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설었다. ‘제 3회 한민족 문화 공동체 대회’의 메인 행사로 열린 ‘한민족 문학 포럼’에 시작 시간보다 일찍 도착한 나는, 갑자기 달려든 낯섦에 한동안 같은 자리를 벗어날 수 없었다. 그곳은 다른 행사장과 별다를 것도 없었다. 커다란 홀, 줄지어 맞춰놓은 의자, 세련된 유니폼을 맞춰 입은 도우미들은 이미 다른 행사장에서 본 적이 있다. 주최 재외동포재단․대산문화재단․국제펜클럽 한국본부, 주제 ‘한민족․문학․네트워크’라고 써있는 현수막도 어디선가 본 듯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 주위를 떠도는 익숙하지 못한 기운을 느꼈다. 그 익숙하지 못한, 낯선, 게다가 불편하기도 했던 그 느낌. 행사가 끝날 때까지 나를 괴롭혔던 그 느낌. 그 느낌을 찾아가는 여정이 이 글의 시작과 끝이 될 것 같다.
내가 처음 낯설게 느꼈던 것은 행사장 한쪽에 마련된 공간에서 분주하게 움직이는 여자들이었다. 암실 같은 공간에서 마이크를 조정하고 있던 여자들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다. 게다가 창문만 달랑 하나 달려 있는 공간을 처음 본 나는, 그녀들이 그곳에서 무엇을 하는지 유심히 살펴보았다. 그녀들은 책상 위에 놓인 문서를 유심히 살펴 보기도 하고 외국어로 마이크 시험을 해 보기도 했다. 그제야 나는 그녀들이 동시통역사라는 것과 그 시설물이 동시통역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동안 여러 번 문학 행사에 참여해봤지만, 단 한번도 동시통역사를 본 적이 없었다. 동시통역사는 텔레비전에서나 볼 수 있는, 나와는 별개인 존재였다. 그녀들을 보기 전부터 내 귀로 들어온, 외국어 조각들 때문에 낯설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문학은 특히 소설을 쓰려는 내게 문학은, 언제나 국어의 바탕에 놓여 있었다. 국어가 의미하는 대명사는 당연히 한국어이다. 이번 행사를 둘러보기 전에는 바로 앞의 설명은 군더더기였을 것이다. 내게 문학어는 늘 국어였다. 물론 유럽을 비롯한 미국, 남미, 아시아의 문학을 접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은 원어 그대로가 아닌 국어로 한번 변화된 문학이었다. 거칠게 말해서 번역된 문학도 어떤 의미에서 우리말의 범주에서 벗어날 수 없다. 내게 문학은 언제나 국어, 즉 한국어였다. 그래서 문학 행사이기에 한국어만을 사용할 것이라는 당연한 무의식을 가지고 갔다가 그런 낯섦을 느꼈던 것이다. 한국어만을 사용해왔고, ‘국어’를 배웠고 국문학을 전공한 내게 형성되어 있는 한국어 문학의 좁은 테두리에 금이 가는 것만 같았다. 한국어가 아닌 외국어 문학도 있다는 사실, 그 낯선 충격에 나는 한동안 같은 자리에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김문환 선생이 한민족문화예술 네트워크 구축의 필요성을 역설하며 ‘한민족 문학 포럼’은 시작됐다. 선생은 전 세계 1백40여국에 흩어져 살고 있는 한민족 5백65만명을 ‘한민족 공동체’라는 큰 틀에 담을 작업을 빨리 해야 한다며, 그 선행 작업을 구체적으로 열거하기도 했다. 그 구체적인 작업으로 선생은 ‘한국어사전’ 편찬, ‘세계한민족박물관’ 건립 등을 제안했다. 선생은 이미 이질화된 부분들에 대해서 무리하게 동질화시키기보다는 다양성을 키워나가는 미래적 안목이 필요하다며, 그 안목의 바탕 위에 미래지향적인 문화 전통의 개념을 사용했다. 나는 선생의 고견을 듣는 동안 빼곡이 들어찬 해외 동포들의 뒷모습을 찬찬히 보았다. 백인백색(百人百色)이라는 말을 실감할 수 있었다. 옷차림부터 언어까지 그들은 나와 달랐고, 곁에 있는 다른 사람들과도 달랐다. 그들은 나와 또 달랐고 각자 서로와 또 달랐다. 선생이 말한 문화전통의 개념이 쉽게 다가오지 않았다. 참가한 동포 중에는 벽안도 몇 명 눈에 띄어서 그들과 ‘동포’라는 생각이 쉽게 다가오지 않았다. 평소에 잘 쓰지 않던 ‘동포’라는 말,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 대한 ‘동포 의식’이 나를 또 낯설게 만들었다. 그들과 나 사이에는 어떤 공통점도 없어 보였다.
일본에서 활발하게 문학 활동을 하는 이회성 선생은 디아스포라(Diaspora)와 아이덴티티(Identity)에 대해서 강연했다. 선생은 강연에서 “민족 이산” 혹은 “이방인”이란 뜻을 가진 영단어 디아스포라를 소개하며, 민족 이산을 겪은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폴란드의 예를 들어 설명했다. 선생은 이들 나라의 예를 통해, 우리 민족이 역사적 화평을 이루어야 하며 그것이 세계 평화에 이바지하는 길이라고 말했다. 또한 재일동포 2세 작가로서, 일본어로 글을 쓰는 자신의 고뇌도 솔직하게 털어 놓았다. 선생은 ‘언어는 그 작가의 인생관을 결정하는 것이며 문체, 즉 언어의 냄새는 그 작가 자신이 음미하여 선택해 나가는 행위’라고 말했다. 선생은 재일동포 작가 유미리의 모국어와 일본어를 동시에 공존시키려는 문체의 시도를 상찬하며, 자신도 ‘다쿠앙’ 냄새가 아닌 김치 냄새가 나는 문체를 지향하고 싶다고 말했다. 일본에서 일본어로 문학을 하는 선생에게서, 한국인으로서의 아이덴티티를 확립하려는 노력이 눈에 보이는 듯 했다.
김우창 선생은 도덕경에서 말하는 이상적인 사회를 예를 들며 강연을 시작했다. 도덕경에서 말하는 이상적인 사회는, ‘밖으로 향한 문호를 닫고 작고 오붓하게 사는 나라’라고 한다. 한 나라가 문을 열었을 때 겪는 이질적인 문화의 침투에 대한 우려라고 볼 수 있다. 선생은 우리나라의 역사에서도 이런 ‘소국의 이상’을 받아들인 흔적이 많다고 했다. 그런데 문제는 현대 사회에서 이런 소국의 이상을 실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선생은 인용한 도덕경의 말을 한층 높게 풀어 사용하였다. 그것은 민족주의와 보편주의이다. 선생은 소국의 이상에서 민족주의를, 현대의 문화적 유입이 많은 실정에서 보편주의를 대입했다. 선생은 이 민족주의와 보편주의의 괴리에서, 소국의 이상을 통해, 두 극단의 이념을 화해시키려고 했다. 한편 한국의 민족주의도 보편화로 한 걸음 나아가는 방향을 제시했다.
미국에서 문학 활동을 하고 있는 명계웅 선생은, 해외에서 문학적 성취를 거둔 작품을 예를 들었다. 선생은 이미륵의 『압록강은 흐른다』, 이창래의 『Native Speaker』, 수잔 최의 『The Foreign Student』 등의 수작들을 언급하며, 해외 한국문학의 우수성을 말했다. 뿐만 아니라 미주한인문학은 모국 지향적인 콤플렉스에서 탈피해서, 문학적 수준이 더 높아지고 있다고 말하며, 모국 문단의 관심을 촉구했다. 그리고 이창래의 말을 끌어들여, 모국의 작가보다 먼저 노벨문학상을 받을 거라는 선전포고(?)도 했다. 선생의 말처럼 이민이라는 피해 의식과 모국 지향에서 벗어나 다문화 사회에서 한국문학을 이뤄낸, 미주문학에 대한 관심도 필요하리라 생각했다.
다소 딱딱하게 진행되던 강연회는 최원식 선생의 발제에서 분위기의 전환을 맞았다. 질의응답 시간에, 선생이 강연 중에 사용한 한 단어에 대해 동포 작가들이 반감을 나타내서 장내가 달아올랐다. 선생은 해외동포들을 이 땅을 ‘버리고’ 간 사람이라고 말했다. 이에 중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온 해외동포들은 자신들이 조국을 버린 적이 없다고 말했다. 오히려 자신들이 버려졌다고 표현하며, 선생의 단어 선택에 대해서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자신들과 선조들의 수난사를 길게 열거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나는 다시 낯설음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모습에 나도 선생의 말처럼, “이 땅을 ‘버리고’ 떠난 해외동포들”에게 ‘약간은 고의적인 무관심’을 보인 본국인에 지나지 않을 지도 몰랐다. 선생은 ‘버리다’라는 표현은 먹고살 만한 사람들의 미국 이민 물결에 한한 것이며, ‘버리고’에 따옴표를 처리해서 본인의 생각이 아니고 다른 글에서 차용한 것이라고 밝혔다. 오해는 여기서 끝나는 것 같아 보였지만, 미주 문학인들의 불쾌한 토로가 이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내가 문제를 보는 관점이 그들과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그들의 반응을 피해 의식이라고 규정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역사적인 배경을 생각하며 그들을 이해하고 포용해야만, 그들에 대한 내 낯섦도 상쇄되리라 생각했다.
스웨덴에서 문학 활동을 하고 있는 젊은 작가 아스트리드 트롯치. 그녀는 소속감의 결여에 대해서 강연을 했다. 그녀는 입양아 출신인 자신이 한국인으로서의 소속감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으며, 오히려 단지 스웨덴인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태어난 지 5개월 만에 입양됐다고 말하며, 자신은 생물학적으로 한국인일 뿐이지, 정서적으로 문화적으로 사회적으로 국가적으로 스웨덴인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 말을 전혀 하지 못하고, 격앙된 어조로 자신은 스웨덴인일 뿐이라고 말하는 그녀에게서 나는 반감까지 생기는 것을 느꼈다. 그녀를 비롯한 재외동포 문학인들이 이런 피해 의식을 가지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그들에 대한 낯섦이 점점 커지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그 반감이 지나치게 주관적이고 편협한 사고라는 것을 알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녀가 소속감을 느끼지 못한다고 말한 것은, 어느 곳이든 소속감을 느끼고 싶다는 말이었고, 한국인을 부정하지만 끝내 부정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하려는 역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동포 작가들에 대한 약간은 낯설고 불편한 심기를 해소시켜 준 사람은, 러시아 작가 아나톨리 김이었다. 러시아에서 태어나고 자란 선생은, 고국의 산하가 낯설지 않고 친숙하다며 말문을 열었다. 선생은 러시아에서 고려인으로 어렵게 살아온 자신의 삶을 반추하며, 자신의 문학적 성취도 자랑스럽게 내세웠다. 다른 동포 작가들과 마찬가지로 그 또한 자신은 운명적으로 러시아인 작가라고 말했다. 생소한 러시아어를 사용하는 선생에게, 한국인이기만을 바라는 내 심정은 비뚤어진 본국인의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회 내내 동포 작가들과 나 사이에 존재하는 알 수 없는 거리감, 그리고 낯선 감정들을 선생도 느꼈던 것 같다. 처음 와봤지만 낯설지 않은 조국, 환경적으로는 외국인이지만 생래적으로는 한국인일 수밖에 없는 재외동포 작가들의 정체성을, 선생은 벌이라는 은유를 통해 명쾌히 설명했다. 선생은 자신과 해외동포 작가들을 ‘벌’이라고 했다. 멀리 꿀을 따러 간 일벌들이라고. 이 일벌들은 좋은 꿀을 따다가 벌통의 꿀을 더 다양하고 맛있게 만들 거라고. 나는 선생의 비유에 그동안 낯설게 보였던 동포 작가들이 정겹게 느껴지는 것 같았다. 내 굳어진 사고가 깨지는 것을 느꼈다.
발제를 한 여러 동포 작가들의 지적처럼, 본국의 문단은 타국의 동포 작가들에게 폐쇄적이었다. 우리 문학이 양질의 꿀로 가득 차기를 바란다면, 멀리 나가 있는 벌들도 빨리 돌아오게 해야 될 것이다. 벌통 속에 안주한 나는, 너무 오랫동안 토종꿀의 환상에 젖어서 그들을 돌아보지 못했던 것 같았다. 나는 서로 다른 모습으로 자리를 메우고 있는 동포 작가들의 모습이 더 이상 낯설지 않았다. 그들의 어느 한 곳에 내게 정겨운 꿀 보따리라도 있을 것만 같았다. 그들의 고난을 통해 만들어진 꿀 보따리는 우리 문학을 한층 더 값지게 만들 것이다. 나는 내 자신이 그들에게 낯설까봐 두려웠다.
김명호
글 / 김명호_고려대 국문과 3학년. 2002년 대산대학문학상 소설 부문 가작 수상. 1977년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