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와 할머니의 실루엣』에 실린 신경림의 시들은 잿빛 하늘을 찌를 듯 이고 선 고층건물들의 밀림 속에서 갑자기 맞닥뜨린 공터를 둘러싼 작은 대숲과 그 가운데 가을 햇살을 받고 있는 장독대를 떠올리게 한다. 옆구리 풍성한 독들 속에서 숨쉬며 익어가는 장 냄새가 마른 흙내와 섞이고, 대 잎사귀들을 가는 바람이 긁고 지나간다. 이념의 격랑과 급격한 가치관의 굴절을 겪으며 소용돌이 친 혼란한 시대의 흐름 아래 저류를 흐르는 것은 여전히 같다는 시인 자신의 말을 듣지 않아도 우리는 안다. 격렬한 몸짓과 피를 토하는 목청이 아니더라도 현실에 상처입은 자들을 어루만져 줄 수 있다는 깨달음을 위해 고뇌하면서, 잠시의 각성이나 마취의 효과를 가진 것이 아니라 마음의 바닥을 편안하게 해 주는 언어를 오래 찾아 헤맨 그의 여정을 말이다. 자신의 그러한 삶의 궤적을 회고하거나, 격변이 휘몰아치고 지나간 역사의 현장을 직접 찾아보고 느낀 감회를 주로 담고 있는 『어머니와 할머니의 실루엣』의 언어는 솔직하고 담백하며, 편안하고 따뜻하지만 깊다.
이 깊음은 그러나 오지 독 속에 익어 가는 된장의 맛처럼 대단히 한국적이어서, 그 된장으로 끓인 뜨거운 국을 먹으며 혀에 오래 남는 구수함 뿐 아니라 시원한 느낌을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는 전해지기 힘들다는 어려움을 안고 있다. 『어머니와 할머니의 실루엣』을 독일어로 번역하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이 어려움을 극복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명제가 되었다. 외국어 텍스트를 모국어로 옮기든, 모국어 텍스트를 외국어로 옮기든 번역 작업에서 원칙으로 삼을 수 있는 두 가지의 입장이 존재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번역을 받아들일 독자에 번역의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것이 그 하나이고, 번역할 언어의 원전의 의미와 언어적 측면에 충실해야 한다는 입장이 다른 하나이다. 번역 대상 언어를 모국어로 하는 독자들이 일반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어휘와 표현을 채용해야 한다는 것과 원전에 충실해야 한다는 두 가지 입장을 다 같이 고려할 수 있다면, 번역자의 자질에 따라 완벽한 번역이 가능할 것으로 보이지만 이것은 그러나 실제 작업에서는 불가능하다. ‘된장국’이라는 우리말을 번역하기 위해 독일어 단어를 억지로 조합할 수는 있겠지만 이 단어를 독일 독자들이 낯설고 어색하게 받아들일 것이 분명하며, 된장국의 ‘시원한’ 맛을 원전에 충실하게 하면서 독일 독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말로 번역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어머니와 할머니의 실루엣』의 번역작업에서는 따라서 이 두 입장의 장점을 개별 작품의 성격에 따라 융통성 있게 적용하려고 애썼지만, 전체적으로는 무엇보다 번역이 문화 상호간의 다름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을 바탕으로 한 이해와 소통의 작업이 되어야 한다는 인식에 의지하였다. 된장의 깊은 맛을 옮긴다는 것은 단순한 감각의 차원이 아니라 문화적인 맥락에서 해결되어야 할 문제로 본 때문이다. 따라서 개별적인 작품 속에 든 한국적인 문화의 코드를 수용자가 될 독일 독자가 받아들일 수 있는 문화적인 코드에 맞추고자 시도하였으며, 여기에는 한국시의 음악성과 관련된 기법이나 문장부호의 독특한 사용과 의식적인 산문화를 시도하는 시인의 문체적인 특성, 한국적인 관습과 풍토적인 특성과 관련된 부가어나 의성어, 의태어, 역사적 상황이나 이념적 갈등 문제에 이르기까지 갖가지의 형식적, 내용적인 요소들이 다 고려의 대상이 되었다. 문화적인 코드를 맞춘다는 것은 물론 등가의 어떤 것과 어떤 것이 개별적으로 환치될 수 있다는 말이 아니라 같은 맥락을 찾아낸다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그럴 경우 된장국의 맛은 포도주의 ‘frisch’하거나 ‘vollmundig’한 맛과 한 맥락에 놓여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한국적인 입맛을 간직한 한국사람이 밥상 위에 놓인 열가지 반찬의 다른 맛을 구별해 내고 그것을 말로 표현할 수 있다면, 포도주를 즐길 줄 아는 독일인 또한 최소한 열 가지 이상으로 표현될 수 있는 그 맛의 미세한 차이를 구별할 줄 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지만 독일어로 번역된 한국문학에 관심을 기울일 만한 사람은 포도주의 맛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 아닐까 싶다. 왜냐하면 텔레비전 프로그램 잡지나 일요신문 정도만 읽고, 값싸고 취하기 쉬운 술만 마시는 독일인들에게 다른 나라의 문학은 고사하고 다른 문화에 대한 편견 없는 관심이나 수용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문학의 외국어번역 작업을 문화 상호간의 교류와 소통의 작업으로 이해한다면, 우선 한국문화 뿐 아니라 동양문화, 더 넓게는 이질적인 문화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제한된 소수의 ‘포도주를 즐기는’ 독자를 찾아야 할 것이다. 그런 다음에서야 그들에게 한국문화의 한 영역으로서의 한국문학이 같은 동양문화권의 문학과 어떻게 다른 고유의 아름다움과 향기를 가지고 있는지 알리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