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밭단상
* 유희적 인간의 출현과 소설의 미래

  • 글밭단상
  • 2003년 가을호 (통권 9호)
* 유희적 인간의 출현과 소설의 미래

소설을 쓰면서 가장 궁금한 것 중 하나가 소설의 미래의 모습이다. 그것은 소설이 어떻게 진화할 지에 대한 일반적인 관심 외에도 소설가로서 항상 강박적으로 묻게 되는 질문이기도 하다. 사실 그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인데 그건 소설가가 아직 쓰여지지 않은, 쓰여지게 될 소설에 대한 탐구로부터 한시도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30년 또는 50년 심지어는 100년 후에도 소설이 존재할까? 조심스럽게 얘기할 수밖에 없긴 하지만, 아마도 존재하기는 할 것이다. 아니, 50년 후는 모르겠지만 100년 후에는 완전히 사라질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그 모습은 지금의 소설과는 사뭇 다를 것이다. 적어도 우리가 지금 당연하게 여기는 인간 관계에 기초해 인물들이 상호 작용을 하는 관계의 소설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이미 소설은 그 내부로부터 허물어지기 시작하고 있다. 너무도 많은 이야기들이 이야기되어져 이야기로서의 소설은 사실상 바닥을 드러냈으며 형식적인 실험 또한 막다른 골목에 와 있는 듯하다. 최소한의 의미 구조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소설은 의미와는 무관하게 자체의 형식적인 실험이 의미를 가질 수 있는 음악이나 미술과는 달리 스스로를 완전한 실험에 내맡기기가 어렵다. 그런데 모든 예술 장르가 끝없는 자기 변형, 곧 실험에 의해서만 명맥과 정당성을 이어나갈 수 있다는 사실에 비춰보면 소설의 미래는 아주 어둡다. 또한 소설은 그뿐만 아니라 외적 요소들에 의해서도 커다란 시련을 겪고 있다. 영화나 애니메이션 같은 시각적 표현들이 소설의 영역을 흡수하거나 침식하게 되면서 소설의 입지는 더욱 좁아지고 있다.

  이미 빈사 상태 또는 가사 상태에 이른 소설의 미래가 없지는 않다 할지라도 그 미래는 암담할 것이다. 소설은 앞으로 더욱 더 영화나 애니메이션 같은 장르에 기생하는 하위 장르로 전락할 것이다. 영화나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질 가능성이 없는 소설은 소수의 문학 연구자 외에는 아무도 가까이 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영화나 애니메이션 같은 시각 예술이 소설을 그토록 쉽게 노예화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어떤 점에서 소설은 지극히 아날로그적이다. 소설은 그것을 읽는 사람에게 반성과 회의를 요구한다. 한 마디로 사유 작용을 요구하는 것이다. 반면 영화나 애니메이션은 즉각적인 반사 작용을 유발하며 그에 대한 반응을 요구할 뿐이다. 한 마디로 오락으로 기능하며 그것에 충실할 뿐이다.

  오락은 다음 세대의 최대의 화두가 될 것 같다. 그리고 오락이란 감정의 정화가 아닌 감각의 극대화, 즉 쾌감을 누리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제 문화의 가치는 그것이 얼마나 쾌감을 줄 수 있는지에 달려 있게 될 것이다. 쾌감을 주지 못하는 것은 그 존재 가치를 상실하게 될 것인데 그 대표적인 것이 소설이 될 것이다. 적어도 지금까지 우리가 생각해왔던 소설은 쾌감을 주는 것을 그것의 궁극적인 가치로 삼지 않았으며 삼기를 꺼려해 왔다.

  이와 관련해 가까운 미래에 있게 될 새로운 인류 종의 출현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은 아주 필요한 일일 것이다. 디지털 문명의 발달에 의한 최근의 변화와 앞으로 더욱 가속화될 변화는 새로운 지각과 인식과 감성을 가진 인간을 만들어낼 것이다. 최근에 문제가 되고 있는 복제 인간과 더 나아가, 몸 속에 기계가 이식된 사이보그의 출현과 같은 새로운 유형의 인간의 창조는 윤리적인 금기와는 무관하게 언젠가 현실화될 것이다. 그것은 이미 되돌이킬 수 없는 과정이며 그것에 저항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것이 될 것이다. 이런 문제와 관련해 윤리적인 기준을 들이대는 것은 무의미한 짓일 뿐이다. 여기서 필요한 것은 새로운 윤리학을 만들어내는 것일 것이다.  

  사유하는 인간이 아닌, 오락하는 인간, 넓은 의미에서 유희하는 인간의 출현이 제기하는 문화적인 파장은 엄청날 것이다. 그것은 모든 것을 새로운 층위에서 새로운 각도로 보기를 요구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소설이 찾을 수 있는 자기 역할은 무엇일까? 아마 바로 그러한 상황과 그 상황에 처하게 된 인간들에 대해 관심을 갖고 그들의 의식을 점검하는 것일 것이다. 그런 역할마저 박탈당하지 않는다면 바로 거기에 소설의 자리가 있게 될 것이다.

 
정영문
글 / 정영문_소설가, 성신여대 국문과 겸임교수. 1965년생. 소설 『나를 두둔하는 악마에 대한 불온한 이야기』 『꿈』 『하품』 『핏기 없는 독백』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