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염불보다 잿밥? 탁해진 문학교육 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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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3년 겨울호 (통권 10호)
염불보다 잿밥? 탁해진 문학교육 환경


  나는 중고등학교 시절을 통 틀어서 딱 한 번 백일장에 나가본 적이 있다. 대성고교 야간부 2학년에 적을 두고 있던 때였다. 신라예술제 행사의 하나로 경주에서 치러진 전국규모의 백일장 대회였다. 당시 내가 살던 대구에서 경주까지는 대략 70킬로미터, 2백리 가까운 길이다. 나는 행사 하루 전날 해질녘에, 두 친구와 함께 자전거로 출발했다. 대구 시가지를 벗어나자 거기서부터 줄곧 덜컹거리는 비포장 도로여서 생각보다 갑절이나 더 힘든 여정이었다. 자갈투성이에다 움퍽질퍽한 길 위를 밤새 달리고 걷고 한 끝에 간신히 목적지에 닿았을 때는 다들 파김치가 되어 길바닥에 널브러졌다. 4월이던가. 땀과 먼지로 넝마가 된 몸뚱어리에 금세 냉기가 스며들었다. 이날 아침 해가 나고 행사가 시작되기까지, 김유신 장군 묘역을 서성거리며 우리는 또 얼마나 떨었던지!

  백일장에 내 걸린 시제는 ‘고도의 봄’이었다. 경주는 옛 도시이고 계절은 바야흐로 봄이었다. 예상했다는 듯 아이들은 재빠르게 원고지 칸을 채워가고 있었지만 나는 도무지 첫줄을 시작하지 못하였다. 무슨 말을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영 생각의 갈피를 잡기 어려웠던 것이다. 상념을 싹둑싹둑 잘라내듯 시계소리만 머리를 가득 채웠다.

  그날 밤, 귀로에서는 다들 말이 없었다. 지치고 허기지고 그리고 약간은, 실망감에 눌린 탓이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소득은 컸다. 나로서는 책에서나 대할 수 있었던 작가 시인들의 얼굴을 난생 처음으로 직접 대면한 일이 무엇보다 커다란 감동으로 가슴에 남았다. 월탄 박종화 선생을 비롯 김동리 서정주 박목월 선생 같은 분들을 나는 그날 뵈올 수 있었던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내내 마음이 뿌듯했었다. 그날 이후 그분들의 글이 한결 가깝게 느껴졌음은 물론이다. 그로부터 여러 해 뒤, 동갑내기들에 비해 비록 서너 해나 지각한 것이기는 해도, 서라벌예대 문예창작과에 입학하여 그분들의 가르침을 받게 된 것도 이 날의 감동과 결코 무관한 일이 아닐 터이다. 


  그랬다. 그때만 해도 전국 규모의 백일장 대회는 그다지 흔치 않았다고 기억된다. 요즘은 온통 백일장 사태다. 갑자기 글쓰기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아지기라도 한 것인가? 물론 그렇기는 하다. 한 예로, 우리 대학(중앙대)이 해마다 치르고 있는 백일장만 봐도 참가자 숫자가 엄청나다. 하지만 그 관심의 실상은 많이 변질되어 있지 않나 싶다. 글쓰기 자체에 관심한다기보다는, 좋은 대학 가기의 한 방편으로 너도나도 갑자기 글쓰기에 열을 올리고 있는 분위기란 느낌이다. 이른바 문학특기자 제도가 시행되면서 빚어진 현상이다. 그럴 수밖에! 자녀를 좋은 대학에 들여보낼 수 있다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우리 대한민국의 어버이들 아닌가. 백일장 전문과외가 등장했대서 그렇게 놀랄 일이 못된다. 그러다보니 각종 백일장 대회는 이제 또 하나의 수험장 분위기를 빚어내곤 한다. 옛날처럼 풀밭이나 나무그늘에 자유롭게 흩어져 앉아 새삼 자연을 호흡하며 시상에 잠기곤 하던 낭만은 더 이상 허용되지 않는다. 외부와는 철저히 격리된 공간(흔히 강의실) 안에서 답안지를 작성하듯 원고지 칸을 채워야 하는 것이다.

  문학특기자 제도의 원래 취지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교육 또는 입시제도에 관한 한 어떤 혁명적 시도도 예외 없이 죄다 왜곡 변질시키고야 마는 우리 특유의 풍토에 가장 큰 책임을 돌려야 할 일이다. 여기에다 소위 명문 대학들이 이를 부채질한 혐의도 없지는 않다. 대학들마다 이 제도를 경쟁적으로 수용한 결과, 큰 대회에 나가 큰 상을 타면 원하는 대학, 원하는 학과에 갈 수 있다는 환상을 심어주기도 했기 때문이다. 무슨무슨 백일장에서 장원을 먹은 아무개가 명문 S대학의 인기학과(또는 계열)에 붙었다더라 어쩌구 하는 식이었다. 물론 특정의 명문대학들은 문학특기자를 받아서는 안된다거나 또는, 수용하는 대학들도 단지 문학 관련의 특정학과에만 허용해야 한다는 발언은 자칫 오해받기 쉽다. 명문대학들이 시인 작가들을 배출하는 것이 결코 잘못일 수 없고 또, 작가나 시인이 꼭 국문학과나 문예창작과에서만 나오라는 법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나름의 입시풍토를 고려할 때 그런 생각은 너무 순진한 것이 된다.

  그렇다고 성급하게 이 제도 자체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신중한 적용을 바랄 따름이다. 부작용이 우려되는 일부 상위권 대학들은 사려 깊은 접근이 요청된다고 본다. 아울러, 이 제도만은 문학 관련 학과에만 제한적으로 적용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생각이다. 당장의 글재주만 아니라, 장차 문학에 전념하고 헌신하고자 하는 의식을 가진 지원자에게만 입학특전을 주는 게 온당하다는 생각에서다. 대학들이 문학특기자를 받아들이되 이런 점을 제대로 분별하여 시행한다면 문학에 대한 바른 이해와 소명의식 없이 단지 대학가기 차원에서 백일장마다 쫓아다니는 ‘꾼’들을 상당수 걷어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사실 백일장 형식을 통해 문학적 자질을 검증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예컨대 상상력의 순발력이나 일필휘지의 문장력 없이는 백일장에서 두각을 드러내기가 어렵다. 하지만 정작 글쓰기에서 요청되는 자질은, 굳이 비유하자면 마라톤주자에게서 더 많이 찾아낼 수 있을 법한 그런 정신적 특질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하는 말이지만, 백일장 대회 자체에 대한 검토도 필요한 시점에 이르렀다는 생각이다. 대학이나 사회단체들이 그 많은 백일장 대회를 해마다 천편일률적으로 치르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 싶은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백일장 행사보다는 그만한 예산과 관심을 적절한 문학교육프로그램의 운영으로 전환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리라는 생각이다.

  대학에서 그것도 문예창작학과에서 창작을 가르치다 보면 매양 절실하게 느껴지는 게 있는데 그것은 바로 독서량의 절대빈곤이다. 우리 학생들은 시나 소설을 쓰겠다고 하면서도 대부분 중고교 시절에 읽어야 할 것들을 도무지 읽지 않은 채로 대학에 온다. 물론 그들만의 책임은 아니다. 입시 위주의 교육풍토가 빚어낸 당연한 결과이기도 하다. 어쨌거나, 최소한의 고전마저 읽지 않았을 뿐더러, 그나마 읽은 것들도 수능 대비 식이어서 제대로 읽어냈다고 할 수도 없다. 교실이나 학원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우리의 국어교육으로는 참다운 문학의 정신과 기초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누가 말했듯이 청소년 시절은 책의 세계가 현실의 세계보다 더 리얼하고 감동적인 법이다. 이 시기를 놓치면 다시는 밀도있는 감동을 맛보기 어렵다. 대학에서 시작하기에는 이미 늦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 청소년들에게 늦지 않게 꼭 들려주어야 할 이야기는 이런 것이 아닐까 나는 생각한다. 나는 그 시절에 어떤 책을 읽었는지, 어떻게 감동받았는지, 그리고 그것이 나의 글쓰기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 등이다. 그리고 또 있다. 나의 글과 나의 삶이 어떻게 관계 있는지, 요컨대 이런 주제들이 진지하게 이야기될 수 있는 자리가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백일장식 행사보다 이런 근본적인 물음들을 진지하게 다룰 수 있는 기획들이 절실하게 요청된다. 한 사람의 시인 또는 작가의 입장에서 글이란 무엇이며, 글쓰기란 삶에서 어떤 의미가 되는가를 진솔하게 고백하고 대화할 수 있는 자리 말이다. 그것이 행사의 중심이어야 하는 것이다. 이밖에도, 창작의 실제에 대한 각자의 경험과 고민을 털어놓을 수도 있으리라. 다시 말해 상을 다투는 자리 즉 시상이 중심인 행사가 아니라, 문학에 대한 바른 이해와 정신과 열정을 일깨워주는 기회, 또 입시위주의 교육현장에서 놓치고 있는 부분을 보완하는, 단기적인 문학교육프로그램이 절실함을 느낀다. 여기에 문예반 지도교사들도 참여한다면 금상첨화라는 생각이다.  

  덧붙여 말하면, 요즘은 우리 문예창작과에 오는 학생들조차도 글쓰기에 대한 진지한 자기검토가 부족한 듯싶다. 처음부터 방송작가나 카피 라이터 같은 응용문학 또는 생활문학(?)에 관심을 두는 쪽은 그래도 이해가 간다. 실용가치가 무차별적으로 강요되고 있는 현실에서는 당연한 현상일 것이다. 그러나 정도가 지나쳐서, 문학도 잘만 하면 출세하고 돈도 벌 수 있는 수지맞는 사업이란 식의 경박한 의식 앞에서는 할 말을 잃게 된다. 하긴 그들만 나무랄 일은 아니다. 그런 식으로 수지 맞춘 작가나 시인이 전혀 없지는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극히 예외적인 케이스이고, 아무나 꿈꿀 수 있는 일이 못됨을 진작 깨우쳐주어야 마땅하리라. 문학은 예나 지금이나 외롭고 힘겨운 영역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문학에 대한 순수한 열정과 의지 없이는 도중에서 탈락하고 마는 길이다. 하지만 이런 얘기를 진솔하게 나눌 수 있는 자리도 없고 또 요즘 같아서는 귀담아 듣는 분위기도 아니다. 우리 모두가 염불보다 잿밥에 온통 정신을 팔고 있는 건 아닌지, 어쨌거나 문학교육 환경이 엄청 탁해지고 있다는 생각에서 해보는 소리다.




이동하
글 / 이동하_소설가, 중앙대 문예창작과 교수. 1942년생. 소설 『전쟁과 다람쥐』 『장난감 도시』 『문 앞에서』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