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고향을 찾아서
춘천, 최승호, 물의 자서전을 읽다

  • 작가의 고향을 찾아서
  • 2003년 겨울호 (통권 10호)
춘천, 최승호, 물의 자서전을 읽다



       

    장안에 한 젊은이 있으니 (長安有男兒)

    스물에 마음 이미 늙었네 (二十心已朽)

           - 이하(李賀), 「진상에게(贈陳商)」




  최승호 시인은 좀체 개인사적 진술을 하지 않는다. 그는 늘 이렇게 얘기한다. 시인이 시로 보여주면 그만이지…… 그럴 것도 같다. 그것이 고통스런 기억이든 아름다운 기억이든 그만의 비밀이고 재산일 테니. 그래도 시인의 고향을 찾아가는, 그것도 장님 코끼리 더듬듯 달랑 혼자서 찾아가는 이 마당에, 나는 그의 마음 속 지도라도 훔쳐 읽고 가야 했다. 효자동을 중심으로 그려 준 한 장의 지도에 의지해 나는 용감하게 춘천으로 향했다. 이슬비가 뿌리는 늦가을 아침내 경춘가도를 달리자니 마석, 양평, 대성리, 가평, 강촌, 그리고 춘천…… 70년대, 80년대 내내 그곳은 통기타와 청바지와 MT가 있었던 곳, 내게도 향수 어린 지명들이다. 두시간 반을 달려 가장 먼저 들른 곳은 공지천 둑 위의 마을, 효자동이었다. 



  1. 전쟁, 난산, 모래둑, 그리고 도살장 

  그가 태어난 곳은 대룡산 깊은 자락, 수리봉 옆의 작은 매봉산 기슭이다. 전쟁을 피해 피난민들이 하나둘 모여들던 곳이다. 그의 어머니도 산달이 가까워지자 신접살림을 차렸던 춘천 소양로에서 친정인 이곳으로 온다. 1954년 9월 1일 아침, 그는 누대에 걸쳐 단명한 가계의 장남으로 태어난다. 난산이었다. 순산을 기원하며 외할아버지가 지게를 지고 땅을 두드리는 의식까지를 마치고 나서야 그는 세상에 얼굴을 내민다. 울지 않는 아이, 어렵사리 울음을 터뜨렸을 때야 그의 어머니는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단명한 가계의 피를 피하려고 돌림자인 ‘桂’자를 버리고 ‘승호’라는 이름을 받는다. 그의 탯자리는 지금 소양호에 막혀 들어갈 수 없다.


나에게 온실이 있었다면, 그것은 태어나기 전의 공간, 나는 거의 질식한 채로, 이 세상으로 밀려 나왔다 한다. 뒤늦게야 나는 고고지성을 질렀다는데, 울음을 터뜨리고서야 죽을 뻔한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한다. 죽음의 고비는 사람에게, 끝을 노려보는 눈을 준다.

- 「몽매인의 슬픔」 


  아이를 안고 오래 걸으면 장수한다는 속신을 믿고 외할머니와 어머니는 대룡산 자락에서부터 춘천 소양강 옆 소양로까지 그를 번갈아 안고 걸어서 걸어서 춘천으로 돌아온다. 다섯살까지 살았던 소양로 2가 판자집에서의 유년은, 집 근처에 있던 미군부대에서 군용헬기가 뜨면 방바닥의 장판이 들고 일어났을 정도로 남루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의 기억에 남아 있지 않는 시공간이다.

  다섯살이 되었을 때 그는 춘천시 효자동 370번지로 이사한다. 그곳이 바로 공지천을 끼고 있는 모래둑 위의 마을, 도살장 옆이다. 이곳에서 시인은 중학교 일학년까지 살았으니 실제로 유년의 기억 대부분을 차지하는 공간이다. 지금은 제방 시설을 갖추고 있으나 당시는 여름 홍수가 나면 번번이 터지는 모래둑이었다. 둑이 터질 때마다 간단한 이불과 옷가지를 들고 춘천부속초등학교 교실로 대피했던 기억이 있다.

  모래둑 위 도살장 옆의 유년은 가장 먼저 마을 사람들의 괴상한 삶의 풍경들로 떠오른다. 만년 고시생도 있고. 친구 중에는 육손이도 있다. 월남 파병부대였던 ‘맹호부대’의 환송은 춘천역에서도 간간이 있었는데, 환송을 받고 떠났던 마을 청년 하나는 폭탄에 한 쪽 눈을 잃은 채 선글라스를 끼고 뺨 한 쪽이 시퍼렇게 되어 돌아온다. 그 형은 매를 키웠는데 개구리를 잡아다주면 매는 날카로운 발톱으로 개구리를 누르고 두 눈부터 톡톡 쪼아 먹곤 한다. 계모가 겨울에 찬 개울물로 목욕을 시켜 간질에 걸렸다는 아이는 딱지치기를 하다가 갑자기 입에 거품을 물고 누워 지랄을 떨기도 한다. 도살장 옆에는 백정이 살고 있는데 간혹 술집 작부를 데려다 낮거리를 하곤 한다. 친구들과 그것을 훔쳐보다 들켜 그 뒤로는 백정을 피해 다니곤 한다. 춘천형무소 간수는 취한 채 남춘천 낡은 나무다리를 건너다 구멍에 빠져 다리가 부러지기도 한다. 간수의 딸은 수녀가 된다. 모래둑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사람들의, 도살장과 이웃해 사는 사람들의 풍경들이다.


누구나 피를 흘리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 칼이 심장을 베지 않아도 / 조용히 마취의 피를 쏟으면서 / 살아가는 것이다 붉은 고깃덩어리여 / 그렇게 그렇게 죽어가는 것이다 발이 묶인 채 / 꽥꽥거리다 조용해지는 도살용 돼지들과 / 시퍼런 낙인 찍힌 채 도살장에서 끌려나오는 살덩어리들, / 나는 기름걸레 같은 창자를 입에 물고 서로 찢느라 / 퍼덕거리는 까마귀들의 싸움을 / 인간의 마을에서 본다

                                               -  「붉은 고깃덩어리」 


  그는 자연과 더불어 뒹굴었던 야생(野生)의 아이이기도 하다. 공지천은 겨울이면 스케이트장이, 여름이면 미역 감는 곳이 된다. 공지천은 물론 멀리 신연강과 대바지강까지 도시락을 싸들고 나가 물고기들을 잡곤 한다. 절음발이였던 마을의 박 반장과 더불어 족대를 들고 나가 고기몰이를 하곤 하는데 밤에는 횃불을 들고 밤고기잡이를 한다. 온갖 새들은 그의 사냥감이고 애완동물이다. 산비둘기, 멧새, 물새 등의 새끼를 잡아와 기르기도 하나 번번히 죽기 일쑤다. 

  모래둑 위에서, 도살장 옆에서 그의 아버지는 가세를 일으킨다. 직원을 20여명 정도를 거느린 중소기업(목장갑공장)을 운영하며 정치(공화당)에도 관여한다. 그는 춘천의 명문 사립, 춘천교대 부속초등학교에 다닌다. 그러나 중학교 일학년 때 대기업이 지방으로 진출하면서 그의 집은 파산한다. 파산 이후 아버지는 집을 나간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내가 제법 딱딱해지자 아버지는 어디론가 떠나버렸다. / 나는 돌투성이 산에 버려진 알이었다”. 이 시의 제목은 「기다림」이다. 이때부터 그의 삶과 내면은 어두워지기 시작한다. 



  2. 목발과 철길, 그리고 안마산에 묻힌 두 주검 

  춘천중학교 시절 그는 미술반 활동을 하며 민병두라는 친구와 가깝게 지낸다. 병두는 춘천형무소 옆에 사는 가난한 노부부의 외늦동이. 춘천고등학교에 함께 진학한다. 병두는 여전히 미술반 활동을 계속하고 그는 그만 둔다. 병두는 유난히 벽에 걸린 옷을 자주 그린다. 어느 겨울날, 며칠 결석을 한 병두의 책상에 흰꽃이 놓여 있다. 죽기 전 병두는 동네 불량 서클로부터 가입을 종용당했으나 버틴다. 그러던 어느 날 밤, 불량 서클 멤버였던 목발잡이가 내리친 목발에 맞아 쓰러진다. 단순한 기절이었는지 죽었는지 분명치 않다. 겁이 난 목발잡이는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도록 돌멩이로 얼굴을 친다. 여기서 끝나지 않고 목발잡이는 시체를 끌고가 병두의 집 굴뚝 뒤에 매장한다. 그리고는 불안감이었던지 자책감이었던지 목발잡이는 이삼일 뒤 형무소 옆 낭떠러지에서 떨어진다. 자백한다. 모든 것이 밝혀지고 그는 눈보라 속에서 병두의 장의차를 따라간다. 민병두는 안마산에 묻힌다. 후일에 춘천고등학교에 다녔던 소설가 한수산이 춘천을 떠들썩하게 했던 이 사건을 듣고 소설화한다. 제목이 「안개 시정거리」(1979)이다.

  73년, 그는 춘천교육대학에 입학한다. 춘천교대 시절, 그는 통기타를 치고 노래하기를 좋아한다. 이 때 만난 친구가 이덕일이다. 덕일은 군복을 물들인 옷을 자주 입고 다녔고 나이는 그보다 두 살 위쯤이었고 같은 반이었다. 그는 덕일과 듀엣으로 싱어송리더 역할을 하곤 한다. 대학교 2학년 때였고 축제 전야제였다. 덕일은 연극을 보러 갔다가 술에 취해 연극반 학생들과 시비가 붙었다. RNTC(학군단) 학생들이 덕일을 데리고 나와 택시를 태워 보냈는데 그 저녁 이후 덕일은 행방불명된다. 덕일의 가족이 경찰에 신고를 한 후 열차사고로 안마산에 가매장시킨 시체 한 구가 덕일임이 확인된다. 사건은 이렇다. 덕일은 공지천 이디오피아 찻집 근처에서 택시에서 내린다. 이미 막차가 지나간 후의 시간이었고 차가운 철길에 누워 술이 깨기를 기다렸는지 모른다. 그러다 철길 위에서 잠들어 버렸고 그날 따라 막차는 연착되어 그 철길을 지난다. 덕일은 그렇게 철길 건널목에서 죽는다. “난 철길이 싫다 그 찌들고 절여진 피냄새 때문에 / 살껍질이 30미터나 널린 추억 때문에”(「기차의 고집」).



검은 기관차가 한 대 / 토막난 말대가리처럼 눈앞을 지나간다. / 그것뿐이다. / 그것은 혼자 웅웅거리며 멀어진다. / 지린내 낮게 깔리는 흐린 날이다. / 추억의 현장검증을 하듯 건널목에서 / 철길을 / 굽어본다. / 망령(亡靈)은 늙지도 않는가. / 말굽자석 모양 망령은 끈덕지게 / 철로에 붙어 / 젊은 날 죽은 자리를 고집한다. / 눅눅한 침목들이 / 대못을 안고 누워 있는 흐린 날이다. / 피 속의 철분들이 부식해 / 맨드라미를 빚는가.

- 「철길」 



  그 즈음 그는 시를 쓰기 시작한다. 같은 해에 몸이 심하게 아파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면서 시를 쓴다. 특별한 시 교육은 전혀 받아 보지 못한 채 혼자 습작을 해 나갔고 대학을 졸업할 때쯤은 학교 신문에 시를 발표하기도 한다. 춘천교대를 졸업하고 적체가 심해 2년을 견딘 후인 77년, 강원도 정선의 화동초등학교에 첫 발령을 받는다(그 해 『현대시학』에 「비발디」 등이 추천 완료되면서 등단한다). 그제서야 그는 춘천을 벗어난다.




  3. 카페 이디오피아, 그 물 위와 물 아래 

  그는 태어날 때부터 난산의 고통 속에서 죽음의 공포에 휩싸였다. 홍수에 쉽게 터지는 모래둑과 도살장과 가까이 있었던 삶의 터전들 한가운데도 늘 죽음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그리고 친한 친구들의 그로테스크한 죽음은 감수성이 예민한 사춘기, 청년 시절의 한 가운데를 차지했다. 젊은 시절 폐결핵 등의 병이력도 그에게는 죽음의 공포였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그에게 춘천은, 고향은 죽음의 도시가 아닌가. 그가 유독 죽음을 밑그림으로 깔고 있는 그로테스크한 시들을 써왔던 것도, 선(禪)불교에 깊이 빠졌던 것도 몸에 배었던 죽음의 물빛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는 지금껏 10여권이 넘는 시집을 낸 바 있으나 직접적으로 춘천을 노래하는 시는 없다. 그에게 춘천이라는 공간은 낙인과도 같은 기억에 불을 지르는 곳이다. 강과 호수에 둘러싸인 호반의 풍경 속에 악몽같은 인간들과 삶과 사건이 깃든 곳이고, 평화로운 풍경 속에서 보낸 지옥같은 한 철이다. 그는 유년의 봄 한 철 이외에는 춘천이라는 ‘물빛의 공간’에 한번도 젖어보지 못했다고 기억한다. 그의 인생에서 여름은, 젊음은 없었던 셈이다. 그는 스물에 이미 마음은 늙어 있었던 셈이다.

  나는 ‘SINCE 1968’이라는, 이디오피아 참전 기념비 옆에 있는, 그 근처에서 친구 덕일이 기차에 치었던, 의암호가 내려다 보이는 카페 ‘이디오피아’에 앉아 물 위와 물 아래를 바라보며 그의 ‘춘천’을 정리한다. 이곳은 그가 어릴 적에는 효자동에서부터 도시락을 싸들고 와 고기잡이를 했던 곳이다. 그리고 이 카페에 앉아, 혹은 호숫가를 따라 놓인 산책길을 거닐며, 셰익스피어를 비롯한 고전들을 읽기도 하고 습작을 하기도 했던 곳이다. 마땅히 갈 곳도 없다는 듯이 안개비가 종일 추적거렸다. 춘천에서는 비도 이리 쉽게 안개가 되어 내리나 싶었다. 안마산도 의암호도 모두가 뿌옜다. 막막해 머뭇거리는 듯 스미고 싶어 끈적이는 듯, 그렇게 춘천은 안개비처럼 숨어 있었다. 죽음의 안개비, 죽음이 부르는 모천(母川)에로의 침잠을 권유라도 하듯이…… 내리는 안개비 속에서 나는 덤덤하게 그의 시 「물의 자서전」을 읽을 뿐이다.


부러진 갈대 끝이 물에 닿아서 / 떨며 오직 한 획만을 물 위에 긋는 것을 /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바라본다. / 물 맑은 가을 수로(水路) / 갈대 그림자 물 아래 서걱거리고 / 흐르는 물은 무엇보다도 / 자서전 따위에는 관심이 없는 듯하다. / 물은 딱딱한 겉장 없이 흘러왔고 / 마지막 페이지도 없이 흘러갈 것이다. / 보석으로 보석을 씻듯이 / 물무늬로 물무늬를 지우듯이 / 흘러가는 물을 /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바라본다.                        

- 「물의 자서전」




정끝별
글 / 정끝별_시인, 평론가. 1964년생. 시집 자작나무 내 인생 흰 책, 평론집 천 개의 혀를 가진 시의 언어 오룩의 노래 등