교 교장인 리베라투르상 회장 잉게보르크 캐스트너((Ingeborg Kaestner)는 “세계는 많은 작은 강들과 연결된 바다와 같다. 이 강들이 없다면 바다는 마를 것이다. 그러나 이 작은 강들 중에 많은 강들이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므로 우리가 진정으로 문화적 대화를 원한다면 많은 사회에 아프리카, 아시아, 라틴 아메리카의 강을 막는 제방들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는 말을 통해 리베라투르상의 의의를 설명하고 수상자를 비롯한 참석자들에게 환영의 말을 전했다.
독일 ZDF 방송 문학담당인 토마스 호케(Thomas Hocke)는 『새』의 내용과 주제 의식 등을 자세히 분석, 설명하였다. 특히 일제 치하와 해방, 남북 분단과 한국전쟁, 그리고 현재의 대치 상황에 이르기까지 한국 역사에 대한 설명을 곁들여 작품을 분석하는 전문성을 보여줬다. 그는 “작가는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와의 예민한 경계에 서 있는 사람이다. 그 모호하고 예민한 공간에서 우리가 잊고 잃어버린 것들을 되찾게 해주는 작품이 좋은 작품이다. 이것이 오정희의 수상 이유이다”라는 말로 축사를 하였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오정희는 수상 소감에서 “버림받음과 폭력과 무관심 속에 방치되어 부서지는 어린 영혼은 성장하여 우리들의 어둡고 고통스러운 미래가 된다는 것을 『새』를 통해 드러내고 싶었다. 언어와 인종을 달리하는 다른 나라에서 상을 받는다는 것이 우리가 은연 중에 갖고 있는 다른 민족, 다른 문화에 대한 편견, 이질감이라는 보이지 않는 벽과 경계를 허무는 데 조금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자기가 살고 있는 세계 밖의 문화와 문학을 이해하고자 하는 독일 국민, 문화인들의 귀한 노력이라고 새기고 기쁘게 받겠다”고 말했다. 수상 소감 발표는 김 에델트루트 교수의 순차 통역으로 10여분간 계속되었는데 『새』에서 보았던 예사롭지 않은 문장만큼이나 청중들에게 커다란 감명을 주었다는 주최측의 귀띔이 있었다.
10월 7일 저녁에는 프랑크푸르트 문학의 집에서 작품낭독회를 가졌다. 작품낭독회는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에 참가하기 위해 한국에서 온 독문학자, 출판사 관계자, 독일 독자, 교민 등 6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한시간 반 동안 진행되었다.
사회자로 나선 심사위원장 예레미 가이네스(Jeremy Gaines) 박사는 “오정희는 주인공 ‘우미’를 도덕적 교훈의 색채나 영웅화하는 어조 없이 결코 까다롭게 느껴지지 않는 객관적이고 섬세한 산문으로 그림으로써 독일 독자들이 한국 어린이의 일상 생활을 들여다 볼 수 있게 했다. 이 소설은 충격적인 것은 아니지만 오랫동안 그 정신은 독자의 뇌리 속에 남아 있다”고 평하며 『새』와 리베라투르상에 대해 작품 낭독 중간마다 자세히 설명하였다.
단상에 앉은 오정희는 『새』의 앞부분을 차분한 목소리로 읽었고 이어 독일 라디오 방송 성우인 비르기타 아슈어(Birgitta Assheuer)가 독일어로 작품을 낭독했다.
작품 낭독이 끝난 후에는 “어린아이를 통해 사회문제를 드러내고 이에 대한 해결책을 모색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었는가”, “이 작품에 나타난 주제와 한국 사회와의 연관성은 무엇인가”, “문체가 간결한데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등 다양하고 심도있는 질문들이 이어졌다.
작품낭독회가 끝난 후에는 사인회가 있었는데, 독일 독자들이 『새』뿐만 아니라 독일어로 번역된 오정희의 다른 번역서들도 준비해 사인을 부탁하는 것을 보고 독일 사람들의 문학에 대한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
이튿날부터는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을 둘러보았다. 올해로 55회를 맞은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는 1백여개국에서 6천여 출판사가 참가했다. 2005년 주제국(Guest of Honor)으로 선정되어 조직위원장과 정부 관계자 등이 참석한 가운데 공식 조인식을 갖기도 한 우리나라도 15개 출판사가 직원을 파견하고 50여개 출판사가 위탁전시 형식으로 참여하였다.
오정희와 번역자들은 리베라투르상 책임자인 클라우스 루드비히 디터(Claus Ludwig Dieter)의 안내로 리베라투르상 부스를 찾아 15명의 역대 수상자 사진과 수상작을 살펴보고 수상작들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이어 『새』를 출판한 펜드라곤 출판사를 찾아 환담하고 한국 문학의 독일 출판 등에 관해 의견을 나누었다.
10일에는 리베라투르상 시상식에 참석하여 축사를 해 주었던 홀거 엘링(Holger Ehling)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 조직위 부위원장을 프레스센터에서 만났다. 에링 씨는 내년 도서전에 재단을 위해 무료 부스를 설치해 주겠다고 밝히며 재단과의 지속적인 협력과 교류를 희망했다. 이와 함께 한국 작가 2~3명을 내년 도서전 기간에 초청하여 프랑크푸르트, 카셀, 비스바덴, 담스타트 등 헤센주 주요 도시를 순회하며 작품낭독회를 갖자고 제안해 와 이를 적극 추진하기로 하였다.
오정희의 리베라투르상 수상은 한국 작가가 해외에서 문학상을 수상한 첫 사례로 기록되었다. 비록 리베라투르상이 부커상이나 공쿠르상처럼 세계적인 문학상은 아니지만 이는 한국문학의 해외진출사에 있어 의미있는 사건으로 기록될 만하다. 아울러 비서구사회 문학을 이해하고자 하는 독일인들의 노력은 높이 평가할 만했다. 특히 수상작 선정, 홍보, 시상식, 낭독회 등 일련의 과정속에서 그들이 보여준 헌신적인 노력과 문학적 식견은 왜 독일에서 한국 문학이 가장 활발하게 출판되는가에 대한 해답을 주기에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