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를 찾아서
부재하는 ‘현장성’ 언어의 그리움 - 『분례기(糞禮記)』의 소설가 방영웅

  • 작가를 찾아서
  • 2003년 겨울호 (통권 10호)
부재하는 ‘현장성’ 언어의 그리움 - 『분례기(糞禮記)』의 소설가 방영웅


  소설가 방영웅 선생의 종적은 묘연했다. 창비사, 시인 이시영․신경림 선생 등 방영웅 선생과 끈끈한 인연을 맺었던 분들에게 선생의 연락처를 수소문했지만 모두 허사였다. 한 목소리로 “5년 내지 10년 동안 선생을 보지 못했다”는 답변들이었다. 지난해 무슨 일 때문인가 문예진흥원에서 선생을 잠깐 본 적이 있다는 시인 조정권 선생의 진술을 얻어 낸 것이 유일한 소득이라면 소득이었다. 선생의 ‘절필’ 상황이 아마도 문단과의 적조한 관계를 이루지는 않았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이 글은 모양새가 좀 애매한 글이 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방영웅 선생의 문학적 탯줄은 『분례기(糞禮記)』이다. 작가의 고향인 1940년대 후반 충남 예산을 무대로 ‘똥례’라는 한 여인의 숙명적 비극을 다룬 3부작 장편소설이다. 나뭇꾼 용팔과 노름꾼 영철을 비롯해 석서방댁, 노랑녀, 봉순이와 같은 작중 인물들은 살아 있는 생동감을 자아 낸다. 극장 샌드위치맨 콩조지와 기생 출신 미친년 옥화는 당장이라도 활자 밖으로 뛰쳐나올 것 같은 강한 개성을 발산한다.

  이 작중인물들은 “-해여”체로 끝나는 충남 내륙 지방의 사투리․속담․민요 등을 능청스럽게 부린다. 이른바 ‘보여주는 육성’(口語)의 별미를 제공하는 것이다. 가령, “뒷머리가 붕어꼬리 같은 애송이”, “과부 순정두 달빛에 배꽃” 같은 표현들은 어디를 펼쳐 보아도 쉽사리 확인할 수 있게 된다. 첫 장면과 끝 장면 등 작품 전편에 배음(背音)처럼 삽입된 ‘꽃과 나비’ 타령도 똥례의 비극성을 더해주는 소도구이다. 정조를 잃은 똥례가 자신을 ‘헌 꽃’으로 투사(投射, projection)하면서 ‘똥은 똥끼리 만나야 한다’고 읊조리는 대목과 겹쳐져 읽혀진다.

  ‘똥례’라는 이름은 석서방댁이 변소 바닥에 낳아놓았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발표 당시에는 ‘똥예’라고 표기되었으나, 한 세대가 지난 1997년 작가에 의해 ‘똥례’라는 이름으로 고쳐진다. “‘똥례’는 똥처럼 천한 인간”(『분례기』 초판 후기)이지만, 가마 타고 시집가고 싶어하는 환상마저 없지는 않다. 똥례의 그 꿈이란 진눈깨비에 얼어죽는 작품 속 수철리(水鐵里)의 겨울 진달래와 같은 운명이다. 똥례는 노름꾼 남편의 재취로 시집가지만 서방질을 했다는 누명을 쓰고, 결국 미쳐서 ‘해 뜨는 나라’를 향해 떠난다. 인습이라는 이름의 똥으로 가득찬 세상 속에서 똥 바깥의 삶을 살고자 했던 소박한 꿈조차 바스라질 수밖에 없는 숨막힐 듯한 상황을 체험의 언어로 음각시켰던 것이다. “방안은 똥이 가득 찬 똥독 같은 생각이 들고 누가 똥바가지로 똥독 속에 든 자신을 꾹 누르는 것 같다.”

  1960년대는 유독 똥의 기호학이 넘쳐났다. 최인훈의 『광장』, 남정현의 「분지(糞地)」, 그리고 박태순의 소설들은 똥의 메타포가 중요한 작품 모티프가 된다. 이데올로기 비판 성격이 강한 최인훈과 남정현의 소설에서는 똥이 ‘오욕(汚辱)의 땅’으로서의 기호학으로 작동한다. 반면 도시 변두리 주민들의 애환을 담고 있는 박태순에 있어서는 근대화의 배설물로서의 의미를 갖는 듯하다. 어쨌든 『분례기』를 비롯한 이들 작품에 나타나는 똥의 기호학은 근대 또는 근대 경험이라는 측면에서 재조명해 볼 여지가 있다고 보여진다.

  이 작품은 몇가지 측면에서 문제적이다. 우선, 1940년대 후반 농촌의 풍습들이 풍속도처럼 그려질 뿐 작가의 인위적인 개입이 거의 엿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작가의 눈은 똥례의 먼 친척뻘인 용팔과 가장 근접해 있지만, 어떤 무목적의 자연 순응의 삶을 살아가는 것으로만 그려져 있을 따름이다. 용팔은 물론 똥례를 범한 가해자이다. 하지만 똥례는 노름꾼 서방 영철과의 삶에서 만족을 찾지 못하고 용팔을 그리워한다. 작가는 이 설정을 통해서 가장 이상적인 관계란 용팔-똥례의 관계라고 보고 있지만, 용팔의 불능(=고자)을 상기한다면 이런 인물 유형들의 도태 내지는 불모성을 상징한다고도 볼 수 있을 터이다. 그리고 그 대척점에 노름꾼 영철의 존재가 있다.

  이 작품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수철리의 자연 묘사와 함께 영철의 노름 장면이다. 봉순의 자살 이후 자살 결심을 하는 똥례의 갈등을 ‘개구리의 울음’ 등에 겹쳐 묘사한 대목은 20대 중반 방영웅의 작가적 솜씨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진달래들은 몹시 추워 보인다. 쭈글쭈글하게 잔뜩 움츠린 꽃잎들은 시퍼렇다. 똥례는 이슬 맞은 풀잎을 걷어차며 삽티고개를 단숨에 기어올라 사방을 내려다본다.”(강조 인용자) 생의 허무를 느끼며 다시 노름에 미친 영철의 광기를 묘사한 대목은 야수성을 느끼게 된다. 도살장 옆 ‘수혼탑(獸魂塔)’이란 아마도 인습의 굴레에 젖어 사는 영철과 같은 뭇 존재들에 의해 짐승처럼 희생당한 똥례를 위한 진혼비가 될 것이다. 그러나 그 수혼탑에는 아무런 글귀조차 씌어 있지 않다. 아니, 그 수혼탑에 어느 누구도 글귀를 쓸 수 없었을 것이리라.

  방영웅의 『분례기』는 발표 당시 등단 관행을 허물었으며, 백낙청 등 젊은 문인들의 동인지 성격이 강했던 『창작과비평』의 존재와 문학적 방향을 알린 작품이었다. 그것은 신동엽․김정한류의 표현의 현장성을 중시하는 ‘리얼리즘 문학’을 알리는 서막과도 같았다. 첫 소설집 『살아가는 이야기』(1974)에서 방영웅 선생은 “나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역시 리얼리즘이다”라고 갈파한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이 표현은 사회․역사의식의 부재라는 비판에 대한 방영웅 선생의 ‘리얼리즘 콤플렉스’를 드러내주는 증좌가 된다. 선생의 절필은 아마도 그 언저리에서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렇지만 ‘호박꽃 사회’(창비판 『분례기』 서문)를 바라며, 핍진한 표현의 현장성을 구축한 방영웅의 문학적 존재는 ‘현장성’의 언어가 거의 휘발된 작금의 소설적 지형도를 고려해 볼 때 부재하는 그리움으로 남아 있다. 





고영직
글 / 고영직_평론가. 1968년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